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함을 통해서 우리는 여러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먼저 요셉의 옥살이가 그랬듯 철저히 낮아지면 그만큼 높여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셉이 꿈을 해몽하여 바로의 인정을 받았듯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믿음으로 잘 계발할 때 영적 활로에 큰 도움을 입는다. 그리고 바로에게도 영몽이 임했듯 하나님의 말씀은 다양한 형태로 임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풍년과 흉년을 통해서 애굽이 바로에게 돌아왔듯이 은혜와 고난 양면을 통해서 성도는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하게 된다.
(강해)
본문은 요셉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로왕의 꿈을 해석하여 바로로부터 그 지혜를 인정받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의 교훈을 받게 됩니다.
1. 철저히 낮아지면 높여주신다는 교훈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사람은 거름더미에서 건져내셔서 높은 자리에 앉히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끝까지 전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낮아진다고 억울해 마시고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소원대로 더욱 낮추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겸손이 무르익을 때 높여주십니다.
약4:9-10에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낮추실 때 그것을 회복하려고 하지 말고 이것을 기회로 더 낮추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높여주실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잘 개발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사를 통해서 요셉에게 길이 열렸습니다. 요셉에게 주신 은사는 꿈 해몽과 지혜의 은사였습니다. 이처럼 자기에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충실하다 보면 요셉처럼 그것을 통해 능력 받고 그것을 통해 영적으로 다스리는 영권을 얻고 또 하나님께 쓰임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잘 개발해야 합니다.
어떻게 개발하느냐? 신앙생활 열심히 하면 이 은사가 나타나 개발됩니다. 달걀을 부화해 보면 따뜻한 온도와 움직여주기 등을 잘해주면 3주 만에 깨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은사 개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앙의 온도가 필요합니다. 열심을 품고 하나님을 섬기면 은사가 나타납니다. 이 은사는 우리를 도와 진리 가운데로 이끄시기 위한 하나님의 도움입니다. 그러므로 은사는 꼭 필요합니다.
롬12:6을 보면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에가 가장 잘하는 방향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디서든 환영 받고 성공합니다. 우리나라 교육이 잘못된 것은 획일적이라는 것이며 다양한 재능을 키워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자기에게 잠재한 자기만의 은사를 개발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하심은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25절에 “요셉이 바로에게 고하되 바로의 꿈은 하나이라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했습니다. 바로왕은 불신자인데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큰일을 보여주셨습니다. 느브갓네살의 꿈도 그렇습니다. 느브갓네살은 불신자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인류의 미래사를 보여주셨습니다. 동방박사들도 천문을 연구하다가 아기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혹시 불신자가 안다고 해서 우리가 기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을 통해서 불신의 유대인들을 부끄럽게 한 것과 같이 신령한 믿음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나라 줄기세포를 연구한 과학자 황우석 교수가 과학을 하면 할수록 신의 존재가 믿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무신론의 불신자가 우리 기독교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을 했을까? 그러나 누구든지 정직하게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면 하나님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가 현재는 불교 신자지만 말하는 것을 보니 곧 하나님께로 돌아 올 것 같이 보여 집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음성은 다양하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때는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고, 어떤 때는 직접 말씀하시고, 혹은 내 영혼에 감동으로 말씀이 오기도 하고, 지혜로도 오고, 음성으로도 오고, 꿈으로도 오고, 전문가를 통해서도 오고, 지체된 은사자를 통해서, 가족을 통해서, 어떤 사건과 사물을 볼 때 깨달음을 통해서, 혹은 발람을 보니 말 못하는 나귀를 통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히1:1에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여러 방향에서 다양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 7년 풍년과 7년 흉년이 보여주는 교훈이 그것입니다. 당시 애굽을 다스리던 바로왕의 왕조는 애굽 본토인이 아니라 애굽을 점령한 셈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요셉의 말을 듣고 7년 풍년 시 많은 곡식을 저장했다가 7년 흉년 시 팔아서 애굽의 모든 백성과 재산이 다 바로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에게 풍년과 흉년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여기에 귀한 진리가 있어요.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고난 양면을 통해서 온전히 우리 마음의 땅이 하나님께 바쳐지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풍년 때는 기뻐만 했지 돌아오지 않았지만 흉년 때에 비로소 애굽인과 애굽 땅이 바로에게 돌아왔듯 고난은 우리를 하나님께 더욱 순복하게 만듭니다. 축복을 나빠할 사람 없지만 도리어 자만하고 교만하고 아쉬운 것이 없어서 순복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고난도 아울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달리 생각지 말고 은혜를 주셔도 하나님 잘 섬기라고 그런 것이요, 고난을 주셔도 하나님 잘 섬기라고 그러신 줄 알아야지 달리 생각하여 교만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살전5:10에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이 바로 예수님의 예표이기도 하고 우리 자신들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죽기까지 낮아지셨으나 하늘까지 높게 되신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요셉이 그러했듯 예수님의 그 뒤를 따라 승리하고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