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킴라일락인가? 정향나무인가?
[설악산기행⑪]설악산 빗물의 운명을 가르는 무너미고개를 넘어서...
▲ 천불동계곡 해발 1000m 부근에 핀 정향나무 꽃. 은은한 향기가 그만이다.
천당폭포를 지나자 식물의 분포가 달라져 보인다. 눈개승마가 만발하게 피어 있고, 정향나무 꽃이 은은한 향기를 발하고 있다. 히야, 넌 어찌 그리 청초하게 피어 있느냐? 연한 보라색의 꽃이 여인의 향기처럼 온 몸을 감싼다.
어떤 사람들은 이 꽃을 미스김 라일락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설악산에 피어나는 라일락은 미스김라일락이 아니다. 잎과 꽃을 비교해 보면 정향나무와 미스김라일락은 엄연히 다르다. 미스김라일락은 잎이 둥글고 꽃송이가 방망이처럼 줄기에 다닥다닥 길게 피어나고 짙은 보라색이다.
▲눈개승마
▲천남성. 독이 엄청 많아 조선시대 사약으로 사용되었다.
▲개다래 잎. 잎이 하얗게 꽃처럼 변해간다.
▲눈개승마. 말을 탄 모습?
반면에 정향나무는 잎이 잎 끝이 뾰쪽한 피침형이고 넓다. 꽃송이는 한줄기에 한데 뭉쳐 피어나고 연한 보라색이다. 정향나무는 물푸레나뭇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해발 1,000m를 전후한 고지대에서 자라난다. 정향(丁香)나무는 1개의 꽃을 놓고 보면 고무래 정(丁)자 모양으로 양으로 그 향기가 좋아 <정향나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정향나무는 물푸레나뭇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해발 1,000m를 전후한 고지대에서 자라난다. 정향(丁香)나무는 1개의 꽃을 놓고 보면 고무래 정(丁)자 모양으로 양으로 그 향기가 좋아 <정향나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라일락에 미스김라일락이란 이름이 붙여지기까지는 이런 사연이 있다. 미스김라일락은 1947년에 미국 적십자 소속 식물 채집가 엘윈 M. 미더(Elwin M. Meader)가 북한산 백운대에서 채취한 털개회나무 종자를 채취, 미국으로 가져가 개량해서 '미스김라일락(Miss Kim Lilac, Syringa patula "Miss Kim")'이라는 품종을 만들었다. 그는 당시 식물자료 정리를 도왔던 한국인 타이피스트 미스 김의 성을 따서 '미스김라일락'이란 이름을 붙였다.
우리나라에서 반출된 미스김라일락은 일반 라일락보다 향기가 더 진하고 꽃이 더 오랫동안 피어 미국 라일락 시장의 30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토종인 이 식물은 1970년대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다시 우리나라에 들어와 관상용으로 키우고 있는 묘한 운명을 지니게 되었다.
▲연보라색을 띄고 은은하게 향기를 발산하고 있는 정향나무의 아름다운 자태. 프랑스에서는 라일락을 <리라꽃>이라고 부른다. 베사메 무초에 나오는 리라꽃 향기란 가사와 같은 이름이다.
설악산 하고도 천불동계곡 해발 1000m 고지에서 바라본 정향나무 꽃은 더욱 고귀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그 향기도 은은하게 퍼져와 나는 한동안 정향나무 향기에 취해 넋을 잃고 있어야 했다.
라일락 향기는 천리를 간다고 하지 않던가? 프랑스에서는 라일락을 <리라꽃>이라고 부르는데, <베사메 무초>라는 노래에 나오는 꽃이 바로 이 꽃이다. '베사메 베사메 무초/고요한 그날 밤 리라꽃 피는 밤에/베사메 베사메 무초/리라곷 향기를 나에게 전해 다오' 사랑하는 연인을 리라 꽃에 비유하여 사랑의 기쁨을 노래한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라일락 향기가 가슴 가득히 전해 오는 느낌이 든다.
"이제 그만 올라가야지. 정향나무에 너무 반한 것 아니오?"
"하하, 그래야겠군.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저 정향나무 꽃은 너무 아름답질 않은가? 이 깊은 산중에 은은하게 피어나 사랑의 향기를 전해주고 있으니 말일세."
"잘 보존해서 더 많은 정향나무 꽃이 설악산에 피었으면 좋겠어."
"암, 그러길 바라야지‧…"
설악산 빗물의 운명을 가르는 무너미고개를 넘다
우리는 정향나무 꽃향기를 뒤로 하고 숨을 헐떡거리며 <무너미고개>에 도착했다. 해발 1,060m. 무너미고개는 <물 나눌 고개>의 우리말이다.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설악산의 물을 이곳에서 둘로 갈라진다. 대청, 중청, 소청에서 같은 빗물로 태어났지만 이들의 운명은 무너미고개에서 정반대의 길로 흐른다.
▲ 무너미고개에서 바라본 설악산비경. 무너미고개에서 바라본 설악산비경. 무너미고개에서 갈라진 빗물은 용아장성을 감싸 돌고 가야동계곡으로 흘러가 서해로 먼 여행을 떠나고, 천불동계곡을 타고 내려간 물은 동해로 흘러간다.
이 무너미고개에서 한쪽은 용아장성을 감싸 돌며 가야동계곡으로 흘러가 서해로 먼 여행을 떠나고, 천불동계곡을 타고 내려간 물은 동해로 흘러간다. 물의 운명도 이렇게 달라지는 것이다.
무너미고개에서는 등산객들도 이리저리 갈라진다. 모험을 좋아하는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은 공룡능선으로 가고 우리처럼 나이가 든 사람들은 대부분은 희운각대피소를 방향을 택해 대청봉으로 오른다. 한때의 젊은이들이 공룡능선 방향으로 씩씩하게 올라간다.
"우리도 저 젊은이들을 따라 붙을까?"
"아서 아서. 주제파악을 해야지. 이 길도 버거운데."
▲ 무너미고개에서는 등산길도 이리저리 갈라진다.
무너미고개를 지나니 계곡의 풍경은 또 다른 비경을 보여준다. 동서남북을 바라보아도 병풍 같은 비경이 펼쳐진다. 금강산의 만물상을 보는 느낌이랄까? 가다가 돌아서며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비경에 홀리다 보니 피곤한 줄도 모르겠다. 이제 대청봉도 손에 잡힐 듯 보인다.
▲무너미고개에서 되돌아본 설악산 천불동계곡 비경
멸종위기 야생식물 자생지에는 자주솜대가 피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자주솜대는 우리나라에만 서식을 하고 있는 식물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노란빛이 도는 녹색이지만 점점 자주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자주색으로 변할 때 다시 찾아오고 싶다. 자주솜대를 바라보며 서늘한 숲속을 걷다보니 <희운각대피소>가 보인다. 반갑다! 배도 고프고. 빨리 가서 밥을 해먹자.
▲ 멸종위기 야생식물인 자주솜대
희운각대피소는 <죽음의 계곡>에서 산화한 10동지의 죽음을 다시금 생각게 한다. 1969년 2월 14일 한국산악회 소속 '제1기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히말라야 원정을 위해 <죽음의 계곡(옛지명 반내피)>에서 등반훈련 중 막영지에서 눈사태를 당하여 전원(10명)이 희생을 당한다.
▲ 희운각대피소. 10동지의 죽음이 있은 후 산악인 희운 최태묵 선생이 사재를 털어 이곳에 대피소를 세웠는데, 그분의 호를 따서 희운각대피소란 이름을 붙였다.
이 사고를 당한 후 산악인 희운(喜雲) 최태묵(1920~1991) 선생이 이곳에 대피소를 세우면 이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사재를 털어 이 자리에 대피소를 건립했다. 그분의 호를 따서 대피소의 이름을 <희운각>이라 부르고 있다. 멋진 산악인이다.
희운 선생 덕분에 우리도 희운각 대피소에서 라면을 끓여 햇반으로 점심을 맛나게 먹었다. 산은 이렇게 또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커피가지 한잔 끓여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대청봉을 향해 길을 나섰다. 헉! 이재부턴 정말 깎아지른 절벽을 올라가는 가는 가파른 길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