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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가족 법회, 입춘 지안큰스님 법문(2024.02. 04)
일요법회를 하는 오늘이 24절기로 말하면 立春(입춘)입니다. 예로부터 입춘날에는 立春榜(입춘방)을 써 붙이면서 이날이 크게 길한 날이라 하여 ‘立春大吉(입춘대길)’이라는 말을 먼저 쓰고 그 뒤에 對句(대구)로‘建陽多慶(건양다경)’이라든지 ‘萬事亨通(만사형통)’이라는 여러 글귀들을 붙여서 써왔습니다. 봄을 느끼는 때라고 말하기도 하고,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立春(입춘) - ‘봄이 선다’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좋은 날로 여겨 왔습니다.
올해도 김교수님께서 해마다 해오신 대로 입춘방을 인쇄해서 가져다 놓은 것이 사무실에 있으니 필요하신 분들은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立春大吉(입춘대길)’ - 입춘이 크게 길한 날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좋은 걸 선호하는 거예요. 사람의 마음은 항상 좋은 것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좋은 것이 선택되어진 상태를 ‘잘 되었다.’ 또는 ‘운이 좋았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일반적인 말로 바꾸어 말하면 福(복)입니다. 운이 좋고 좋은 쪽으로 잘 되어 가는 것을 福(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입춘날을 맞이해서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좋은 일이 많이 이루어지길 축원하겠습니다.
좋은 일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불교를 공부하는 분들은 불교적인 입장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이 어디에서 비롯 - 시작이 되는가? 경전을 많이 본 분들은 답을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은 내 마음을 잘 썼을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음을 잘 쓰는 것이 善行(선행)입니다. 行(행)자를 빼면 善(선)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잘못 쓰는 것은 善(선)과는 반대로 惡(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일이란 내 마음을 잘 쓰는 데에서 발생하게 되고 그것이 因(인)이 되어 나중에 緣(연)을 만날 때 나타나게 됩니다. 因緣(인연)이라는 말을 이렇게도 해석합니다. 시간적으로 因(인) 자와 緣(연) 자를 구분해서 말하는 경우인데, 因(인)은 과거에 만들어진 것 - 우리가 어제 무엇을 내가 했는가 기억할 수 있고, 또 지난 여러 해 전의 일도 때로는 기억할 수 있을 겁니다. - 과거에 있었던 일, 과거에 했던 일이 因(인)입니다. 씨앗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글자입니다. 緣(연)은 현재에 조성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因(인)은 과거의 것을 말하고 緣(연)은 현재 것을 말한다라고 因緣(인연)이라는 말을 이렇게도 해석을 합니다.
그래서 좋은 일·복된 일이 내가 과거에 마음 쓴 데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因緣(인연)이라고 하는데, 이 因緣(인연)이 마음이 없으면 없는 거예요. 내 마음이 없으면 因緣(인연)이 없는 겁니다. 이게 참 묘하게 들리죠? 내 마음이 없으니 因緣(인연)이 없는 거예요. 마음에 의해서 因緣(인연)이 있는 것입니다.
불교 교리의 중심이 因緣法(인연법)입니다.
지금 소개할 이야기기는, 사리불이 처음에는 부처인 제자가 아닌 – 당시 인도에는 六師外道(육사외도)라 하여 여섯 무리의 외도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사리불이 외도 대표 스승인 산자야 벨랏타뿟타의 제자였어요. 이 산자야 벨랏타뿟타는 邪道(사도) - 外道(외도)이므로 인과법도 무시하고, 도덕적인 윤리 이런 거 신경 쓸 거 없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된다고 합니다. 이렇듯 邪見(사견)을 내세운 사람이 사리불의 스승이었던 산자야 벨랏타뿟타인데 보통 한역에서 비라지자라 했습니다. 그런데 지혜 제일이었던 사리불은 아주 총명했기 때문에 스승인 산자야의 가르침에 전혀 만족을 할 수가 없었어요. ‘내가 출가했는데 스승의 가르침에 만족할 수 없구나. 이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산다면 추구할 일이 무엇이 있으며, 수행할 것은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깊은 회의를 품고 있었어요. 그래서 항상 ‘어떻게 할까? 차라리 고향으로 돌아갈까, 또는 다른 어떤 좋은 훌륭한 스승을 찾아가 볼까?’ 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곽 길가에 있는데, 성 안에서 탁발을 하고 나오던 스님을 만납니다. 5비구 중의 한 사람인 앗사지 였습니다. 한역에서는 馬勝(마승)비구라고 했습니다. 사리불은 앗사지의 당당한 威儀(위의)에 반했습니다. 사리불은 중얼거렸습니다다.
‘참으로 고상한 모습이다. 이 수행자야말로 확실히 좋은 가르침을 받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사리불은 앗사지의 탁발이 끝나는 것을 기다렸다가 가까이 가서 말했습니다.
“당신의 모습은 참으로 고요하고 당당하십니다. 어떤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습니까?”
“저의 스승은 석가족 왕자였다가 출가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입니다.”
“당신의 스승께서는 무엇을 가르치십니까?”
“스승을 모신 지 얼마 되지 않으므로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생기고 또 인연에 의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나의 스승 대사문(大沙門: 석가모니)께서는 항상 이렇게 가르쳐 주십니다.(諸法從緣生 諸法從緣滅 我師大沙門 常作如是說)”
이 말을 듣고 사리불이 출가 전부터 친구였던 목련존자과 같이 부처님을 찾아가 새로운 스승으로 모셔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합니다.
앗사지로부터 인연법이란 말을 듣고 석가모니 부처님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인연이란 말은 불교를 대변하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존재합니다.
앞서 말씀드렸습니다마는 마음에 의한 인연이에요. 이 세상 모든 것은 마음이 중심이 됩니다. “외부 경계는 내 마음과는 상관없는 거 아닙니까?”라고 반문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외부의 모든 경계도 내 마음 때문에 있는 거예요.
이른바 주관·객관이라고 말하는 두 가지가 모두 마음에 의해 있는 것입니다. 마음은 인연을 만듭니다. 이것이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신이 무엇을 창조했다 라고 하여 창조설인데, 불교에서는 마음이 창조주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因緣(인연)을 항상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인연이 무엇인가 .. 인연법을 살피는 것입니다. 因緣(인연)을 『阿含經(아함경)』에서는 緣起(연기)라고 합니다. 緣起(연기)는 ‘말미암아 일어난다’라는 뜻으로 생성과정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阿含經(아함경)』경문에는 ‘緣起(연기)를 보는 자는 法(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본다’라는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법을 보는 것이 부처님을 보는 것입니다. 因緣(인연)이라는 말을 잘 생각하면서 자기 마음을 反照(반조)하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자기 나름으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자기 나름으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내가 경험해 온 여러 가지 일들이 因緣法(인연법)의 실상을 모르면 때(垢)가 되는 것입니다. 지식이 때(垢)가 되고 경험이 때(垢)가 됩니다. 때(垢)가 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때(垢)가 되는 것을 다르게 말하면 業障(업장)이 된다고 볼 수 있지요.
불자들은 부처님 경문에 나오는 말씀 두 가지를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공부입니다. 참선을 하지 않아도, 경전을 열심히 보지 않아도, 염불을 하지 않아도, 기도도 하지 않아도, 특별한 수행법을 몸소 행하지 않더라도 마음을 이야기하신 유명한 부처님 말씀 두 가지를 알면 공부가 됩니다. 첫째는 『金剛經(금강경)』에 설해진 말씀으로 마음을 항복시키라는 降伏其心(항복기심)이고, 둘째는 『華嚴經(화엄경)』「정행품」에 나오는 말씀으로 마음을 잘 쓰라는 善用其心(선용기심)입니다. 불교라는 종교의 카테고리를 벗어나서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降伏其心(항복기심)하고 善用其心(선용기심)하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잘 산다는 것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보통 경제적으로 풍부하게 사는 것을 잘 산다고도 할 수 있지요. 그러나 풍부하게 사는 것을 반드시 잘산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재산을 많이 소유했다고 하여 잘산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가령 예를 들면 100억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10억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비교하면 열배로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것으로 열배를 더 잘산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풍부하면 물질적으로 좀 고급지게 사니까 잘 산다 할 수 있지만 삶의 가치는 물질 가치가 아니에요. 『般若心經(반야심경)』에 나오듯이 五蘊(오온)이 전부 공하다 하잖아요.
그래서 스스로 내 마음을 反照(반조)하면서 因緣(인연)의 가치를 물어야합니다. 因緣(인연)의 가치가 좋으면 모든 것이 좋게 되는 것이고. 因緣(인연)의 가치가 좋지 아니하면 모두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降伏其心(항복기심)하라고 말씀하신 『金剛經(금강경)』의 말은 중생의 貪瞋痴(탐진치) 三毒(삼독)이 일어나는 번뇌가 치성한 마음 - 이것을 줄여서 妄心(망심)이라 합니다. - 妄心(망심)을 가지고 옳다고는 할 수 없는 거예요. 妄心(망심)을 가지고 어떻게 옳다고 할 수 있겠어요.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내가 옳다고 남에게 주장할 수 없는 겁니다. 어느 소설에 보면 거짓말하는 얘기가 나오는 게 있는데, 어떻게 거짓말하느냐. ‘우리집 닭이 새까만 알을 낳았다.’라는이야기가 있습니다. 구워서 까만 달걀을 파는 데가 있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마는 닭이 새까만 알을 낳는 경우어는 없었다는 거예요. 새빨간 거짓말을 비유하는 말에 우리집 닭이 검은 알을 낳았다 라는 거짓말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거짓말은 妄心(망심)입니다. 妄心(망심)을 가지고 옳다고 주장할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妄心(망심)을 조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妄心(망심)을 가지고 진리를 설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邪人(사인)이 正法(정법)을 설해봐야 正法(정법)이 邪法(사법)이 되는 것이고, 正人(정인)이 邪法(사법)을 설할 때는 邪法(사법)도 正法(정법)이 된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妄心(망심)을 조복해야 합니다.
善用其心(선용기심) - 善心(선심)을 잘 써라. 善心(선심)은 진실한 마음으로 잘 써야 되는 마음은 참마음입니다. 善用其心(선용기심)은 『華嚴經(화엄경)』「정행품」에 나오는 말입니다.
어떤 때는 내가 내 마음을 항복시켜야 됩니다. 『法句經(법구경)』에는 ‘敵(적)이 밖에 있지 않다. 내 안에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敵(적)을 盜賊(도적)이라 『法句經(법구경)』에도 번뇌가 도둑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五欲(오욕)도 도둑이라는 말이 나오지요.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적이 아니라, 내가 내 마음을 잘못 쓰면 그게 적이 된다는 뜻이에요.
因緣(인연)의 의미를 잘 생각하면서 마음을 잘 쓰는 것이 참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種豆生豆影隨形(종두생두영수형)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그림자는 물체의 모양을 따르나니
三時業果如鏡照(삼시업과여경조)
삼시 업과가 거울이 물체를 비춰주는 것과 같네
自作自受無回避(자작자수무회피)
스스로 지어 스스로 받는 것이라 회피할 수 없거늘
那得怨天更尤人(나득원천갱우인)
어찌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을 탓하리오.
명심하고 지녀야 될 偈頌(게송) 10개를 간추려서 <衲子十偈(납자십계)>라 합니다. 衲子(납자)는 본래 누더기 입고 수행에 전념하는 스님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衲子(납자)가 지켜야 할 열 가지를 게송으로 읊어 놓은 법문을 <衲子十偈(납자십계)>라 합니다. 그 중 5번째 因果(인과)에 대해서 설해놓은 게송을 소개해 드린 것입니다.
‘不落因果(불락인과)’에 대한 禪話(선화)가 있습니다.
百丈懷海(백장회해 : 720~814) 선사에 관한 禪話(선화)에는 여우 이야기가 있습니다. 百丈野狐(백장야호)라는 공안에 얽혀 있는 前百丈後百丈(전백장후백장)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소개하면 백장 선사가 설법을 할 때마다 어떤 노인이 항상 대중을 따라 법문을 듣고는 대중이 물러가면 노인도 물러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노인이 대중이 물러갔는데도 가지 않고 혼자 남아 있었습니다. 백장 선사가 마침내 그 노인을 향해 물었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시요?”
이에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예,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과거 가섭불 당시에 이 산에 살았는데 어떤 학인이 ‘큰 수행을 한 사람도 인과의 굴레에 떨어집니까?’하고 물은 질문에 제가 ‘不落因果(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잘못 대답을 하여 오백생 동안 여우의 몸을 받아 살았습니다. 이제 스님께서 저를 위하여 오직 깨달음을 열 수 있는 한 마디 법어를 주시어 여우의 몸을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깨친 사람 - 成佛(성불)한 사람이 인과에 떨어지느냐는 것이지요. 그래서 백장 선사가 그때 질문대로 다시 물으라 하니 노인이 물었습니다.
“큰 수행을 한 사람도 인과의 굴레에 떨어집니까?”
이 때 백장 선사가 “不昧因果(인과에 어둡지 않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노인은 그 말을 듣고 깨달아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노인은 감사 인사를 하고 나가면서 부탁을 하였습니다. “내가 스님이었으니 스님 다비하는 식으로 나를 다비를 해 주십시오.”라며 그 노인이 나갔습니다. 그 뒷날 이 백장스님이 “다비할 일이 있으니 대중은 산으로 가자”고 하였더니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다비는 스님이 돌아가시면 하는 것인데 아무도 죽지 않았는데 무슨 다비할 일이 있을까?“라 하였습니다. 백장스님이 앞장서 가고 대중들은 따라가서 산골짜기 안으로 들어가니 얼마쯤 가니 큰 여우가 죽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우를 화장을 했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前百丈(전백장)․後百丈(후백장) 설화인데 고도의 메타포가 있는 것으로 不落因果(불락인과)라고 대답해서 500세 동안 여우 몸을 받고 不昧因果(불매인과)라 대답하여 여우 몸을 벗어나게 해준 것이 公案(공안) - 話頭(화두)가 된 것입니다. 물은 노인을 前百丈(전백장)으로 보고 답해준 백장을 後百丈(후백장)으로 봅니다.
말 한마디로 하는 것을 이렇게 비유를 해볼까요? 요새 우리나라도 복권이 인기인데 오늘 아침 인터넷 뉴스에 나온 내용입니다. 미국에서 복권 하나 당첨되면 엄청난 부자가 된다고 합니다. 기도하는 것을 복권 사는 것이라고 비유해서 말씀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천황사에 공부하러 오시는 신도분 중 한 분이 남편이 국가유공자인데 서울에 복권 파는 가게를 해요. 엄청 길목이 좋아서 잘 팔린다는 거예요. 나도 그냥 보시한다고 복권을 몇 장씩 사요. 됐는지 안 되는지 모르겠는데.. 복권 당첨 확률은 0.00000001% 말하자면 화엄경에 나오는 말인 우파니사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권을 사지 않은 사람은 복권을 사지 않았으므로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전혀 없는 거예요. 우리가 절에 다니면서 기도하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고, 법문 듣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고, 마음 한 번 잘 쓰는 것이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마음 한 번 잘 쓰는 것이 복권 사는 것보다는 낫다는 말입니다. 그게 원인이 돼 가지고 당첨되는 사람은 엄청난 결과가 있듯이 인간의 業行(업행) 하나가 엄청납니다. 말 한마디도 업행이잖아요. 口業(구업)의 행위가 엄청난 거예요. 業行(업행)이 하나 씌워지면 이게 善業(선업)이 되든지 惡業(악업)이 되든지 하여 과보를 받게 돼 있는 거예요.
마음을 잘못 쓰면 잘못 쓴 방향으로 법이 만들어져서 과보를 받게 되고, 잘 쓰면 좋은 방향으로 업이 좋은 과보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 因果法(인과법)의 근본 이치입니다. 앞서 百丈野狐(백장야호) 소개했습니다만 글자 한 자 차이에 어째서 畜生道(축생도)인 惡道(악도)로 떨어지고, 또 말 한마디 고쳐 말해서 惡道(악도) 중생을 구제해 주느냐예요. 아주 불가사의한 뜻이 말속에 깊이 숨어 있다는 겁니다.
<衲子十偈(납자십계)>를 다시 보겠습니다.
種豆生豆影隨形(종두생두영수형)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그림자는 물체의 모양을 따르나니
콩을 심으면 콩이 나듯 그림자는 원래 물체의 모습대로 생긴다는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게 그림자잖아요. 한 생의 자취가 그림자입니다. 이 세상 삼라만상 두두물물도 진여의 그물에 비쳐 있는 영상이에요. 거울에 비친 영상도 그림자입니다. 그림자 속에서 다 존재하는 것입니다. 본래 물체의 모습대로 생긴다는 것입니다.
三時業果汝鏡照(삼시업과여경조)
삼시 업과가 거울이 물체를 비춰주는 것과 같네
‘불교에서 因果法(인과법).... 因果法(인과법)이라고 하지만 나쁜 짓 하는 사람이 잘 되는 사람 많이 봤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因果法(인과법)이 있다면 나쁜 짓을 한 사람은 잘못되어 벌 받아야 될 거 아니에요. 요새 세상이 상 받아야 될 사람은 벌 받고 벌 받아야 되는 상받는 거꾸로 된 세상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보가 오는 때가 달라요. 금생에 악행을 저지르고도 금생에는 과보가 오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나쁜 짓을 해도 과보가 금생에는 오지 않고 다음 생에 오는 거예요. 과보를 금생에 받는 것을 現生報(현생보)라고 합니다. 現生(현생)인 지금 현재의 생에서 과보를 받는다는 말이죠. 그런데 선업도 마찬가지예요. 선에 대한 과보도 아무리 내가 좋은 일을 해도 과보가 금생에는 안 오는 수가 있다는 거예요. 내생에 온다는 거예요. 불교는 인생을 삼생으로 설명하잖아요. 내생에 과보가 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順生報(순생보)라 합니다. 다음 생에 오는 것이 順生報(순생보)입니다. 그런가 하면 과보가 한참 후에 오는 것도 있다는 거예요. 이걸 順後報(순후보)라고 하는데 업을 지은 과보가 제 3생 이후에 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악행을 저지르고도 현생에 악행의 과보를 받지 않는 수도 있기는 있다는 거예요. 다음 생에 받거나 뒷 생에 가서 받는다는 것입니다.
自作自受無回避(자작자수무회피)
스스로 지어 스스로 받는 것이라 회피할 수 없거늘
那得怨天更尤人(나득원천갱우인)
어찌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을 탓하리오.
전에도 한 번 소개한 게송입니다마는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을 탓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원망한다는 것은 우리가 흔히 하는 말입니다. 내가 내 마음을 잘 다스려서 인연법을 살펴가는 그것이 불교의 바른 수행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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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自作自受無回避, 那得怨天更尤人
不落因果, 不昧因果
항복기심, 선용기심~
설날을 맞이하여 마음을 다시 잘 정비해봅니다.
좋은 법의 향기를 맡게해주셔서 감사해요~!
역시 보살님이십니다
멋지십니다
🙏🏻🙏🏻🙏🏻🐥
감사합니다 _()_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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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_()_
🙏🙏🙏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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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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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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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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