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신인문학상 심사평
---이희석, 황순각, 홍정미 씨의 시에 대하여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 인간들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이며, 소위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인지는 어느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다. 인간의 타고난 성격과 취향도 천차만별이고, 그가 살아가는 사회적 환경과 전통과 역사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으며, 그 정답은 자기 스스로 찾아내며 자기 자신을 그 정답의 전형적인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시는 삶이고, 삶은 시이다. 이 세상의 삶은 어렵고 힘든 만큼 모든 삶은 ‘고난이도高難易度’를 요구하고, 이 접근 불가능성 때문에 저마다의 가장 독특하고 개성적인 삶이 요구되는 것이다.
본지는 이번 호에도 [두루미처럼] 외 4편을 응모해온 이희석 씨와 [바코드의 비밀] 외 4편을 응모해온 황순각 씨, 그리고 [가방 속의 보로헤스] 외 4편을 응모해온 홍정미 씨를 애지신인문학상 당선자로 내보낸다. 수도꼭지를 꼭꼭 잠가도 물방울이 떨어진다는 [사랑 3],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그 사람의 위치, 입장, 편견, 시선에 따라 동그란 창에서도 다르게 보인다는 [창], “나는 같은 길을 돌고 또 돈다”는 “타이어의 운명”을 노래하고 있는 [Radial Ra08 2157016], “해는 늘 내 걸음보다 빨랐다”는 [겨울 숲을 지나며] 등의 이 세상의 어려움과 인생무상함은 이희석 씨의 [두루미처럼]의 ‘외다리 타법’으로 극적으로 나타난다. ‘새들 중의 새’인 두루미가 그 ‘외다리 타법’으로 일상생활의 권태와 무료함을 날려버리고 살아가 듯이, ‘외다리 타법의 미학’은 이희석 씨의 삶이자 시의 그 모든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황순각 씨의 시는 [바코드의 비밀]에서처럼 ‘정반합의 미학’에 그 기초를 두고 있으며, 그것은 “표면은 흑과 백이 무심히 교차하는 듯하나/ 속살에는 원색 판타지가 부글거리고 있어”라는 시구에서처럼 대립과 갈등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나 그 대립과 갈등은 “일평생 마주하게 되는 부부의 시간도/ 옥수수수염의 시간과 같아/ 어디론가 제각기 나풀거리고 싶어 하지”라는 [옥수수수염의 시간]에서처럼 그 부조화 속의 조화를 꿈꾸게 된다. “보통 사람들 보통 이상으로 일 하는데/ 보통 이하의 밥상을”([‘보통’을 기록하면]) 받는다는 것은 부조화의 예에 해당되고, “내가 매일 한 번씩 숲을 머금는 건// 의욕 야위어가는 저녁에/ 수수꽃다리에서 함박꽃나무까지 걸어 온 바람이/ 채집한 향으로 붓을 만들어/ 하루의 문양을 기록하기 위함이다”의 [녹색 숨]은 조화의 예에 해당한다.
홍정미 씨의 시는 [가방 속의 보로헤스]에서처럼 ‘존재론적 미학’에 그 기초를 두고 있으며, 그것은 “내 가방 속에는/ 보르헤스의 미로로 가득하다”에서처럼 ‘미로찾기’에 그 정점을 찍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프란츠 카프카의 미로, 보들레르의 미로, 파블로 피카소의 미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홍정미 씨의 미로에서처럼 이 세상의 삶은 미로찾기에 지나지 않는데, 왜냐하면 우리 인간들의 존재의 근거가 ‘무’이기 때문이다. “그의 저물녘은 어둡고 악몽 같은 복도”였다는 [아버지의 복도]도 그것을 말해주고, 도시의 삶은 쓸쓸하고 “그리운 것이 많아/ 서글픈 곳”이라는 [운수골]도 또한, 그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그러나 ‘미로찾기’는 그 미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점에서 깊디 깊은 슬픔과 절망감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 미로찾기가 삶 자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운수골과 유프라테스에서도 칡꽃과 백일홍이 피며, “보로헤스의 미로는 백년 내내 어둡고/ 익숙하지 않은 문장처럼/ 고요하다”([가방 속의 보르헤스])와 “그리운 것이 많아/ 서글픈 곳// 운수골 골짜기에 여름이 깊다”의 [운수골]에서처럼 아주 탁월하고 뛰어난 시를 쓰게 된다. 슬픔도 붉디 붉은 피가 되고, 절망도 붉디 붉은 피가 되며, 잠언과 경구와도 같은 시를 쓰게 된다. 홍정미 씨의 시는 아주 짧고 간결하며, 그 짧고 간결한 시구 속에다가 수천 년의 역사와 그 사유를 새겨 넣는다.
이 세상의 삶은 어렵고 힘들다. 그 ‘고난이도의 삶’을 잘 살 때, 시는 저절로 씌어진다. 이희석 씨의 ‘외다리 타법의 미학’과 황순각 씨의 ‘정반합의 미학’, 그리고 홍정미 씨의 ‘존재론적 미학’에 우리가 기대를 거는 것은 그 고난이도의 예술성과 접근 불가능성 때문이다.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며, 무한한 정진을 바란다.
----애지신인문학상 심사위원 일동(글 반경환)
첫댓글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