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컨대 진여가 법에 걸림이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모든 곳에 두루 다녀도 걸림이 없느니라.”
▶강설 ; 모든 법의 본원은 진여다. 진여가 법에 걸림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선근회향도 그와 같아서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든 걸림이 없다. 가는 곳마다 선행으로 중생들을 유익하게 한다면 무슨 걸림이 있겠는가.
譬如眞如가 爲衆法眼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能爲一切衆生作眼하며
“비유컨대 진여가 여러 가지 법의 눈이 되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일체중생의 눈이 되느니라.”
강설 ; 진여가 여러 가지 법의 눈이 된다는 것은 모든 법의 근원이 진여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선근회향도 일체중생의 눈이 된다. 즉 일체중생을 선도하고 교화하여 제도하는 눈은 곧 선근회향 밖에 없다. 달리 무엇이 중생들의 눈이 되겠는가.
譬如眞如가 性無勞倦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修行一切菩薩諸行호대 恒無勞倦하며
“비유컨대 진여의 성품이 피로함이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일체보살의 모든 行을 修行하면서도 항상 피로함이 없느니라.”
▶강설 ; 진여에게 무슨 피로가 있겠는가. 선근회향도 그와 같이 일체보살의 보살행을 행하는데 언제나 피로함이 없다.
譬如眞如가 體性甚深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其性甚深하며
“비유컨대 진여의 體性이 매우 깊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그 성품이 매우 깊으니라.”
▶강설 ; 세상에서 가장 높고 깊은 것은 선근회향 밖에 없다. 중생을 요익하게 하는 선근이 가장 높고 깊다는 것은 당연한 가르침이다.
譬如眞如가 無有一物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了知其性이 無有一物하며
“비유컨대 진여는 한 물건도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그 성품이 한 물건도 없음을 알 것이니라.”
▶강설 ; 진여는 아무리 드러내고 강조하여도 한 물건도 없다. 선근회향이 그토록 위대하고 중요하여도 그 본성에는 한 물건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譬如眞如가 性非出現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其體微妙하야 難可得見하며
“비유컨대 진여의 성품이 출현하는 것이 아니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그 자체가 미묘하여 볼 수 없느니라.”
▶강설 ; 진여는 우주법계 모든 것의 근본생명이다. 그러므로 따로 그 성품이 출현하는 것이 아니다. 선근회향도 그 성품이 미묘하여 독립된 어떤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譬如眞如가 離衆垢翳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慧眼淸淨하야 離諸癡翳하며
“비유컨대 진여가 모든 때를 여의었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지혜의 눈이 청정하여 모든 어리석음을 여의었느니라.”
▶강설 ; 진여는 본성이 청정하여 아무런 때가 없다. 보살의 선근회향에 무슨 장애가 있겠는가. 그대로가 청정한 지혜의 눈이다. 지혜 없는 사람이 무슨 선행을 닦겠는가. 그러므로 자비는 곧 지혜의 실천이 된다.
譬如眞如가 性無與等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成就一切諸菩薩行하야 最上無等하며
“비유컨대 진여의 성품이 더불어 같을 이가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모든 보살의 행을 성취하여 최상이므로 같을 이가 없느니라.”
▶강설 ; 진여는 오직 진여일 뿐이다. 세상의 그 무엇과도 같을 것이 없다. 선근회향도 그와 같아서 일체 모든 보살행을 다 성취하여 가장 높아서 같을 이가 없다. 보살행이란 곧 선근회향 뿐이다. 무엇과 비교하겠는가.
譬如眞如가 體性寂靜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善能隨順寂靜之法하며
“비유컨대 진여의 체성이 고요하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고요한 법을 잘 따르느니라.”
▶강설 ; 진여의 적정성이다. 진여가 천변만화하면서 또한 그 근본은 적정하기 때문이다. 보살이 아무리 큰 선행을 행하더라도 아무런 행한 바가 없다. 그러므로 보살의 선근회향은 오로지 적정할 뿐이다.
譬如眞如가 無有根本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能入一切無根本法하니라
“비유컨대 진여는 근본이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온갖 근본이 없는 법에 들어가느니라.”
▶강설 ; 진여는 모든 것의 모든 것이지만 그 근본은 없다. 보살이 선근으로 회향함도 근본이 없는 법에 들어간다. 진여상회향의 적절한 표현이다.
4) 섭수함이 없는 진여의 덕의 열 가지 비유
譬如眞如가 體性無邊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淨諸衆生호대 其數無邊하며
“비유컨대 진여의 체성이 그지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중생을 청정케 하는 그 수효가 그지없느니라.”
▶강설 ; 진여는 그 체성이 그지없어서 섭수할 그 무엇도 없다. 무엇이 진여를 섭수하겠는가. 선근회향도 모든 중생을 청정케 하되 그 수가 그지없어서 섭수할 수 없다.
譬如眞如가 體性無着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畢竟遠離一切諸着하며
“비유컨대 진여의 체성이 집착함이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필경에 일체 모든 집착을 멀리 여의었느니라.”
▶강설 ; 진여의 체성이 무슨 집착이 있겠는가. 진정한 선근회향도 그와 같이 일체 모든 집착을 멀리 떠났다.
譬如眞如가 無有障礙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除滅一切世間障礙하며
“비유컨대 진여는 장애할 것이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세간의 장애를 소멸하였느니라.”
▶강설 ; 선근을 회향하는데 누가 장애할 것이며, 무슨 장애가 있겠는가. 세상에는 자기 자신에게 이롭게 하는 사람을 방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선근회향이란 이와 같이 훌륭한 일이다.
譬如眞如가 非世所行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非諸世間之所能行이며
“비유컨대 진여는 세간에서 행할 바가 아니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세간에서 능히 행할 바가 아니니라.”
▶강설 ; 보살의 선근회향은 이미 출세간의 일이다. 세간의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선행을 한다는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다행히 선량한 마음을 일으켜서 선근을 닦는다면 그것은 이미 출세간의 일이다.
譬如眞如가 體性無住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一切生死가 皆非所住며
“비유컨대 진여의 체성은 머무름이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모든 생사의 머무르는 바가 아니니라.”
▶강설 ; 보살의 선행은 일체 생사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선행이 얼마나 훌륭하고 위대한 일인가. 생사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은 생사를 초월하여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는 길이라는 뜻이다. 남을 위한 선행은 이와 같다. 부디 남이 싫어하는 것은 나에게 돌리고 나에게 좋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그것이 회향이다.
譬如眞如가 性無所作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一切所作을 悉皆捨離하며
“비유컨대 진여의 성품은 지은 것이 아니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온갖 지은 것을 모두 떠났느니라.”
▶강설 ; 진여는 본래로 우주법계에 변만해 있는 것이다. 누가 지어서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보살의 선근회향도 일체 유위의 조작을 모두 떠나있다. 만약 선근회향이 유위의 조작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선근회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譬如眞如가 體性安住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安住眞實하며
“비유컨대 진여의 체성이 편안히 머물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진실한 데 편안히 머무느니라.”
“비유컨대 진여가 모든 법과 서로 응하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보살들의 듣고 익히는 것으로 서로 응하느니라.”
▶강설 ; 진정한 선근회향은 언제나 진실에 안주한다. 또한 진여가 일체 법으로 더불어 상응하듯이 선근회향도 보살이 법을 듣고 법을 수행하는데 함께 상응한다. 선행을 행하는 것은 곧 가장 수승한 수행이기 때문이다. 남이 싫어하는 것을 나에게 돌리고 나에게 좋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일보다 더 뛰어난 수행이 어디에 있겠는가.
譬如眞如가 一切法中에 性常平等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於諸世間에 修平等行하며
“비유컨대 진여는 모든 법에서 성품이 항상 평등하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세간에서 평등한 행을 닦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