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 4막24장 (1부)
1981년.
24세.
벌써 내나이가 24세가 되였다.
무엇 하나 이룬것도 없는데 20대 중반이라니.
세월의 유수함에 놀랄따름이다.
군대도 제대하고 무엇부터 하여야 할지 고민하였다.
대학교 진학을 준비하려니 군대생활에 부딪혀 공부 감각이 없어졌다.
그럼 무엇부터 한단 말인가?
나는 고민하였다.
자격증이나 딸까?
일단 쉬면서 생각해 보기로 하였다.
나는 그럴즈음 뜻하지 않은 것을 보게 되였다.
아버님 택시회사 기사중 용인에서 출퇴근하는 분이 계셨다.
"김 ○○"라는 분으로 태권도를 배워서인지 골격이 틀이 잡혀 있었고 키는 180cm이상은 되였다.
그는 나에게 자랑하였다.
나는 토끼를 사육하는데 번식력이 좋아 두마리 키운것이 1년도 안돼 10마리가 됐다는 것이었다.
토끼를 키워서 무엇하냐고 하니?
그는 토끼 털은 고급장갑이나 털모자로 가공하여 사용하기 수익성이 좋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닭이나 돼지.소를 키우는다는 것은 들어봤어도 토끼를 키운다니 별일이다 생각하였다.
"김 ○○"은 언제 한번 용인에 한번 놀러오라 하였다.
토끼를 키운다.
참으로 생각만 하여도 즐거울것 같았다.
빨간눈과 쫑긋한 두귀를 가진 동물을 키우면 얼마나 좋을꼬.
돈도 벌고 애완동물을 마음껏 키울수 있으니..
그때 문뜩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몇년전 죽은 내동생 기수가 보고 싶었다.
군대 생활이다, 입시 공부다 정신없이 살다보니 죽은 내동생 기수를 잊고 산것이다.
부모보다 먼저 죽었다 하여 묘도 만들지 않고 들판에 소주한병 꽂고 매장한 내동생.
드넓은 하늘 아래 땅속에서 거동도 못한채 사라져버린 동생.
나는 동생을 보러 가기로 하였다.
어머님과 이모님(어머님의 언니)와 같이 금촌으로향하였다.
날씨는 화창하였고 봄날씨에 아지랑이가 피어나고
진달래꽃이 피어나 봄향기를 그윽하게 날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몇년전 기억을 더듬어 야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당시 시신 안장을 못보았고 어머님만 유일하게 시신 안치 장소를 알고 계신 것이다.
어머님은 두리번 두리번 거리다 다시 장소를 옮기고 다시 생각하시다 장소를 옮겼다.
몇년이 지난 야산은 토사가 덮치고 풀잎이 무성하여 부표로 묻어둔 소주병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나무가지로 소주병을 찾다 잘못 건드리어 벌집을 건드리고 만것이다,
순간 수많은 땅벌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우리 일행은 기겁을 하고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한참을 도망와 보니 우리 일행은 벌한테 쏘여 팔뚝이 부어올랐다.
그때
어머님은 말씀하셨다.
"우리 기수가 이제는 찾아오지 말라고
하는구나.
불쌍한 놈."
얼마나 서러웠으면 부모가 왔는데도 등을 돌리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