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음악 역시 감각을 통해 인식됩니다. 청각으로 음악의 존재를 확인하지요.하지만 이 말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닙니다. 음악을 기록한 악보에는 눈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메시지가 들어 있기도 하니까요. 예전부터 작곡가들은 이런 식으로 청자에게 숨은 메시지를 전달하곤 했지요. 가령 조스캥 데 프레의 라멘트 <오케헴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가>(1947)의 주선율 음표들은 검게 칠해져 있습니다. 흡사 검은 베일이 드리운 것처럼 보압니다. 존경하는 스승에 대한 안타까운 슬픔을 섬세한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죠. 바로크 시대에는 수사학 이론이 음악에 적용됩니다. 수사학을 기반으로 감정과 정서를 묘사하거나 모방하는 음악적 어법이 발전하지요. 바로크 음악을 들으면,그 속에 담긴 다양한 수사적 음형들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어떤 컨타타의 가사가 ‘내려오다’면 실제로 하강하는 음계가 등장하는 식이죠. 때로는 수사적 음형을 악보에서만 발견할 수 있을뿐, 들어서는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바흐가<요한 수난곡>을 작곡할 때 십자가를 언급하는 대목에서 의도적으로 십지가 모양이 만들어지도록 4개의 음표를 배열한 것처럼 말이죠. 게오르그 텔레만(1681~1767)의 <걸리버 모음곡Gulliver Suite>도 눈으로 파악하는 시각음악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특히 2악장 <난쟁이나라 사람들을 위한 샤콘Liliputsche Chaconne>에서는100여 개가 넘는 자잘한 음표들을 빽빽하게 나열하여 악보 위를 뛰어다니는 난쟁이들을 은근히 묘사하고 있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보두 코르디에Baude Cordier(1380~1440)가 작곡한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 <아름답고 선량하고 현명한Belle, Bonne, Sage>의 악보는 심지어 하트 모양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베토벤은<고별 소나타Les adieux>의 첫 세 화음들 위에 “레베볼Lebewohl(안녕)!”이라는 말을 적어 넣었지요. 물론 이 말은 직접 우리의 귀에 전달되지는 않습니다.그 속에 담긴 깊은 의미가 음악 속으로 녹아드는 거죠. 음악은 단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좋은 예입니다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사람이 음악에 접근하려면 완전히 다른 기준과 관점이 필요합니다. 청각을 잃었지만 정상급 타악기 연주자로 활동하는 에블린 글레니Evelyn Glennie를 보세요. 그녀는 버르토크의<두 대의 피아노와 타악기를 위한 소나타>음반으로 그래미상을 수상했고 영화음악을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글래니를 보면, 귀는 우리를 음악으로 이끄는 여러 갈래 길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이 더욱 명확해집니다. 음악은 우리 머릿속의 정서,기분,경험,인식 같은 추상적인 것들이 뒤엉킨 혼합물에서 탄생합니다.그러니 듣는 것만으로는 음악의 본질에 다가갈 수 없겠죠. <출처: ‘클래식 음악에 관한 101가지 질문’_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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