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牧會者의 길
第五章 牧會者와 食口指導
第三節 食口指導要素
1. 식구지도요소 - 위함
1) 아버님과 위함의 사상
이번에 한국에 대회를 하러 갔을 때, 한국 민족이 레버런 문 대해 역사 이후 5천 년사에 없었던 위인이 나왔다는 등 별의별 말을 했습니다. 미국에서도 그럴 거예요. (박수) 자유세계에서도 그럴 거예요. '그렇게 핍박받는 세계에서 레버런 문이 이런 일을 하는 걸 보니 인류역사에 없었던 사람으로 나타났다. 살아 있는 성인이 될 사람이다' 이런 말을 할 가망성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성인이 저럴 것이다' 이럴 수 있는 가망성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전세계 사람들에게 세컨드 애드벤트(Second Advent;재림)라는 말은 공통 술어가 된 것 같다구요. (박수)
내가 미천한 자리에서 이렇게까지 나오는 데 있어서 무슨 사상이 있었느냐?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느냐? 위하는 사랑,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내가 지나가는 데는 빚이라는 냄새를 안 피웠습니다. 빚을 지웠습니다. 만약에 어떤 나라와 민족이 있으면 그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복을 빌고라도 가려고 했습니다. 사탄을, 사탄권을 완전히 점령한자리에서 생명의 길을 가려니 불가피하게 그렇게 안 갈 수 없다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된다구요.
'다리야, 너 언제 부락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해 봤어? 이 눈아, 코야, 입아, 언제 그렇게 해봤어? 손아, 언제 해봤어? 하면, '명령만 있으면 언제든지 합니다' 이런 답을 한다는 거예요. 내 눈이, 내 정신이 그렇다는 거예요. 아무리 최후의 죽음이 오더라도 내가 죽음이라는 명사 앞에 빚지고 가지 않는다구요. 빚을 지우고 가야 되겠다 하는 거예요. (박수) (131-36)
여러분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준 것을 알지요? 여러분도 그러한 전통을 세우지 않고는 그들을 규합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해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원수의 자식들이 밥을 굶는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팬티와 포대기 하나만 남겨 놓고 전부 갖다 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팬티만 입고 포대기 하나만 덮고서 일주일 동안을 살아 봤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하나 남아 있는 포대기까지 그들을 위해 팔았습니다.
왜 그런 일을 했느냐? 선생님이 못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복귀의 길을 가려면 원수를 사랑했다는 절대적인 조건을 세워야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원수의 자식들을 위해 있는 살림을 다 팔고 심지어는 팬티 하나 포대기 하나 남은 데에서 포대기까지 팔았으니 할 만큼 다한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을 실천해야 되기 때문에 그런 일까지 한 것입니다. (23-320)
2) 교회 지도자는 교인을 위해 있다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대번에 '예수님!' 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리를 놓아서 가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의 평면적 생활에 있어서 다리를 놓기 위해 교회면 교회를 가게 될 때, 그 교회에는 반드시 지도자가 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도자가 못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지도자에게는 중간다리를 놓아 주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찾아오는 교인들을 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교인들을 위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교인들의 정신적인 문제나 교인들의 생명문제까지도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지도자는 그러한 자기가 책임진 분야를 중심삼고 교인들을 지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를 보아서 그 사람이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할 때, 교인들이 그 사람과 하나되면 그 교인들도 높은 자리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를 대신해서 정성을 들여 주고 그 사람이 나를 대신해서 나의 죄를 속죄해 주기 위해 기도를 해주면, 나는 그의 기도로 말미암아 그 사람이 선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겁니다. 사람들이 은혜받는 사람의 기도를 받겠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다리를 놓아 가지고 찾아가는 것입니다. (32-165)
여러분은 종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는 중요시하지만 횡적인 사람과의 관계는 무시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원리 가운데 강의해야 될 내용을 두고 볼 때, 이것은 귀한 복음이요 진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대한 종적인 내용이 횡적인 가인 아벨 관계에서 일치되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표상한 모든 내용이 여기에 담겨져 있고 십자가가 표상하는 뜻도 여기에 담겨져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다 좋을 때에나 슬플 때에나 항상 하나님을 생각해야 됩니다. 종적인 기준 앞에는 좋은 때에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어려운 때에도 하나님을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그것은 전체가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슬플 때 횡적인 환경에서 식구들과 같이 슬퍼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한 기쁠 때도 식구들과 같이 기뻐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위하는 만큼 사람을 위해야 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직접 해드리지 않았지만 '너희가 지극히 작은 자하나에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니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34-229)
여러분들은 지금 뭐냐 하면, 평면적인 면에서 가인 아벨 싸움하기 때문에 절대 식구들을 위하라 이거예요.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서 식구를 위해야 돼요. (76-337)
책임자 자체를 두고 보게 된다면, 언제나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구요. 불행한 사람이라구요. 왜 불행한 사람이냐? 언제나 부채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저 식구들에게 내가 잘해 줘야지 하며 언제나 빚을 졌다는 감을 느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안 돼요. 어느 불쌍한 사람을 보게 된다면 그 사람의 생명을 염려해 가지고 밤새워 가면서 얘기해 주는 것이 천직이라구요, 천직. 그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일에 있으면 내가 희생해 가지고 그 사람의 죽음 길을 막아 줘야 할 것이 영적 지도자의 책임이 아니냐. 그런 자리에 서야 된다구요, 그런 자리에.
그렇기 때문에 그 말은 무슨 말이냐? 얼마나 식구를 위할 수 있는 자리에 섰느냐 그 말이라구요. 안 그래요? 얼마나 위했느냐 이거예요. 그 사랑이 남이 아니라구요, 남이. 나의 연장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가지가 된다구요. 알겠어요? 자기 가지가 되는 거예요. 가지가 자라려면 잘 보호해 주어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전도를 하면 믿음의 아들딸이라는 말이 있지요? 그게 뭐냐? 자기 가지예요. 가지인데 얼마나 보급 하려고 불철주야 노력했느냐? 그러려면 자기가 줄기가 되든가 뿌리가 되어야 되는 거라구요. 뿌리가 되어 있으면 그 줄기가, 혹은 가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줄기나 가지가 필요로 하는 영양소를 땅에서 내 자신이 쉬지 않고 그 요구하는 이상으로 보급할 수 있는 여유의 조건이 있어야 발전하는 거예요. 그래야 크는 거예요. 한계선이 있게 되면, 꼭대기에는 전부 다 영양소를 요구하는 데 그걸 보급 못 하게 되면 꼭대기는 말라 죽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70-147)
여러분이 나라를 위해서, 식구를 위해서, 형제들을 위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려 보았느냐, 진짜 사랑해 보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통일교회는 심정적인 역사를 추구해 나가느니 만큼 역사시대의 예수의 심정보다 낮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더 높아야 됩니다. (60-145)
위하는 사람은 빚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위하게 되면 틀림없이 그 3대 족속이 번창하는 거라구요. 내가 새벽에, 닭이 꼬끼요 울 때 문을 열면 사람들이 벌써 와서 기다린다구요. 밤잠을 안 자고, 야간에 담을 넘어서도 온다구요.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와서는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서, 이 민족과 이 세계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거예요. 밤이 새는 줄을 모르고…. 세상에 뭐 애인들이 연애하면 그 이상 하겠어요?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관과 하나님의 이상세계를 중심삼고 얘기하는 데는 밤이 새는 줄 모르는 것입니다. 갈라지는 것을 천추의 한같이 느끼고 시간이 언제 가는지 모르고…. 그런 시간들이 연결돼 가지고 심정적인 기반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데 이건 전부 다 건달꾼이 돼 가지고….
자, 지금까지는 위함받으려고, '아 내가 책임자니까 내 말 들어라' 이런 식이었지요? 모심받기에 주력했지만, 이제는 모시기에 주력하라' 그 말입니다. 알겠지요? 「예」 빚지지 말라는 거예요. 그렇게 해봐요. 빚지우라구요. 동네에 가서도 빚지우는 것입니다. 제일 간단한 것이 동네 아이들한테 빚지우는 것입니다. 그다음엔 나이 많은 사랑한테 빚지우는 것입니다. (68-115)
위대한 지도자는 슬픈 사람과 함께 슬퍼해야 되고, 어려운 사람을 지도해야 됩니다. 어려운 사람을 지도하려면 어려운 자리에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그다음에 고통받는 사람을 지도하려면 고통받는 자리 이상의 자리에 들어가야 되고, 죽을 자리에 있는 사람을 지도하려면 죽는 자리 이상의 자리에 들어가야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에게 새로운 일, 못 할 일이 생겨났다 할 때, 그것을 어떻게 해야 되나요? '야! 재미 있다. 내 일생의 한 페이지에 기록이 시작된다' 하고 관심을 가져야 되는 거예요. 거기서 잘하면 넘어가는 것이요, 못 하면 후퇴하는 것입니다. (65-309)
3) 자기를 위하라 할 때는 우주가 참소한다
그래, 여러분들은 브로드웨이 같은 데서부터 부처끼리 다니면 '저거 어디로 가는 것이냐? 해서 자기들이 좋아해 가지고 나라로 가는 것이다 할 때는 박수치라구요. 나라로 간다 할 때는 박수쳐 주라구요. 나라를 버리고 저 쌍이 둘이 갈 때는 푸푸푸 하는 거예요. 큰 커플이 되어 큰 곳으로 가는 사람은 우주가 박수치는 거예요, 우주가. 하늘도 땅도 모든 공기도, 전세계가 박수친다 이거예요.
그러나 자기를 위해 가면, 큰 것을 찾지 않고 자기만을 위해서 갈 때는 우주가 전부 다 참소한다 이거예요. 왜 그러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의 원칙을 중심삼고 우주를 지었기 때문에, 우주는 그 박자에 놀아나게 되어 있지 개인 박자에 놀아나지 않는다 이거예요. 우주는 그런 힘을 가졌다구요. 이제 확실히 알았지요? 「예」(131-124)
부모의 사랑이 좋지만, 부모의 사랑이 부모를 위하라는 사랑이라면 자식이 그 부모의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자식의 사랑이 좋지만, 자식이 자기를 위하라고 한다면 그 사랑은 부모도 원치 않는다는 거예요. 나도 너를 위하고 너도 나를 위하는 그 사랑에…. 자기가 열을 주었으면, 위하는 사랑은 반드시 열 하나로 돌아온다는 거예요. 위하는 사랑은 그래요.
상대가 조그만 것으로 나를 사랑하고 위해 주었으면, 나는 그 이상의 것으로 돌려보내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은 자꾸 확대해 들어가는 거예요. 확대 확대하면서 시일이 가면, 일생 동안 그러다 보면 이것이 나라를 넘고 세계를 넘고 영원한 세계, 천국을 넘고 천상세계를 넘어간다는 거예요.
자기를 위하라는 데는 전부 다 삭감이예요, 삭감. 마이너스예요. 한번하고 난 다음에 두 번 할 때는 열이었던 그 사랑이 삭감돼 가지고 여덟으로 떨어지는 거예요. 밤낮 자기만을 위하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 거꾸로 말려 들어간다는 거예요. 사랑은 어디서 오느냐? 상대에서 오는데 위하고자 하는 그 길을 따라서만이 순수한 이상적 사랑이 왕래하느니라. 아멘! 한번 해봐요. 「아멘!」(119-326)
4) 위해 주는 자리의 결과
보다 위해야 합니다. 보다 위하는 것이 뭐냐? 보다 위하는 사람이 책임자가 되는 것입니다. 열 사람 가운데 누가 중심이 되느냐 하면, 그 열 사람을 위해서 사랑을 하고 위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열사람이 다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 위하는 게 나쁜 줄 알았다구요. 위하는 데에 있어서 중심자가 되고 책임자가 된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주인이, 중심자가 된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나라의 대통령은 나라를 위하는 사람이, 보다 위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회사를 상속받을 수 있는 사람은 회사를 위해 보다 희생하고, 보다 위하는 사람입니다. 천리가 그래요. 위해 사는 것이 나쁜 줄 알았는데 이것이 센터가 되기 위한 것이요, 책임자가 되기 위한 것이요, 모든 것을 상속받기 위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해 살라고 하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나쁜 게 아니라구요. 손해나는 것이 아니라구요. 장사 중에 이런 장사가 없다구요. (132-276)
본래 인간이 태어나기를 남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남을 위해 희생하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희생하면 어떻게 되느냐? 사랑의 전통이 설 뿐만 아니라 그는 사랑의 중심자가 되는 것입니다. 뭐가 돼요? 틀림없이 사랑의 중심자가 되는 것입니다.
학교로 말하자면 그 학급 전체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반장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남을 위하는 입장에 선 사람이 반장이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누구보다도 대한민국을 위해서 살았고, 누구보다도 대한민국을 위해서 살고 있다면, 그는 자연히 민족적인 중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중심자가 되어 가지고는 무엇을 할 것이냐? 꼭대기에 올라서는 것입니다. 중심자는 꼭대기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꼭대기에 올라가게 되면 자동적으로 무리를 지도할 수 있고 주관할 수 있습니다. 주관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리원칙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57-26)
사람은 왜 높은 걸 좋아하느냐? 다양한 것과 인연맺을 수 있기 때문에 높은 곳을 좋아합니다. 왜 낮은 걸 싫어하느냐? 단순해진다 이거예요. 다양한 관계에서 멀어진다 이거예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사람은 높은 이상, 높은 관, 높은 것과 관계를 맺겠다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귀한 사람이다 하는 개념을 여기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129-308)
여러분, 왜 위해 살면 좋으냐 이거예요. 그것은 센터, 중심자이기 때문입니다. 중심자라는 건 책임을 질 줄 알아야 돼요, 책임을. 책임을 져야 된다 이거예요. 모든 것을 책임지고 영향을 미치는 것이 중심자입니다. 거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미국은 어떤가요? 자기를 위하는 사람이 센터가 되나요, 전체를 위하는 사람이 센터가 되나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전체를 위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그 분야에 있어서 중심자가 되는 것입니다. 센터가 되는 거지요. 위하겠다고 하지 않으면 센터가 안 된다 이거예요. (129-309)
하나님의 자리와 부모의 자리는 어떤 자리냐? 먼저 생각해 주는 것입니다. 먼저 생각해 주는 거예요. 하나님은 나보다 먼저 생각해 주시는 거예요. 부모는 나보다 먼저 생각해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좋다는 거라구요. 그래서 주체라구요, 주체. 둘이 산다고 할 때, '아, 저 식구가 해야 할 일을 내가 해줘야 되겠다' 해야 된다구요. 하나님이 그런 분이라구요. 그 사람이 중심이라구요. 위해 주는 사람이 센터가 되는 거예요, 센터.
자, 내가 미국에서 반대받고 있지만 미국을 위해 줬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이 나를 존경 안할 수 없다 이거예요. 존경 안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주인이 되는 거예요.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면 세계의 주인이 되는 거예요.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하나님의 자리와 부모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중심존재가 된다 이거예요. 그 이상 뭐가 있어요? 앞으로 통일교회의 주인이 될 사랑은 하나님과 같이, 부모와 같이, 선생님과 같이 교인들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라구요. 그 사람은 반드시 주인이 되는 거예요. 그걸 못 하게 될 때는 전부 다 뒤집어진다구요, 뒤집어져요. 그 식구들이 반대해요, 식구들이.
간단하다구요. 알겠어요? 내가 저 사람한테 이기는 방법은, 저 사람을 굴복시키는 방법은 저 사람하고 싸워서 이기려 하지 말고, 저 사람을 위해서 내가 하나님의 자리와 부모의 자리에서 먼저 생각해 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긴다 이거예요. 3년만 위하면 틀림없이 내 말을 잘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그래요, 마음이. 자기 안방 문까지 열고 '네 마음대로 우리 집에 들어와도 좋다' 전부 다 그러는 거예요. 그러한 우주의 원칙적인 작용이 이 본심을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알겠지요? 「예」 (103-139)
2. 식구지도요소 - 주라(授)
1) 지도자는 먼저 주는 자다
지도자란 어떤 사람이냐? 주어야 할 사람입니다. 받아야 할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주는 데는 늘 같은 것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새로운 것을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설교를 하려면 어렵지요? 원리 말씀은 그대로 하면 되지만 설교는 힘들다구요. 그것은 같은 것을 주지 않아야 되겠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같은 것을 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에게 이것저것 좋은 것을 가려서 먹여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같은 것을 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줄 것이 없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식구들에게 먹이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과 더불어 의논하고…. 결국 여러분은 분명히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가 기도를 하면서도 기도하는 말에 자기가 감동받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서 기도를 하면 청중은 전부 다 하나님 앞에 사로잡히게 되고, 하나님이 생명의 원동력이요, 본체다 하는 것을 체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체험을 하게 될 때, 하나님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이런 사연을 연결시켜 가지고 청중을 매료시키기 위해서는 기도가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옛날에 훌륭했다는 사람들, 역사에 나오는 훌륭하다는 사람들이 훌륭한 학자가 아닙니다. 훌륭한 사람이란 그야말로 심정의 배고픔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 심정의 배가 부를 때에 그 기쁨을 느낄 수 있는, 희열에 사무칠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청중은 거기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주어야 할 텐데, 주려면 보급받아야 할 텐데 보급을 어디서 받느냐? 본부에서 선생님의 설교를 들어서 보급받을 수도 있겠지만, 여러분 혼자 떨어져 있을 때는 하나님으로부터 보급받을 수 있는 보급로를 갖추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능력을 길러야 됩니다. 어디 나서면 혼자 가는 것이 아닙니다. 계시를 받아야 돼요. 참부모를 모시고,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하나님을 모시고, 세계가 여러분에 의해 심판을 받는다는 심정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자기 앞에 있는 일이 하나님의 섭리를 좌우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어디를 가더라도 심판의 방패로서 왔다갔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 번만 왔다갔다해서 공을 쌓게 되면 그것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내가 가면 하나님이 가고 내가 오면 하나님도 온다는 것을 자연히 실감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이 서 있는 곳은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46-299)
2) 줄 때의 마음가짐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주어야 합니다. 자기의 욕망과 야심을 가지고 주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께서 그러셨기 때문에 여러분도 그래야 합니다. 이 말씀은 눈물을 통하여 나온 것이므로 여러분들도 눈물을 통하여 주어야 합니다. 참이 없는 이 땅 위에 참을 심어야 합니다. (11-268)
여기에서 통일교회의 원칙적인 골수의 교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주는 데는 어떠한 마음으로 주어야 하느냐? 친구의 마음으로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주인이 종에게 주는 그런 마음으로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으로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으로 종의 몸을 쓰고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땀은 땅을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는 입장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느냐 하면 주고 나서도 더 못 주어서 눈물지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렇다는 거예요.
주고 나서도 부끄러워서 머리를 숙이는 마음, 좀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데 그렇지 못해서 주고 나서도 미안함을 느끼는 정, 이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자식에게 해주고 나서 '이젠 됐다'고 하는 부모가 있어요? '더 주고 싶은데 이것밖에 없으니, 이다음에 더 주마!'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이 강도라고 하더라도 부모는 그 자식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39-196)
주는 데는 어떻게 줘야 되느냐? 먹다 남은 찌꺼기를 줘서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 먹다 남은 찌꺼기를 주게 되면 먹고 나서도 기분 나빠 침을 뱉는다구요. 떡을 주더라도, 다섯 개가 있으면 다섯 개 가운데 이것 저것 들었다 놓았다 하다가 줄 때는, 차라리 안 주는 것보다 더 기분 나쁘다는 거라구요.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안 준 것보다 나쁘다는 거예요. 남에게 주는 데 있어서 다섯 개가 있으면 절반쯤 그냥 집어 주면 그래도 고맙다고 하지, 이것 저것 집었다가 주면 신세를 지는 사람이 신세 지고 나서 평한다구요.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주는 데에는 어떻게 주느냐? 하나님과 더불어 주라는 거예요. (60-170)
하나님과 더불어 주는 것은 어떤 것이냐? 부모의 심정을 가진 것입니다.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종의 몸을 쓰고…. 몸은 왜 종의 몸을 써야 되느냐? 종을 구하려니 종 이상의 종이 돼야 된다구요. 세상에 있는 인간들이 종의 자식들이 아닙니까? 그런 종을 하나님이 구하려고 하니, 하나님이 종을 사랑하려니 얼마나 어렵겠느냐 이거예요. 그게 쉬울 것 같아요? (60-171)
열을 주고 백을 거두려는 자는 망한다. 그런 사람은 심정을 중심한 세계에 못 들어간다. 하늘 세계는 주는 세계이다. 물질이 문제가 아니다. 적선은 곧 주는 것이다. 줄 때에는 내 마음에 물질을 플러스해서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심정을 갖고 주는 것은 누구도 빼앗지 못한다.
하나님은 구약시대에는 종의 입장에서 주셨고, 신약시대에는 형제의 입장에서 주셨다. 이제는 부모의 입장에서 주셔야 할 때이다. 하나님이 부모의 입장에서 주시는 것을 우리가 받았으니 우리도 부모의 입장에서 부모의 심정으로 주어야 한다. 이러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은 그로부터 떠나실 수 없는 것이다.
주는 데는 원수를 치우고 주어야 하니 싸움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주려 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몰라서는 안 된다. 주기 위하여 6천 년간 싸워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한다.
행복한 사람은 주고 싶을 때 줄수 있고 받고 싶을 때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불행한 사람은 줄래야 줄 수 없고 받을래야 받을 수도 없는 사람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하나님은 불행하신 분이다. (11-235)
사람을 사랑하는 데는 무엇을 투입하더라도 생각하지 말라! 아까워 하지 말라! 무엇을 투입했는지 기억하지 말라! 더 주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먹을 것이 좋은 게 생겼을 때, 숨어 가지고 혼자 먹는 사람이라면, 에이, 급살맞을 책임자라는 거예요. 먹을 것이 있으면 그걸 먹지 않고 두었다가, 아, 내가 먹지 못하더라도 주고 싶고, 혼자 못 먹겠다고 식구들을 생각하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말이예요. 그러한 부모의 마음을 갖춘 책임자가 돼야 되는 거라구요. (70-166)
엄마가 아들딸을 젖 먹여 기르면서 '내가 젖을 먹이는 것은 그 몇 배의 대가를 받아 내기 위해서 먹이는 것이다' 하는 생각을 해요? 더 주지 못해서 애타는 것입니다. 주고 나서도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해서 눈물짓는 부모의 마음이 영원히 가는 것이라구요. 해주고 나서도 다시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데 없어서 못 주는 애달픈 마음을 가지고 돌아서면서 눈물을 머금을 수 있는 부모는 그 아들을 효자로 만들지 못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정의 곳이 복귀의 노정입니다. 그 노정을 떠나 가지고는 복귀는 절대 안 되는 거예요. (46-173)
3) 주고받는 원칙
선생님은 지금까지 미국 와 가지고 내 집이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모든 면에서 여러분에게 빚지지 않는 생활을 지금도 하고 있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니 미국도 발전하는 거라구요. 내 발전 안 한다구요. 그것은 원리가 그래요. 원리가 그렇다구요. 그래서 선생님은 언제나 하나님과 같이 전미국 식구에게 줘야 돼요. 정신적으로 줘야 되고, 물질적으로 줘야 되고, 지식적으로 줘야 되고, 뭐든지 줘야 돼요.
자, 열을 주고 열 둘을 받는 사람이 선한 사람이예요. 열을 주고 여덟을 받는 사람이 선한 사람이예요? 「열을 주고 여덟 받는 사람요」 안 받으면 어떻게 되느냐, 안 받으면?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부터 계신다 이거예요 (76-337)
여러분이 먼저 완전히 주고, 셋을 주고서 하나를 받아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그게 원칙이예요. 세 번 주고 한 번, 삼분의 일을 받으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 주고 셋 돌려 내라 하는 것들이 많다는 거예요, 이게. 어디 많다고 생각해요,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러면 사탄입니다, 사탄.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그 삼분의 일, 즉 삼 시대의 일을 해 가지고 삼분의 일을 찾겠다는 거라구요. 셋을 희생시켜서 하나를 찾겠다는 거라구요. 구약, 신약, 성약시대, 이 3시대를 주고 하나 찾자는 거라구요. 세 시대를 주고 한 시대를 찾자는 것입니다. 수고해 가지고…. 그렇게 돼요. 그게 원칙이라구요.
하나님이 그렇게 찾아 나오기 때문에 우리는 셋을 주고 하나를 찾자는 겁니다. 하나를 찾더라도 여러분이 가져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것은 하나님에게 돌려야 되는 거라구요.
이런 전통이 여러분과 선생님의…. 여러분은 하나 받으면 그걸 선생님에게 돌려야 합니다. 또, 선생님은 하늘에 돌려야 된다구요. 이렇게 돌려야 돼요. 이런 전통이 되어야, 여러분 앞에 또 그렇게 돌리고 이렇게 돼야 발전하는 거예요. 들어온 사람도 또 그렇게 되면 이렇게 발전하는 거라구요. (66-301)
하나님을 사랑하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봐야만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그래 선생님을 중심삼고…. 뭐 선생님이 사랑받겠다는 것이 아니라구요. 선생님 자랑이 아니라구요. 원리원칙이 그렇다구요. 부모를 사랑할 줄 알아야, 사랑받아 봐야만 자식을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치라구요.
이런 문제를 알고, 여러분들이 요 두 가지 원칙을 언제나 생각해야 된다구요. 하나님을 사랑한 만큼 인간을 사랑하게 될 때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듯이 또 인간이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도 사람 앞에서 나를 안다 하게 되면 예수님도 하나님 앞에서 안다 한다고 했지요? 마찬가지 이치예요. 마찬가지 이치라는 거예요. 사람을 사랑하라 이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70-165)
3. 식구지도요소 - 사랑
1) 모든 것을 화(和)할 수 있는 사랑
하나님으로서 제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으로서 생각할 때, 제일 중심이 무엇이겠느냐? 높고 낮은 모든 입장의 관계를 맺는 것도 생각하겠지만,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본질적으로 연결시킬 것이 무엇이냐? 높은 것도 좋아하고 낮은 것도 좋아하고 동서남북은 물론이고 중앙이나 사방 전체가 좋아하는, 하나님이 이상하고 좋고 높을 수 있는 생각을 중심삼고 완전 화합되어 하나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하나님 자신도 아니고, 하나님이 갖추어야 할 환경도 아니고, 하나님의 생각도 아닙니다. 이것은 생각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겁니다. 그러면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높고 낮음을 연결시킬 수 있는 그게 무엇이겠느냐? 하나님께 필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돼요.
우리는 그러한 개념을 가지고…. 사랑을 중심삼아야 전후·좌우·상하 혹은 동서남북, 중앙 전체가 화합할 수 있고 연결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이지 사랑을 빼놓고는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랑은 전체와 화합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닌 것입니다. 동쪽에서도 필요한 것이고, 서쪽에서도 필요한 것이고, 아무리 끝에 가더라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더 끝에 가려고 하는 것은 더 높은 사랑을 찾기 위해서 가는 것이고, 또 끝에서 안으로 찾아오게 되어도 더 높은, 더 강한 사랑을 찾아서 오는 것입니다. 큰 사랑을 찾아가든가, 강한 사랑을 찾아가든가 해야 합니다. 이러한 내적인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멀리 갈 때는 큰 것을 찾아가는 것이요, 중앙으로 돌아올 때는 강한 것을 찾아옵니다. 강하더라도 그 강한 것이 납작하게 강해야 하느냐, 뾰족하게 강해야 하느냐, 둥글게 강해야 하느냐? 이렇게 볼 때, 내적으로 들어오면 원형을 그릴 수 있는 강한 사랑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사랑, 강한 사랑, 이런 개념을 정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좋다 할 때는 큰 사랑을 찾는 것입니다. 큰 사랑, 큰 사랑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강한 사랑, 얼마만큼 강해야 하느냐? 모든 것을 융합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을 본질까지도 마음대로 인연맺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랑, 하나님께서 생각하셨다면 그런 것을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164-69)
여러분 두부 해봤어요? 두부 만드는 걸 알아요? 콩가루를 해 가지고 보자기에 넣기 전에 서슬(간수)를 넣으면 엉기지요? 엉긴다구요. 사랑이라는 것은 서슬과 마찬가지로 모든 걸 엉기게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자는 애기를 낳아 봄으로 인해서 참다운 여자가 되는 거예요. 어머니의 마음을 느껴 봐야 돼요. (165-103)
2) 사랑은 우주도 좋아한다
사탄도 사랑을 받고 싶어하기 때문에 사탄까지도 사랑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아량을 갖고 나아가게 될 때, 사탄도 틀림없이 그 용사가 자기의 병사보다 훌륭한 하늘의 용사라고 칭송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나아갔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 가시면서도 원수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는 잘 주고 갔다는 것입니다. (26-50)
사랑을 절대시하는 인간만이 우주가 환영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거 레버런 문이 틀렸어' 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래서 문학이나 시는 '사랑은 영원한 것, 사랑은 강한 것, 사랑은 놀라운 것, 생명보다도 높고 무엇보다도 더 큰 것, 더 큰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갖다 버려도 만사가 오케이라는 거예요. 자, 보라구요. 사랑만이 절대적인 통일이요, 절대적인 불변이요, 절대적인 영원함이다, 이래도 전부 다 어색하지 않다구요. 생명은 안 그래요. '생명은 영원한 것, 생명은 불변한 것' 그거 안 맞는다구요.
자, 문학서적이나 시에서 찬양한 모든 말 중에서 제일 중요한 말이 생명의 말이예요, 사랑의 말이예요? 어떤 것이예요? 「사랑의 말이요」지식? 권력? 돈, 돈? 「아닙니다」 거 왜 그래요? 왜 그런 거예요, 왜? 그걸 몰랐다구요. 이걸 몰랐어요. 간단한 이걸 몰랐다는 거예요. 간단한 거예요. (132-79)
사람뿐만이 아니라, 개도 주인이 사랑해 주면 좋아합니다. 꼬리를 젓고 이렇게…. (웃음) 그래요, 안 그래요? 동산을 사람이 사랑하면 새들이 모여와서 지저귄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랑이 좋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취미가 무엇일까 생각해 봤어요? 문학작품? 하나님의 관심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관심은 뭐예요? 「사랑」누구를 닮아서? 「하나님」 그래서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까 말한 희망이니 행복이니 하는 것도, 사랑 빼놓은 희망이 있어요? 사랑 빼놓은 행복 있어요? 희망이 없고 행복이 없더라도 사랑만 갖다 놓으면 희망은 자동적으로 붙는 거예요. 행복은 자동적으로 붙는 것입니다.
우리 아가씨들, 사랑 따라 시집갈래요, 희망 따라 시집갈래요? 무엇 따라 시집갈래요? 「사랑」 사랑 좋아해요? 「예」 나는 사랑 싫어요! (웃음) 그거 아니라고 하지만 너무 좋아서…. 밥을 맛있게 먹다가 너무 좋아서 넘기다가 '억! 억' 이러는 것같이 딱 걸리는 거예요. 진짜 사랑이 좋아요? 「예」 보라구요.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아들딸의 손이 더럽고, 추해도 자기 가슴에다 넣고 싶은 거예요. '아이구!저 손 더러워. 아이구! 목욕탕에 가서 비누로 몇 번씩 씻고 와' 그러지 않거든요. 사랑만이 지옥을 천국으로 만듭니다. 그거 이론에 맞는 말이예요? 이론에 맞지 않으면 가능한 이론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사랑만 있으면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 왜 레버런 문을 따라오는 거예요? 왜 따라다니는 거예요? 새파란 눈을 가지고 왜 따라다니는 거예요? 여러분 얼굴을 가만히 보면서 생각하게 되면…. 파랑 눈에 노랑 머리 백인이 검은 눈을 가진 아시아 사람을 따라다닌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90-312)
3) 사랑의 길을 찾아가려면 희생 봉사해야
이 사랑의 길을 찾아가려면 희생 봉사를 해야 됩니다. 기분 좋아요? 「예」 희생봉사가 없으면 십만큼의 사랑의 인연을 갖고 온 사람은 백, 천, 만의 인연의 길을 갈래야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선조가 나쁘다면 십만큼의 사랑도 못 갖고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만큼의 사랑의 인연을 갖고 온 사람도 백, 천, 만의 사랑의 인연을 차지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런 길을 한번 가 보고 싶지 않으냐는 거예요. 가고 싶어요? 「예」 통일교회 문선생은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욕을 먹고 별의별 수모를 당하고 감옥에 들어가 죽을 고통을 당하면서도 지금까지 참아 나온 것입니다. 또, 그러기에 내가 민족을 위하고 사랑하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희생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도 이만큼 사랑을 했으면 됐다 하고 가다가도 나보다 희생과 사랑의 도수가 높은 사람이 있으면 나는 더한 희생과 사랑 즉, 천배 만배 희생하고 사랑해야 한다면 나는 그 길을 가겠다고 합니다. 욕심 많지요? 그러한 내가 되어야만 하나님이 사랑을 퍼부을 수 있는 것이니, 그러한 사랑은 누구로부터? 세상 사람이 보기 싫어하는 문선생으로부터 사랑을 몽땅 퍼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44-203)
여러분이 이제 가서 교회장으로서 뭘해야 되느냐? 「종의 종의…」종의 종이지만 사랑을 가지고 해야 됩니다. 사랑을 가지고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알겠어요? 「예」 무슨 사랑입니까? 사탄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이라구요. 그 사랑은 어디서 나타나느냐? 자기를 상대방에게 완전히 주는 데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완전히 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삼대상 사랑입니다. 삼대상 사랑은 완전히 줄 수 있고 완전히 받을 수 있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냐.
여러분이 완전히 주는 날에는 완전히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사탄이 그 사랑을 완전히 받고 나서 도망가면 어떻겠어요? 완전한 대상적인 사랑에는 완전한 주체적인 사랑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거라구요. 누가 알아준다고 좋아하고 몰라준다고 섭섭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잖아요? 본부에서 알아주겠으면 알아주고, 협회장이 알아주겠으면 알아주고…. 뭐 누가 안 알아준다고 걱정할 것 있어요? 문제는 완전한 사랑을 가지고 나타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걱정거리라구요. (48-34)
영적인 책임자는 시간을 초월해서 자기와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을 대해 줄수 있어야 됩니다. 결국은 내가 자는 시간을 완전히 남을 위해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내가 먹는 시간도 남을 위해서 희생할 수 있어야 됩니다. 내가 사는 생활도 남을 위해서 희생할 수 있어야 됩니다. 내가 사는 생활도 남을 위해서 희생할 수 있어야 되겠다 이거예요. 그런 입장에서 책임소관을 알아서 실행하는 책임자가 된다면 그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72-313)
4) 사랑에 미쳐 살아야 한다
여러분의 손발이 통일교회를 사랑하기 위해 얼마나 움직여 봤느냐? 손발이 내 밥을 먹기 위해서는 많이 움직여 봤고 내 눈이 많이 움직여 봤지만, 통일교회 식구를 사랑하기에 얼마나 움직여 봤느냐? 통일교회를 위해서 내 땀을 얼마나 흘려 봤으며 내 노력을 얼마나 했느냐? 피곤한 몸으로 잠자리에 들게 될 때 누구를 사랑하기 위해서 그랬느냐? 자기를 위해서 그랬다면 부끄러움이요, 세계를 사랑하려고 그랬다면 영광입니다. 천국의 한 탑을 쌓는데 한 조각 한 조각 올려 쌓은 터전이 그 피곤한 잠자리 가운데 쌓여져 올라가는 것이 아니냐. 사랑하자! 그래서 교회를 넘고 나라를 사랑하자 ! 우리가 그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59-58)
새로 들어온 식구를 사랑하면 탕감조건을 빨리 세울 수 있다. 교회가 발전하지 못하는 원인은 식구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라고 하셨다. (18-40)
사랑의 극치,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안겨서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식처럼 자기 형제처럼 생각하고, 어린아이는 자기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그러한 멋있는 남자가 아니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자녀가 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다. 과거의 성인 정도로는 안된다. 과거·현재·미래를 통해 영원히, 절대적인 남자로 서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인들이 사랑하지 않았던 분야를 우리들은 지금 사랑한다.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55-97)
사랑에 미쳐 살아야 돼요. 취해 살아야 돼요. 취하는 도수가 조금 넘으면 미치는 겁니다. 미친 사람이 별거 있어요? 미친 사람은 별거 없다 구요. 순서를 거꾸로 하는 겁니다, 거꾸로. 아빠 대해서 엄마라 하고, 엄마 대해서 아빠라고 한다구요. 그것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을 한다면 '왜 아빠보고 엄마, 엄마보고 아빠라고 그래? 라고 하지 않아요. 다 통한다는 겁니다. 사랑은 하나돼 있기 때문에 이런 논리가 형성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은 취해 살아야 됩니다.
문선생도 취해 사는 겁니다. 욕먹는 재미가 얼마나 맛있는지 그걸 몰라요. 세상 사람은 모르는 겁니다. 욕먹는 맛이, 욕먹는 재미가 얼마나 맛있는지 세상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에 욕 안 먹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난 그 맛을 알거든요. (웃음) (148-323)
4. 식구지도요소 - 정성과 기도
여러분은 도(道)의 책임자인데 지금까지 도를 위하여 정성을 들여 보았어요? 반드시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전도는 정성에 비례하는 것이지 지식이나 실력에 비례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60년대에 이러한 체험을 다 해보지 않았습니까? 대학교를 나와서 꽤 안다고 하는 사람보다 정성을 들이면서 전도한 사람이 더 낫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얼마만큼 동정해 주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지금 지구장들이 일편단심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밥 먹는 일입니까? 아닙니다. 이 죄악세계에서 한 생명 한 생명들을 어떻게 하늘의 아들딸로 부활시켜 하늘나라로 옮겨 주느냐 하는 책임적인 사명감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일구월심 그러한 사명감을 가지고 나가 보십시오, 안 되는 일이 있는가.
완전한 주체 앞에는 완전한 대상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체는 대상을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기도를 하는 데는 대상이 새벽에 일어나면 그보다 먼저 일어나서 정성을 들여 주어야 됩니다. 사람은 자기를 위하여 정성들여 주게 되면 대번에 알게 되어 있습니다.
책임자는 자기 위치를 지켜 가며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여러분이 책임자라면 아침에 기도할 때에 20명 이상씩은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서 하루에 70명 이상은 생각하며 기도해 주어야 됩니다. 식구들과 같이 먹고 식구들과 더불어 살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심각한 시간은 밥 먹을 때와 잠잘 때입니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을 때 그리고 졸음이 와서 잠을 자려 할 때는 모든 신경이 거기에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그와 반면에 깨어날 때는 모든 신경이 풀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심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루의 생활 가운데 세끼 밥 먹을 때와 잠잘 때가 제일 심각한 시간입니다. 뜻을 위해 그런 심각한 자리에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한 번하는 기도가 보통 때 몇 번 하는 기도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식구들과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잔다는 심정으로 식구들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면 누구누구는 어떻다는 감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감각이 예민해지면 멀리 있는 사람도 가까이 보이고 가까이 있는 사람은 더욱 가까이 보입니다. 척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령을 지도하는 사람들이 그 정도의 능력도 없이 맹숭맹숭해 가지고 어떻게 사람들을 지도할 수 있겠어요? 자신이 한 생명에 대해서 얼마나 정성을 들였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마 16 : 26)"고 하신 말씀의 뜻도 한 생명을 우주보다 더 귀하게 여기어 거기에 심정의 닻을 내리신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세계를 망각하고 한 생명을 위해서 일대일로 싸우며 인간의 가치의 골짜기를 찾아 들어가시던 예수님의 심정적 경지에 도달할 때, 비로소 새로운 식구의 인연이 얻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뜻을 중심삼고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무엇을 해보았습니까? 여러분은 가까이 인연되었던 사람 가운데 뜻 앞에서 자신이 어려울 때 위로해 주던 사람들을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일생 동안 언제든지 그 사람을 생각하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언제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인연을 가지고 나가게 되면 이런 인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오지 말라고 해도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식구들은 정성들여 기도하는데 책임자가 잠을 자서야 되겠습니까? 그것은 빚지는 생활입니다. 그래서는 발전하지 못합니다. 정성이란 한꺼번에 들일 수 없는 것이니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을 한 사람씩 차례를 정해 가지고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한 사람씩 붙들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실패한 것은 열두 사람을 데리고 다니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기도하는 시간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사람에게도 자기의 뼛골에 사무치는 내적인 사연을 가르쳐 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책임을 다할 때까지는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밀고 나가야 합니다. 무엇을 놓고 정성을 들이고 기도를 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정해 놓은 기도의 양은 다 채워야 됩니다. 만일 자기가 정해 놓고 정성들인 사람이 뜻 앞에서 떠났다고 하더라도 그를 찾아가서 여러분의 책임을 다해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빚을 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5. 식구지도요소 - 충분한 경험
1) 훈련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
사람의 소질이라는 것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맞는 식구,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이거예요. 거기에 맞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돼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맞추는 놀음을 해야 된다구요. 맞지 않으면 맞추어야 됩니다. 이것은 반드시 경험을 통해서 되는 일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러한 경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참된 책임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책임자가 되면 이런 경험에 의해서 틀림없는 책임자의 소관을 해 가지고 하늘의 칭찬과 여러분이 지도하는 단체면 단체의 모든 사람들 앞에 우러러 존경을 받는 영원한 새로운 전통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준비를 해야 됩니다. 어떠한 외적인 훈련이나 어떠한 내적인 훈련이라도 달갑게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각을 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싫다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나는 못 한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72-328)
남의 선생이 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예요. 통일교회 선생 되기 쉬운 것이 아니예요. 지극히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죄인 같이 죄수의 옷을 입고 형장길을 걸어가는 그런 기분이지만, 가고 있는 사람이라구요.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여러분은 형무소 생활 못 해봤기 때문에 모를 거라구요. 호화스러운 집에 살고 있지만 내가 그 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나는 초막에도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초막에도 살 수 있는 훈련이 돼 있어요. 옷을 벗어 쥐고 노동판에 가면 일등 노동자가 될 수 있는 훈련을 한 사람이라구요. 거기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가서 붙들고, 환경을 전부 다 수습해 가지고 거기에서 눈물을 짓고 친구가 될 수 있는 이런 심정적 훈련을 한 사람이라구요. (85-43)
2) 지혜롭게 지도해야
지혜로운 책임자는 한 번 쳤으면 두 번 쓰다듬어 주는 겁니다. 그리고 식구들이 '나를 위해서 그랬구나' 하게끔 처리해 나가야지 그러지 못하면 손가락질을 하고 반대하는 일이 많이 생겨나고, 나중에는 사탄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 처리하지 못하면 자기 제자가 원수가 되는 겁니다, 원수. 원수가 되어 가지고 원수를 갚겠다고 하여 그 사람이 하늘편으로 못 가게 되면, 그 마음을 중심삼고 행동하는 일체의 책임을 누가 져야 되느냐 하면 책임자가 져야 되는 것입니다. (54-207)
만일 나쁜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을 당장에 처리하지 말라는 거예요. 나쁜 것이 있더라도 그 나쁜 것을 중심삼고 좋을 수 있는 조건을 찾아 가면서, 좋은 것이 나쁜 것보다 작더라도 작은 것을 보고 나쁜 것을 보류해 가지고 처리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됩니다.
만일에 1년 전에 잘못한 것을 보고 짤라 버렸다면 그 사람은 완전히 죽었겠지만, 1년, 2년, 3년 잘라 버리지 않고 보류해 두어 가지고 그것을 가외로 생각하면서처리하게 된다면 1년, 2년, 3년 이후에는 그 사람이 살 수 있는 길도 있는 것입니다. (72-313)
3) 책임자가 되려면 식구를 위해 십자가를 져야
책임자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불쌍한 사람이라구요. 책임자는 아내와 둘이 안방에서 재미있게 살더라도 문을 두드리면 안방에도 들어오라고 해야 된다 이거예요. 결국은 자기의 아내보다도 식구를 더 사랑해야 된다는 거예요. 자기 아내에게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까지 팔아서라도 전부 다 식구들에게 주려고 하고, 아들딸에게 좋은 것이 있으면 그 모든 것을 식구를 위해 써야 됩니다. 그런 생활방식이 되어야 됩니다.
자, 이러한 생활을 하게 된다면 그 가정은 어떻게 되겠느냐? 이러한 가정은 대다수가 불행한 가정으로 떨어지기 쉬운 것입니다. 그런 일을 계승해 가지고 계속적으로, 일생 동안 밀고 나가면 성공할 수 있지만 몇 해 동안 가다가 중단하면 다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 가든지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되는 것이 책임자가 가야 할 길입니다. 만약에 식구들이 책임자를 따라 올바른 사상을 받아 가지고 그 책임자를 위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가 나를 위하려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면….
여러분이 밥을 먹더라도, 숟가락을 들면 '아이구 배고파'가 아니예요. 식구들을 생각해야 돼요. 옷을 입어도 식구들을 생각해야 되고, 전부다 그렇게 생각해야 된다구요. 자는 시간도 십자가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피곤해서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는 '아, 기분 좋다'라고 한 것도 회개해야 된다구요. 그러한 생활을 한다면 완전히 영계, 하늘이 협조한다구요. 이것은 여러분이 신앙생활의 체험을 통하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자기 몸을 중심삼고 손이면 손이 얼마나 식구를 위했고, 눈이면 눈이 얼마나 식구를 위했고, 공적인 입장에서 얼마나 식구들을 찾아보고 싶어했고, 듣고 싫어했고 그들을 위로해 주었는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전부가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이어야 합니다.
'책임자가 되려면' 이것이 오늘의 말씀 제목인데, 여러분들이 책임자가 되면 이러한 십자가를 질 수 있겠어요? 「예」그러려면 그런 훈련이 필요합니다. 천 사람의 책임자가 되기 전에 이런 훈련을 하는 데에서 한 사람의 책임자로 합격할 수 있겠느냐? 자신이 그걸 반문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을 절대 필요로 할 수 있는 친구면 친구로서, 선생님이면 선생님으로서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의 완전한 책임자가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우리는 여기서 훈련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책임자가 되려면, 어떤 교회를 책임지려면 내가 완전한 한사람을 위해서 책임자 노릇을 해보자 하는 훈련을 해야 되겠습니다. 한사람의 책임자가 되려면 그 사람의 좋은 것, 그 사람의 나쁜 것을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은 내가 책임지고 나쁜 것은 책임 안 진다 하면 안 됩니다. 나쁜 것은 내가 먼저 책임지고 '좋은 것은 네가 책임져라' 이래야 됩니다. 나와 그 사람과 갈라지게 하는 것은 좋은 것이 갈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이 갈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나쁜 것을 책임질 수 있는 책임자가 되지 않고는 갈라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나쁜 것을 소화시켜 가지고 좋은 것으로 보충시키기 위해서는 개인의 십자가를 져야 되더라 이거예요. 앞으로 여러분이 책임자가 되면 이것을 생각해야 돼요. 개인의 책임자로서 완전한 책임자가 될 수 있느냐 하는 물음에 여러분이 자답해야 됩니다. '될 수 있다'라고. 그다음에 가정적인 책임자가 될 수 있느냐 할 때 '할 수 있다'고 하게 될 때는 교회의 책임자로서도 문제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내가 한 가정에서 위해서 책임져 가지고 한 가정의 식구들을 교회에 인도해야 되겠다 할 때는 그 가정의 십자가를 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 가정의 식구 전체가 질 수 없었던 십자가를 내가 대신 져 가지고 해결해 준다고 하면 그 가정은 그 십자가를 해결할 때까지 내 지도를 순순히 받아야 되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런 훈련이 필요하다구요.
그다음에 한 교회를 중심삼고 그렇게 되면 가정의 책임자는 물론 교회도 문제없다는 거예요. 교회도 문제가 없다구요. 교회를 중심삼고 볼때, '교회의 모든 어려움을 내가 책임지겠다. 너의 책임을 내가 대신 지겠다' 하는 사람이 책임자라구요. 교회의 어려운 것이 있을 때 식구들이 전부 다 책임져야 할 것을 내가 책임진다고 한다면 그 교인들은 책임자가 진 십자가의 책임을 수행할 때까지는 책임자의 지도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책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세계복귀를 하겠다고 다짐하고 나선 우리에게 있어서 과연 이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지금 미국을 대해 가지고 작전하는 데 하나님이 미국을 위하고 믿는 것보다도 내가 미국을 더 위하고 믿으면 어떻게 될 것이냐? 그러면 하나님은 미국을 심판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거예요. 심판을 하려면 내게 그 이상 것을 갖다 주고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내가 미국을 위하고 미국을 사랑하고 미국을 믿고 있는 이상 갖다 주고야 심판할 수 있지 그렇지 않고는 빼앗아가거나 쳐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72-313)
6. 식구를 왕과 같이 모셔라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열 사람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열 사람의 시중을 들을 줄 알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안 되는 거예요. 절대 통솔 못 하는 거라구요. 그러니 이번에 각자 교회에 돌아가면 교회 사람들과 하나되어 가지고 두 바퀴, 즉 하나는 오른쪽 바퀴요 또 하나는 왼쪽 바퀴가 되어 가지고 잘 굴러가도록 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어 굴러가면서 속력을 내면 어떤 큰 집에 부딪쳐도 끄덕없고, 큰 바위에 부딪쳐도 그 바위를 부수게 되는 거라구요. 그러므로 하나되어 가지고 나가면 틀림없이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50-345)
오는 사람을 왕같이 대하고 왕같이 모시고 왕같이 대접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가르쳐 주고 '우리 스승이 저렇게 아무것도 아닌 나를 왕같이 대해 주고, 왕같이 봉사하니 그야말로 높으신, 왕과 같은 그분을 어떻게 모실까? 할 수 있게 해야 돼요. 그 전통을 세워야 됩니다. 하나님 아들의 자격이 거기서 부여된다는 걸 알아야 돼요. (89-290)
사람을 왕과 같이 모시는 것도 탕감입니다. 전부 탕감법이라구요. 그 사람이 암만 나쁘더라도 왕과 같이 모시게 되면 그 정성의 마음을 그 사람이 못 받으면 하나님이 받아 준다구요. 그 사람이 통일교회를 믿지 않고 나가면 그의 선한 조상이 쌓은 모든 복을 내가 몽땅 인계받는다구요, 무서운 작전입니다, 이게. 전체의 복을, 만민의 것을 내가 찾는 거예요. 수확하는 것입니다. 거두는 거라구요.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이 레버런 문을 반대하는 데 있어서는 어떻게 돼요? 마찬가지의 원리가 적용된다구요.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제사장은 그러한 길을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책임 못 하고는 큰소리를 할 수 없습니다. 한눈을 팔 수 없어요. 내가 마음으로 누가 어떻다고 평을 할 수 없다 이거예요. 내가 죄인인데, 제사장인데 내가 책임을 못 했는데 어떻게 평을 하나요? 알겠지요? 「예」
이제 돌아가게 되면 식구들을 전부 다 그렇게 모시라구요. 식구를 그렇게 모시라는 거예요. 자, 왕을 모신 그 집에서 잠잘 수 있어요? 정성을 다해야지요. 그렇게 되면 이제부터는 미국에 새로운 전통이 세워질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보는 거예요. 이제는 알겠어요? 「예」제사장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 알겠어요?「예」내 살을 빼야 되고, 내 피를 빼야 됩니다. 내 살과 내 피를 빼서 바쳐야 되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심정까지 합해서 바쳐야 된다구요.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전부 다 삯꾼이예요. 삯꾼도 좋았다구요. 선생님이 책임지고 가니 선생님을 따라서 왔다구요. 그게 좋았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때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 「예」 (89-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