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漢詩
오도송(悟道頌)
천금지석산위침天衾地席山爲枕
월촉운병해작준月燭雲屛海作樽
대취거연잉기무大醉居然仍起舞
각염장수괘건곤却嫌長袖掛崑崙
진묵대사<震黙大師>
하늘을 이불로 땅을 자리로 산을 베게로 삼고
달을 촛불로 구름을 병풍으로 바다를 술통으로 삼아
크게 취해 거연히 일어나 춤을 추니
도리어 긴 소매가 곤륜산에 걸릴까 꺼려지네
이 오도송(悟道頌) 게송(偈頌)은 진묵대사(震黙大師) 칠언절구(七言絶句) 평기식(平起式) 선시(禪詩)다. 압운(押韻)은 상평성(上平聲) 원통(元統) 운족(韻族) 준(樽), 륜(崙) 자(字)로 작시(作詩)했다. 근체시(近體詩)에 적확(的確)하게 부합(符合)한 오도송(悟道)이다. 기구(起句)부터가 대사(大師)의 무애(無礙) 자재(自在)한 해탈(解脫) 무위(無位) 적인(赤人)의 선포(宣布)다. 하늘을 이불로 삼고 땅을 잠자리로 삼고 산을 베게로 삼는다고 했다. 달을 등잔불을 삼고 구름을 병풍으로 삼고 바닷물을 술통으로 삼아 거나하게 취하여 일어나 무생(無生) 춤을 추는데 장삼 자락이 저 곤륜산(崑崙山)에 걸릴까 염려(念慮)가 된다고 하셨다. 곤륜산(崑崙山)은 세속(世俗)의 규범(規範) 잣대다. 세속의 잣대로 보지 말라다. 오도(悟道)의 순간 법열(法悅)을 만끽(滿喫)하고 오열(悟悅)의 해탈무(解脫舞)다. 출가(出家) 사문(沙門) 비구(比丘)는 이 정도 되어야 출가장부(出家丈夫)라 부처님 제자(弟子) 할 수가 있다. 요즘은 절에도 보면 이렇게 큰 공부 수행(修行)이 다 된 선지식(善知識) 스님을 눈 씻고 찾아보아도 볼 수가 없다. 머리만 깎고 옷만 승복에 가사 장삼만 걸쳤지 눈 밝은 명안종사(明眼宗師)가 안 보인다. 화옹(和翁)이 노안(老眼) 탓이면 좋겠는데 말이다. 진묵대사는 청허휴정(淸虛休靜)의 법(法)을 원사(遠嗣)한 것으로 전해진다. 속가(俗家) 연(緣)은 전북 김제 만경읍 화포리 불거촌(佛居村)에서 조의씨(調意氏)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 부친을 잃고 7세에 전주 서방산(西方山) 봉서사(鳳棲寺)에 출가(出家)했다. 진묵대사는 신통(神通) 이적(異蹟)이 많이 전한다. 대사(大師)가 출생(出生)한 집은 조앙사(祖仰寺) 사찰이 되었다. 성모암(聖母庵)은 어머니를 위해 지은 절인데, 자손이 없어도 천년동안 향불이 끊어지지 않는 명당(明堂) 터라고 한(無子孫千年香火不絶之地)다. 진묵대사(震黙大師)는 출가를 했어도 속가 어머니를 절에서 모시고 살았다고 한다. 여름철에는 모기가 많아 어머님이 모기에 물려 잠을 못 주무시고 괴로워하자, 대사께서 산신령을 불러서 모기를 쫓아냈다고 한다. 또 전하는 일화는 모기떼가 걱정이 되어서 어머님 곁에 알몸으로 누어서 당신이 몸소 모기에 물리는 효심도 보였다고 하니, 대사의 지극정성 효심(孝心)은 알만도 하다.
진묵대사모제문(震黙大師祭母文)을 보면 효심이 철철 넘친다. 태중에 열달 동안 품으신 은혜는 어떻게 갚사오며, 삼년동안 길러주신 은혜는 결코 잊을 수 없나이다, 만세에 만세를 더 사신다고 해도, 자식의 마음에는 오히려 부족합니다, 백년(百年) 중에 백년(百年)도 다 채우지 못하셨으니, 어머니의 수명은 어찌 그리도 짧습니까? 표주박 하나로 거리에서 걸식하는 저야 이미 스님이 되어 갔다고 하지만, 아직 비녀도 꽂지 못한 채 시집 못 간 누이동생은 어찌 불쌍하지 않습니까? 상단 불공도 마치고, 하단 제사도 마쳐서 스님들은 제각기 방으로 돌아가고 앞산은 첩첩하고 뒷산도 중 중한데, 어머님은 혼은 어디로 갔습니까? 아~ 참으로 슬프고 슬픕니다.<胎中十月之恩 何以報也 膝下三年之養 未能忘矣, 萬歲上更加萬歲 子之心 猶爲嫌焉, 百年內未滿百年 母之壽 何以短也, 簞瓢路上行乞一僧 旣云去矣, 橫釵閨中未婚小妹 寧不哀哉, 上壇了下壇破 僧尋各房, 前山疊後山重 魂歸何處 嗚哉哀哉> 진묵대사께서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49재 때 쓰고 읽는 제문(祭文)이다. 화옹이 중앙승가대학을 운영할 때 법무부 장관을 지냈던 분의 모친 49재를 마치고 법문을 청해서 진묵대사 제문으로 법문을 해주었더니, 그 장관님이 펑펑 우는 것을 보았다. 사람이라면 이 제문 내용에 어찌 감동하지 않겠는가? 감동하지 않으면 문제가 많은 사람이다. 부모님의 은혜(恩惠)를 이렇게 96자 짧은 글 속에 다 응축(凝縮)시킬 수 있다는 것도 진묵대사의 효심을 느낄 수가 있다. 진묵대사는 일생을 통해서 신기한 이적도 많이 보인 분이다. 열반할 때 일화는 생사여탈(生死與奪) 자재(自在)한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경지(境地)다. 제자를 모아 놓고 내가 몇월 며칠 열반하겠다, 하니 시봉사미(侍奉沙彌)가 스님! 그날은 안됩니다. 정초(正初)라 바빠서, 안됩니다. 그랬구나! 그럼 언제 가면 되겠느냐? 다음날 가시면 되겠습니다. 그날이 돌아오자 열반에 들려고 하니, 사미가 또 안됩니다, 그날은 49재가 있어서 바쁩니다, 49재 끝나고 가십시오, 그렇겠구나! 하고 49재 마치고 열반하려고 하니, 큰스님께서는 누구의 법맥(法脈)을 이었습니까? 제자들이 물었다, 비록 명리승(名利僧)이기는 하지만 서산대사(西山大師) 법을 원사(遠嗣)하였다고 하고 열반에 드셨다. 대사는 남긴 저술은 전하지 않고 있다. 조선 후기 초의선사(草衣禪師)가 진묵대사와 관련된 다양한 일화(逸話) 등을 기록한 진묵조사유적고(震默祖師遺蹟考)라는 책을 남겨 진묵대사의 삶을 엿볼 수가 있다. 선시 게송도 자료를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부처님 화신(化身) 후신(後)으로 알려진 진묵대사 오도송의 선시(禪詩) 세계를 반추해 보았다. 여여법당 화옹 합장,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