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적으로 요리란, 적절한 화학물질들을 섞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화학실험실에서는 유리 플라스크와 비커를 쓰지만, 부엌에는 여러 가지 조리도구를 갖추고 있다. 뉴욕의 고급 백화점에서는 수백만 원 짜리 은 프라이팬을 팔고, 전문 매장에서는 수십만 원짜리 반짝이는 구리 냄비를 판다. 반면 얇은 알루미늄 냄비는 만원 이하로도 어디서나 구할 수 있다. 스테인리스강? 알루미늄? 세라믹? 테플론? 주철? 뭐가 어떻게 다른 걸까?
미식 요리사는 냄비 바닥의 국소적인 과열 지점이 섬세한 소스를 얼마나 망칠 수 있는지 진지하게 설명한다. 이런 비극(?)을 막으려면 효율적인 열전도와 정밀한 온도 조절이 필요하다. 은은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가격이 매우 비싸다. 구리는 열전도가 은에 거의 맞먹지만 음식에 녹아 들어 메스꺼움, 구토,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 그래서 구리 조리기구는 이 문제를 피하기 위해 주석이나 스테인리스강으로 코팅한다. 이 코팅은 시간이 지나면 닳아 교체가 필요하다. 바닥에 얇은 구리층을 덧댄 알루미늄이나 강철 팬도 있지만, 그 정도 구리 양으로는 열전도 개선 효과가 거의 없다.
알루미늄도 훌륭한 열전도체다. 어떤 종류의 조리기구보다도 알루미늄 제품이 가장 많이 팔린다. 확실히 입증된 증거는 없지만, 알루미늄이 알츠하이머병과 관련 있다는 보고 때문에 알루미늄 냄비와 팬을 버린 요리사들도 있다. 어쨌든 대부분의 알루미늄 조리기구는 논스틱non-stick 코팅이 되어 있다. 코팅 안된 알루미늄 조리기구로 모두 요리하고 식품을 보관한다 해도, 그로 인해 하루에 섭취되는 알루미늄은 3.5 밀리그램 정도에 불과하다. 음식에 자연적으로 들어 있는 하루 약 20 밀리그램과 비교하면 적은 양이며, 속쓰림에 먹는 제산제 1회 분량에 들어 있는 1,000 밀리그램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완충형buffred 진통제 한 알에도 10 밀리그램이 넘는 알루미늄이 들어 있다.
양극산화(아노다이징) 알루미늄은 알루미늄 용출 우려가 거의 없다. 스테인리스강보다 단단하고 열전도도 더 좋다. 또 영구적으로 논스틱이며 긁힘에 강하고 세척이 쉽다. 아노다이징 공정은 표면에 반응성이 거의 없는 단단한 산화알루미늄 층을 형성한다.
전통적인 논스틱 코팅은 잘 알려진 테플론이다. 제조 과정에서 사용은 되었지만 완제품에는 함유되어 있지 않은 PFOA와의 연관성 때문에 최근 비난을 받기도 했다. PFOA는 신장암, 고환암, 그리고 면역학적 문제와의 역학적 연관성이 보고되었는데, 이는 듀폰 사가 테플론을 생산하던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의 공장 인근에서 폐기물을 부적절하게 처리하였기 때문이다. 최종 제품에는 PFOA가 없었으므로, 테플론 조리기구 사용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실수로 매우 높은 온도까지 가열하면, 새에게는 독성이 있는 연기가 발생할 수 있다. 테플론은 실제 음식에 녹아들지 않는 비활성 고분자다. 현재 PFOA는 사용되지 않지만, 환경에 오래 남는다는 의미에서 ‘영원한 화학물질’로 불리는 다른 소형 불소화 화합물들이 제조에 쓰이고 있고 이들은 환경으로 유출될 수 있다. 그래도 성능 면에서 보면, 오늘날 생산되는 테플론 조리기구는 최고의 논스틱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음식이 잘 타지 않으며, 탄 음식은 다양한 발암물질을 생성한다. 테플론 조리기구 사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
테플론 조리기구가 현대를 상징한다면, 주철은 전통 요리를 상징한다. 그릴 조리하기에 아주 좋지만 무겁고, 녹과 음식이 들러붙는 걸 막기 위해 ‘시즈닝’을 해야 한다. 시즈닝은 팬에 얇게 기름을 바르고 가열하는 과정으로, 기름이 산소와 반응해 단단하고 매끄러우며 불침투성인 층을 만든다. 탄소강은 더 가볍고 주철처럼 작동하지만 역시 시즈닝이 필요하다. 주철과 탄소강은 모두 열전도성이 좋고, 조리 중 소량의 철이 음식에 녹아 들어 비교적 부족한 영양소인 철분의 공급원이 되기도 한다.
스테인리스강은 철에 다른 금속, 니켈과 크롬을 합금해 만든다. 내구성이 뛰어나고 변색이 잘 되지 않지만 열전도가 고르지 않기 때문에 알루미늄이나 구리 바닥을 덧댄 형태로 제작된다. 토마토 소스같은 산성 음식에는 소량의 니켈이 녹아 나올 수 있어, 니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될 수 있다. 크롬은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이 미네랄을 조금 더 섭취해도 좋을 정도다.
용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강철에 도자기질을 입힌 세라믹 조리기구도 있다. 이런 세라믹 마감은 테플론만큼은 아니지만 논스틱 성질이 매우 좋다. 세라믹은 화학적으로 유리와 비슷하고 거의 비활성이므로 안전성 문제는 없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깨지거나 흠이 생길 수 있다. 실리콘은 쿠키 시트에 적합한데, 논스틱 성질이 좋다. 저가 실리콘은 가공 화학물질 냄새가 날 수 있다.
그렇다면 최고의 조리기구는 무엇일까? 개인의 취향과 예산에 달려 있다. 프랑스 요리사들은 구리를 숭배한다. 하지만 평범한 조리사에게는 두꺼운 알루미늄 바닥을 가진 스테인리스 냄비면 충분하다. 아노다이징 알루미늄도 매우 훌륭하다. 논스틱 성능이 뛰어나고 긁힘에 강하며 세척이 쉽다. 달걀 프라이에는 테플론이 최고다. 아무것도 들러붙지 않고 사실상 씻을 필요가 없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수백만 가지의 천연·합성 화학물질을 고려하면, 조리기구에서 녹아 나오는 물질의 기여도는 무시할 만하다. 맛있게 드시길! 맛있게 먹으면 영칼로리라고도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