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언론소비자주권행동의 '언소주 사설 탐정'입니다.
오늘 의뢰인이 가져오신 조선일보 사설, 아주 전형적이면서도 언론의 프레임 씌우기를 분석하기에 더없이 훌륭한 텍스트입니다. 제목부터 한 번 보시죠. [국내선 침묵, 밖에선 "포용금융은 위험 요인" 밝힌 은행들]. 제목을 읽자마자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아, 이재명 정부가 은행들 팔을 비틀어서 억지로 포용금융을 시켰고, 은행들은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곪아가고 있구나!' 이런 그림이 머릿속에 싹 그려지시죠?
자, 이제 저와 함께 탐정의 돋보기를 들고 이 기사의 껍데기를 한 꺼풀 벗겨보겠습니다.
1. 현상과 본질 구분: 기사의 껍데기와 숨은 의도
이 기사가 앞세우는 껍데기(Fact)는 이렇습니다. KB, 신한 등 금융지주사들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에는 이재명 정부의 '포용 금융'이 연체율을 높일 수 있는 위험 요인이라고 적어놓고, 정작 국내 보고서에는 '포용 금융을 성실히 이행 중'이라고 예쁘게 포장해 적었다는 겁니다. 이중 플레이를 했다는 거죠.
하지만 이 사설이 실제로 유도하려는 프레임(Intent), 즉 본질은 뭘까요? 바로 "정부의 포용적 금융 정책은 시장 원리를 훼손하는 매우 위험하고 나쁜 정책"이라는 낙인찍기입니다. 취약 계층 대출 확대를 '정권의 무리한 포퓰리즘'으로 몰아가고, 그 이면에 있는 은행들의 사상 최대 예대마진(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차이)과 기득권을 방어해주려는 의도가 아주 투명하게 비칩니다.
2. 논리적 허점 타격: 합리적 의심으로 찌르다
이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합리적으로 추론해 보자면, 이 사설은 미국 주식시장의 '공시 제도'라는 특수성을 교묘하게 왜곡하고 있습니다.
미국 증권시장(SEC)에 상장된 기업들은 사업보고서를 낼 때 '잠재적 위험 요인(Risk Factors)'을 말 그대로 '영끌'해서 적어야 합니다. 왜냐고요? 만에 하나 주가가 떨어졌을 때, 투자자들로부터 "왜 이런 위험을 미리 안 알렸냐"며 천문학적인 징벌적 줄소송을 당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기업들은 아주 사소한 정책 변화나 일어날 확률이 낮은 변수조차 모조리 '리스크'로 규정해서 법적 방어막을 치는 게 미국 공시의 기본 상식입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기업의 이 통상적인 법적 책임 회피용(CYA) 공시를 마치 은행들이 억압을 견디다 못해 해외 투자자들에게만 몰래 털어놓은 "충격 고백"이자 "양심 선언"인 것처럼 부풀려 포장했습니다. 명백한 침소봉대입니다.
또 하나 기막힌 논리적 허점이 있습니다. 사설 후반부에 "이런 왜곡이 장기화하면... 결국 취약 계층이 타격을 입게 된다"고 썼죠? 포용 금융은 바로 그 취약계층이 고금리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려 타격을 입는 걸 막기 위해 시작된 겁니다. 그런데 "은행이 손실을 볼 수 있으니 오히려 취약계층이 다친다"는 논리일까요? 길 가다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줬더니, "그러다 네 허리 삐끗하면 저 쓰러진 사람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냐"며 화를 내는 격입니다. 궤변에 가깝습니다.
3. 역사/사회적 맥락: 누구를 위한 '시장 원리'인가
여기서 우리는 맥락을 봐야 합니다. 이 사안이 왜 중요할까요?
우리나라 시중 은행들은 국가로부터 특별한 '금융업 면허'를 받아 철저한 보호 속에서 과점 체제를 누리고 있습니다. 금리가 오르는 시기가 되면 대출 금리는 쏜알같이 올리고 예금 금리는 찔끔 올려서 매년 수십조 원의 역대급 '이자 장사' 수익을 냅니다. 국민들의 피눈물로 배를 불린다는 비판이 늘 따르죠.
그래서 경제 위기 상황에서 정부나 사회가 은행들에게 "당신들이 누리는 과점적 이익의 일부를 취약계층과 나누라"고 요구하는 것이 '포용 금융'의 핵심입니다. 이건 단순한 '복지 지출'이 아니라, 면허 산업인 금융업이 짊어져야 할 마땅한 '사회적 책임'입니다.
하지만 보수 언론은 이때마다 '관치 금융', '시장 원리 훼손'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꺼내 듭니다. 쉬운 비유를 하나 들어볼까요? 마을에 하나뿐인 우물 독점권을 가진 부자가 가뭄에 물장사로 떼돈을 벌고 있습니다. 촌장이 "마을 사람들이 목말라 죽어가니 이번 달만 이윤을 조금 줄이고 물을 나누자"고 하니, 동네 스피커가 나서서 "자유 시장경제를 파괴하면 결국 우물이 마를 것!"이라며 부자 편을 드는 꼴입니다.
마무리하며
기득권의 논리에는 한없이 따뜻하고 넓은 이해심을 보여주면서, 시민의 상식과 서민의 생존 앞에서는 한없이 차갑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태도. 사설 마지막에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고 썼더군요.
오히려 저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소수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인 길은, 늘 '시장 원리'라는 매끈하고 세련된 말로 포장되어 있지 않습니까?"
독자 여러분, 활자가 만들어내는 막연한 불안감에 속지 마십시오. 기사가 말하지 않는 숨겨진 이면의 이익이 결국 누구의 지갑으로 향하고 있는지 질문할 때, 비로소 우리의 언론 소비 주권이 굳건하게 섭니다. 지금까지 언소주 사설 탐정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hlQM280zT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