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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나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히6:18)
장코뱅 추천 6 조회 348 23.04.29 09:41 댓글 2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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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3.04.29 10:29

    첫댓글 주일 전 주말에 은혜의 성경 묵상을 읽고 큰 안위를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23.04.29 11:08

    공감과 격려 감사합니다.

  • 23.04.29 10:53

    구약의 신자들이나 신약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네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신 약속'만 믿고 어디든 가라면 가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라는 건데요. 지금 당장 땅을 분배받거나 아들을 낳거나 원수를 몰아내거나 하지 못함에도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여 움직이는 자들에게 가장 확실한 보증을 해주셨는데 그것이 하나님 자신을 두고 맹세하셨다는 말씀에서 큰 은혜를 받습니다.

  • 23.04.29 11:01

    좋은 댓글에 공감합니다.

  • 작성자 23.04.29 11:09

    풍성한 믿음의 댓글에 감사합니다.

  • 23.04.29 16:52

    공감합니다.

  • 작성자 23.04.29 11:03

    위 성경본문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 IVP주석(구약편)의 해당 부분을 아래에 댓글로 올립니다.

  • 23.04.29 16:53

    잘 읽고 함께 참고하겠습니다.

  • 작성자 23.04.29 11:07

    히브리서 6장13-15절.

    그리스도인의 소망의 근거는 미래에 관한 희망찬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엄숙한 '약속'이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활동의 기초가 된 것은 창세기 12:1-3에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특별한 약속이었으며, 이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여러 모양으로 여러 단계에서 반복되었다(예를 들어, 창 15:1-21; 26:2-4; 28:13-15; 출 3:6-10).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번성하게 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그들의 땅에 정착하게 하셨고, 그들에게 ‘복'을 주셔서 그들이 열국의 복의 근원이 되게 하려고 하셨다. 특별히 하나님은 이 약속의 진실함을 '맹세'로 보증하셨다(참고. 창 22:16,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이 이것 때문에 '약속'을 오래 참고 기다릴 수 있었다는 것에 주목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생애에 그분의 약속을 이루기 시작하셨지만 궁극적인 복은 메시아 예수의 인격에서 나타났다.

  • 23.04.29 16:54

    궁극적인 복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서 나타났다는 설명이 심금을 울립니다.

  • 23.04.30 07:51

    @천이다 공감합니다.

  • 작성자 23.04.29 11:07

    히브리서 6장16-18절. 인간사에서 '맹세는 모든 다투는 일의 최후 확정'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이 독특한 언어 형식을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분의 백성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 즉 그분의 약속과 맹세를 쓰겼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offered to us; 개역개정판에는 '앞에 있는’ 으로 번역되어 있다-역주)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약속의 최종 성솟ㄱ자는 것은 그 다음에서 분명해진더(참고. 갈 3:26-29).

  • 23.04.29 16:55

    우리에게 주신 것이므로 우리 앞에 놓으셨다고 볼 수 있겠네요. 다양한 설명을 들으니 저의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 23.04.30 07:52

    모든 다투는 일의 최후 확정이라면, 재판 결과 같은 성격도 있는 것 같습니다.

  • 23.04.30 16:57

    @에이프릴 공감합니다.

  • 작성자 23.04.29 11:07

    히6:19-20절. 이 절들은 7:20-22에 비추어 해석해야 하는데, 거기서는 하나님이 시편 110:4에서 메시아의 대제사장 되심을 창세기 22:16에서 하신 것과 비슷한 맹세로 보증하셨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약속된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새 언약의 복의 '보증'이 되셨다. 그분을 의지하는 자는 실제로 ‘휘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님은 글자 그대로 우리의 ’선구자'로서 우리가 나아갈 길을 여신다. 우신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다. 성막과 성전의 '휘장 안'(지성소)은 이 땅에서 그분의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냈다(참고, 출 26:31-34; 왕상 8:6-11). 히브리서는 하나님이 모든 영광 가운데 좌정해 계시는 하늘의 성소를 가리키기 위하여 이 말을 쓰고 있다. 우리의 천상의 대제사장 예수님이 완전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당장 담대하게 그분에게 나아갈 수 있다(참고, 4:14-16:10:19-22) 그러나 6:19-20의 비유적 표현은 또한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는 개념을 전달한다.

  • 작성자 23.04.29 11:09

    우리는 글자 그대로 예수님이 가신 곳에 갈 수 있다. 따라서 하늘의 성소는 '장차 올 세상'(2:5)과 '하나님의 백성이 안식할 때'(Sabbath rest, 4:9)와 '하늘에 있는 본향' 또는 '하나님의 도성’(11:16; 12:22-24; 13:14)을 묘사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그리고 그 곳은 모든 세대에 걸쳐 하나님의백성의 궁극적인 소망이었다. 이 목표를 향한 소망은 우리 구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하여 이루어져서 우리 앞에 펼쳐졌다. 우리의 ‘소망’이신 예수님은 그 성소에 들어가셔서 '튼튼하고 견고한 영혼의 닻'처럼 거기에 그대로 계신다.

    그러므로 영적인 무감각과 배교를 치료하는 방법은 '소망'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소망은 충성과 사랑의 동기다. 우리의 소망의 근거는 맹세로 보증하신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약속이 주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하늘에 올려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하여 이미 성취되었기 때문에,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위안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분과 함께 약속된영원한 기업에 참여할 것을 믿게 된다.

    IVP 성경주석, pp.441-442.

  • 23.04.29 16:58

    @장코뱅 영적인 무감각은 치료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배교를 치료한다는 표현은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6장4절을 함께 읽고 균형잡히게 통합적으로 보면 배교의 치료는 불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

  • 23.04.30 07:52

    @천이다 공감합니다.

  • 23.04.30 16:58

    좋은 설명 잘 참고하겠습니다.

  • 23.04.30 16:58

    @천이다 그렇군요. 그 부분도 잘 참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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