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읍과 가옥에 거주할 때
신명기 19-21장
들어가며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의 성읍과 가옥에 거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분명 광야 때와는 다른 삶이 펼쳐질 것입니다.
특히 여러 가지 사법 문제가 발생할 텐데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고의적이거나 우발적으로 일어난 살인 사건에서부터 미제 사건, 상속 문제, 전쟁을 준비하는 문제 등 다양한데,
하나님께서 이런 문제들을 처리할 규례들을 주십니다.
특별히 도피성 규례는 주목할 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엄히 벌하시는 분인 동시에 피할 길도 주시는 분입니다.
성경 속으로
1. 하나님께서 세 성읍을 구별해 두라고 명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 19:1-13)
민수기 35장과 신명기 4장에 이어 도피성 규례가 또 다시 나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잘 살면 도피성을 세 개 더 만들 수 있습니다(8-9절).
은혜에 은혜를 더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요단 서편 도피성은 헤브론, 세겜, 그리고 게데스입니다(수 20:7).
요단 동편의 도피성은 베셀, 길르앗 라못, 바산 골란입니다.
도피성은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의 목숨을 피해자의 가족에게서 구원하기 위해 주어졌습니다(4절).
구체적인 예로 5절을 보십시오.
“가령 사람이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 이웃을 맞춰 그로 죽게 함 같은 것이라.”
피해자 가족이 살인자에게 보복할 수 있습니다. 만일 도피성이 멀리 있으면 잡혀 죽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가까운 곳에 성을 만들어야 합니다.
도로까지 닦아서 잘 이동하게 해야 합니다(3절).
그런데 어떤 사람이 고의로 사람을 죽이고 도피성으로 피신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피성은 죄인을 보호하지 않습니다. 도피성에 피한다고 무조건 죄를 탕감받지 않습니다.
두 사람 이상의 증인에 의해 고의로 판단되면 그를 도피성에서 끌어내 죽여도 됩니다.
법을 악용하는 사람이기에 그를 긍휼히 봐 줄 이유가 없습니다.
도피성 자체가 인간의 죄를 탕감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엄히 벌하는 분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약함을 아시고 실수로 지은 죄를 너그러이 대하십니다.
우리도 죄를 지어 죄인입니다.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도피성으로 피할 때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성도가 부지중에 죄를 지을 때 피할 도피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어떤 이가 조직적으로,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대적한다면
그가 아무리 교회 가운데 있다고 하더라도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2. 이스라엘 사회 구성원, 특별히 약자를 위해 주신 두 법은 무엇입니까? (신 19:14-21)
14절에 나타난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는 규례는 성경 다른 곳에는 없는 구절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돌이나 기둥을 세워 경계를 정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유재산은 인정됩니다. 강자가 약자의 재산을 탐욕으로 빼앗을 수 없습니다.
생업의 기본이 되는 땅을 빼앗는 것을 금지함으로 기본권을 보장한 것입니다.
이 법은 재산에 대한 위조나, 은닉, 파괴, 문서 변조 같은 죄도 금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입니다.
왕이나 지도자라도 함부로 빼앗지 못합니다(호 5:10, 잠 22:28, 23:10).
사회에 악한 범죄가 있을 때 재판관은 최소한 두 명 이상의 증인을 채택해야 합니다(15절).
과학 수사가 어려운 고대에는 증인의 말이 재판에서 결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두세 증인의 법은 죄를 지은 사람을 고소하기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고소하는 자를 위한 법이기도 합니다(16절).
위증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법이든지 악용의 소지가 있습니다.
고발인, 증인 그리고 피고와 증인이 모두 재판장에게 나아가 사실 여부를 판단받아야 합니다.
재판관의 재판이 사회의 정의를 세우느냐 무너뜨리느냐를 결정합니다.
만약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면 사회의 신뢰는 무너집니다.
약자가 살아남지 못하고 강자만이 군림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판장은 잘 판단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두 세 증인의 규례를 주심으로 재판장과 공동체를 돕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신약 시대에도 이어집니다(딤전 5:19).
만약 증인이 의도적으로 거짓 증언을 하면 그는 피고가 받아야 할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19절).
거짓 증인을 분명하게 가려내어 사회에서 악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여 다시는 그런 죄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20절).
다른 사람을 해치려는 자에게 쓴맛을 보여줌으로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21절).
3. 불가피하게 전쟁을 치러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군인을 차출할 때 어떤 원리가 적용되어야 합니까? 전쟁터에서 지켜야 할 규례는 무엇입니까? (신 20:1-20)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와 정복한 이후에도 불가피하게 전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전쟁을 치러야 할까요?
세상의 전쟁은 말과 병거와 군인의 숫자를 의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전쟁은 다릅니다.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하지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말미암아 놀라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3-4절)
사람이 전쟁을 계획할지라도 함께하시고 대신 싸우시는 하나님을 믿는 자는 승리할 것입니다.
믿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복입니다.
군인을 모집할 때도 규칙이 있습니다(5-8절).
새집을 지었거나, 포도원을 시작했거나, 약혼하고 결혼을 앞둔 자,
그리고 두려워 마음이 허약한 자는 전쟁을 위한 동원령에서 제외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읍을 치려고 할 때 먼저 화평을 선언해야 합니다(10절).
만약 화평을 받아들이면 전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불필요한 전쟁은 막아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대적이 평화를 거부한다면 정복해야 합니다.
적병은 죽이지만 무고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14절).
그러나 가나안의 족속은 진멸해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을 하였고 그 모습을 이스라엘 백성이 본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17-18절).
유실수를 자르면 안 됩니다(19절).
다만 무실수는 전쟁을 위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20절).
이러한 전쟁 규례는 오늘날에는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4. 미제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처리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또 그 외에 하나님께서 주신 규례들은 무엇을 위한 법이었습니까? (신 21:1-23)
신명기 18-26장에 나오는 모든 율법과 규칙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거룩한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아야 할 규례들입니다.
성민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과 다른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미제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1-9절).
시신과 가까운 마을 사람들에게 책임이 주어집니다.
가까운 마을이 결정되면 그곳의 장로들이
어린 암송아지 한 마리를 항상 물이 흐르고 갈지도 않고 씨 뿌린 일도 없는 골짜기에서
목을 꺾어 손을 씻고 선언하며 기도합니다.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이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7-8절)
이렇게 함으로 살인죄로부터 속죄함을 드러내야 했습니다.
오늘날 관점으로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하나님께서 죄를 무겁게 보시며 공동체 전체가 죄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10-14절에서는 전쟁 중 포로로 데려온 여자를 아내로 삼는 규례가 나옵니다.
만약 결혼한 후에 그 여자가 싫어졌다고 해도 노예처럼 돈을 받고 매매할 수 없습니다.
자유인처럼 내보내야 합니다. 인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고대 사회에서는 분명 약자를 보호하는 법이었습니다.
두 아내와 두 아들 중 미움받는 아내의 아들이 장자이면
그에게 당연히 받아야 할 장자의 유산 두 몫을 주어야 합니다(15-17절).
감정에 의해 합법적 권리를 박탈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또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징계에 순종하지 않는 아들은 모든 마을 사람이
그를 돌로 쳐 죽여 악을 제거하라고 명령하십니다(18-21절).
대단히 무서운 규례인데 자녀가 부모를 두려워하도록 주어진 규례로 보입니다.
현대인은 자녀에 대한 훈계에 인색합니다. 불순종하는 자녀를 징계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모에 대한 자녀의 불순종은 큰 죄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에 대한 자녀의 불순종을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불순종과 같은 수준에서 다루십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는 자녀를 사랑으로 대함이 관계의 기본입니다.
불순종은 관계를 깨뜨립니다. 관계의 단절은 죽음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도록 자녀를 훈련해야 합니다.
22-23절에 나오는 규례는 독특합니다.
죽을죄를 지어 죽은 사람의 시신을 나무 위에 달아 둔 뒤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 지내라고 합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로서 땅을 더럽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사도 바울은 이 규례를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님께 적용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나는 자녀를 훈계하는 데 인색한가요? 불순종하는 자녀에게 쩔쩔맵니까?
한 주간의 실천/ 도피성이 되어 주신 예수님을 의지하며 매일 저녁마다 회개하기.
마무리하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읍과 가옥에 거주하면서 겪을 곤란한 상황,
예외 상황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지침을 주셨습니다.
이런 지침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한 백성으로서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규례들이 오늘날에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지만 그 원리와 정신은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한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찬송: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