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한담(閑談)
지난 여러 해 동안을 글쓰기에 전념하였다. 필요한 일상을 제외하고 많은 시간동안 글을 쓰고 또 고치면서 지낸다. 변함없이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도록 제반 여건을 만들어 준 아내의 성원에 감사하고 지낸다.
필요한 자료를 위해 관련 서적을 읽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단 한 줄의 문장을 활용하기 위해 책을 구매하거나 빌려본다. 구하기 어려운 책은 중고서점을 뒤져 구하는데 그 기쁨은 마치 잃어버린 사람과 재회하는 기분이다.
한 작품을 쓰기 위한 모든 정성과 집중은 마치 어린아이를 돌보는 엄마의 심정과도 같다. 언제 어느 곳에 있어도 생각은 온통 주제의 선정이나 글의 구성, 전개방식과 어떻게 고칠 것인가에 대해 집중한다. 두루 주변 이야기를 경청하거나 독서를 하면서 명상과 숙고를 통해 구상을 한다.
주제는 한마디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역사에 나타난 다양한 인물, 문학작품과 여행, 일상에서 느낀 생각을 우리네 인생길에 비추어 조명한다. 따라서 어느 특정한 사상이나 이념은 멀리하고 그 때마다 느끼는 그 자체의 감정을 나타낸다. 가능한 누구를 두둔하거나 과도한 비난을 하지 않으며, 특히 생존한 인물에 대한 언급은 아예 회피한다. 이미 지난 사람들에 대한 할 이야기도 많은데 굳이 아직 역사적 평가를 받기 전의 인물에 관심을 쓸 겨를이 없다.
이런 관점에서 살아가면서 느낀 인생 그 자체에 대한 소회와 아쉬움, 그리고 조그만 소망을 곁들여 표현한다. 그만큼 실생활에서 이웃 혹은 지인들과 나눈 사연과 인연이 준 이야기는 물론이고, 새로운 지식의 활용으로 다양한 소재의 지평을 넓히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힘들지만 격려와 성원을 보내주시는 애독자분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설 명절에는 실버타운에 계시는 장모님께 새 해 인사를 드리러 갔다. 오랜 옛날에 큰 외손자를 봤다고 엄청 기뻐하시면서 상당기간을 기르고 보살펴 주셨던 외손과 그의 가족을 데리고 함께 갔다. 이 자리에서 아내의 청에 따라 처음에 외 증손녀/손자가 노래를 부르며 율동하면서 재롱을 부렸다. 이어서 외손자인 아들이 노래를 열창하였다. 장모님은 마냥 신이 나시어 얼굴이 활짝 장미꽃처럼 피어났다. 그 다음으로 아내의 요청으로 내가 목청을 가다듬고 안간힘을 다했다. 먼저 「이 미자」의 ‛아씨’를 불렀다.
‟옛날에 이 길은 꽃가마 타고 말 탄님 따라서 시집가던 길 여기든가 저기든가. 복사꽃 곱게 피어있던 길, 한 세상 다하여 돌아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구나.‟
이어서 ‛봄날은 간다’를 불렀다. 두 곡 모두 그 옛날 심금을 울리던 유행가로 우리네 생활 속에서 많은 사랑을 받던 노래였다.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들이 즐겨 부르던 이들 노래에는 흘러간 옛날의 추억과 아픈 사연이 깃들어 언제 들어도 애잔한 아픔과 희미한 추억을 되살려준다. 여하튼 짧은 시간이나마 4대가 함께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반면에 못내 아쉬운 사연도 있기 마련이다. 우선 첨예한 시각의 차이를 염두에 두다보니 글의 표현이 다소 모호한 점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미묘한 간극의 깊이를 고려하여 오직 인생 그 자체의 삶의 방식에 초점을 둔 결과이다.
오랜 기간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조차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오기도 한다. 그냥 글을 읽을 때는 그 느낌만을 간직해보라고 충고해도 반복적으로 사리에 맞지 않는 요구를 한다.
더구나 특정 인물을 비판해 달라는 어이없는 요구에는 할 말을 잊었다. 이처럼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 고조되면서 멀쩡했던 사람마저 제 정신 줄까지 놓고 사는 반지성과 야만의 사회로 변하고 있음을 절감하였다. 허황된 정보를 무분별하게 전파하는 행위도 이를 부추기기는 마찬가지다.
반면에 사람 사는 보람을 주는 일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생은 살아갈 맛과 기쁨을 주기도 하나보다. 며칠 전에 한 동기생으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평소에 나의 글을 애독하던 그는 다른 동료들과 더불어 만나자고 하였다. 종종 글을 읽은 소감을 보내면서 성원을 해주던 고마운 친구인데 여의도에 있는 중국집으로 초대를 한 것이다. 선뜻 시간과 비용을 할애하여 따뜻한 교유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일곱 명이 모여 모처럼 문학과 미술, 여행에 관한 환담을 나누는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세계적인 수준에 오른 우리나라의 승용차를 놓아두고, 일본인과는 달리 외제차를 선호하는 국민성에 대한 자성도 있었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종류의 모임이 유익한 정보도 나누면서 정신 건강도 살찌운다.
사심 없이 글 자체에 대한 공감을 하면서 동료들에게 대화의 모임을 선뜻 주선한 친구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였다. 일찍 진출하여 기업의 CEO로 성공했는데 평소에도 솔선하여 많이 베풀고 신망을 두루 받고 있는 친구다.
그동안 선, 후배들과는 주기적으로 함께 만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동기생이 주선하여 만나기는 매우 드문 일이다. 누군가 고교동창은 언제 만나도 속이 시원한데 과거 여러 해를 함께 기숙하던 동기생들을 만나면 뭔가 꺼림칙하다는 말을 하였다. 그만큼 경쟁에 시달리다보니 진심으로 상대방을 칭찬하고 베푸는 일에 인색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각자의 주관이 뚜렷함에 따라 타인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격려와 성원을 보내는 일도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저마다 보유한 ‛탈렌트’를 함께 나눌수록 우리 인생은 그만큼 깊이와 폭이 넓어진다. 나이가 들면 지인들과 회식을 겸한 대화는 더욱 심신을 밝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등불을 주변에게 전한다고 해서 그 등불의 광도가 약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변을 더욱 더 밝게 만들어 모두에게 유익하고 보람을 주게 된다.
겸손과 온유함은 가장 큰 자산이다. 비교적 성공적인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자신만의 고집으로 세상을 살다가는 고립되어 외롭기 마련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진심으로 마음의 문을 열어두고 지내는 일이 얼마나 값진 일인가를 망각해서는 안 될 일이다.
소중한 인연에 감사하고 동시에 먼저 손을 내밀어 대화의 문을 열어두는 지혜를 발휘해야만 몸과 마음이 두루 건강할 것이다. 종종 이웃의 지인, 독자들과 한 잔술에 덧붙여 나누는 허심탄회한 대화 속에 생활의 활력이 샘솟는다.
이 세상은 결코 혼자만 고고하게 살 수는 없다. 자신을 낮추고 공감하면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기운과 희망이 넘치는 세상이 지속되길 바란다. 재삼 뜻 깊은 자리를 만들어주고 동석하여 진솔한 생각을 주고받은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2025.2.6.작성/2.19.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