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오빠가 헌 카메라에서 프리즘을 꺼내주었다. 눈에 가까이 대고 본 세상 모든 것이, 무지개로 돌려져 있었다. 빛이 있어 세상 만물들이 살 수 있다. 무지개는 빛 중의 빛이다. 그 빛이 있으니 색이 이루어지고 그 색 때문에 세상은 아름답다.
동생이 태어난 날, 어둠과 빛의 경계선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다. 얘기 울음소리와 함께 엄마의 고통이 끝나는 안도의 순간도 그때 느꼈다. 수평선에 그어지는 노란 선 위로 차츰 둥근 해가 솟았고, 바닷물이 금빛으로 찰랑거리는 변화를 눈물 콧물 마르고 눈곱 붙은 얼굴로 대문 옆에 깔아둔 가마니(돗자리) 위에서 나 혼자 보았다. 무서움, 외로움, 안도감, 모든 것은 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감정의 빛이었다. 붉은 해에 어둠이 마침내 달아났다.
엄마는 그릇에 따뜻한 물을 붓고 작은 물감 봉지에서 가루를 조금씩 털어 넣었다. 언니가 입던 헌 옷을 뜯어 물을 들여 진한 옥색 고운 치마를 만들어 주었다. 하는 김에 색동저고리를 만들어 달라고 따라다니며 보챘더니 아버지는 빨간 옷고름에 금박물린 색동저고리를 사다 주었다. 초록 치마와 색동저고리는 고왔다. 그해 추석은 참 좋았다.
바느질하는 엄마 옆에서 재봉틀 발판을 손으로 까딱거려보며 놀았다. 바늘, 북통, 실 등을 넣은 작은 통을 열었다. 생명수(활명수) 약병에는 약이 반쯤 남아 있었다. 달콤한 맛을 떠 올리며 단숨에 홀짝 마셔버렸다. 혀를 빼물고 목을 움켜쥐고 뒹굴며 울었지만, 엄마는 모른 척하고 있었다. 뱃속은 불이 난 것처럼 뜨거웠다. 원망의 눈으로 딴사람같이 변한 엄마를 보고 있으니, 나중에서야 안아서 달래주었다. 언니의 횟배 고치려고 담아둔 휘발유였다. 하늘이 빙그르 돌고 땅이 흔들렸다. 그 휘발유로 속배를 모두 태웠는지 몰라도 지금껏 체하거나 배탈 난 적이 없었다.
외갓집에 갔었다. 포개진 삼단 찬합에 갖가지 음식을 담아 갔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뵙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동생은 등에 업혔고 나는 부모 사이에서 한 손씩 잡고 걸었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소나기가 갑자기 내렸다. 동생은 아버지 윗옷으로 덮어씌웠고, 엄마는 얼른 찬합 쌌던 보자기를 풀어 나의 얼굴을 싸서 묶어 주었다. 바람에 펄럭이는 자줏빛 보자기는 내 마음을 달고 함께 날아오른다. 비바람을 맛은 보자기는 마치 자줏빛 연 같았다. 소나기야 멎지 말거라, 이 순간 부러운 것이 없었다.
초등학교 일학년 때 동네 공터가 교실이었다. 편편한 곳이면 어디나 가교사를 지었다. 언덕배기도, 수원지 옆에도, 몇 군데로 나누어 지어졌다. 6·25 사면 후라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는 적십자 구호품으로 열두 색의 크레용이 한 통씩 나뉘어졌다. 처음 만져보는 내 것이었다. 살짝 밀어 올려보다 얼른 닫았다. 동그랗고 뾰족한 색깔들이 흩어져 도망갈 것만 같았다. 하얀 도화지에 집과 산, 나무와 꽃을 그렸고 색동옷 입고 춤추는 아이도 그렸다. 나비와 강아지, 둥근 해와 구름, 무지개를 그렸다. 생에 첫 작품이었다. 예쁜 선생님이 내 옆에 오랫동안 서 계셨다. 좋은 냄새가 났다. 올려보며 웃으니 선생님도 웃어주었다. 학교가 좋아졌다.
어는 날 저녁 아버지는 큼지막한 사각 통을 보물처럼 안고 와서 마루에 모두를 둘러앉혔다. 통 속에는 동그랗고 달콤한 초코렛과 짭짤한 과자, 통조림이 나왔다. 작고 네모난 봉지를 뜯어보니 새까만 커피가루, 하얀 설탕, 소금이 알차게 들어 있었다. 비슷해서 손가락에 침을 발라 찍어 먹고 맛을 가늠했다. 그것이 미군들의 식사라고 했다. 깡통 속 콩의 붉은 것은, 도마도 케찹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종이까지 빨아먹었다. 아버지가 위대하고 존경스러웠다. 행복한 저녁이었다.
마루 가운데를 막고 샛문을 달더니 삼촌이 장가를 갔다. 숙모가 생겼다. 어른들은 샛문을 잘 열지 않았지만, 천방지축 나는 신방이 궁금해서 들락거렸다. 고운 색의 반짝 종이 사이에 들어있는 보석 같은 유리잔은 여러 모양으로 움푹 파진 꽃잔이다. 그날은 화장하는 숙모를 옆에서 보게 되었다. 분통을 열면 하얀 가루가 들어있고 냄새는 미치도록 좋았다. 빨간 립스틱은 처음 본 신기한 물건이었다. 작은 붓으로 끝에만 살짝 묻혀 입가를 그리고, 새끼손가락 끝으로 살짝 묻혀 입술에 펴서 바르고 하얀 가제 손수건에 손가락을 비벼 닦았다. 손가락에 묻은 것을 내 입술에 발라줬으면 했었다.
삼촌과 숙모가 외출한 날을 틈탔다. 눈으로만 보겠다고 방으로 들어갔다가 아끼는 화장품들을 온 얼굴에 법벅을 하고 도취되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었다. 귀가한 삼촌에게 들켜서 쫓겨 나왔었다. 꾸중을 듣고 눈물 가득 머금은 나에게 엄마는 ‘아가야 어서 자라서 실컷 하라’며 무릎에 앉히고 닦아주었다. 차라리 때려주지, 부끄럽고 민망했지만, 그날의 빨간 입술과 뺨을 잊을 수 없다. 일곱 살짜리 숙녀가 된 날이었다.
이모 집에 놀러 갔을 때다. 문은 열려있고 아무도 없기에 화장품 통을 살펴보니 큼지막한 통에 새파란 로션이 가득 들어있었다. 손바닥에 듬뿍 부어 얼굴에 비벼 발랐다. 좋은 것이라선지 오랫동안 얼굴이 당겨지는 기분이었다. 이모가 들어오자마자 세수하라고 야단을 쳤다. 부엌으로 나가 세수를 하면서 가득 있으면서 좀 발랐다고 그렇게 아까와한다며 많이 섭섭해했었다. 마트가 생기고 진열장에 있던 그것이 샴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초록색 차밍삼푸!
연애와 결혼식 날은 핑크빛이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시어머니께 한복 곱게 차려입고 큰절을 올리려고섰었다. 하얀 버선으로 밟고 서 있는 노란색 비닐 장판에는 예단으로 지어온 색동 요 판이 길고 넓적하니 찍혀있었다. 시어머니는 “본견이었다면 물이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것으로 큰맘 먹고 마련한 이부자리가 싸구려로 전락되려는 순간, 신랑이 한마디 했다. “아무리 비싼 것이라도 그 독한 그것에는 견디지 못하고 다 물이 빠질 것이라”며 색시 편을 들어주었다. 과식한 시동생이 실수한 흔적이었다. 그 후 어머니는 이불에 대해서 언급이 없었다. 믿음직한 그와 함께라면 시집살이가 두렵지 않았다.
생, 사, 화, 복이 반복되는 끝없는 삶의 길을 아직도 가고 있다. 여기까지 이렇게 걸어왔다. 지금 떠나도 여한은 없다. 눈을 뜰 때와, 잠자리에 들 때마다 살아있어 감동이다. 죽음도, 그 이후도 주님께서 맡으셨다. 나에게 삶이 허락된 순간까지 꿈을 꾸며 초록희망으로 살고 싶다. 이 무지갯빛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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