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이전까지
나는 눈앞의 선명한 이미지들을 보면서
전생의 많은 것들을 기억했던 것 같다.
성장하면서 그 이미지들은 고장난 TV같이 흐려졌고
그러한 흐릿한 화면들은 평생을 귀찮게 했다.
나는 어린시절을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자랐다.
낮에 혼자 있거나 잠자다 어떤 에너지체를 느끼고
울면서 집 밖으로 뛰쳐나간 기억들도 있다.
어른들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이 너무 무서웠다.
집주변의 음습한 장소의 기운에 민감해서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아홉살 때쯤인가 마루에서 잠자다가 눈을 떳는데
내 옆에 흰 두루마기를 입은 커다란 남성이 칼을 빼어
나를 한번 내려치더니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 후 나는 마당에서 조카를 업고 넘어져
돌에 부딪쳐 얼굴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 흉터를 몇 년 전에야 성형수술로 지웠다.
그 체험이 예고하듯 내 삶 전부가 상처투성이로 얼룩졌다.
내 머릿속은 언제든 내가 원하는 것들이 즉각 그려졌다.
상상력이 풍부한 것이다. 그래서 어려서는 그림을 잘 그렸다.
눈감아도 길이 훤히 보이는것 같아 하교길에 눈감고 걷기도 했다.
지금도 몸이 아파 병원에 가는 일처럼 나에게 큰 일이
생기기 전에 꿈에서 미리 보여지곤 한다.
평생 망상에 시달리고 생각이 멈추질 않아 고통스러웠다.
사춘기 때부터 우울증이 심해 학업도 포기해야 했고
내 꿈 많은 젊은 날들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눈물로 보냈다.
그래서 학력에 대한 열등감과 대인공포증이 심했다.
다시 공부하려고 학교에 갔지만 일 년 만에 자퇴했다.
학원을 등록했지만 나는 학원 가는 길에 단골가게에 앉아
뻔데기에 소주를 마시다 돌아오곤 했다.
거친 친구들을 만나 어울리기도 했었다.
그중 한 친구는 누군가와 싸우다 낫에 찔려 죽었다.
기숙사에서 생활할때는 다른 학교 애들과 패싸움을 하기도 했다.
더 잘 싸우기 위해 복싱체육관을 다니기도 했다.
운전기사님의 화난 얼굴을 무시하고 버스 뒷좌석에 앉아
담배를 꼬나물고 가기도 했었다. 그때 나는 청소년이었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실패로 힘든 시간들도 있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를 준 시절이었다.
나는 남에게 주먹질도 하고 맞기도 하면서
말못할 부끄러운 짓도 많이 하며 살았다.
나는 섬에서 태어나 거친 환경과 거친 사람들 속에서 자랐다.
중학생 때 혼자 밤바다에 노를 저어 나가 낚시도 했었다.
그러나 나는 겁도 많고 온순한 아이에 속했다.
도박 빛이 쌓이고 직장동료 보증섰다가 모든 걸 다 잃고
신용불량자로 힘들게 살기도 했다. 부모님 돈도 많이 갖다 썼다.
직장을 그만 두면서 퇴직금도 모두 빛 갚는데 들어갔다.
결국 돈과 연관되어 형제들과 인연을 끊었다.
오래전부터 모든 인연이 끊어질거라는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신용불량자로 살면서 10여 년간 너무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
물에 빠져 익사직전의 공포감과 같았다.
너무 힘들어 누군가 나를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살았다.
어머니 장례식를 마치고 나니 돈이 남았다. 나에게 남은 빛과 똑같았다.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전부터 먼저 죽은 가족들과
지인들이 꿈에 나타난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누나들에게 그 돈 가져가면 큰 일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러나 형제들은 각자 몫을 챙겨갈 뿐이었다.
그리고 아내와 이혼을 하면서 형제들과의 인연도 끊었다.
도 닦기 이전에는 나는 내 삶이 후회되고 슬퍼도 했지만
삶의 의미를 깨닫고 난 후에는 그동안 잘 견디었다는 것에
안도하고 위로하며 살아왔다.
나는 삶의 모든 순간에 깨어 있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삶을 이해하게 되었다.
존재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체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헤어진 아내는 외국사람이었고 두 달에 한번씩 오가며
2년 가까이 나의 부족한 생활비를 보태 주었다.
나는 직장생활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와서 살면서 나의 모든 빛을 청산해 주었다.
아내는 전생에 나에게서 도움 받은 것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것을 이번 생에서 돌려주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아내에게 강제로 자연식물식을 하도록 요구했다.
아내도 우울증이 심했고 우리는 서로를 힘들게 했다.
도 닦는다고 나는 젊은 아내를 너무 외롭게 한 것 같다.
결국 우리는 자식도 없었고 7년 부부로 살다가 헤어졌다.
그 사람은 장교수님으로부터 푸른행성 지구의 진실 책을
국제우편으로 받은 사람이었다.
빙의 상태도 경험했었다.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내안에서 많은 한들이 느껴졌다.
빙의를 해결하기 위해 할머니를 위한 천도제도 지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빠져 나올 수 없는 어둡고 긴 터널 속에
갇힌 고통이었다. 상기증은 평생 오토바이 헬맷을 쓰고 사는 것과 같은
답답하고 불안함을 느껴야 하는 고통이었다.
나는 친구들도 많았고 어른들한테는 예의바른 젊은이였다.
그러나 술과 담배로 달래며 방황했다.
살면서 병원 약을 많이 먹어야 했다.
오랫동안 우울증 약도 먹었고 눈을 다쳐 큰 수술도 했었고
요로결석으로 여러번 119에 실려 응급실에 갔다.
요로결석은 출산의 고통과도 같다고 한다.
요로를 막고 있는 뾰족한 돌을 부수기 위해 충격파 시술을
기다리는 동안 마약성 진통제를 맞아야 견딜 수 있었다.
과민성 대장염과 심한 부정맥으로 일 년 가까이 약을 먹으며
밤마다 죽음을 느끼며 산 적도 있었다.
술은 만취되도록 먹어야 했고 담배는 하루 두갑 반을 피웠다.
술과 담배로 몸과 마음이 망가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단전호홉이 좋다하여 기수련을 하게 되면서
모든 게 나아지기 시작했고 삶이 변하기 시작했다.
내 안에는 감성이 풍부한 순수성이 언제나 자리잡고 있었다.
이 순수성은 나의 모든 행위들을 지켜 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삶의 모든 순간 순간들이 큰 고통으로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이명과 상기증으로 불편하다.
나는 태어난 이후 한순간도 행복하거나 편온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고통스러운 체험을 통해
나는 지구의 물질적인 삶이 무엇인지 처절하게 깨달았다.
나는 왜 지구의 삶을 선택했을까.
이 봉인은 언제 풀릴까.
얼마전 나의 집에 누군가가 왔었다.
그래서 이틀 정도 자꾸 뒤돌아 보거나 옆을 쳐다보곤 했었다.
둘 셋 정도의 빛이 느껴지는 에너지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