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의 뿌리를 찾아서>
우동의 아름다운 풍광과 포구
해운포와 봉대점화, 운촌포와 오륙귀범
간비오산은 해운대의 주산(主山)인 장산에서 남쪽 동백섬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 중간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봉우리는 노년 산지로 산정이 둥글고 산록이 완만하며 산정에는 봉수대가 있었다.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간비오산 봉수를 설명하기로는 ‘북으로 기장의 남산봉수(南山烽燧)에 응(應)하고 서로는 황령산봉수에 응한다’고 했다. 간비오산 봉수는 연변지역의 안위를 중앙에 보고하는 통신 수단의 하나로 고려시대 때부터 있었고 조선시대 1419년(세종 1)부터 당시의 실정에 맞게 개혁되어 왔다. 이 봉수는 서쪽 황령산 봉수에서 신호를 받아 북쪽 기장 남산 봉수에 보낸다. 간비오산 봉수의 봉군은 매일 해운포 앞 바다에 이양선과 왜선의 출몰을 관측하여 좌수영(경상좌도수군절도사)에 보고하는 좌표의 봉수대이다. 간비오산 봉수에서 밤에 불을 피우면 그 불길이 밤하늘을 뚫고 치솟아 올라 해운대 일대를 밝혀 주어 장관을 이루었으니 이 광경을 봉대점화(烽臺點火)라 하여 해운 8경 중 제1경이라 하였다.
간비오산 아래 운촌 마을은 춘천 하구에 자리 잡아 포구를 중심으로 어업을 주업으로 살아왔다. 동백교에서 운촌삼거리인 솔리방(운촌마을 어귀에 소나무 숲과 바위가 있어 솔리방이라 한다. 현 우동 759번지 일대로 솔립 바위로 불리다가 솔리 바우로 변경되고 이후 솔리방이 되었으며, 상엿집이 있었다)으로 불렸으나 현재는 입구 삼거리에 소나무 80그루가 남아 있어 옛날 솔리방이 있었던 곳을 말하고 있다.
옛날에는 솔리방 앞까지 모래 해안이었고 고깃배들이 정박하였다. 이 마을 앞바다인 수영만은 춘천과 수영강의 담수와 바다의 해수가 어울린 곳이라 어류 중 멸치가 많이 서식하는 황금 어장이었다.
운촌 포구에는 멸치어선 20척과 어막이 있었다. 4월~10월 멸치철에는 마을 사람들이 어막에서 멸치를 삶고 마른 멸치 가공에 분주하였다. 운촌 멸치는 부산 멸치의 70%를 차지하고 동래시장의 특산물이었다. 멸치 철의 수영만 밤바다에는 밝히는 화광(가스불)을 따라 몰려드는 멸치 떼들을 집어하여 망획하는 어업법이 사용되었다. 이때 오륙도 앞 수영만 일대는 멸치 배들의 화광이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오륙귀범(五六歸帆, 해운 8경)은 고기잡이를 나갔던 배가 만선(滿船)으로 오륙도를 뒤로 하고 운촌 포구로 들어올 때, 아낙네의 미소와 손을 흔들며 무사히 돌아오는 만선의 광경을 두고 말하였으리라.
/ 이광영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