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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서 기차가 멈춰 섰다.
얼마전에 꽤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 책을 다시 구했다. 그 당시 읽었던 책은 어디 갔는지 기억도 없다. 나도 모르게 눈이 그리웠던 것일까.
문득 이 구절이 생각났고, 그냥 책을 주문했다. 올 겨울은 눈이 많이 내릴거라고 진즉에 예보가 되었지만, 실제로도 그렇다.

년초에 이틀간의 평창 여행을 계획했다. 첫날은 오대산에 들어가 적멸보궁을 들린 후 비로봉에 오르고 다음날에는 선자령을 가기로 했다. 주초부터 강원 영서에 엄청난 폭설이 예보되었다. 토요일 오전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들어선 오대산에서 예정에 없던 풍경들을 덤으로 얻은 후, 대관령 인근에서 눈이 깊게 내리는 밤을 내일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을 깊이 끌어 안은채 잠이 들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는 말이 이런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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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잠에서 깨어난 뒤 만난 세상은 온통 설국이었다. 월정사 전나무 숲을 거닐었다. 어제 다녀왔지만 눈이 더 쌓인 길이 궁금했다. 가장 아름다운 눈 맞은 일주문을 본 후 발길을 선자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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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자령에 오르는 길은 크게 두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지도의 오른쪽에 있는 '현위치'를 기점으로 양떼목장, 샘터를 거쳐 한일목장 입구에서 선자령으로 오르는 길과, 지도상에서 위쪽의 길(국사성황사, 전망대)로 가는 것이다. 기왕이면 두 길 다 보고 싶어 나는 오르막은 좀 있지만 계곡길이 중심인 아래쪽 길로 오른 후 위쪽 길로 내려왔다. 위쪽의 길이 더 편해 사람들이 더 많이 오가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아래쪽 길을 통해 오른 후 위쪽 길로 내려오는 것을 권한다.
대관령휴게소 주차장은 이미 만원이었다. 눈이 많이 쌓여 차들의 왕래가 자유롭지 못했다. 휴게소까지 차를 올릴 생각은 미리 버렸고 갓길에 차를 주차했다. 나중에 보니 아주 현명한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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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떼목장 울타리를 따라 가는 길(사실 잠간 동안이다)은 사진의 왼쪽으로 들어서야 한다. 왼쪽에는 크리스마스 트리 생각이 나는 전나무 숲이 있고, 몇 사람들이 눈밭에서 인생 샷을 담기에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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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중간에 계곡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만큼 쌓인 눈이 더 깊고, 약간의 오르막이 있어 큰 길에 비해 힘이 더 든다고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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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이런 이정표가 몇개 서 있으니 남은 거리를 보면서 체력과 시간을 가늠하면 된다. 오르는 길이 5.8km, 왕복 대략 10여km 거리다. 이 길은 강원도 바우길 제 1코스이기도 하다.

바우길은 사단법인 강릉바우길에서 이미 있었던 사람들이 다니던 길들을 찾아 이은 길로, 바우는 강원도 말로 '바위'를 가리킨다. 바우길에 대한 내용은 강릉바우길 홈페이지(https://www.baugil.org/html/about/1about.html)를 참조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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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하면 감탄사가 잘 안나오는 내게서도 감탄사가 남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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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떼목장의 울타리 바로 옆을 잠시 따라가게 된다. 역시 양떼목장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의 하나를 보게 된다. 목책을 제외한 모든 곳은 다 흰백이다. 울타리가 철조망으로 되어 있고 틈새로 렌즈를 넣어 사진을 담아야 하는데 충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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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곡선이 있고 안에서 사진을 담는 진사님들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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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중의 하나였다. 어찌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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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솟은 전나무 숲 안에는 또 다른 모습이 펼쳐져 있다. 숲안으로 들어가 보면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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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역시 흰색이다. 날이 맑으면 파란 하늘이 보이고 나름 멋진 풍경이 펼쳐지지만 이렇게 모두가 흰색인 모습도 기억에 남는 풍경이다.

길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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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중간에 계곡을 자주 만나게 된다. 여전히 계곡물은 흐르고 있지만, 그 계곡에 머리를 대고 있는 바위들 위로 쌓인 눈들이 여러가지 동화속의 그것들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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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계곡이다. 저 계곡 따라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다들 잠시 발을 내딛다가 멈추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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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로 온 사람들이 밀려온다. 그들을 앞으로 보내든지 아니면 내가 먼저 가야 하는데, 먼저 가면 뭔가 쫓기는 느낌이 들어 그들을 앞으로 보내고 천천히 뒤에서 설경을 즐기며 갔다. 다행히 이쪽 길로는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 다들 넓고 쉬운 길을 택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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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목장 입구 간판이 보이고 풍력발전소 하나가 천천히 돌고 있었다. 8부 능선 정도 오른 것으로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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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목장 앞 임도를 따라 조금 가면 정상으로 오르는 오르막을 만난다. 사람들의 뒷 모습이 여유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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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白頭大幹)은 한반도의 뼈대를 이루는 산줄기로, 황해와 동해를 거쳐 낙동강 수계의 분수령이 된다. 이 산줄기는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동쪽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는 지리산까지 이어진다. 총길이가 1625km이고 지리산에서 향로봉까지의 남한 구간만 해도 690km에 이른다. 각 지방을 구분 짓는 경계선은 삼국 시대에는 국경으로 조선 시대에는 행정 경계로 쓰였다. 그리고 각지의 언어와 풍습 등이 나누는 기준도 되었다. 백두대간은 한국의 풍속, 언어 등을 이해하는 주요 바탕이 된 것이다.[발췌 : 위키백과]

'백두대간 선자령' 글이 씌인 앞쪽에서 인증샷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너무 길다. 대신 뒷쪽에는 사람들이 없다. 다른 분께 부탁해서 뒷쪽을 배경으로 기억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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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축제'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그 동안 얼마나 오랜 시간을 다들 코로나 때문에 갇혀 있었나. 아직 완전한 상황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겨울 축제를 즐기고 있다. 나도 그 축제에 참여했고 나만의 방식으로 오늘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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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오는 사람들, 내려가는 사람들이 뒤엉켜 긴 줄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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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눈은 습설이다. 즉 물기를 더 머금은 눈이라 무겁다. 나무들 위로 쌓인 눈의 무게를 감당하다 못해 나무들이 대체로 어깨를 숙이고 있었다. 강원 지역이 겨울 가뭄인 상황인데 이번 눈은 해갈에 많은 도움이 될거라 하니 조금의 그 무게를 잘 감당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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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이렇게 넓고 평탄하다. 단체로 온 사람들이 차시간에 맞춰 일찍 내려가서인지 도로는 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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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짬을 내어 국사성황사를 가보기로 했다.
산신각과 국사성황사가 인근에 있다. 역시 이곳도 눈에 잠겨 있다. 문득 굿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황사 안에서 어떤 남자분이 주문과 함께 작은 북을 두드리고 있고, 여자 한분이 밖에서 부채를 펼치고 역시 맞주문을 외고 있었다.
대관령 성황사 및 산신당은 영동지역의 가뭄, 홍수, 폭풍, 질병, 풍작, 풍어 등을 보살펴 주는 영험한 신을 모신 사당이다. 또한 중요무형문화제 제13호인 강릉 단오제가 시작되고 끝나는 곳이기도 하다.
성황사에는 신라 말기의 고승인 강릉 출신의 범일국사를 모셨다고 한다. 산신당은 대관령의 산신을 모신 곳인데, 강릉의 옛 향토지인 {임영지}의 기록에 의하면 장군 왕순식이 고려 태조를 모시고 신검을 정벌하려고 전쟁을 치르려고 할 때, 꿈에 두 귀신이 구해 주어서 이겼다고 한다. 그 후 두 분을 산신으로 받들어 제사를 올리고 있다고 전하지만, 현재 사당에는 일반적인 산신도 형식의 탱화를 모시고 있다.
매년 음력 4월 1일이면 이 곳에서 제사를 올리고, 4월 15일에는 이 곳 서낭사에 모여 제사를 지내고 굿놀이를 한다. 신들의 노여움을 풀고 복을 내려 주기를 바라는 뜻에서이다.
굿을 할 때 무당이 신이 내린 것으로 선정된 나무인 신간목을 강릉시 홍제동 여서낭당까지 모시고 가서 서낭 부부를 함께 만나게 한 후 5일간 제사를 올린다. 이 축제 때 풍어제를 비롯하여 풍년제, 관노가면극 등의 민속놀이가 행해지며, 마지막 날에는 신간목에 불을 붙이고 정성을 들여 합장하고 절을 하며 서낭께 작별을 고한다.[발췌 : 인터넷, 성황사와 삼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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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성황사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길로 들어섰다. 강아지 한마리가 눈썰매를 타고 가는 사람을 보더니 왕왕 짖으며 쫓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전혀 관계가 없고, 강아지는 다만 빠르게 움직이는 뭔가를 공격대상으로 생각한 것 같았다.
오늘 나는 그 소설속에 나오는 설국은 못봤지만 대한민국 선자령의 설국을 평생 기억에 남을만큼 강렬한 인상으로 만났다. 올해는 눈이 많은 해라고 한다. 당분간 그 곳은 여전히 설국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설국을 만나려면 이 곳으로 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