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 문자(文字)의 기원(起源)
1. 音의 근원은 빛(光)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태백일사(太白逸史)』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에는 『표훈천사(表訓天詞)』를 인용, “태시(太始)에 위 아래 사방은 일찌기 아직 암흑으로 덮여 보이지 않더니, 옛 것은 가고 지금은 오니 오직 한 빛이 있어 밝더라.(表訓天詞 云 太始 上下四方 曾未見暗黑 古往今來 只一光明矣 自上界 却 有三神卽一上帝)”라 했다. 天詞는 하늘님의 말씀이다.
天은 실재 존재하는 사물이 아닌 관념적 의미로 하늘(Sky) 계념이 아니다. 여기에서는 지도자, 우두머리를 이르는 말로 대종(大倧)를 이르는 말로 쓰였다고 본다. 대종의 ‘倧’은 상고(上古)의 신인(神人)으로 지고무상(至高無上)의 지위에 있는 마고와 한인, 한웅, 왕검을 칭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표훈천사』는 태초(太初)가 아닌 태시(太始)를 먼저 썼다. 태시는 형상(形象)의 시작이다. 태초는 원기(元氣)의 시작이며, 성질(性質)의 시작은 태소(太素)이고 이 모두를 일러 혼돈의 시대 즉 태역(太易)이라고 한다. 노자(老子)는 혼돈의 시대를 ‘형상이 없어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우주의 본체’로 허무(虛無)라 했다.
『표훈천사』는 1457년 세조(世祖)의 고사서 수거령의 사서 목록에 나온다. 저자로 알려진 표훈(表訓)은 화엄종(華嚴宗)의 고승으로 신라10성(新羅十聖) 중 1인이다. 674년(문무왕 14) 의상(義湘)으로부터 배웠다. 삼국유사에 ‘표훈은 항상 천궁을 왕래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 기록을 보면 표훈은 천문(天文)에 대해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로 이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삼성기(三聖紀 上篇)』에는 “한 신이 계셔 사백력의 하늘에 임하시고 거룩한 빛(光)으로 바뀌시니 우주는 밝게 빛났다(有一神 在斯白力之天 爲獨化之神光 明照宇宙)”라 했다.
고조선인들은 빛의 원천인 태양에서 삼족오(三足烏)을 그려 냈다. 삼성기에 빛을 기록했듯 고대 동이족은 태양신 사상이 들어 있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역사적, 학술적 값어치를 따져 볼 수 있을 것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타난 태양의 흑점, 이를 삼족오라 부르고 자오지(子烏地)라 했다. 고대로부터 까마귀는 하늘과 인간 세계를 이어주는 안내자 역할을 담당하는 신조(神鳥)로 기록되어 있다. 이 삼족오는 우리 동이민족의 종교와 관련이 깊고, 또한 우리 민족이 태양신을 숭배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바이블 창세기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새가 까마귀이며, 하나님의 사자(使者)로 되어 있다.
BC 2183년 산해경(山海經)에 삼족오 기록이 보이고, 회남자(淮南子 BC 202)에는 일중유오위삼족오야(日中有烏謂三足烏也 해 가운데 까마귀가 있으니 세 발 달린 까마귀이다)라고 되어있다. 반포지효(反哺之孝)의 고사가 여기에서 연유한다.
<‘神’의 순수고유어와 고대 상징의 세계>를 쓴 김양동 교수는 “태양의 고유어로는 ‘살’ ‘날’ ‘해’ ‘불’이 있으나, 현재 사용되고 있는 언어는 ‘해’와 ‘날’만 남아 있다. 태양을 지칭하는 말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살’은 이미 사어화(死語化)돼 변형되거나 잠복된 이미지로만 남아 있다. ‘불’도 ‘살’과 마찬가지로 고어에선 태양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현대어에선 태양을 바로 지칭하는 말은 아니다”라 하고, “태양은 年, 歲의 중심체이다. 그러므로 ‘살’ ‘날’ ‘해’는 모두 태양의 고유어다.
나이를 말할 때엔 ‘살’로 말하고 年을 ‘해’로 말하며 日을 말할 때엔 ‘날’로 말한다. 모두 태양을 지칭하는 말들이다. ‘살’은 범어 슈리아(Surya어 나르(Naar)가 어원이다. 하나의 대상을 두고, 어원을 달리하는 까닭은 고대에 언어의 유입 경로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고대 부족 간에는 정복을 통한 통합이나 동맹을 위한 화친을 했는데, 화친의 담보는 통혼이 최상의 수단이었다. 부족간 통혼에서 태어난 2세는 부계의 말과 모계의 말을 동시에 습득하므로 언어의 중층 사용은 불가피한 현상이었다”고 했다.
<한국 고대 음악의 기원 試考>에서는 “ ‘소리’는 살<神>의 音, 하늘의 音 즉 天音의 고유어다. 태양과 신의 고유어인 ‘살’이 모음 교체된 ‘솔’에 접미사 ‘이’가 첨가되어 연철 표기된 말이 ‘소리’이다. 우리 음악의 원형인 ‘소리’의 어원이 태양과 ‘神’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밝힌 이 논리는 한국 고대문화 모형의 원리를 암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연구되지 않았던 태양의 고유어를 살핀 이 논리는 신선한 느낌이다.
『부도지(3장)』에는 “율려가 빛을 만들었고... , 빛이 주야를 나누며 사계절을 존재케 한다 (光分晝夜四時)”라 했다. 율려는 시스템을 움직이는 기(氣)의 근원이다. 바이블 창세기에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라는 것과 상통하는 신화적인 교호(交互)가 있다.
2. 오음칠조(五音七調)와 음절(音節)
『징심록(澄心錄)』은 『부도지(符都誌)』에 기록되어 있다. 3교(敎) 15지(誌)로 교(敎)는 대종(大倧)의 가르침이요, 지(誌)란 그 가르침을 기록했다는 뜻이다. 인류의 시원(始原)으로부터 1만여 년 한민족의 상고사를 기록한 역사서이니, 그 방대한 역사와 문자체(文字體)는 어떠한 류형(類形)이었을까?. AD 400년 경 신라시대에 기록한 것으로 확인되는 바, 분명 그 이전에 참고되는 서책이 있었을 터이다. 현재로써는 난망하다. 단, 부도지에서 제시(提示)한 문맥을 통해 유추해 보자.
그 서문(序文)에 “황궁씨(黃穹氏)와 청궁씨(靑穹氏), 백소씨(白巢氏)와 흑소씨(黑巢氏)를 낳았다. 이들로 하여금 오음칠조(五音七調)와 음절(音節)을 맡게 하고...” “성(城)안의 사방(四方)에 천인(天人) 4명이 있어 제관(堤管)으로서 음(音)을 조절(調節)하니...”라 했다.
15지(誌) 중 음신지(音信誌)가 있다. 이 부분이 율려 등에 대한 설명서로 탄생 수리(數理)의 의미를 세부 설명한 책으로 보여 진다. 6장(章)에 “이에 성인(聖人)이 일으키어 온 누리에 통공(通空)하는 관음(管音)을 조음(調音)하여 그 대동(大同)의 정(情)을 살피고(於是 聖人作調通空之管音 察其大同之情)”라 했다. 신성(神聖)이 모든 공간에 통하는 피리 소리를 고른다 했으니 天音으로 성(聖)스러운 문자의 시작이다.
관(管)은 피리(笛)다. 음을 만든다는 말, 즉 소리를 낸다는 말은 만물을 창조한다 또는 창조된 만물을 천리에 맞춰 수증(修證)한다는 뜻이다. 피리는 필률(觱篥/篳篥)이라 표기한다. 『수서(隋書)』 고려전에 ‘고구려의 악기에 필률이 있다’했으며, 『신당서(新唐書)』에 소필률(小觱篥) 도피필률(桃皮觱篥) 대필률(大觱篥)이 있다고 썼다. 필률은 한자 표기이나 이는 유구한 역사로 보아 우리의 어원이라 본다. ‘觱’은 ‘용솟음치다’라는 뜻이 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에 ‘온갖 풍파를 잠재우는 피리’인 만파식적(萬波息笛)이 있다고 했다. 管과 笛, 필률은 피리를 뜻하는 같은 말이다. 고대인들은 왜 피리 소리에 집착했을까?. 이는 인간에게 처음 들린 하늘의 소리(天音)가 바로 피리 소리와 같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고대문화를 이해함에 있어 '음(音)'은 '수(數)'와 함께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부도지에서의 音은 바로 천지창조자(天地創造者)다. 바이블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하였다. 불교계에서는 우주가 처음으로 형성되기 시작될 무렵에 형성되는 최초 창조자의 소리를 ‘옴(Om)’이라고 했다. 말은 音으로 이루어졌다. 소리는 생명의 안내자 역할을 한다.
부도지 2장에 실달성(實達城)과 허달성(虛達城) 그리고 마고성(麻姑城)과 마고(麻姑)가 모두 소리(音)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소리의 어원이 태양이라 했으니, 세 성(城)과 마고는 우주의 시작 명칭으로 실달성은 혼돈의 시대 즉 태역(太易)이며, 허달성은 태초의 원기(元氣), 마고성은 형상(形象)의 시작인 태시(太始), 마고는 성질(性質)의 시작인 태소(太素)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