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기쁘게 해주고 싶은데…” 이중섭이 편지에 그림 그린 이유
[다시 보다:한국근현대미술전]
[지금 이 명화] [3] 이중섭 ‘편지화’
오누키 도모코 마이니치신문 정치부 차장·전 서울특파원
입력 2023.06.07. 03:00
업데이트 2023.06.07. 07:04
이중섭이 아들 태현에게 보낸 편지. 1954. /개인 소장
위 편지화의 한글 해석본이 소마미술관 전시장에 붙어있다.
국민 화가 이중섭이라고 하면 한국인이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올리는 것이 ‘황소’일 것이다. 힘찬 붓 터치로 그린 에너지 넘치는 황소의 모습은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재기하려는 한국인의 몸부림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필자가 가장 가슴 뭉클해하는 ‘작품’은 이중섭이 일본인 아내 마사코(方子) 여사와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다. 전쟁 중이던 1952년 극심한 영양실조에 시달리던 마사코 여사와 두 아들은 고심 끝에 일본으로 귀국했다. 한일 간 미수교 상태였던 그 시절, 이중섭과 마사코 여사는 서신 교환을 통해 온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부인에게 보낸 편지’는 1954년 11월에 쓰인 것이다. ‘아들 태현에게 보낸 편지’도 같은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이중섭은 서울에서 대규모 개인전 개최를 앞두고 있었다. 이중섭이 일본으로 향하는 길은 여전히 빗장이 걸려있었지만, 이번 개인전만 성공하면 꼭 가족과 재회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갖고 제작에 몰두하던 시기였다. 어떨 때는 열정적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몸살이 나곤 했다. 가족의 사진과 편지가 그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이중섭과 마사코 여사가 주고받은 편지 수백 통은 대부분 일본어로 쓰여있다. 일본 식민지 시기에 도쿄에서 만난 두 남녀가 일본어로 소통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중섭의 일본어 수준은 매우 높았다. 하지만 일본인인 필자가 보기에 ‘먼저 한국어로 생각한 뒤 머릿속에서 일본어로 번역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간혹 있다. 예컨대, ‘아들 태현에게 보낸 편지’ 아래에 나오는 ‘5にちかん'(고니치칸·닷새간)’이 여기에 해당된다. ‘5にちかん’은 한자로 쓰면 ‘五日間’이 된다. ‘日間’은 ‘にちかん’이라고도 읽지만, ‘五日間’의 경우 ‘いつかかん(이츠카칸)’이라고 읽어야 맞는다. ‘5にちかん’이라는 일본어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처럼 100% 완벽하지는 않았던 이중섭의 일본어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필자는 서울 특파원 시절(2013~2018년) 한국인과 소통할 때마다 미묘한 감정 표현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지금도 한국의 지인들과 통화를 하거나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내 뜻을 정확히 전달하려 애쓰고, 때로는 답답함도 느낀다.
이중섭이 1954년 아내에게 보낸 편지화 첫 장. /개인 소장
이중섭이 1954년 아내에게 보낸 편지화 둘째 장. /개인 소장
이중섭이 1954년 아내에게 보낸 편지화 마지막장. /개인 소장
이중섭이 아내에게 보낸 위 편지화의 한국어 번역본이 소마미술관 전시장에 붙었다.
필자는 2016년, 2017년, 2019년 세 차례에 걸쳐 마사코 여사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는 ‘이중섭과 어떻게 소통을 했느냐’는 물음에 “물론 일본어였어요. 언어 때문에 고생한 적은 없었어요”라고 답했다. 만약 필자가 이중섭을 인터뷰했더라면, 그는 담배를 피우면서 “역시 일본어가 모국어가 아니라서 조금 힘들었다”며 의사소통의 고충을 토로하지 않았을까. 가족과 헤어진 지 딱 1년이 지난 1953년 6월 15일, 이중섭은 마사코 여사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다. 원문은 일본어다.
‘당신한테 보내는 편지도 참 못 쓰는 편인데, 아이들에게 쓰는 건… 도무지 잘되지 않아요. 어떻게 써야 아이들이 기뻐할지 생각해 본다오. 용기를 주고 싶고, 기쁨도 주고 싶소.’
이런 갑갑함이 오히려 작가 이중섭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더 강하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말로 속 시원히 전달할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그에게는 그림이 아니었을까. 편지화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해본다. /오누키 도모코 마이니치신문 정치부 차장·전 서울특파원
작품 보려면…
▲서울 소마미술관 8월 27일까지
▲입장료: 성인 1만5000원, 학생 9000원
▲문의: (02)724-6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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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k11
2023.06.07 06:27:41
왜 좌파들은 이중섭 화백을 친일로 몰지않았나요?
답글
3
2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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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고집
2023.06.07 09:20:30
친일로 몰아서 남을 게 없으니까요....팔이는 뭔가 남아야 하는 겁니다....
하심
2023.06.07 07:20:05
좌파들,,그당시 먹고살기위해 일본만 갔다하면 친일파로 몰아 세우지요,,,뇌가 이상한 동네 사람이 많습니다
태권더박
2023.06.07 06:59:55
느그 보수들은 북한과 여운형을 친일몰이 하는데,뭔 개소리?
오병이어
2023.06.07 07:01:17
이건희 컬렉션전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일본에 있는 가족을 그리며 쓴 편지 ,그림, 철필 은박지화를 보면서...
답글작성
12
0
1song
2023.06.07 07:14:52
편지에 그려 놓은 삽화도 너무 훌륭하네요!
답글작성
11
1
오늘도내일도걷는사람
2023.06.07 08:43:35
아래분 댓글처럼 좌파새끼들은 일본어를 알고 일본에 있는 아들과 일본인 아내를 둔 이중섭화백님을 친일로 욕하지않나. 미친것들. 나라잃은 서러움을 뒤로하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애국심을 키워 최빈국 대한민국을 만들고 출발시킨 이승만대통령은 매국노라고 욕하면서. 네놈들이 추앙하는 좌파 대통령들이 진정한 친일이고 반역자다.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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