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 15개 약대 신설의 파장과 향후 전망
26일 교육과학기술부가 고려대, 연세대 등 약대 신설이 확정된 대학 15곳을 발표하면서 전쟁을 방불케 했던 약대 유치 경쟁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그러나 현재 20곳인 약대를 35곳까지 끌어올린 교과부의 이번 결정은 상당한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교과부가 신설 약대가 최소 정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추가 증원하겠다는 입장까지 밝히면서 일선 약국가에서는 약사 인력 수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극에 달하고 있다.[편집자주] | 약대 20곳→35곳 증가…소수 정원 약대 속출
26일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안병만)은 지난해 12월 약대 유치를 신청한 전국 대학 33곳 가운데 대학 가운데 1차 서류심사와 2차 현장실사 등을 거쳐 약대 유치가 최종 확정된 대학 15곳의 명단을 발표했다.
지역별로 ▲경기 가톨릭대, 동국대, 아주대, 차의과대, 한양대 ▲대구 경북대, 계명대 ▲인천 가천의대, 연세대 ▲충남 고려대, 단국대 ▲전남 목포대, 순천 ▲경남 경상대, 인제대 등이 약대 신설 대학에 선정됐다.
이들 대학은 올 한해 동안 신설약대 운영 및 투자 계획 등에 대한 점검을 거쳐 내년 3월 정식으로 개교할 예정이다.
내년 3월 약대 15곳이 새롭게 신설되면 전국 약대는 기존 20개에서 35곳으로 일시에 75%가 늘어나게 된다.
신설 약대에 배정된 정원 증원 규모가 350명인 상황에서 신설 약대가 당초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15곳까지 늘어나면서 각 약대에 배정된 인원은 20명~25명에 머물렀다.
특히 100명의 정원이 배정됐던 경기도에서는 1차 심사를 통과한 5곳의 대학에 모두 약대 신설이 결정되면서 각 약대별 정원이 20명까지 낮아졌다.
"약대 신설, 정치적·지역적 안배"…신청 대학들도 선정 우선 고려
교과부는 이번 결정이 엄정한 심사와 평가 과정을 거친 결과라고 발표했지만 각 대학들이 사활을 건 유치경쟁을 펼쳤다는 점에서 약대 신설에 정치적, 지역적 안배가 작용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한약사회 등에서는 이번 약대 신설 결정과 관련해 정치권 뿐만 아니라 청와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말들도 흘러나오고 있다.
약사회는 성명을 통해 "신설된 15개 약대 정원이 모두 20여명으로 배정된 것은 약학교육이 정치적 타협과 적당한 안배에 의한 눈치보기식 교육행정의 산물로 전달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약대 신설 신청 대학들 역시 정원과 무관하게 약대 신설에 모든 초점을 맞추면서 당초 지역별로 1~2곳 정도로 예상됐던 신설 약대가 15곳까지 상승하는 결과가 초래됐다.
실제로 약대를 유치한 대학들의 상당수는 신청 단계에서부터 배정 정원을 20여명 수준으로 낮게 요구하는 등 지역별로 배정된 정원을 나눠서라도 약대를 유치하겠다는 전략을 취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교과부가 한정된 정원을 놓고 대학을 선별하기보다는 인원을 적절히 분배하는 쪽에 치중한 흔적은 기존 약대 몫으로 100명이 할당된 계약학과 배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당초 교과부는 지난해 12월 기존 약대에 신설될 계약학과의 최소 정원을 10~20명 정도로 발표했지만 최종 배정 결과에서 당초 제시한 최소 정원이 충족된 약대는 서울대, 충북대, 이화여대 등에 불과했다.
나머지 약대들에는 10명 미만의 정원이 고르게 배정돼 교과부는 계약학과 신설을 신청한 약대 15곳 전체에 계약학과 운영을 허용했다.
"25명으로 6년제 약대 운영 불가"…약대 교육 질 저하 우려
신설 약대들의 정원이 20~25명 수준으로 결정되면서 기존 약대들 사이에서는 자칫 약학교육의 질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속출하고 있다.
한국약학대학협의회 등이 교수 인력 충원 등을 비롯한 6년제 약대 운영 기반 마련을 위한 재정 확보에 필요한 최소 정원을 60명으로 잡고 있는 상황에서 정원이 20~25명에 불과한 약대가 이를 제대로 충족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약대 신설이 확정된 대학들 가운데 일부는 재정적인 부담을 감수할 수도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한 약대 학장은 "신설 약대의 약사들이 인력 수급 문제를 겪고 있는 제약산업, 병원 분야로 진출한다면 약대 신설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우려되는 부분은 신설 약대의 교육이 부실해 질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약대 신설은 신청 대학들이 재정적인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선정을 해달라는 요구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약대 학장 역시 "우려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연출됐다"며 "20여명에 불과한 정원으로 약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다른 학과 학생들의 등록금을 약대에 투입해야 하는데 이 경우 다른 학생들이 역차별을 받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비판했다.
교과부, '선 약대 신설-후 정원 증원'…"약대 정원 배정 원칙 무시"
이로 인해 일단 약대 신설을 확정한 대학들이 기존 약대들의 최소 정원 60명 확보 움직임에 편승해 약학교육의 질 확보를 이유로 증원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
교과부가 이미 정해진 증원 규모를 기준으로 대학을 선별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대학에 약대를 신설하는데 초점을 맞추면서 약대 정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일례로 교과부는 스스로가 약대 운영에 필요한 최소 적정 인원을 30명으로 제시하면서도 100명이 배정된 경기도 지역에서 약대 신설 대학을 5곳이나 지정해 추가 정원 증원의 여지를 남겼다.
최소 1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신설 약대들의 부족한 정원은 올해 안에 복지부와 협의해 추가로 증원하겠는 것이 교과부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약사회는 교과부가 기존에 제시됐던 약대 정원 신규배정 기준을 철저히 무시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약사회는 "약대가 없는 지역에 50명 정원규모로 5개의 약대를 신설하고 약대 있는 시·도에 잔여 인원을 배분한다고 발표한 복지부의 약대 정원 배정원칙을 철저히 무시한 채 이뤄진 교과부의 결정에 심각한 문제점과 의구심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질타했다.
정원 외 입학 허용 시 약대 정원 2000명 돌파 예상
약대 정원이 늘어날 수 있는 여지가 커지면서 지난 2008년을 기준으로 1210명이던 약대 정원은 1800여명까지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신설 약대에 배정된 350명과 기존 약대 4곳에 분배된 40명 등 390명과 계약학과 100명, 신설 약대의 최소 정원 확보를 위해 추가 증원될 최소 인원 100명까지 합하면 증원 규모가 복지부 발표 당시의 390명에서 590명까지 늘어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약대 신설과 별개로 논의가 진행 중인 정원 외 입학까지 인정될 경우 실제 약대에서 배출되는 인원은 한해 2000여명을 돌파할 가능성도 크다.
더욱이 교과부가 신설 약대의 최소 적정 인원을 30여명으로 제시하면서도 이를 상회하는 증원의 여지를 남기면서 약대 정원이 어디까지 상승할 지는 예측하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약대 정원을 늘려 대학의 재정 확충 수단으로 삼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면서도 "신설 약대의 정원이 30명 이상으로 배정될 수 있는 개연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교과부 "약대 평가인증제 통해 연구 및 산업약사 육성 유도"
현재 교과부는 약대 신설을 통해 증원된 인원이 개국이 아닌 연구 및 산업약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약대 교육 평가인증제 도입 등을 통해 철저한 사후관리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약국약사의 기능도 무시할 수 없지만 약대 신설은 산업 및 연구약사를 육성하는데 초점이 맞춰진 것"이라며 "평가인증제 도입을 통해 그 결과를 대학별 정원 감축에 반영하는 등 지속적인 관리를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약사 인력수급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분야에 증원된 약사들을 투입하도록 유도하겟다는 교과부의 방침에 대해서는 일선 약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 약대 교수는 "약대 신설 및 정원 증원에 부정적이 이유는 결국 배출 약사들이 개국에 몰릴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제약산업 육성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제약산업 환경 개선이 이뤄진다면 해당 분야의 약사인력 진출이 활성화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또 다른 약대 교수는 "교과부는 제약산업 R&D 분야 등에 약사들이 진출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지만 이는 이상에 불과하다"며 "현실적으로 증원된 약사들이 어느 분야로 진출할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개국가 "약사회 안일한 대응…후배 약사들에 멍에"
교과부의 약대 신설 발표와 함께 개국가에서는 일제히 신설 및 약대 정원 증원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들이 쏟아졌다.
특히 약대 정원이 당초 복지부가 발표한 증원 규모 390명 외에 추가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교과부 뿐만 아니라 약사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약사회는 그 동안 약대 정원 증원을 390명 선에서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지만 이를 상회하는 증원 규모가 현실로 드러나면서 약사회가 약대 정원 증원에 미온적으로 대처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서울의 B약사는 "약사회가 약대 정원 증원과 관련한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는 지조차 의심스럽다"며 "390명에서 정원 증원을 막겠다는 말이 결국은 공염불이 되는 것이 아니냐"고 질타했다.
경기 성남의 S약사는 "약사회가 지금까지 무엇을 했냐"며 "약사회 임원들이야 10년 후면 은퇴를 하겠지만 젊은 약사들에게 큰 짐을 쥐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