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 전에
펜후드에 가입한 건 2018년 2월의 일이었지만 한동안 펜쇼는 관심 밖의 문제였습니다. 가입 후 저의 펜쇼 참가 이력을 보면 다음과 같아요.
2018년 | 불참 |
2019년 | 불참 |
2020년 | COVID-19로 인한 미개최 |
2021년 |
2022년 | 부상으로 인해 기권 |
2023년 4월 | 불참 |
2023년 11월 | 일반 참가 |
2024년 4월 | 스태프 참가 |
만년필을 사용한 건 20년 됐고 커뮤니티 활동은 6년쯤 됐는데 펜쇼는 작년 11월에 처음 참가했어요. 2023년 11월 펜쇼는 11월 18일에 열렸는데 스태프로 참가할지 말지를 11월 17일까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스태프로 참가할 용기가 없어서 일반 참가 신청을 했습니다.
일반 참가 자격으로 펜쇼에 갔는데 엄청나더군요.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그때가 역대 최다 스태프 참가였다고 합니다. 펜쇼 현장에서 스태프들의 전시물들을 보니 기가 꺾였습니다. 이런 곳에 내가 스태프로 참가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에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펜쇼에서 만난 모 회원 분의 말 한마디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열 자루 미만으로 전시하는 분도 있다."
그 순간 저는 2024년 4월 펜쇼에는 꼭 스태프로 참가하겠노라고 마음을 굳혔습니다.
펜쇼를 위한 라인업 구성과 좀처럼 도와주지 않는 조건
2023년 11월 펜쇼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라인업을 어떻게 꾸릴지 생각했어요. 스태프 참가는 경험이 전혀 없어서 데스크 컨펌 게시물을 참고했죠. 그렇게 참고했는데, 아, 또 한 번 기가 꺾였습니다. 뭔가 내세울 스토리가 있는 다른 스태프들의 전시물에 비해 제 것들은 돈만 내면 누구나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어요. 빈약한 라인업을 어떻게 보강해야 하나 생각하던 중에 제게 조언해 주셨던 분이 다시 한번 확신을 주셨습니다.
"대회가 아니니 가지고 있는 것들을 마음 편히 전시하면 된다."
그렇게 다시 한번 확신을 얻은 저는 전시물을 위한 트레이를 마련하고 필사 노트들도 전시해야겠다는 생각에 필사에 속도를 냈습니다. 당시 필사하고 있던 책이 완료까지 절반 가량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저는 하루에 한쪽씩 필사하고 다음 펜쇼까지는 150일 정도를 앞두고 있었기에 4월 15일을 데드라인으로 잡았어요. 하지만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법. 필사에 속도를 좀 냈습니다. 그렇게 속도를 낸 결과 3월 28일에 필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필사를 생각보다 일찍 끝냈다는 안도감을 누군가가 알아챘던 걸까요? 펜쇼를 1주 정도 앞두고 직장에서 창원으로 출장 업무(정확히는 다른 부서의 업무 보조)를 보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가기 싫다면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요. 저는 받아들이면서 늦어도 19일에는 복귀를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회사에선 그전까지는 복귀가 가능하다며 저를 안심시켰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작업이 지지부진해지고 19일 오후 5시가 넘도록 일이 끝나지 않아 펜쇼 참가가 불투명해졌습니다.
극적으로 참가하다
하지만 이후 문제가 잘 해결되어 오후 6시가 조금 못 된 시점에서 극적으로 창원을 떠나 서울로 올라오게 됩니다. 펜쇼 참가가 가능해졌어요! 20일 새벽에 도착해서 피곤했지만 전시물들을 챙겨 펜쇼가 열리는 중구구민회관에 도착하니 9시 2분쯤 됐더군요. 데스크 세팅이 끝나 있어서 제 자리를 찾아 전시물을 올렸습니다. 전시물을 올리니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다른 스태프 참가자에 비해 제 데스크는 너무 빈약해 보여서 장사 안 되는 가게를 지키는 모양새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죠. 실제로 제 데스크는 눈으로만 보고 스쳐 지나가는 관람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는 게 당연했어요. 저는 유명인도 아니고 다른 스태프진들하고 친분이 탄탄하지 않아 서로 얼굴도 잘 모르는 데다 판매도, 시필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현장에서는 사진 한 장 못 찍고 다른 데스크에 들르는 일 없이 제 자리만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제 필사 노트와 올해의 펜 라인업에 관심을 보이시는 분이 계셨어요. 그분들께 제가 아는 것은 최대한,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해드리고자 노력했습니다.
마치면서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지만 결국은 펜쇼 참석이라는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아쉬운 점이 많은 펜쇼였지만 그간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았는데 펜쇼 참석까지 무산됐다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쉬운 점이 많은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왜냐고요? 저는 100% 만족한 여행을 좋아하지 않아요. 다시 그곳을 방문할 동기를 잃고 말거든요. 많았던 아쉬운 점이 11월 펜쇼에 한 번 더 도전할 명분, 원동력, 추진력이 되지 않을까요? 정청래의 국회의원 사용법이라는 책에 '국회의원은 당선 직후부터 재선을 생각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렇듯이 저도 11월에 있을 다음 펜쇼를 생각하고 있고요. 이번에는 처음 스태프로 참가했다는 사실에 의의를 두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사실 시필을 허용할까도 생각했는데 제가 꾸린 라인업을 볼 때 시필을 허용하지 않는 쪽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시필을 허용하지 않았는데 11월에 있을 펜쇼에는 시필 라인업을 따로 꾸려서 좀 더 강력해진 라인업과 좀 더 다양한 소품으로 데스크를 운영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아 제대로 보고 올걸 그랬네요. 전시만 해도 후덜더한 펜들 같네요.
유독 제 데스크에는 유입이 적더군요. 이변이 없으면 11월에도 스태프로 참가할 생각입니다. 이번만 날은 아니니 그때 보러 오세요.
이번의 아쉬움은 다음 펜쇼를 위한 발판이 되더라구요.^^
천천히 고민하면서 조금씩 준비하는 것도 펜쇼 스탭만의 즐거움인 것 같습니다.
11월 16일의 가을펜쇼에도 많은 분들이 기대하는 데스크가 되기를 바랍니다.
4월 펜쇼를 마친 직후부터 11월 펜쇼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빈약한 라인업을 보강해서 다음에는 더욱 다양하고 역동적인 데스크를 꾸리고자 합니다.
닉네임도 특별하시고, 후기는,... 글 쓰시는 분이신지 여쭙고 싶을 정도로 필력이 좋으십니다. 다음편이 궁금해지는 재미있는 연재, 다음펜쇼편은 더욱 멋지게 쓰실 것 같습니다.!!
이번 펜쇼는 이슈가 좀 있어서 후기가 길어졌습니다. 11월에는 구구절절한 얘기까지는 하지 않을 듯싶어요. 저는 벌써 11월 펜쇼를 구상 중이랍니다. 이번 펜쇼에서는 제 데스크가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어요. 전시 물품을 고려했을 때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더라도요. 그래서 다음 번에는 시필 라인업도 준비하고자 합니다. 한 가지 귀띔을 하자면 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저 제조업 노동자일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