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이라는 단어의 헬라어는 에이레네라는 에이레네입니다. 이게 어떤 의미냐 하면 1차적으로는 국가적으로 되게 평온한 상태를 말하는데 전쟁이 없는 상태 국가의 전쟁과 분열이 없는 상태를 화평이라고 합니다. 에레네라고 합니다.
여러분 국가적으로 전쟁과 분열이 없는 때가 있었나요? 없었죠? 거의 그래서 화평의 가치는 되게 높은 거예요. 우리가 쉽게 경험해보지 못한 가치인 거예요. 만약에 우리가 이 화평의 가치를 쉽게 경험한 거였다면 이걸 굳이 성령의 열매로 언급하지 않았을 거예요.
근데 이 화평이라는 가치는 교회나 성도들이 쉽게 경험하거나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가치는 아닌 겁니다. 더 나아가서 이 에렌이라는 단어는 개인적으로는 화합이나 일지나 연합이 된 상태를 말해요. 그러니까 교회와 성도가 하나로 연합된 상태, 가정에 있는 가정의 식구들이 하나 된 상태 이거를 에이레네라고 해요.
그러면 여러분 교회가 하나 된 적이 있는가요?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것들이 하나 모여준 적이 별로 있었나요? 여러분 그런 순간들이 많지 않았죠 여러분의 가정은 어떤가요? 아내와 남편, 자녀들이 한 뜻으로 하나 되어서 주를 섬기기로 맹세하고 다짐하고 이렇게 했던 시간이 여러분에게 자주 있었나요?
저의 경우는 자주 없었어요. 그래서 화평의 가치는 국가적으로도 도달하기 어려운 주제인 거고 또 개인적으로도 교회적으로도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열매는 아닌 거예요. 그래서 이 가치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가 평화를 말하고 화평을 말하기 때문에 이건 마치 우리가 가진 것처럼 소유한 것처럼 말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는 가지기 되게 어려운 가치입니다.
개인적으로 일치나 연합이 쉽게 일어나던가요? 우리 직장에서나 아니면 모임에서 생각과 마음이 쉽게 모아지던가요? 나쁜 일에 마음이 모아지는 걸 가지고 화평이라고 말하지는 않죠. 나쁜 일에 악한 일의 마음이 모아진 걸 가지고 화평이라고 하지는 않아요. 그거는 뭐 모의나 도모 이런 것이지 화평이라는 단어는 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평이라는 가치는 대단한 거예요.
에베소서 2장 17절을 이게 표준새번역으로 보면 되게 길어요. 같이 한번 혹시 준비됐나요? 에베소서 제가 읽어드립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여기서 화평이라는 단어가 에이레네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나라와 나라를 평화롭게 하는 분, 예수 그리스도가 성도와 성도를 일치되게 하는 분,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를 하나 되게 한 분이라는 거예요. 화평이라는 가치는 되게 높은 가치인데 그래서 우리가 쉽게 도달할 수 없어요.
그럼 그렇게 도달하게 하게끔 역할을 하는 분이 계신데 예수님이시라는 거죠. 예수께서 나라와 나라를 화평케 하시고 예수께서 성도와 성도를 화평케 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또 하나 돌아봐야 될 것은 이 예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보내신 영이 성령인 거잖아요. 그러니까 성령의 열매가 화평이라는 사실이에요.
성령 받은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열매가 화평인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화평을 쉽게 맛보지 못한 것은 내가 성령을 받고 성령 충만한 상태로 내가 유지된 적이 많지 않은 거죠. 그래서 우리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당을 허물어보지를 잘 못했어요. 저는 저도 약간 저 자신을 스스로 칭찬하고 또 여러분을 칭찬하는 것들은 그것은 우리는 과거에 담이 많이 쌓였던 교회예요.
근데 그 담을 성도들이 허물어졌어요. 그래서 목사님과 함께 예배할 수도 있고 요즘 제가 되게 기쁜 게 악수도 잘하시고 막 인사도 잘하시더라고요. 처음 목사님이 오셨을 때는 성도들이 눈을 못 마주쳐가지고 막 눈도 깜빡깜빡거리고 막 고개도 돌리고 제가 마음 한 구석이 정말 이렇게 쓰였어요. 과거에 어떤 일인지 저는 잘 모르지만 어떻든 근데 이제 인사도 하고 악수도 하고 이렇게 지내는 모습이 저한테는 너무 큰 기쁨이에요.
왜 기쁠까요?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다. 이게 아니라 조건 때문인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않으면 이런 일은 안 일어나는 거니까.
그럼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라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계신 교회라는 거죠. 이게 더 영광스러운 거예요. 또 하나 오늘 말씀처럼 성령이 충만한 교회라는 거예요.
별로 인정을 안 하시네요. 성령이 충만한 교회 그래서 답이 무너진 거예요. 화평케 된 거예요. 할렐루야 우리가 다 이루지 못할지 모르지만 여러분 이 가치는 엄청난 거예요. 그래서 제가 기뻐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어떤 목적을 이루어서 기쁘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게 아니라 그 목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런 이런 과정이 있어야 되는데 그 과정이 내게 있었다는 거예요, 우리 교회에 있었다는 이 자체가 너무 기쁘고 행복한 일인 거예요.
성령의 열매를 맺어서 열매 때문에 기쁘기도 하지만 열매가 있다는 건 우리 공동체가 성령 충만하다는 거잖아요. 여러분 얼마나 감사한 일이에요 우리가 왜 화평해야 하나 하면 히브리서 12장 14절에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화평하지 않는 공동체가 그리스도를 볼 수 없고 그리스도를 경험할 수 없다는 거예요. 다투면서 은혜를 얻을 수 없다는 겁니다. 우리는 다툼을 되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해요. 다툼은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을 방해하는 거예요. 다툼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시는 화평이라는 선물을 못 누리게 하는 거고, 다툼은 성령이 우리에게 맺게 하시는 화평이라는 열매를 못 맺게 하는 거예요. 다툼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방해하는 것이 다툼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기도가 좀 모자라서 성령 충만하지 않아서 그리스도를 경험하지 못한다. 그런 면도 궁극적으로는 있겠지만 그냥 히브리서 12장 14절 말씀만 딱 따오면 우리 안에 다툼이 있어서 그리스도를 경험하지 못하는 거죠.
공동체 안에 다툼이 사라지면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이 일어나요. 나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경험하고 싶습니다라고 해서 경험되는 게 아니라 내가 다툼을 우리 공동체에 없애면 그리스도가 공동체를 통해서 경험되어진다는 겁니다. 히브리서 12장은 화평하지 않아서 다퉈서 그리스도를 경험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다툼의 종류는 여러 가지예요. 생각으로 다투고요. 말로 다투고 행위로 다투고 사상으로 다퉈요. 이런 다툼을 교회에서는 포기해야 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이 일어나요.
여러분 저는 어떤 사상을 지닌 사람일까요? 잘 간별이 안 되죠. 개인적으로 제가 한두 번 말한 적이 있겠지만 제가 강단에서 말한 적이 거의 없어요. 제가 굳이 말을 했다면 저는 어떻든 교회를 공격하는 세력은 어느 싫다 말씀이 말씀되지 못하게 하는 건 싫다 뭐 이런 정도만 제가 표현을 했지 제사장의 생각을 여러분에게 다 표출하지는 않았어요. 그 이유는 생각으로 사람이 다투기 때문인 거예요. 제 생각을 전하면 생각이 다투더라고요. 교회 안에서 이 다툼은 다툼이 왜 문제냐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을 방해합니다.
진정한 화평은 이웃과 친하게 지낸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진정한 화평은 또 한 단계가 더 있어요.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 된 것을 막은 담을 제거하는 것이 진정한 합함이에요.
그러니까 참 화평은 복음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복음이 없는 공동체는 화평을 못 누려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공동체가 누리는 게 화평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구원받음을 확신이 흔들리지 않는 공동체가 누리는 게 화평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안에는 이 화평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의 가정 안에 여러분의 또 내면 안에 여러분이 속해져 있는 공동체 안에 또 우리 교회 안에 만약에 이 화평이 우리 눈으로 보여지고 감정적으로 경험되어진다면 우리는 대단한 가치를 경험한 것이고, 끝까지 수준이 도달했다는 말이 좀 어폐가 있지만 수준이 도달한 거예요. 그래서 화평이 맞보아지는 공동체가 되는 일들을 우리가 소망하고 함께 꿈꿔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막힌 담이 다 무너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와 성도 사이에 막힌 담도 다 무너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과 막힌 담도 다 무너지기를 축원합니다.
이 담은 결국 언젠가는 더 경고하고 든든한 담이 되어서 나에게 절망을 가져다 줘요. 여러분 담은 내버려두면 자꾸 견고히 쌓여져 가더라고요. 허물어야 돼요. 놔두면 계속 든든해지고 견고히 쌓여져 가요. 그리고 담이 어느 정도 커지잖아 이건 큰 절망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화평을 방해하는 담들을 날마다 이렇게 허물어 가야 됩니다. 우리 교회가 이 멋진 가치를 누려도 되는 또 누릴 수 있는 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