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念佛)을 하라
한데, 부처님께서는 만약 미래세(未來世 =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에 어느 선남자(善男子) 선녀인(善女人)이 지장보살(地藏菩薩)님의 이름을 듣고 찬탄(讃歎)하고 혹은 우러러 절하며 그 명호(名號)를 부르거나 공양(供養)을 올리거나 또는 그 형상(形像)을 그리거나 조성(造成)하거나 해서 모시고 신앙(信仰)하면 큰 구원이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인과(因果)의 법칙은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중요한 한 부분이다. 잘 되려거든 잘 해야 한다. 복을 받으려거든 복을 받을 만한 착한 일을 해야 한다.
즉 복 추수(福秋收)를 하려면 복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나쁜 짓을 하면 반드시 그 나쁜 짓을 한 만큼의 죄와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반드시 불교(佛敎)가 아니어도 우리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하나의 당연한 상식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지장보살님의 명호를 부르고 또 그 형상을 모시고 공양을 올리고 예배. 찬탄하거나 하면 큰 공덕(功德)이 있어 여러 가지로 구제된다고 하셨다.
이것이 과연 사실이라면, 복농사를 못짓고 옳지 않게만 지내 온 우리 어리고 약한 중생들에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어른처럼 걸으려 해도 자꾸 넘어지는 걸음마하는 아기처럼, 옳게 살고 싶어도 그게 그렇게 되지 않는 중생들은 마치 힘이 없는 어린 아이가 헤엄을 쳐서 사나운 물살을 해치고 큰 강을 거너려는 것과 같다. 건너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본 어른이 만약 저 언덕에서 배를 저어 와서 태워 주거나 밧줄을 던져서 언덕으로 끌어올린다면 그 표류(漂流)하는 어린 생명도 구제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오탁악세(五濁惡世)라는 탁류(濁流) 속에서 저 언덕으로 헤엄쳐 건느려고 버둥거리는 힘없는 어린애다.
한데 저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법력(法力)의 소유자이신, 모든 중생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건지겠다는 큰 서원(誓願)을 세우신 구세(救世)의 화신(化身)이신 지장보살님은 바로 저 언덕으로부터 배를 저어 오는 혹은 튼튼한 밧줄을 던져주는 어버이신 것이다.
탁류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아이는 그 배에만 오르면 되는 것이고. 그 밧줄만 잡으면 되는 것이다.
지장보살님의 명호를 부르거나 혹은 우러러 절하거나 혹은 공양을 올리는 등 염념물생의(念念物生疑)하는 추호도 의혹 없는 마음으로 귀의(歸依)하는 신앙(信仰), 이것이 바로 구원의 배에 오르는 것이고, 그 구원의 밧줄을 잡는 것이다.
한데, 이런 감사하기 이를 데 없는 구원의 길이 있고, 이런 길을 알려 주시는 부처님의 경이 있어 이런 말씀을 접하고도 그걸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문제인 것이다.
아무리 좋은 것도 의심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한 그에겐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중생의 가장 큰 병은 업장(業障)인데, 부처님의 말씀도 의심하고 따르지 않는 것이 바로 큰 업장이다.
성인의 경지는 중생의 경지가 아니므로 중생은 중생의 경지밖에 모르는 중생의 소견으로는 아무리 헤아려도 모르는 것이다.
그건 차원(次元)이 다르기 때문이다. 2차원의 벌레는 2차원밖에 모르지만 3차원은 분명히 있는 것이다.
중생들은 몰라도 부처님의 세계는 엄연히 있어서 부처님께서 중생을 구제하시는 힘은 중생의 입장에서 보면 불가사의한 미스터리로 비치지만 부처님의 경지에서는 이상할 것도 신비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성인의 경지를 의심하지 말 것이고, 부처님의 말씀을 성언량(聖言量: 성인의 말씀이니 의심할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리고 앞에 말한 대로 우리도 지장보살님을 따라서 큰 서원을 세우고 그 서원을 성취하기 위한 착실한 수행을 쌓아야 할 일이다.(계속)
[고창 선운사 도솔암 금동지장보살좌상, 보물 제280호, 고려시대]
[출처] 묘허스님의 지장보살본원경 강설-23 (염불을 하라)|작성자 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