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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6 귀를 기울이면 (耳をすませば, Whisper Of The Heart, 1995)
‘이웃집 토토로(となりの トトロ: My Neighbor Totoro, 1988)’를 보기 전까지, 일본 애니메이션 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변태’, ‘야동’ 등이었다. 예를 들어 ‘드래곤볼’이나 ‘짱구는 못말려’ 또는 더 옛날의 ‘이겨라 승리호’ 같은 만화를 보면 아동용임에도 불구하고 중간 중간에 성인 코드의 내용이 섞여 있다.
그래서 맨 처음 ‘이웃집 토토로’를 볼 때에도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이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봤었다). 그런데 너무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그리면서도 재미 있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뒤로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을 찾아서 거의 모두 보았다.
그 중에서 ‘귀를 기울이면’은 개인적인 취향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천공의 성 라퓨타'도 상당히 좋아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귀를 기울이면 쪽으로 마음이 더 쏠렸고 여러 번 본 횟수도 많이 차이난다.)
*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렇게 공중을 나는 장면이 들어가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간단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스포일러 주의)
시즈쿠는 책 읽기를 좋아하며 소설가를 꿈꾸는 중학교 3학년 소녀이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고양이를 좇다가 골동품 가게에서 주인 할아버지와 손자(세이지)를 만나서 알게 된다. 세이지는 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장래에 바이올린을 만드는 장인이 되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는 소년이다. 두 소년, 소녀는 풋풋하지만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며 자신의 미래를 얘기한다. 그리고 세이지는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게 되고, 시즈쿠는 돌아올 때까지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한다.
골동품 가게 고양이 동상이자 시즈쿠 소설 속 주인공인 ‘바론 남작’의 내용은 나중에 ‘고양이의 보은(猫の恩返し, The Cat Returns, 2002)’이라는 또 다른 애니메이션으로 스핀아웃 되기도 했다.
‘귀를 기울이면’은 다른 애니메이션들과는 확실히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악당’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이웃집 토토로’에도 악당이 없지만, 중간에 ‘메이’가 사라지는 ‘위기’가 있는데, ‘귀를 기울이면’은 그런 게 없다. 그래서 너무나 담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극을 이어나가는 힘이 있다.
이 작품의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니라, ‘콘도 요시후미’이다. 물론 제작, 각본은 미야자키 하야오였지만, 어쨌든 감독은 콘도 요시후미이다. 그런데, 관객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부재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연출을 했다. 실제로 미야자키 하야오는 콘도에게 지브리의 훗날을 맡기고 은퇴하려다가 콘도가 1998년초 갑자기 요절해서 다시 일선으로 복귀했다고 한다. 그만큼 콘도의 감독 실력이 탁월하다는 얘기다.
*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뒤에 빌린 이들의 이름 목록이 나오는 장면은 영화 러브레터에서도 나오는 장면이다. 그리고 내 초등학교 때도 그랬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이 작품에서 소녀는 소설가 지망생으로 나온다. 시험 공부를 포기하면서까지 나름대로 한편의 작품을 완성시키는데, 본인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만족하지 못하고 우는 장면이 있다. 만약, 그 작품이 너무 훌륭해서 베스트셀러가 됐다면, 이 작품은 거꾸로 빛을 잃었을 것이다. 사춘기의 소녀가 사랑을 느끼며 성장해가는 내용인데, 그렇게 되면 전체적으로 구도가 일그러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장면 중의 하나는, ‘Country Road’의 노랫말을 계속 바꾸면서 완성시키는 장면이다. 완성된 일본어 노랫말도 좋아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OST다.
‘귀를 기울이면’은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십대 청소년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애니메이션이다. 그렇다고 교육용 애니메이션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기를…!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