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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인가, 다른 세대인가?
사사기 2:6~10
우리는 오늘 이 본문을 어떤 심정으로 대할 것인가? 저는 이 본문을 대할 때마다 제 가슴이 먹먹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와 한국 교회 현실을 볼 때 말입니다.
우리 사회 관계망 데이터에 의하면 현재 우리 사회와 교회적 환경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교회 70% 이상 어린이, 청소년, 젊은 세대가 무너져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교회를 거부합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전도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전도 퇴치카드”가 확산되고, 캠퍼스 복음화율은 현재 3% 이하입니다. 이렇게 되면 선교적 관점에서 이런 나라는 미전도종족으로 분류합니다. 교회적 환경은 세속주의와 음란들이 가득합니다. 이는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다른 세대가 일어나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럼, 우리 사회는 어떤가요? 강력범죄가 2배 이상 증가했고, 성 소수자 인권이란 이유 아래 동성애자들 천국을 지향하는 운동은 매년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려고 국회가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슬람 할라 식품가가 익산에 들어오려다 막았는데 김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청소년 성범죄 10년 사이 11배 증가했고, OECD 국가 중 자살률 10년 연속 1위, 낙태율 1위, 노인빈곤율 1위, 청소년 성인 흡인율 1위,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률 1위, 어린이 노인 교통사고 사망률 1위, 산업재해 사망률 1위, 이혼 증가율 1위, 출산율 가장 낮은 국가 1위, 거기다가 기네스북을 찍었는데 사기 국가 1위 0.87 나왔고, 횡령 2위의 나라입니다.
이렇게 갈수록 안 좋은 부분에서 세계 1위 위치로 올라서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 교육 실태는 어떤가요? 교육은 무너졌습니다. 교육이 무너지는 나라는 미래가 없습니다. 왜, 이렇게 되는 것입니까? 이것은 미래를 위해 나라가 준비되어 가지 않는 과정 중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는 교회나 사회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않는 현상입니다. 우리 어른들 현재 복음화율 17%, 하지만 어린이 청소년, 청년 복음화율은 3% 이하로 떨어져 있습니다.
오늘 청년 헌신예배이지요? 김목사님이 부탁을 하셔서 감사하게 여러분 앞에 섰지만 마음은 무겁습니다. 우리나라 우리 한국 교회 다음 세대 문제가 심각하고, 바로 제 자녀들 신앙 문제도 제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다음 세대인가 다른 세대인가?”라는 제목으로 함께 나누도록 하면서 갈산교회 청년들에게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는 말씀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다음 세대인가, 다른 세대인가?
하나님을 아는 정서인가 모르는 정서인가? 의 문제입니다(7~, 10~).
이는 오늘 본문의 7절과 10절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두 구절을 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7~에서는 “사는 날 동안(2회)”, “본 자들” “여호와를 섬겼더라”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정서’, 섬기는 정서입니다. 다음 10절은, “다...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 “여호와를,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도 알지 못했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정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정서와 모르는 정서로 구별됩니다.
정서(情緖), 무슨 의미지요? 정서방을 줄여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글씨를 바르게 쓰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정서는 인간 마음입니다. 인간 마음에 쌓이는 것입니다. 이것을 감정이라 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는 것, 행동, 사회적 활동,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생활 속에서 보고 기억되고, 이것들이 마음에 쌓이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정의 정서, 학교의 정서, 사회 정서, 교회의 정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에 신앙의 정서가 있습니다. 빛의 정서, 어둠의 정서입니다.
우리를 영적인 존재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영혼이 회복된 자들입니다. 육체는 아직 불안전합니다. 우리가 죽어 육체가 영화로운 부활체로 변화 될 때, 그제야 비로써 영육의 경계가 없어지고 온전한 부활체가 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영은 아직 지상에서 육체를 입고 사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영혼이 육체의 옷을 입은 것입니다. 그래서 영이 마음, 생각, 정신, 혼으로 표현됩니다. 이것이 지상 생활을 하는 인간의 마음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마음을 무엇으로 채우는가? 이것이 마음의 정서 문제입니다.
죄의 영향을 받는 마음의 정서인가? 거룩의 영향을 받는 마음의 정서인가? 악의 영향을 받는가? 선의 영향을 받는가?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가? 사탄의 지배를 받는가? 이런 문제입니다. 왜,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은 모든 만물의 거짓된 것이 마음이라고 했습니까? 왜, 속에서 나오는 것들이 가장 더럽다고 했습니까? 이것은 죄악의 뿌리, 즉 어둠에 지배받는 인간 마음이라고 합니다. 죄에 지배받는 마음의 정서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속에서 나오는 것들이 악하고 더럽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세상과 계속 친하게 산다면 어떤 영향을 받게 되겠습니까? 말로는 주님께 속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삶은 세상 것으로 좌우됩니다. 그래서 어릴 때 정서가 매우 중요합니다. 태어나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을 아는 정서로 마음이 길들어지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모르는 정서로 길들어지는가? 현대 우리 한국 사회, 학교, 학원, 심지어 가정조차도 그 어디에도 교회 정서를 받아들입니까? 우리 사회는 교회를 부정하는 정서가 강합니다. 언론들은 언제나 교회를 향해서 마구 죽이는 여론몰이를 해댑니다. 거기다가 교회까지, 그리스도인 가정 그 어디에도 하나님을 아는 정서로 교육하고 훈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정하고 배격하는 어둠의 정서가 성도들의 가정들을 지배하는 추세입니다. 게다가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교회가 말하는 것들을 뛰어넘는 실제적인 사회 현실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아는 정서와 모르는 정서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7절, “하나님을 아는 정서를 여호수아와 당대의 장로들, 사회 지도자들이 살아 있던 때”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정서가 이스라엘 민족의 마음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중심의 공동체적 정서 속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지도자 그룹들, 중간 그룹들, 그러한 공동체 환경에서 다음 세대들이 어떻게 준비 돼 왔는가?
여호수아와 그 뒤에 생존한 장로들이 사는 날 동안, 10절은 그들이 다 조상들에게로 돌아가고 하나님을 모르는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이렇게 둘로 구분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무엇이 강조됩니까? 사는 날 동안은 여호와를 섬겼고, 10절에서는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더라! 신약성경, 예수님이 가시고, 12제자들이 활동할 할 때, 무엇이 교회 안에 들어왔지요? 다른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이 지상에서 자신을 섬기는 백성들, 교회를 통해서 어떻게 신앙이 지속되도록 하시는가? 오늘 이것을 보여주시며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인간의 정서와 모르는 정서가 어떤 과정과 기간을 거치는가?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가? 이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간이 어떤 정서로 살아오는가? 인간의 마음을 어떤 정서로 인도하시는가? 하나님을 아는 정서는 어떤 사회로 나타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정서는 어떤 인간 세상으로 드러나는가? 이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사회가 어떻게 잘 되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회가 어떻게 무너지는가? 교회가 어떻게 세워지고 무너지는가? 이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구원받느냐? 구원의 원칙과 본질이 아니라 구원으로 부름을 받은 공동체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는 그 현실을 어떻게 지속하고 보존해가는가? 이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갈산교회 젊은이들이 여러분들의 뒤를 이어서 신앙의 기반을 어떻게 지속해 가는가? 갈산교회 젊은이들이 거짓으로 정서가 형성되면, 거짓으로 살아갑니다. 엽기적인 것으로 정서가 형성되면 엽기적인 삶을 삽니다. 신앙보다 세상 것으로 정서가 형성되면 세상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요즘 우리 한국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영향을 받는 것은 무엇이지요? 게임입니다. 게임의 정서가 우리 사회 어린이, 젊은이들을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 젊은이들 마음의 정서가 되고 있습니다. 욕을 달고 삽니다. 거짓의 정서가 지배합니다. 술 담배로 채우고 있습니다. 이런 정서에 의거해서 말하고, 행동하고, 그런 과정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런 세상에 영향을 받는 젊은이들이 이미 교회를 떠나 버렸습니다. 젊은이들 마음에 그 어디에도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의 정서가 돌처럼 굳어져서 아예, 교회가 말하는 신앙의 소리를 듣지 않으려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출현하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교회 안에 만들어지고 있는 중간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 교회를 향해서 이 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세대를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정서가 다음 세대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정서로 충만한 인간들의 복종하는 마음이 다음 세대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신앙의 정서가 계속 지속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세대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이 그러한 과정이 만들어지는, 그래서 우리 사회가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같이 울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한국 교회가 다시 소생하게 해 주옵소서! 신앙의 공동체,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백성들의 정서가 지속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로 들어가지 않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이것만이 우리가 살길입니다. 다른 방법 없습니다. 이렇게 구해야 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다음 세대인가, 다른 세대인가? 어떤 문제입니까?
2. 세대교체기에 대 전환이 일어나는 문제입니다(10~).
기반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는 그와 같은 대 전환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우르르 꽝꽝하며 들려오는 소리가 없습니까?
이 본문의 구절은 그냥 단순하게 느껴지지만 대 운동이 구동(驅動)됨을 알 수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기계가 움직일 때, “드르릉” 거리는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서서히 구동되어 움직이는 것처럼, 그런 느낌이 들게 하는 구절입니다. 인간 삶의 기반이 움직이는데 대 전환이 일어나는 그러한 순간은 우리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도록 일어나는 변화가 아닙니다. 지구가 돌아갈 때 들리는 소리와 같은 움직임이 구동되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 기반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세속화되어 가는 기반으로 바뀔 때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데 우리 귀와 눈에는 보이고 들리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이 이런 문제를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앞 세대가 가고 나니 그 뒤를 잇는 세대가 그 자리를 잇는데 완전히 달라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세대교체입니다. 한 세대가 가고 다음 세대로 이어질 때, 그 교체기에서 환경이 확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전과 이후의 공간이 확 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20년 전 밀레니엄 교체기를 겪었습니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들어오는데 대 전환이 일어난 것입니다. 20세기와 21세기의 공기가 확 달라졌습니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희한하게 변하고, 세계는 점차 대혼란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전세계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무엇보다도 바이러스 문제로 대불안한 사회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하면 더 했지 과거처럼 인간들은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 교회를 둘러싸고 도는 힘입니다. 즉, 교회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현대입니다. 교회가 이와 같은 인류 문명의 발전으로 지상의 교회 기반이 변질되는 힘의 문제입니다. 인류가 발전함에 따라서 그 바탕이 하나님을 중심하는 신앙 기반이 변질되어 가는 것입니다. 사회적 변화에 따라서 교회가 이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면서 변질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보이지 않게 진행되는 힘입니다. 가령 예를 들면, 사회가 교회 신앙 원리를 바꾸도록 요구합니다. 세상이 적극적으로 교회를 간섭합니다. 어떻게 간섭합니까? 언론을 통한 여론몰이로 얼마든지 간섭합니다. 언론이 어떻게 교회를 향해서 말하느냐? 이에 따라서 교회 모습이 변해가고, 성경적 삶도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들은 영상 매체를 통해서 정신이 조절됩니다. 교회에서 설교를 듣고 변화되기보다 드라마나 영화, 인터넷을 통한 여러분들의 인격이 형성됩니다. 이런 발전 된 과학적 문명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의지가 형성됩니다. 왜, 여러분들이 교회에 순종을 안 하고 목회자를 거부하게 되느냐? 이러한 세상의 언론과 영상 매체가 여러분들의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하니까 그러는 것입니다. 주변이 온통 교회에서 하는 가르침을 시대에 뒤떨어지고 덜떨어진 과거적 산물로 치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향이 우리 교회 젊은이들을 파괴합니다.
왜, 목회자들, 교회 중직자들 자녀들이 교회를 떠나느냐?대학에서 교수들이 기독교를 사머니즘 정도의 비과학적 산물로 가르치기 시작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중학교 때 까지도 어느 정도 통제가 될 수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들어가면 아이들은 기독교 가정 부모들의 통제를 안 받으려 합니다. 유럽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회 언론, 영상 매체가 유럽 교회를 사머니즘 정도의 종교로 매도하기 시작하면서 교회 젊은이들이 떠났습니다. 오늘과 같은 유럽 시대가 되고 만 것입니다. 교회가 사라지고 나니까 유럽 모든 지역이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다시 2천 년 전 미개한 국가 시대로 돌아가는 현상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도 그러한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드라마는 현대 인간들의 생활과 행위에 크게 작용합니다. 배우들처럼 말하고, 고상하게 행동하려하고 자신도 모르게 닮아갑니다. 배우들은 평생을 자신이 아닌 다른 제2의 인물로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드라마를 시청하는 현대인들도 그렇게 산다는 것입니다. 이중적인 삶으로 말입니다. 이런 배경들은 성경적인 인간 모습과 너무나 다르게 만들어져 갑니다. 교회 성도들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품이 아닙니다. 배우들의 말과 행동을 닮아갑니다. 이러한 세속의 힘은 현대 교회와 성도들을 위협하는 무서운 파괴력입니다.
이것이 세대교체기를 통해서 전환되는 문제입니다. 언어부터 달라집니다. 제가 홍콩에서 사역할 때, 당나라와 기독교의 관계에 대해서 연구를 했습니다. 당태조와 당태종 이세민과 함께 시작했던 기독교 경교가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당나라를 융숭하게 발전하도록 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당나라가 중국 역사 가운데서 가장 바람직하고 부유하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게 된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것은 기독교와 함께 시작한 국가였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2세기 중반 이후부터 당대 불교 도교와 접목하여 신앙 개념들이 바뀌면서 불교에 복속되었고, 결국 중국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중국 불교 안에 기독교적인 색체가 드리워져 있는 배경에 대해서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 지금의 한국 교회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 놓이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선교를 받아 들인지 3세대와 4세대 교체기에 들어와 있습니다. 선교 2세대 중간부터 선교 1세대와 2세대 초기까지 역사했던 순수한 신앙들을 2세대 중간 이후부터 답습하려 하고 모방하려 하는 힘이 주도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인간들의 기술로 교체하려 하는 인간 습성들이 개입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즉, 순수하고 순전한 성령의 역사를 따라서 신앙생활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1세대 2세대 초까지 한국 교회에 나타났던 성령의 역사를 모방하고 답습하는 그것으로 교회 기반을 지속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대교체가 교회를 어렵게 만들어가는 위협입니다. 세상과 동일화하려 하고, 세상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려 하고, 신앙을 전적으로 모방하려 하여, 그것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둔갑시키려 하는 이러한 인간적인 노력들이 주도하는 교회적 환경 말입니다. 인간의 모방력과 과학적인 힘으로 대처하려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향해서 나아가는 현상입니다. 죄 아래 놓여 있고, 하나님을 향해서 항상 반항하고 대항하려 하는 인간들의 심성이 주님의 재림 때가 임박해지는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타락의 심성입니다. 이것을 가리는 힘이 무엇이냐 하면, 휴머니즘입니다. 인간적인 사랑 몰이로 하나님의 심판을 약화시켜 버리는 인간 바램의 힘입니다. 인간들이 말하는 거짓의 평화, 인간애, 사랑 등으로 그래서 동성애나 인권 문제로 오히려 세상을 죄악으로 가득 차게 만들어가려 하는 인간 자율이 세상을 지배하려 합니다. 이것이 세대교체기에서 강하게 형성되는 교회 무너트리기 배경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 때가 임박해지는 현상입니다. 사생활이란 드라마를 아십니까?
이럴 때, 우리 성도들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깨어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를 깨우치는 세대교체의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고 나면 후대가 갈산 교회를 지켜나갈까요? 이런 세대교체가 지상의 교회를 끝나게 하는 과도기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겸손하게 기도하십시오.
다음 세대인가? 다른 세대인가? 어떤 의미입니까?
3.“땅을 차지 할 때”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남겨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됩니까? 내 생각, 내 감정, 내 입장 등과 같은 인간적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이와 관련된 부분입니다. 출애굽하여 40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받고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지요? 하나님은 기존의 족속들을 다 멸하고 쫓아내라 했습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에다가 하나님만 섬기는 국가를 건설하고, 거룩한 백성들이 사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면 우상 숭배와 더러운 정신으로 사는 이방인들이 남아서 섞이면 안 됩니다. 그래서 모두 다 멸하고 남은 자들은 한 명도 남겨두지 말고 쫓아내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했지요? 남겨두었다는 것입니다. 왜, 남겨두었습니까? 모두가 자신들 입장입니다. 자신들의 약함과 겁먹는 심성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현실 논리입니다. 너무 강하고, 철병거가 있고, 경제적으로 노역을 시키는 노예로 삼으면 이득이 되는 것 아닌가? 세속적 계산에 밝았습니다. 종과 주인이라는 신분 차이를 두어서 함께 어울리지 않으면 될 것이 아닌가? 이런 합리화로 이유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저런 이유로 남겨둔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인간적입니다. 인간들이 항상 이래요. 하나님은 너무나 잘 아십니다. 조금 남겨두면, 그것이 먹고 자라서 거대해져 결국 이스라엘을 죽이는 힘이 될 것이라고 너무나 잘 아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너희의 목에 가시, 너희 옆구리에 올무”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여러 가지 상황과 자신들의 입장에 의해서 남겨놓은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먹고 자라는가? 남겨 놓으면 그 대상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온갖 머리를 써서 힘을 갖기 시작합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교류가 허용되고, 남녀 간의 이성 교제로 너무나 강하게 인간관계가 형성됩니다. 이때 반드시 섞인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언어와 행위, 삶의 형태, 결혼, 관계, 문화 등의 의미로 섞이는 것입니다. 이때 같은 부류들이 상통하게 됩니다. 크고 작은 그룹들이 형성됩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사는 조직 안에는 서로의 권력욕에 의해서 서로 나누이고 싸우고 잡아 죽이는 일들이 빈번합니다. 세상 살이가 다 그런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에 의해서 신앙의 굴절 현상, 신앙의 왜곡이 일어나게 됩니다. 건물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신앙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는 신앙이 어떻게 해서 변질되는가? 이것을 보여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발을 물에 담그면 구부러져 보이거나 한쪽으로 쏠려서 보입니다. 이것을 굴절 현상이라고 합니다. 물체가 물속으로 들어가면 원래의 형태가 달라져 보이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이 바로 그렇게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신앙의 왜곡이 일어나고, 타락의 모습이 강해져 가는 것입니다. 남겨놓는 인간적인 요소, 이해한다는 미명아래,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 자기 계산으로 접근하는 인간 정의 문제가 신앙의 왜곡을 가져옵니다. 이런 인간적인 감정놀이가 사람을 농락하면서 다른 길로 인도해 가는 것입니다. 인간 중심의 이런 정치 놀음들이 교회 기반을 무너트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남겨놓는다는 진정한 의미입니다. 바로 이러한 인간적 행위가 신앙을 왜곡의 길로 나가도록 해 놓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교회적 현실, 기성 성도들의 인간적이고 이중적인 모습들이 교회 안에 다른 세대가 일어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숭실대 학생과장 목사 교수가 설교하면서 하는 말입니다. 기독교 젊은이들이 와서 질문을 가장 많이 하는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나마 교회 안에 남아 있는 젊은이들이 하는 갈등입니다.
교회가 자신들에게 정체성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정체성 말입니다. 그리고 교회만 가면 북치고 장구치고 빠른 템포로 찬양하고 할렐루야! 아멘, 이렇게 하라고 하는데, 그것이 너무 거부된다는 것입니다. 꼭! 동네 무당들이 방방 뛰면서 하는 것 같고, 세상 밖에 나가 클럽 같은데 온 것 같은 기분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 클럽에서는 최대한 자유롭게 앉고, 옆에 예쁜 여친들을 끼고서 자유스럽게 나가서 춤추고, 지치면 들어와서 자연스럽게 여친들 어깨에 손 얹거나 별짓을 다 하면서 맥주나 술을 마시며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는데, 교회에서는 고리타분한 설교 들으면서 마음 놓고 앉아 있을 수도 없고, 죄가 어떻고 이런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방방 뛰고 찬양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기분 좋아진다면, 차라리 교회 밖에 클럽에서 하는 것이 훨씬 낳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위선자들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예배드리고 교회에 와서 목사 앞에 섰을 때는 신앙처럼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고 사회에서 생활할 때는 완전히 딴 사람으로 살아가는 행보를 합니다. 젊은이들 눈에 교회 어른들의 행위가 다 자신들에게 이렇게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 젊은이들, 어린 생명들의 영혼을 죽이고, 그로 인해서 교회를 다른 세대가 일어나도록 하는 근본 이유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성도라면 결코,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의 젊은이들, 어린아이들을 살리는 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저도 지금 세 자녀들 때문에 야단나 있습니다. 우리 아들 김하사는 군에 들어가 신앙생활을 잘했는데 코로나로 인해서 군은 무조건 예배를 못 드리도록 해놓으니까 2년 넘게 그렇게 하더니 지금 예배 생활을 안 하는 것이 아예 습관이 되고 말았습니다. 두 딸들 역시 투 잡을 뛰면서 코로나로 예배 생활을 안 하게 되더니 지금 잘 안 나갑니다. 큰딸은 9월 첫 주부터 나가기로 약속을 했습니다마는 그때 마귀가 다른 일로 못 나가도록 할 수 있으니까 단단히 기도하고 마음에 결심하고 행동하라고 해놓았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다 우리에게 남겨놓는 인간적인 문제들입니다. 너무나 가볍게 여기고 아무렇지 않게 하는 비신앙적인 요소들이 결국, 자신들을 집어삼키고 맙니다. 모든 일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처음 남겨놓은 것이 서서히 그렇게 힘을 먹고 자라서 결국, 교회와 우리 자신들을 집어삼키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갈산교회 젊은이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임하시길 축원합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다음 세대인가, 다른 세대인가? 오늘 청년 헌신예배를 통해서 이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그 신앙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그대로 잇게 하는 다음 세대가 되게 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되도록 방임 할 것인가?
지금의 우리 성도들 정서의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무엇으로 우리 마음을 채울 것인가? 이 문제입니다. 무엇으로 우리 자녀들의 정서가 만들어지도록 할 것인가? 하나님을 알게 하는 정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도록 하는 구원 받은 성도들의 정서, 이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성도들의 정서가 되도록, 젊은이들의 정서가 되도록 방치 해두면, 이것이 바로 다른 세대가 일어나는 과정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90년 년 때부터 2010년까지 우리 한국 교회는 다음 세대를 만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3% 대 이하의 주일학교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이렇게 될 때, 더욱더 다른 세대로 몰아갈 목회자들이 양성되는 것입니다. 80년 대부터 신앙의 정서들이 잘못되면서 그때부터 한국 교회 안에 다른 세대 목회자들이 많이 양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중 신분의 인간 중심의 목회가 화려한 미사여구로 강단을 채우는, 그래서 더욱더 다른 세대 목회자들을 양성하는 교회적 현실이 되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잘못된 세대교체가 일어나면 안 됩니다.
이렇게 되면, 바로 남겨두어서는 안 되는 것들을 남겨두는 교회적 현실로 나오게 됩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할 물질이 되어야 하는데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남겨두고 은행에 꼭꼭 숨겨두는, 혹은 선교의 이름으로 해외로 빼돌리는 그러한 거짓의 행위로 교회가 욕을 먹는 한 가운데 서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갈산 교회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다른 세대가 일어나는 교회 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젊은이들과 어린 영혼들을 신앙으로 잘 훈련 시키는 영적 훈련에 온전히 임해야 합니다. 갈산 교회가 하나님께 그렇게 쓰임 받는 역사 가운데 있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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