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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정승(政丞) 이야기
3대(三代)에 걸쳐서 정승이 된 사람들
심덕부(沈德符)와 그의 아들 온(溫), 심온의 아들 회(澮)이다.
서종태(徐宗泰)와 그의 아들 명균(命均), 서명균의 아들 지수(志修)이다.
김구(金構)와 그의 아들 김재로(金在魯), 김재로의 아들 치인(致仁)이다.
□ 영의정 서지수의 어머니는 우의정 김구의 딸이요, 그러므로 서지수의 외숙은 영의정 김재로이니, 영의정 김치인은 내외종간이다. 결과적으로 서지수는 친외가(親外家)가 다 삼대 정승이고, 김치인은 자신의 본가와 고모의 가정이 함께 삼대 정승이 되는 셈이다.
부자(父子) 간이 정승이 된 사람들
황희(黃喜,領)와 아들 수신(守身,領),
정창손(鄭昌孫,領)과 아들 괄(佸,左),
이인손(李仁孫,右)과 아들 극배(克培,領)ㆍ극균(克均,左),
신승선(愼承善,領)과 아들 수근(守勤,左),
홍언필(洪彦弼,領)과 아들 섬(暹,領),
정유길(鄭惟吉,左)과 아들 창연(昌衍,좌),
윤두수(尹斗壽,領)와 아들 방(昉,領),
정태화(鄭太和,領)와 아들 재숭(載嵩,右),
민정중(閔鼎重,左)과 아들 진장(鎭長,右),
김수항(金壽恒,領)과 아들 창집(昌集,領),
조사석(趙師錫,左)과 아들 태구(泰耈,右),
유상운(柳尙運,領)과 아들 봉휘(鳳輝,領),
이세백(李世白,左)과 아들 의현(宜顯,領),
이태좌(李台佐,左)와 아들 종성(宗城,領),
조문명(趙文命,左)과 아들 재호(載浩,右),
이관명(李觀命,左)과 아들 휘지(徽之,右),
이복원(李福源,左)과 아들 시수(時秀,領),
김익(金熤,領)과 아들 재찬(載纉,領)이다.
□ 위들 중 부자(父子) 영상(領相)은 청송심씨(온溫―회澮), 장수황씨(희喜―수신守身), 남양홍씨 토홍(土洪)의 '언필彦弼―섬暹', 해평윤씨의 '두수斗壽―방昉', 신안동김씨의 '수항壽恒―창집昌集', 연안김씨의 '익熤―재찬載瓚' 등이었음.
형제(兄弟) 간이 정승이 된 사람들
윤사분(尹士昐,右)과 동생 사흔(士昕,右),
이극배(李克培,領)와 동생 극균(克均,左),
허종(許琮,右)과 동생 침(琛,右),
이기(李芑,領)와 동생 행(荇,左),
심연원(沈連源,領)과 동생 통원(通源,左),
김상용(金尙容,右)과 동생 상헌(尙憲,左),
정태화(鄭太和,領)와 동생 치화(致和,左),
김수흥(金壽興,領)과 동생 수항(壽恒,領),
민희(閔煕,左)와 동생 암(黯,左),
윤지선(尹趾善,左)과 동생 지완(趾完,右),
최석정(崔錫鼎,領)]과 동생 석항(錫恒,左),
이관명(李觀命,左)과 동생 건명(健命,左),
조문명(趙文命,左)과 동생 현명(顯命,領),
김약로(金若魯,左)와 동생 상로(尙魯,領),
정우량(鄭羽良,右)과 동생 휘량(翬良,左),
신만(申晩,領)과 동생 회(晦,領),
홍봉한(洪鳳漢,領)과 동생 인한(麟漢,右),
김홍근(金弘根,左)과 동생 흥근(興根,領)이다.
□위들 중 형제 영의정은 신안동김씨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아들로 '수흥壽興…수항壽恒' 형제, 평산신씨 '만晩…회晦' 형제가 있었음.
조손(祖孫)간이 정승이 된 사람들
남재(南在,領)와 손자 지(智,左),
신숙주(申叔舟,領)와 손자 용개(用漑,左),
박은(朴訔,左)과 손자 숭질(崇質,左),
노한(盧閈,右)과 손자 사신(思愼,領),
정광필(鄭光弼,領)과 손자 유길(惟吉,左),
정창연(鄭昌衍,左)과 손자 태화(太和,領)ㆍ치화(致和,左)ㆍ지화(知和,左),
심정(沈貞,領)과 손자 수경(守慶,右),
김상헌(金尙憲,左)과 손자 수흥(壽興,領)ㆍ수항(壽恒,領),
최명길(崔鳴吉,領)과 손자 석정(錫鼎)ㆍ석항(錫恒,左),
서경우(徐景雨,右)와 손자 문중(文重,領),
김육(金堉,領)과 손자 석주(錫胄,右),
이경여(李敬輿,領)와 손자 이명(頤命,左)ㆍ건명(健命,左)ㆍ관명(觀命,左),
홍중보(洪重普,右)와 손자 치중(致中,領),
민진원(閔鎭遠,左)과 손자 백상(百祥,右),
이집(李㙫,左)과 손자 은(溵,領),
이천보(李天輔,右)와 손자 존수(存秀,左)이다.
외조손(外祖孫-외조부와 외손자) 간이 정승이 된 사람들
심온(沈溫,領)과 외손 노사신(盧思愼,領),
이원(李原,左)과 외손 윤호(尹壕,右),
박은(朴訔,左)과 외손 어세겸(魚世謙,左),
송일(宋軼,領)과 외손 홍섬(洪暹,領),
정유길(鄭惟吉,左)과 외손 김상용(金尙容,右)ㆍ김상헌(金尙憲,左),
유홍(兪泓,左)과 외손 김자점(金自點),
신흠(申欽,領)과 외손 조사석(趙師錫,左)ㆍ박세채(朴世采,左),
한효순(韓孝純,左)과 외손 여성제(呂聖齊,領),
여성제(呂聖齊,領),와 외손 오명항(吳命恒,右),
김육(金堉,領)과 외손 서문중(徐文重,領),
원두표(元斗杓,左)와 외손 이건명(李健命,左)ㆍ이관명(李觀命,左),
심지원(沈之源,麗)과 외손 이집(李㙫,左),
이행원(李行遠,右)과 외손 유봉휘(柳鳳輝,領),
민정중(閔鼎重,左)과 외손 홍치중(洪致中,領),
이집(李㙫,左)과 외손 서명선(徐命善,領),
김구(金構,右)와 외손 서지수(徐志修,領),
민진원(閔鎭遠,左)과 외손 이은(李溵,領),
김약로(金若魯,左)와 외손 박종악(朴宗岳,右),
박종악(朴宗岳,右)과 외손 조두순(趙斗淳,領)이다.
숙질(叔姪-삼촌과 조카) 간이 정승이 된 사람들
한확(韓確,左)과 조카 치형(致亨,領),
성봉조(成奉祖,右)와 조카 준(俊,領),
김질(金礩,左)과 조카 수동(壽童,領),
김전(金詮,領)과 조카 안로(安老,領),
유순정(柳順汀,領)과 조카 부(溥,左),
정치화(鄭致和,左)와 조카 재숭(載嵩,右),
이단하(李端夏,左)와 조카 여(畬,領),
서문중(徐文重,領)과 조카 종태(宗泰,領),
조사석(趙師錫,左)과 조카 태억(泰億,左)ㆍ태채(泰采,右),
조태채(右)와 조카 도빈(道彬,右),
민정중(閔鼎重,左)과 조카 진원(鎭遠,左),
김구(金構,右)와 조카 약로(若魯,左)ㆍ상로(尙魯,領),
이건명(李健命,左)과 조카 휘지(徽之,右),
조현명(趙顯命,領)과 조카 재호(載浩,右)이다.
구생(舅甥-外叔과 甥姪) 간이 정승이 된 사람들
유전(柳琠,領)과 생질 이덕형(李德馨,領),
김수흥(金壽興,領)ㆍ김수항(金壽恒,領)과 생질 이유(李濡,領)ㆍ권상하(權尙夏,左)ㆍ이세백(李世白,左),
홍치중(洪致中,領)과 생질 이종성(李宗城,領),
김재로(金在魯,領)와 생질 서지수(徐志修,領),
신만(申晩,領)ㆍ신회(申晦,領)와 생질 원인손(元仁孫,右)이다.
옹서(翁婿-장인과 사위) 간이 정승이 된 사람들
민제(閔霽,左)와 사위 노한(盧閈,右),
이원(李原,左)과 사위 권람(權擥,左),
권람(左과) 사위 신수근(愼守勤,左),
한백륜(韓伯倫,右)과 사위 구성군(龜城君) 이준(李浚,領),
정창손(鄭昌孫,領)과 사위 김질(金礩,左),
송일(宋軼,領)과 사위 홍언필(洪彦弼,右),
이산해(李山海,領)와 사위 이덕형(李德馨,領),
김상용(金尙容,右)과 사위 장유(張維,右),
윤승훈(尹承勳,領)과 사위 이경여(李敬輿,領),
한효원(韓効元,領)과 사위 김명원(金命元,左),
이후원(李厚源,右)과 사위 김석주(金錫胄,右),
이행원(李行遠,右)과 사위 유상운(柳尙運,領),
이경억(李慶億,左)과 사위 최석정(崔錫鼎,領),
윤지선(尹趾善,左)과 사위 민진원(閔鎭遠,左),
김구(金構,右)와 사위 서명균(徐命均,左),
이관명(李觀命,左)과 사위 김치인(金致仁,領),
정우량(鄭羽良,右)과 사위 김상철(金尙喆,領),
이천보(李天輔,右)와 사위 조경(趙璥,領),
유척기(兪拓基,領)와 사위 윤시동(尹蓍東,右)이다.
처남(妻娚)과 매부(妹夫) 사이가 정승이 된 사람들
윤사분(尹士昐,右)ㆍ윤사흔(尹士昕,右)과 매부 성봉조(成奉祖,右),
구성군(龜城君) 이준(李浚,領)과 매부 신승선(愼承善,領),
이산해(李山海,領)와 매부 김응남(金應南,左),
홍치중(洪致中,領)과 매부 이태좌(李台佐,左),
이유(李濡,領)와 매부 권상하(權尙夏,左),
김재로(金在魯,領)와 매부 서명균(徐命均,左),
정우량(鄭羽良,右)과 매부 이창의(李昌誼,左)이다.
동서(同壻) 끼리 정승이 된 사람들
서종태(徐宗泰), 최규서(崔奎瑞), 이집(李㙫), 이광좌(李光佐), 이건명(李健命), 이집(李㙫)ㆍ이유(李濡)ㆍ이의현(李宜顯)이다.
사돈(查頓) 끼리 정승이 된 사람들
신승선(愼承善,領)과 권남(權擥,左),
홍섬(洪暹,領)과 심수경(沈守慶,右),
이시백(李時白,領)과 김자점(金自點,領),
조익(趙翼,左)과 김구(金構,右),
서종태(徐宗泰,領)와 이세백(李世白,左),
민진원(閔鎭遠,左)과 이집(李㙫,左),
김재로(金在魯,領)와 이관명(李觀命,左),
홍낙성(洪樂性,領)과 김상로(金尙魯,領),
정존겸(鄭存謙,領)과 이복원(李福源,左),
김상철(金尙喆,領)과 서명선(徐命善,領),
김양택(金陽澤,領)과 이휘지(李徽之,右),
정홍순(鄭弘淳,右)과 이재협(李在協,左),
김상철(領)과 이성원(李性源,左)이다.
여러 대(代)에 걸쳐 정승이 된 사람들
심덕부(沈德符)와 아들 온(溫), 손자 회(澮), 증손 연원(連源)ㆍ통원(通源), 연원의 종손 희수(喜壽), 증손 열종(悅從), 현손 기원(器遠), 8대손 수현(壽賢)이 모두 정승이 되었다. 심지원(沈之源) 또한 심덕부의 10대손이 되니, 한 가문에서 정승에 제수된 사람이 열 명이다. -청송 심씨-
정광필(鄭光弼)과 손자 유길(惟吉), 유길의 아들 창연(昌衍), 조카 지연(芝衍), 창연의 손자 태화(太和)ㆍ치화(致和)ㆍ지화(知和), 태화의 아들 재숭(載嵩), 재숭의 조카 홍순(弘淳), 손자 석오(錫五)가 정승이 되었으니, 7대에 걸쳐 열 명의 정승이 나왔다. -동래 정씨-
김상용(金尙容)과 동생 상헌(尙憲), 손자 수흥(壽興)ㆍ수항(壽恒), 증손 창집(昌集)이 정승이 되었으니, 3대에 걸쳐 다섯 명의 정승이 나왔다.
순조 이후 신안동김씨 세도 때 인물은 다 못세어 보았다.
서경우(徐景雨)와 아들 문중(文重), 문중의 조카 종태(宗泰), 종태의 아들 명균(命均), 손자 지수(志修), 지수의 재종숙 명선(命善)이 정승이 되었으니, 5대에 걸쳐 여섯 명의 정승이 나왔다. -달성서씨-
민정중(閔鼎重)과 아들 진장(鎭長), 진장의 종제 진원(鎭遠), 종질 응수(應洙), 진원의 손자 백상(百祥)이 정승이 되었으니, 3대에 걸쳐 다섯 명의 정승이 나왔다. -여흥 민씨-
은일(隱逸)로서 정승이 된 사람들
정인홍(鄭仁弘), 송시열(宋時烈), 허목(許穆), 박세채(朴世采), 윤증(尹拯), 권상하(權尙夏)이다.
남행(南行)으로서 정승이 된 사람들
(주) 남행 : 공신 또는 현직 당상관(堂上官)의 자손을 과거에 의하지 않고 관리로 등용하는 일을 이르던 말. 즉 음서. 조상 덕에 벼슬에 나가는 것
배극렴(裵克廉), 김사형(金士衡), 심덕부(沈德符), 이거이(李居易), 이무(李茂), 권중화(權仲和), 조영무(趙英茂), 유정현(柳廷顯), 심온(沈溫), 강서(姜筮), 조연(趙涓), 노한(盧閈), 이귀령(李貴齡), 남지(南智), 한확(韓確), 한명회(韓明澮), 황수신(黃守身), 심회(沈澮), 강순(康純), 윤사분(尹士昐), 한백륜(韓伯倫), 성봉조(成奉祖), 윤사흔(尹士昕), 한치형(韓致亨), 신수근(愼守勤), 심기원(沈器遠), 김자점(金自點), 이시백(李時白), 원두표(元斗杓)이다.
무신(武臣)으로서 정승이 된 사람들
최윤덕(崔潤德), 홍달손(洪達孫), 박원종(朴元宗), 신경진(申景禛), 구인후(具仁垕), 이완(李浣)이다.
국구(國舅-임금의 丈人)로서 정승이 된 사람들
민제(閔霽), 심온(沈溫), 한명회(韓明澮), 한백륜(韓伯倫), 윤호(尹壕), 신승선(愼承善), 한확(韓確), 장유(張維), 조문명(趙文命)이다.
종신(宗臣-왕의 아들이나 손자 등)으로서 정승이 된 사람들
구성군(龜城君) 이준(李浚)이다.
정승에 제수되었으나 응하지 않은 사람들
장유(張維), 송시열(宋時烈), 윤증(尹拯), 권상하(權尙夏), 최규서(崔奎瑞), 민진장(閔鎭長), 조경(趙璥)이다.
정승으로서 판서(判書)를 겸한 사람들
이조 판서를 겸한 사람은 류성룡(柳成龍)과 한계미(韓繼美)이고,
병조 판서를 겸한 사람은 한명회(韓明澮)ㆍ박순(朴淳)ㆍ김석주(金錫胄)ㆍ이광좌(李光佐)이고,
호조 판서를 겸한 사람은 심열(沈悅)이고,
예조 판서를 겸한 사람은 신숙주(申叔舟)이다.
정승으로서 군직(軍職)에 제수된 사람들
도원수(都元帥)는 허종(許琮)ㆍ이극균(李克均)ㆍ윤필상(尹弼商)ㆍ유순정(柳順汀)ㆍ김명원(金命元)ㆍ김자점(金自點)ㆍ이홍주(李弘胄)ㆍ오명항(吳命恒)ㆍ성준(成俊)이고,
도체찰사(都體察使)는 유정현(柳廷顯)ㆍ구치관(具致寬)ㆍ류성룡(柳成龍)ㆍ이항복(李恒福)ㆍ윤두수(尹斗壽)ㆍ이원익(李元翼)ㆍ김류(金瑬)이고,
도순찰사(都巡察使)는 한응인(韓應寅)이다.
정승으로서 문형(文衡-大提學)이 된 사람들
신숙주(申叔舟), 신용개(申用漑), 성세창(成世昌), 어세겸(魚世謙), 김안로(金安老), 이산해(李山海), 유성룡(柳成龍), 이행(李荇), 김류(金瑬), 김수항(金壽恒), 조태억(趙泰億), 정휘량(鄭彙良), 남구만(南九萬), 최석정(崔錫鼎), 김종수(金鍾秀)이다.
치사(致仕)하고 정승이 된 사람들
이서(李舒), 권중화(權仲和), 이광좌(李光佐), 김치인(金致仁)이다.
상중(喪中)에 정승이 된 사람들
황희(黃喜), 정창손(鄭昌孫), 박승종(朴承宗), 장유(張維), 정태화(鄭太和), 김수동(金壽童)이다.
정승으로서 집을 하사받은 사람들
황희(黃喜), 이원익(李元翼), 허목(許穆)이다.
정승을 지낸 청백리에 뽑힌 사람들
이원(李原), 황희(黃喜), 유관(柳寬), 맹사성(孟思誠), 정문형(鄭文炯), 허침(許琛), 구치관(具致寬), 김전(金銓), 안현(安玹), 이준경(李浚慶), 이원익(李元翼), 심수경(沈守慶), 이항복(李恒福), 유성룡(柳成龍), 김상헌(金尙憲), 이시백(李時白), 홍명하(洪命夏), 이상진(李尙眞)이다.
정승으로서 궤장(几杖)을 하사받은 사람들
성석린(成石磷), 허조(許稠), 신개(申槩), 하연(河演), 한명회(韓明澮), 이극배(李克培), 노사신(盧思愼), 윤호(尹壕), 어세겸(魚世謙), 유순(柳洵), 정광필(鄭光弼), 홍언필(洪彦弼), 윤인경(尹仁鏡), 상진(尙震), 윤개(尹漑), 이준경(李浚慶), 이명(李蓂), 홍섬(洪暹), 노수신(盧守愼), 이원익(李元翼), 이경석(李景奭), 정인지(鄭麟趾), 김종서(金宗瑞), 정창손(鄭昌孫), 성봉조(成奉祖), 정유길(鄭惟吉), 권철(權轍), 허적(許積), 권대운(權大運), 허목(許穆), 홍낙성(洪樂性), 김사목(金思穆), 정원용(鄭元容)이다.
정승으로서 치사(致仕)한 사람들
이서(李舒), 권중화(權仲和), 유정현(柳廷顯), 유관(柳寬), 황희(黃喜), 맹사성(孟思誠), 하연(河演), 유순(柳洵), 심수경(沈守慶), 유성룡(柳成龍), 송시열(宋時烈), 남구만(南九萬), 최규서(崔奎瑞), 이광좌(李光佐), 민진원(閔鎭遠), 이의현(李宜顯), 이태좌(李台佐), 김흥경(金興慶), 김재로(金在魯), 유척기(兪拓基), 김상로(金尙魯), 정탁(鄭琢), 홍봉한(洪鳳漢), 김치인(金致仁), 정존겸(鄭存謙), 이경일(李敬一), 남공철(南公轍), 김도희(金道喜), 김흥근(金興根), 이경재(李景在), 조두순(趙斗淳)이다.
일찍 등과(登科-文科及第)한 정승들
이직(李稷)과 김종서(金宗瑞)는 16세에 등과하였고,
이원(李原)ㆍ하연(河演)ㆍ이행(李荇)은 18세에 등과하였고,
민제(閔霽)ㆍ하륜(河崙)ㆍ정인지(鄭麟趾)는 19세에 등과하였고,
성석린(成石磷)ㆍ신개(申槩)ㆍ강맹경(姜孟卿)ㆍ이극균(李克均)ㆍ황헌(黃憲)ㆍ이덕형(李德馨)ㆍ최명길(崔鳴吉)ㆍ정치화(鄭致和)ㆍ정원용(鄭元容)은 20세에 등과하였다.
일찍 정승에 제수된 사람들
구성군(龜城君) 이준(李浚)은 28세에 정승이 되었고,
이덕형(李德馨)은 38세,
이귀령(李貴齡)ㆍ남지(南智)ㆍ박원종(朴元宗)은 40세,
신숙주(申叔舟)는 41세,
기자헌(奇自獻)ㆍ이항복(李恒福)은 43세,
권람(權擥)ㆍ이직(李稷)ㆍ심온(沈溫)ㆍ한백륜(韓伯倫)ㆍ김수항(金壽恒)ㆍ서용보(徐龍輔)는 44세,
홍윤성(洪允成)ㆍ김병학(金炳學)은 45세,
박은(朴訔)ㆍ김질(金礩)ㆍ황헌(黃憲)ㆍ송연명(宋演明)은 47세,
조준(趙浚)ㆍ이무(李茂)ㆍ강맹경(姜孟卿)ㆍ한명회(韓明澮)ㆍ정태화(鄭太和)ㆍ김수흥(金壽興)ㆍ오시수(吳始壽)는 48세,
심회(沈澮)ㆍ유순정(柳順汀)ㆍ성희안(成希顔)ㆍ남곤(南袞)ㆍ유성룡(柳成龍)ㆍ김응남(金應南)ㆍ이원익(李元翼)ㆍ김석주(金錫胄)ㆍ이이명(李頤命)ㆍ유척기(兪拓基)ㆍ민백상(閔百祥)ㆍ홍봉한(洪鳳漢)은 49세에 정승이 되었다.
만년(晩年)에 정승에 제수된 사람들
권중화(權仲和)는 83세에 정승이 되었고,
허목(許穆)ㆍ윤증(尹拯)은 81세,
유관(柳寬)ㆍ강순(康純)은 79세,
장순손(張順孫)ㆍ정호(鄭澔)는 78세,
정인홍(鄭仁弘)ㆍ김상헌(金尙憲)ㆍ권상하(權尙夏)는 77세,
구인후(具仁垕)는 76세,
권진(權軫)ㆍ심수경(沈守慶)ㆍ이헌국(李憲國)ㆍ이홍주(李弘胄)는 75세,
한효순(韓孝純)ㆍ서매수(徐邁修)는 74세,
목내선(睦來善)ㆍ이완(李浣)은 73세,
김상용(金尙容)ㆍ서경우(徐景雨)ㆍ남이웅(南以雄)ㆍ조상우(趙相愚)ㆍ최규서(崔奎瑞)ㆍ정만석(鄭晩錫)은 72세,
조익(趙翼)ㆍ이경일(李敬一)ㆍ이서구(李書九)는 71세,
심덕부(沈德符)ㆍ허조(許稠)ㆍ하연(河演)ㆍ윤호(尹壕)ㆍ이기(李芑)ㆍ정탁(鄭琢)ㆍ심열(沈悅)ㆍ김육(金堉)ㆍ이시백(李時白)ㆍ윤지선(尹趾善)ㆍ임한호(林漢浩)는 70세에 정승이 되었다.
여든 살을 넘은 정승들
이귀령(李貴齡)은 향년 94세이고,
황희(黃喜)ㆍ김사목(金思穆)은 모두 90세,
정호(鄭澔)는 89세,
유관(柳寬)ㆍ정인홍(鄭仁弘)ㆍ이원익(李元翼)ㆍ권대운(權大運)ㆍ목내선(睦來善)ㆍ허목(許穆)은 모두 88세,
권중하(權仲夏)ㆍ이경일(李敬一)은 모두 87세,
성석린(成石磷)ㆍ정창손(鄭昌孫)ㆍ윤증(尹拯)ㆍ최규서(崔奎瑞)는 모두 86세,
정창연(鄭昌衍)은 85세,
심수경(沈守慶)ㆍ윤지완(尹趾完)은 모두 84세,
정인지(鄭麟趾)ㆍ김상헌(金尙憲)ㆍ남구만(南九萬)ㆍ송시열(宋時烈)은 모두 83세,
장순손(張順孫)ㆍ홍섬(洪暹)은 모두 82세,
정탁(鄭琢)ㆍ구인후(具仁垕)ㆍ권상하(權尙夏)ㆍ김상철(金尙喆)ㆍ홍낙성(洪樂性)은 모두 81세,
강순(康純)ㆍ이시백(李時白)ㆍ이태좌(李台佐)ㆍ채제공(蔡濟恭)ㆍ남공철(南公轍)은 모두 80세였다.
열조(列朝)의 원상(院相)들
태종조의 한상경(韓尙敬), 문종조의 황보인(皇甫仁), 세조조의 최항(崔恒), 예종조의 홍윤성(洪允成), 중종조의 홍언필(洪彦弼), 인종조의 윤인경(尹仁鏡), 명종조의 이준경(李浚慶), 인조조의 김자점(金自點), 효종조의 정태화(鄭太和), 현종조의 허적(許積), 경종조의 이광좌(李光佐), 영종조의 김상철(金尙喆), 정종조의 김종수(金鍾秀), 순조조의 심상규(沈象奎), 헌종조의 권돈인(權敦仁), 철종조의 정원용(鄭元容)이다.
임금이 직접 조문(弔問)한 정승들
배극렴(裵克廉), 조준(趙浚), 조영무(趙英茂), 남재(南在), 유정현(柳廷顯), 유관(柳寬), 황희(黃喜), 맹사성(孟思誠), 권진(權軫), 한확(韓確), 한명회(韓明澮), 김류(金瑬), 이정귀(李廷龜), 신흠(申欽) 등 여러 대신의 상사(喪事)에는 열성조(列聖朝)가 모두 직접 조문하였다.
묘정(廟庭)에배향(配享)된 정승들
조준(趙浚), 남재(南在), 하륜(河崙), 조영무(趙英茂), 정탁(鄭琢), 황희(黃喜), 최윤덕(崔潤德), 허조(許稠), 신개(申槩), 하연(河演), 권남(權擥), 한확(韓確), 한명회(韓明澮), 박원형(朴元亨), 신숙주(申叔舟), 정창손(鄭昌孫), 홍응(洪應), 이복(李復), 박원종(朴元宗), 성희안(成希顔), 유순정(柳順汀), 정광필(鄭光弼), 홍언필(洪彦弼), 심연원(沈連源), 이준경(李浚慶), 이원익(李元翼), 신흠(申欽), 김류(金瑬), 신경진(申景禛), 김상헌(金尙憲), 정태화(鄭太和), 남구만(南九萬), 박세채(朴世采), 윤지완(尹趾完), 최석정(崔錫鼎), 이유(李濡), 송시열(宋時烈), 김창집(金昌集), 최규서(崔奎瑞), 조문명(趙文命), 김재로(金在魯), 민진원(閔鎭遠), 유언호(兪彦鎬), 김종수(金鍾秀), 이시수(李時秀), 김재찬(金載纉), 김이교(金履喬), 조인영(趙寅永), 이상황(李相璜), 이헌구(李憲球)이다.
왕대별(王代別) 정승(政丞)의 수
태조조는 4인, 정종조 1인, 태종조는 15인, 세종조는 14인, 문종조 1인, 단종조 5인, 세조조는 17인, 예종조는 3인, 성종조는 10인, 연산조는 11인, 중종조는 23인, 인종조는 2인, 명종조는 12인, 선조조는 34인, 광해조는 7인, 인조조는 23인, 효종조는 8인, 현종조는 11인, 숙종조는 38인, 경종조는 4인, 영종조는 45인, 정종조는 21인, 순조조는 18인, 헌종조는 7인, 철종조는 5인, 고종조는 26인 도합 365명이다.[어느 통계에 역대 정승수 366]
왕대별(王代別) 문형(文衡)의 수
태조조는 1인, 태종조는 1인, 세종조는 4인, 세조조는 2인, 예종조는 1인, 성종조는 2인, 연산조는 2인, 중종조는 8인, 인종조는 1인, 명종조는 4인, 선조조는 16인, 광해조는 1인, 인조조는 11인, 효종조는 5인, 현종조는 3인, 숙종조는 22인, 경종조는 2인, 영종조는 20인, 정종조는 5인, 순조조는 8인, 헌종조는 3인, 철종조는 4인, 고종조는 6인 도합 132명이다.[어느 통계에 역대 문형수 134]
왕대별 봉조하(奉朝賀)의 수
태종조는 7인, 세종조는 14인, 문종조는 3인, 세조조는 3인, 성종조는 8인, 중종조는 3인, 명종조는 2인, 선조조는 3인, 광해조는 1인, 현종조는 1인, 숙종조는 3인, 영종조는 36인, 정종조는 10인, 순조조는 8인, 헌종조는 5인, 철종조는 2인이다.
왕대별 기사(耆社-耆老所)에 들어간 수
태조부터 순조 경인년(1830)까지 모두 합하여 523명이다.
문형(文衡: 대제학)의 수
정종조는 1인, 태종조는 1인, 세종조는 4인, 세조조는 2인, 예종조는 1인, 성종조는 2인, 연산조는 4인, 중종조는 7인, 인종조는 1인, 명종조는 5인, 선조조는 16인, 광해조는 1인, 인조조는 12인, 효종조는 6인, 현종조는 3인, 숙종조는 21인, 경종조는 2인, 영종조는 20인, 정종조는 5인, 순조조는 9인, 헌종조는 2인, 철종조는 4인이다.
역대 대장(大將)의 수
선조조의 조경(趙儆)으로부터 철종조까지 모두 157명이다. 문신 40인은 모두 훈척(勳戚)이거나 장천(將薦)을 받은 사람들이다.
왕대별 청백리(淸白吏)의 수
태조조는 2인이고, 태종조는 8인, 세종조는 12인, 세조조는 5인, 성종조는 15인, 중종조는 14인, 명종조는 5인, 선조조는 11인, 인조조는 8인, 숙종조는 20인, 경종조는 6인, 영조조는 5인이고, 보유(補遺) 4인이다.
출처:의령남씨대종회(宜寧南氏大宗會) 홈페이지에서 모신 글을 대폭 보완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