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디-바인베르크 법칙
차주일
여자 셋이 걸어가는 풍경은 생태계 교란처럼 무섭다
예쁜 얼굴을 중심으로 팔짱을 겯는 자연스러운 결속이 무섭다
결속의 중심이 사람을 초월한 외모지상이어서 무섭다
이성에게 더 강한 성욕을 촉발시킨다는 외모지상
그가 생식을 결정짓는 조물주라는 것이 무섭다
성형수술로 중심에 선 사람들이 무섭다
우열과 성패의 차별을 극복한 그들이 무섭다
성형했다는 실토를 용기 있는 고백이라 칭송함이 무섭다
성형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우성진화론이 무섭다
영혼이 아닌 육체에서 구원을 얻는 종교 탄생이 무섭다
성형외과 상징과 십자가가 닮은 기호임이 무섭다
바둑판 화점처럼 네거리를 차지한 성형외과들이 무섭다
진화가 간절한 바람의 산물이라는 것이 무섭다
기린의 목이 결국 길어졌음이 무섭다
간절한 바람이 기도라고 명명되기 이전 시대에
울음소리나 체취가 성욕을 충동했음이 무섭다
무신론자인 나는 열성유전자의 발현을 기다리며 기도한다
작고 째진 눈과 낮은 코와 불거진 광대뼈의 얼굴을 보면
겁탈과 본능이 하나일 때 살던 수많은 神들처럼
저 북받쳐 풀숲으로 뛰어드는 생태계 교란을 바라는데
나는 TV 리모트 컨트롤을 잡고 신종 성경책을 넘기고 있다
*(하디-바인베르크 법칙) : 무작위적 교배가 일어나고 있는 큰 집단에서, 유전자를 변화시키는 외부적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우성유전자와 열성유전자의 비율은 세대를 거듭해도 변하지 않고 일정하다는 법칙.
-------------------------------------------------------------------------------
악어핸드백
핸드백을 열자
새끼 누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세렝게티 오아시스가 뭇 이파리를 옥죄다 숨진다
장정에 오른 누 떼의 헐거운 굽소리가
탯줄 같은 상형문으로 외치다 구름 된다
배꼽 속으로 말라붙은 탯줄만큼 가뭄도 기어올라
허방 깊은 젖통을 가득 채운다
삼천리를 걸어 마른 씨앗 털어 댄
채식주의자의 소원은 물 한 모금 마시는 것
물비린내를 풍구질하는 악어의 눈빛이
수십 만 마리의 소원을 빙산처럼 얼려놓고 있다
새끼 울음소리가 불씨처럼 튄다
어미의 중추신경이 타들며 자성(磁性)으로 짙린다
한 발, 한 발, 강 가장자리로 끌려간다, ……불꽃
악어의 접힌 내장에 부력을 띄우는 목덜미가
가장 위대한 불꽃을 강물에 인화한다
그 불꽃길로 내달린 누 떼가 초원에 선다
새끼 누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핸드백을 닫는다
--------------------------------------------------------------------------------
精子 하나
레코드 바늘 하나 내 몸을 돌고 있네
구심점으로 구심점으로 향하고 있네
소리를 읽힌 몸 꺼풀꺼풀 사라질수록
영혼이 시작된 곳 가까워지네
레코드바늘은 첫울음 시작된 음부 앞에 멈춰있네
내 영혼 저 물 속에 있을 것이네
레코드 바늘이 정자 꼬리질 같은 데시빌과
세레나데 같은 헤르츠를 기억해내고 음부를 여네
나는 태아의 웅크린 모습으로 그곳에 갇히네
지느러미를 태막에 박는 구심점이 보이네
저 지느러미를 흔든 영혼은 내 것이 아니었네
다시 급류를 거슬러 한 청년의 몸에 오르네
연어들이 무질서의 힘으로 모천을 찾아내듯
몸 밖이 보이는 발원지에 이르렀을 때
막 보쌈을 마치고 돌아온 청년의 눈빛이
안구 가득 한 처녀를 풀어 가두고 있었네
처녀는 레코드바늘이 되어 그를 돌기 시작했네
그리고 이내 그의 영혼이 되었네
-------------
차주일 1961년 전남 무주 출생. 200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