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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아직도 무더위가 한창인데 우리 성도님들 심신이 다 건강하시기를 기원해 마지않습니다. 오늘 다시 에스라의 나무 강단이 제공하는 성경의 어휘 연구, 오늘은 134번째 시간을 맞이해서 절기의 종류와 의미의 열 번째 시간이면서 초막절 후반부를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초막절의 유래와 의미, 또 그 절기가 언제 있는지 함께 공부했고 오늘은 그 행사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공부하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절기들을 쭉 공부해왔습니다. 봄 절기 네 개, 가을 절기 세 개 중에서 맨 마지막 초막절, 그 초막절의 제2부 행사를 함께 공부합니다. 티스리월 15일부터 22일까지 유대인들이 지키는 초막절의 날짜와 그 의미를 쭉 살펴봤습니다. 봄 절기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관련되고 가을 절기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되면서, 나팔절은 재림 준비, 속죄일은 재림, 초막절은 재림 후에 전개될 천년왕국과 천국 생활을 우리에게 미리 보여주는 예행 연습 성격의 축제라는 사실을 우리는 강조해 왔습니다.
가을 절기를 다 마친 다음에 다음 시간부터는 기타 절기인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역사적 기념일인 부림절과 수전절은 이미 33번 강의와 34번 강의에서 공부했으므로 참고하시기를 권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135번 안식일의 의미와 136번 안식일을 어떻게 지키고 경축하는지에 대해서 공부하고, 137번 강의에서는 안식년에 대해서, 138번 희년에 대해서 공부함으로 모든 절기 공부를 일단 짓겠습니다.
이 모든 절기들을 성전에 세웠던 이 등대에 비추어서 앞부분은 초림 때 십자가에 달린 무죄와 고난, 초실절은 부활절, 칠칠절은 성령 강림을 공부했고 그것들이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성취 중에 있는 것은 가을 절기입니다. 나팔절로 예고하고 속죄일을 지나 초막절은 천년기 동안에 있을 일을 미리 연습하는 것이라고 공부했습니다. 초막절은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풀을 가지고 막을 지어서 하는 절기입니다. 영어로 'Feast of Tabernacles'라고 합니다. 히브리 말로는 '하그 하스콧'이라 하는데, '하그'는 축제라는 말이고 '하스콧'은 스카, 즉 초막의 복수형이므로 초막들의 절기라는 뜻입니다. 수장절이라고도 하고 흔히 성경에는 없지만 장막절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초막은 회막, 성막, 초막, 장막, 천막 등 다 '막' 자 돌림으로 되어 있는 것 중 하나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강조했지만 초막은 일시적으로 사는 집입니다. 이동식이고 조립식이며 개폐식 건물로서의 초막을 우리는 다루었습니다.
금년 2024년은 유대력으로 5784년과 5785년에 걸쳐져 있는데, 티스리월 1일부터는 5785년이 됩니다. 민력으로 1월이 되기 때문에 해가 바뀌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티스리월 15일부터 22일까지는 금년 달력으로 10월 18일부터 25일입니다. 한 주간 8일 동안 유대인들은 어느 곳에 살든지 이 날을 큰 축제로 지킵니다. 내년 2025년에는 10월 10일부터 17일이 되겠습니다.
초막절의 첫날 행사부터 공부합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초막절에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가지고 오는지 보았습니다. 레위기 23장 40절을 보면 네 가지 초목을 가지고 와서 엮으라고 했습니다. 네 가지 초목을 회당으로 가져와서 회중이 감사 시편인 '할렐 시편'을 읽습니다. 113편부터 118편까지 이 여섯 개의 시편을 할렐 시편이라고 합니다. '할렐'이라는 말이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할렐루야가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런 뜻이거든요.
시편을 낭송하는 동안에 그 초목들을 여섯 방향으로 가리키도록 흔듭니다. 네 가지 초목은 아름다운 나무 실과, 종려나무 가지, 무성한 가지, 시내 버들입니다. 이 네 가지 초목을 가지고 와서 여섯 방향으로 흔듭니다. 여섯 방향은 동서남북과 상하입니다. 동, 서, 남, 북 이렇게 하고 그다음에 상, 하 이렇게 하면 여섯 방향이 되죠. 동서남북 위아래를 가리켰습니다. 이것은 상징적으로 하나님께서 이 우주의 모든 방향에 다 계신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렇게 흔들면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는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선하심)이 영원하리로다"라고 백성들이 찬양을 했습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왜냐하면 그는 선하시고 그 선하심이 영원(레올람)하다" 그렇게 찬미를 했습니다. 이것이 첫날 행사입니다.
그다음부터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7일 동안 행사를 하지 않습니까? 첫째 날부터 귀빈을 모십니다. 초막을 따로 하나씩 지어서 일곱 분의 역사적 인물인 아주 귀한 손님들을 모시는 행사를 일주일 동안 하루에 한 분씩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큰 깃발들을 만들어 가지고 거기에 12 조상들이나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적었습니다. 요셉도 있고 아셀도 있게 막 걸어놓고 아주 성대한 예식을 행하였습니다.
첫째 날은 누구를 모셨느냐 하면 아브라함을 모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요, 그들 민족의 조상이지 않습니까? 아브라함 위로 데라도 있고 그 위도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택함을 받은 백성의 시조는 아브라함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첫날 모시는데, 그 아브라함을 위한 깃발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주로 미국에 사는 유대인들이 하기 때문에 영어를 섞어서 'The Tabernacle of Abraham(아브라함의 초막)'이라 적고 연도를 썼습니다. 2024년, 2023년 이런 식으로 깃발을 들고 와서 아브라함을 위하여 만든 그 초막 앞에 딱 세우고, 사람들이 와서 아브라함을 칭송하고 아브라함에 대하여 감사하는 행사를 첫째 날에 했습니다. 첫째 날은 아브라함을 위한 날이었습니다.
둘째 날은 누구냐 하면 그의 아들 이삭을 위한 날입니다. 이삭을 위해서도 깃발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The Tabernacle of Isaac(이삭의 초막)'이라 적고 2024년 초막절 표시를 해서 갖다 세워놓으면, 그것을 들고 와서 이삭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경축했습니다. 둘째 날은 이삭입니다.
셋째 날은 누구인가 하니 그의 아들 야곱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이 믿음의 조상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야곱을 위해서도 깃발을 놓고 그 앞에서 성경에 있는 야곱 이야기를 읽고 그를 기념했습니다. 참 좋죠. 선조들을 추모하고 그들을 기억하는 것은 후손들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후손이 없고, 그들이 없었더라면 믿음의 유산을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적절하게 이런 행사를 했습니다.
네 번째는 요셉입니다. 야곱의 여러 아들이 있지만 다 중요해도 요셉이 없었더라면 다 굶어 죽을 뻔했습니다. 요셉을 형들이 팔아먹었지만 하나님이 먼저 보내셨다고 고백하며, 애굽에서 그들을 구원하고 마침내 한 민족을 이루게 한 그 요셉을 위한 깃발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창세기 39장, 40장에 나타나 있는 그 고초와 고난의 끝에 영광스러운 총리의 자리에 이르러 민족을 구원하는 그 이야기를 읽고 기념했습니다. 네 번째는 요셉이었습니다.
다섯 번째는 누구일까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낸 모세입니다. 모세를 위한 다섯 번째 인물이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는 정말 민족의 구원자요, 선지자요, 영웅입니다. 그를 위해서 또 깃발을 만들었습니다. 모양은 같지만 색깔이 약간 다르고 이름만 다르게 썼습니다. 모세를 위한 초막을 지고 그 앞에서 모세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아주 재미있었을 것 같습니다. 다섯 번째는 모세입니다.
여섯 번째는 그의 형님 대제사장 아론입니다. 아론은 대제사장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어려움을 하나님 앞에 고하고 용서받도록 제사를 인도하는 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론을 위한 초막과 깃발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론이 물론 약점이 있었지만 그 직무를 참 잘 수행했습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사람은 누구일까요? 다윗입니다. 다윗은 왕 중의 왕이지 않습니까? 이 지상의 왕 중에서는 최고의 왕입니다. 그도 허물이 있지만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고 정말 용맹 있는 군사로서 젊을 때부터 민족을 구원하는 혁혁한 공을 세운 왕 다윗입니다. 다윗을 위해서도 초막을 하나 지어서 다윗의 초막이라 하고 기념했습니다. 이렇게 일곱 분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아론, 다윗 이 일곱 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존귀히 여기는 조상입니다. 그래서 일곱 분의 초막을 지고 그 앞에서 그들의 행적을 더듬어 살폈습니다.
이 일곱 분은 왜 모셨을까요? 모두가 집 없이 유리하거나 나그네 생활을 한 경험을 통하여 위대하게 된 인물들입니다. 아브라함도 고향을 떠나 갈대아 우르에서 애굽까지 갔다 오고, 이삭도 그렇고, 야곱은 자기 행실 때문에 더 쫓겨 다니고 집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요셉도 감옥에 가고 모세도 광야에서 그랬으며, 다윗 역시 사울 왕에게 쫓기고 아들에게 쫓기는 생활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지 않았던 인물들입니다. 그들의 집 없는 생활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하나님께서 주신 신령한 사명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그 믿음을 강화했습니다. 역경으로 말미암아 그 믿음이 더 강화된 인물들입니다. 어렵다고 포기하지 않고 더 강하게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던 그런 인물들입니다. 그래서 옛날에 그들을 기념했던 것입니다.
이 초막절이 주는 교훈과 의미가 무엇이냐면,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요소가 초막절의 중심이 되는 두 기둥입니다. 첫째는 자연(천연)입니다. 자연은 고대 인간에게 최대의 적이기도 했습니다. 농사는 자연의 순리에 맡겨야 하고 가물어서 다 말라 죽으면 대책이 없었습니다. 고대는 그렇습니다. 또 사람의 목숨도 재앙이 무너지면 다 죽는 것이었습니다. 질병이 오면 그때 무슨 방역이 있었고 의료나 약이 있었겠습니까? 이런 것들은 자연의 소관이었기에, 인간은 대책 없이 당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에 대한 감사의 축제, 즉 살아남은 것만 해도 감사한 것이고 자연을 통해 돌보셨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돌보셨지만 자연의 순리에 대하여 인간의 연약함을 고백하는 정서가 이 초막절에 있습니다.
둘째는 사회입니다. 사회라는 것은 한 사람으로서는 이루어지지 않고 두 사람, 세 사람이 모여야 사회가 되지 않습니까? 자연 앞에 무력한 인간이 열린 사회에서 동거하는 것입니다. 엉성한 초막을 짓고 거기서 가족이 하나가 되고 이웃이 하나가 되고 민족이 하나가 되어서, 자연 앞에 공동운명체로서 그 삶의 결속을 다짐하는 절기가 초막절이었습니다. 자연 앞에 무력한 인간이기에 사랑의 정신으로 협력하고 서로를 돕고 기뻐하는 축제가 초막절입니다. 두 단어를 꼽자면 자연과 사회(Nature and Society)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초막절의 의미입니다.
우리 기독교 교인들은 구약의 절기를 문자 그대로 지키지는 않습니다. 표상으로서의 모든 임무가 끝나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다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초막절은 아직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지요. 주님 오신 후에 하늘에서 함께 살 것을 미리 한번 연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의미로 교회가 초막절 대성회를 열고 그 행사 내용을 생각해 보는 것도 참 좋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꼭 초막을 직접 짓지 않더라도 강단 같을 때 같이 하루 이틀이라도 꾸미고 그러면서 이 초막절의 행사를 생각해보면 은혜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막절이 주는 교훈을 보면, 그들은 이 기간에 전도서를 읽었습니다. 초막절에는 전도서를 읽는데, 어떻게 시작합니까? 전도서 1장 2절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하고 시작합니다. 헛되다는 말이 여러 번 강조됩니다. 이 헛될 황(荒) 자, 헛될 도(徒) 자를 쓰면서 이 세상에서의 허망함과 절망을 묵상해 보았더니 별거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다 지나가면 헛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헛됨을 탄식하다가 마침내 전도서 마지막 장 끝부분에 가서 진정한 해결의 열쇠를 발견합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아무리 왕궁에 살아봤더니 헛것이더라, 돈을 많이 모아봤더니 헛것이더라, 쾌락을 좇아봤더니 그것도 헛것이더라" 하며 모든 노력이 결국은 다 지나가는 것임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만이 영원히 남는 가치이자 인간의 본분이며 행복의 길이라는 사실을 결론으로 맺고 그들은 이 절기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초막절의 마지막 행사로 아주 특별한 행사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일곱째 날 혹은 여덟째 날에 행한 '심하트 토라(Simchat Torah)'입니다. '심하'는 기쁨이라는 뜻이고 '토라'는 율법이므로, "율법을 기뻐함"이라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이날은 연례적인 율법 통독이 끝나는 날이면서 동시에 새 주기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유대인들은 1년 동안 성경을 통독하기 위해 나누어 놓은 성경 구절 주기가 있습니다. 이날 초막절 마지막 날은 지난 한 해 동안 통독해 오던 성경 읽기를 끝내는 날이면서, 또 새로 시작하는 날이라 맺고 시작하는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그래서 성경 두루마리를 행렬 속으로 운반하며 새로운 각오와 희망을 가지고 새 출발을 합니다. "우리 속죄일도 무사히 지났고 이제 다 함께 모여서 기뻐하는 축제인 이 초막절도 다 끝난 마지막 날이니, 이제 오늘부터 또 새로운 출발을 하는 날이다" 하며 두루마리를 가슴에 안고 연중 절기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율법과 함께 새해를 맞이하는 행사를 초막절의 마지막 행사로 합니다.
그 광경을 보면 두루마리를 안고, 초막절의 네 가지 식물을 한데 엮어서 안고 토라 두루마리를 안고 나와서 춤을 춥니다. "우리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는 1년 동안 잘 지냈다. 새해를 맞이하여 기쁘다" 하고 춤을 췄습니다. 참 좋은 광경입니다. 그러면서 그 두루마리에 쓰인 성경을 가리킵니다. 히브리인들은 성경을 가리킬 때 손가락으로 직접 가르치지 않고 뼈나 은으로 만든 지시봉(포인터)을 사용합니다. 손가락으로 직접 성경을 가리키는 것은 성경에 대한 불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시봉으로 성경을 가리키면서 젊은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어린이들에게도 성경을 가르치는 날이 초막절의 마지막 행사인 심하트 토라입니다. 참 아름다운 행사입니다.
이 초막절은 역사적으로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졌던 때가 있습니다. 느헤미야서 8장에 보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초막절 경축 행사를 합니다. 크게 즐거워하며 나뭇가지를 흔들고 경축 행사를 벌였습니다. 왜 그렇게 했느냐 하면, 느헤미야 이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축제를 율법대로 잘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개역을 일으켜 "자, 우리 하나님의 레위기에 있는 모세 율법의 방법대로 우리 초막절을 지키자" 하여 아주 크게 즐거워했습니다. 초막절은 한 해를 무사히 마쳤기 때문에 온통 즐거운 날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 당시의 초막절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축제는 과거의 광야 생활을 기념하는 동시에, 앞으로 하늘나라에서 지킬 예언적 실체를 바라보는 표상적 의미를 가졌습니다. 과거를 보는 시선에서 행하는 것은 기념이고, 미래를 보는 시선에서 하는 것은 표상입니다. 과거 광야 생활에 대한 기념과 미래에 있을 하늘 초막절에 대한 표상을 동시에 행하던 예수님 당시의 초막절 행사가 요한복음 7장에 나타나 있으며, 예수님은 그 한가운데 서셔서 목마른 사람들은 다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외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과 21장에 보면 하늘에서 지킬 진짜 초막절이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7장 9절을 보면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 있습니다. 종려 가지는 아까 그 네 가지 식물 중 하나이지 않습니까? 종려는 승리를 뜻하는 나무입니다. 하늘나라에서 종려 가지를 꺾어 들고 초막절을 지내는 것은 다 죄를 이기고 승리한 것,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승리의 십자가를 지신 것을 경축하는 장엄한 절기입니다. 우리 다 그 하늘 초막에 함께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3절에도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장막이 바로 초막(텐트)입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영원히 장막을 치고 동거하시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주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상으로 초막절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초막절을 함께 맞이할 때까지, 이 광야 같은 세상을 기쁨과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하나님과 함께 구속의 역사를 끝내고 마지막 하늘나라에서 초막절을 지키게 될 그날을 내다보며 우리 인생의 광야를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때까지 기쁨과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행복한 초막절의 영적 의미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비록 실제 이런 풀 초막에 거하지는 않더라도 마음의 초막을 지어서 우리 하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모시고 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초막절 행사라고 생각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로써 가을 절기를 다 마치겠습니다. 마음의 초막에서 주님만을 모시고 시간을 보내는 것은 우리의 믿음에 큰 용기와 새로운 힘을 얻게 할 것입니다.
이상으로서 봄 절기와 가을 절기를 모두 마치고 다음에는 특별한 주기적 절기들을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감사합니다.
📌 핵심 요약 정리
초막절(Feast of Tabernacles) 후반부 행사의 구조
초막절은 성력 7월 15일부터 22일까지 8일간 지내는 가을의 최종 절기입니다. 봄 절기가 예수님의 초림으로 성취되었다면, 가을 절기의 끝인 초막절은 재림 이후 전개될 천년왕국과 영원한 천국 생활을 예행 연습하는 축제입니다.
첫날 행사: '할렐 시편' 낭송과 여섯 방향의 요제
첫날에는 백성들이 네 가지 초목(아름다운 나무 실과, 종려 가지, 무성한 가지, 시내 버들)을 들고 회당에 모여 시편 113~118편(할렐 시편)을 낭송했습니다.
찬양을 드리는 동안 초목을 동·서·남·북·상·하의 여섯 방향으로 흔들었는데, 이는 온 우주 만방에 하나님이 임재해 계심을 인정하고 찬양하는 의식입니다. 백성들은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는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고 대성으로 화답했습니다.
일곱 성조(귀빈) 추모 의식과 나그네 인생의 교훈
유대인들은 초막절 일주일 동안 하루에 한 분씩 이스라엘 역사의 존귀한 조상 일곱 분(아브라함, 이삭, 야겁, 요셉, 모세, 아론, 다윗)을 상징적 귀빈으로 초막에 모시는 예식을 행했습니다.
이 일곱 인물의 공통점은 모두 세상에서 집 없이 유리하거나 나그네 장막 생활을 통하여 역경 속에서 믿음이 더욱 단련되고 위대해진 영웅들이라는 점입니다. 후손들은 이들의 행적을 성경으로 읽으며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유산을 전수받았습니다.
초막절의 두 기둥: 자연과 사회
자연(Nature): 고대인들에게 가뭄이나 질병 등 대책 없는 재앙을 주관하던 자연의 순리 앞에서 인간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한 해의 결실을 안전하게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정서가 깔려 있습니다.
사회(Society): 무력한 인간들이 엉성한 초막(스카)에 함께 동거하며 가족과 이웃, 민족이 하나로 결속되어 사랑으로 협력하는 공동운명체임을 다짐하는 기쁨의 축제(Feast of Joy)입니다.
전도서 낭독과 '심하트 토라'의 최종 결론
전도서 묵상: 백성들은 축제 기간에 전도서를 낭독하며 세상 모든 부귀영화와 인간의 노력이 결국 '헛되고 헛되다'는 허망함을 달래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는 것만이 인간의 본분"이라는 가치를 재확인했습니다.
심하트 토라(율법의 기쁨): 절기 마지막 날에는 1년간의 성경 통독 주기를 마치고 새 주기를 시작하면서, 성경 두루마리(토라)를 가슴에 안고 기쁨의 춤을 추는 예식을 행했습니다. 손가락으로 직접 성경을 가리키는 불경을 피하기 위해 은 지시봉을 사용해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법을 철저히 훈육했습니다.
종말론적 예표와 성도의 소망
느헤미야의 종교 개혁(느 8장)으로 온전히 회복되었던 초막절은 요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이 "목마른 자는 내게로 오라"고 외치신 생수의 기별로 이어집니다.
최종적으로는 요한계시록 7장의 구원받은 큰 무리가 손에 승리의 종려 가지를 들고 하늘 초막절을 지키는 장면과, 계시록 21장의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 정착하여 캠핑하듯 동거하는 영원한 천국 생활의 실체(Antitype)로 완성될 것입니다. 성도들은 마음의 초막에 주님을 모시고 이 광야 같은 세상을 소망 중에 걸어가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