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를 적시는 다양한 자연현상들
강수(降水, Precipitation)
강수는 대기의 상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출처: (cc) Ozzy Delaney at Flickr.com>
빗방울 그림으로 가장 유명한 분이 김창열 화백이다. 그의 그림을 보면 빗방울과 빗방울의 그림자, 그리고 빛이 너무 잘 어울린다. 빗방울의 모양도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유선형의 둥근 모양이다. 그런데 빗방울은 정말 김화백의 그림 같은 모양일까?
빗방울은 크기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크기가 1mm 이하인 경우 빗방울은 동그란 구형이다. 직경이 2mm보다 커지면 햄버거처럼 납작한 타원형이 된다. 그러니까 실제의 빗방울은 위아래가 납작한, 찌그러진 구형인 것이다. 이것은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중력과 대기 마찰력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프랑스 액스마르세유 대학 연구팀이 초고속카메라로 빗방울의 모양을 촬영했다. 떨어지는 빗방울은 공기의 저항을 받으면서 점차 납작해졌다. 그렇게 점점 넓고 얇아지다가 공기의 저항을 이기지 못하면 불룩 솟아오르며 부서지는 것이었다.
A: 빗방울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유선형이 아니다. B: 아주 작은 빗방울은 구형에 가깝다. C: 빗방울이 커지면 햄버거처럼 납작해진다. D: 크기가 커지면서 공기의 저항으로 형태가 불안정해진다. E: 5㎜가 넘으면 부서진다. <출처: (cc) Pbroks13 at Wikimedia.org>
강수의 정의
강수란 수증기가 응결하여 비나 눈처럼 수적(水滴) 혹은 빙정(氷晶)이 되어 지표면으로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넓은 의미로 보면 지표면에서 응결한 이슬이나 서리도 강수라 할 수 있다. 보통 일기(日氣)라 함은 주로 강수 현상과 구름 및 하늘의 상태를 말한다. 강수는 구름 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대기의 상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강수의 유형과 상태를 관측하면 대기의 상태를 알아낼 수 있다.
강수의 원인과 분류
공기 중의 수증기의 응결에 의하여 물이나 얼음입자들이 합쳐져 구름이나 안개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만으로 강수 현상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구름이 강수의 근원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구름은 강수 현상을 보이지 않는다. 강수가 일어나려면 응결 외에 다른 어떤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구름입자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흡수성을 가진 응결핵이 필요하다. 여기에 상이한 수증기압의 물이나 얼음들이 있어야 한다. 대기의 상승작용도 있어야 한다. 크기가 다른 구름입자가 수직 운동을 하면서 충돌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러한 조건들이 만족되면 수적이나 빙정이 성장하여 비가 된다. 이것은 상승기류에 의해 저지당하거나, 대기 중에서 증발하지 않는 한 지표면에 떨어진다. 이것을 우리는 강수라고 부른다.
서리도 넓은 의미에서 강수에 속한다. <출처: (cc) Markrosenrosen at Wikimedia.org>
비가 오기 위해서는 그 지역에 습한 공기가 끊임없이 유입되어 상승하여야 한다. 저기압이나 전선이 많은 비를 뿌리는 것은 강한 수렴 및 상승기류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강수는 상승기류의 영향을 받는데 통상 3가지 종류로 나뉜다.
첫째, 대류성 강수다. 하층의 공기가 주위보다 강하게 가열되면 불안정해진다. 이 공기는 수직으로 상승하여 비구름을 만들고 비를 내린다. 여름철에 내리는 소나기가 대표적이다. 다음으로 지형성 강수가 있다. 공기가 산맥을 강제적으로 상승할 때 만들어진 구름에서 비가 내린다. 상승하는 공기덩이가 습기를 많이 포함하고 있을수록 많은 비가 내린다. 마지막으로 수렴성 강수가 있다. 바람이 여러 방향에서 저기압의 중심을 향해 불 경우이다. 또 온도가 다른 공기가 전선에서 수렴할 때도 있다. 이럴 때 상승기류가 생겨서 구름과 강수를 보인다.
국지성 소나기가 내리는 모습(미국 모하비 사막) <출처: (cc) Jessie Eastland at Wikimedia.org>
빗방울의 성장
빗방울의 성장 이론은 따뜻한 구름(Warm Cloud) 이론과 찬 구름(Cold Cloud) 이론의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앞의 이론을 보면, 따뜻한 구름에서 구름입자를 빗방울로 성장시키는 주요 메커니즘은 병합과정(Coalescence Process)이다. 이 이론은 보웬과 랭뮤어(Bowen and Langmuir)에 의해 제안되었다.
대기 중에서 다양한 크기와 형태를 갖는 응결핵들은 용질효과1)로 인해, 매우 다양한 크기의 구름입자들을 만들어낸다. 다른 크기의 구름입자들이 같은 구름 속에 있을 때, 각각의 구름입자들은 그것의 크기에 따라 다른 낙하속도를 가진다. 예를 들어 구름입자의 직경이 0.001mm이면, 종말속도(Fall Velocity)는 0.00004 m/s이다. 그러나 직경이 5mm로 큰 경우 낙하속도는 8.9m/s에 이른다. 직경이 1mm 정도로 정상적인 크기를 가지는 경우 낙하속도는 0.076m/s이다.
구름 속에서 크기가 다른 물방울들이 각기 다른 속도로 떨어질 때, 물방울들 사이에는 충돌이 일어난다. 예를 들면 큰 물방울들은 떨어질 때 병합과정에 의해서 더 작은 물방울들을 포착한다(아래 그림 참조). 작은 물방울들이 큰 물방울의 앞부분에 충돌하면서 병합되는 충돌포착(Collision Capture)이 일어나는 것이다. 게다가 작은 물방울들이 큰 물방울의 뒷부분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후류포착(Wake Capture)이 생기기도 한다. 열대지방에서는 대부분의 구름들이 빙결고도(Freezing Level) 이상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병합과정이 가장 중요한 강수과정이 된다.
빗방울은 작은 구름입자들이 빗방울의 앞부분과 충돌하여 일어나는 충돌포착이나, 빗방울 주위의 기류에 의해 뒷부분으로 유인되는 후류포착을 통하여, 구름입자들을 병합함으로써 커진다. <출처: 케이웨더>
두 번째 이론은 찬 구름(Cold Cloud)에 의한 강수과정을 설명한다(아래 그림 참조). 지구상의 강수의 대부분은 빙결고도 부근에서 발달하여 더 차가운 공기가 있는 위쪽으로 뻗어 있는 구름에서 내린다. 이렇게 기온이 낮은 환경에서는 빙정과 액체인 물방울이 공존한다. 그러기에 빗방울의 생성과정이 열대지방과 다르게 일어난다.
빙정과 물방울은 -5℃~-30℃의 온도에서도 구름 속에서 공존한다. 그런데 빙정과 물방울은 같은 온도에 있어도 수증기압이 매우 다르다. 빙정은 고체이므로 개개의 분자들이 물방울의 분자들보다 운동성이 작다. 더 단단히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방울 분자들의 운동성은 빙정보다 크기 때문에 탈출하기가 더 쉽다.
같은 온도에서 얼음과 물 사이의 수증기압차는 -12℃에서 약 0.3hPa로 최대가 된다. 이 정도의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물방울이 증발하는 환경 속에서 빙정의 성장을 설명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물방울에 대한 상대습도가 85%일 때에도, 빙정에 대해서는 포화상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강수의 생성 과정은 열대 지방과 중위도 지방이 서로 다르다.
그러므로 빙정에 대해 이미 포화가 된 환경에서 물방울들이 증발할 때, 빙정은 물방울에서 증발된 수증기를 흡착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다. 빙정이 물방울보다 작은 증발률과 수증기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와 같은 빗방울 형성과정을 빙정설(Ice Crystal Theory)이라 한다. 이 과정을 제안한 과학자들의 이름을 따서 베르게론-핀다이젠(Bergeron-Findeisen) 강수과정이라고도 부른다. 초기에 이 과정은 빙정과 과냉각 물방울의 공존을 가정하였다. 물방울에 비해 낮은 수증기압과 증발률을 가진 빙정이 물방울의 증발로 충분히 성장하면, 하층대기로 떨어지면서 따뜻한 공기와 만난다. 이 때 큰 빙정들은 녹아 병합과정으로 성장하면서 빗방울을 형성한다. 이러한 과정은 중위도 지방의 주된 강수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 자연환경에서 이론적인 병합과정이나 빙정과정으로 큰 비가 내리지는 못한다. 많은 비가 내리기 위해서는 강수형성과정이 매우 빨리 일어나야만 한다. 여러 가지 강수형성과정들이 함께 작용하여 소나기를 만드는 것이다.
빙결고도 이상에서 빙정과 액체인 물방울은 공존할 수 있다. 빙정의 증발률은 순수한 물방울보다 작으므로, 순수한 물방울에 대해 상대습도가 90% 이하인 환경에서도 빙정은 성장할 수 있다. <출처: 케이웨더>
강수의 종류
강수는 응결되었을 때의 온도가 대기 중으로 낙하하는 도중에 받는 조건에 따라서 여러 가지 종류로 변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비(Rain)다. 비는 연속적인 것과 단속적인 것, 그리고 강도 변화가 심한 것 등으로 나뉜다. 주로 온난전선 전면에서 만들어지는 고층운이나 난층운에서 연속적이거나 단속적인 비가 내린다.
안정한 기층에서 만들어진 두터운 층운에서 내리는 안개비는 전형적인 연속적 비라 할 수 있다. 안개비의 수적은 매우 작고, 심한 시정장애(視程障碍)를 보인다. 강도 변화가 심한 비는 불안정한 기층에서 만들어지는 적란운에서 내린다. 땅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크기는 상승기류의 강도, 낙하 중의 증발량, 공기와의 마찰력 등에 의하여 결정된다. 빗방울의 평균 직경은 안개비 0.2㎜, 보통의 비는 1㎜, 우박은 5㎜ 정도이다.
강수의 종류 중에 눈(Snow)이 있다. 0℃ 이하의 온도에서 수증기가 응결해서 생기는 얼음 결정이다. 결정의 기본적인 형은 육각형이며 온도와 응결의 속도차이로 여러 가지 모양을 보인다. 큰 설편(雪片)은 0℃보다 약간 낮은 온도 때 크고 작은 결정들이 서로 붙어서 된 것들이다. 아주 저온일 때에는 공기가 수증기를 조금밖에 함유하고 있지 않으므로 눈이 와도 소량이며 가루눈이 된다.
얼음싸라기(Ice Pellets)는 직경이 5㎜ 또는 그 이하인 작고 투명하거나 반투명인 얼음알갱이다. <출처: (cc) en:User:Ivanip at Wikimedia.org>
세 번째로 우박(Hail)이 있다. 얼음의 입자 또는 덩어리로 직경은 5㎜ 정도이다. 한 개씩 따로따로 올 때도 있으나 몇 개가 붙어서 불규칙한 덩어리로 내릴 때도 있다. 심한 상승기류 속에서 생긴다. 보통 강한 뇌우나, 장시간 계속되는 뇌우 때 내리고 기온이 낮은 경우에는 잘 생기지 않는다.
어는비(Freezing Rain)는 지면이나 지물에 충돌했을 때 결빙하는 성질을 갖는 비를 말한다. 어는비는 순식간에 도로와 나무, 전신주의 전선 위에 비얼음(Glaze)을 만들므로 교통사고, 정전 등 많은 피해를 일으킨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으나 산악지역에서 가끔 발생한다. 어는비가 내리기 위해서는 지면의 온도가 0℃ 이하이고, 그 위의 대기의 온도가 0℃보다 높아야 한다. 즉 상층대기에서는 수증기가 응결하여 물방울이 형성될 수 있을 만큼 따뜻하고, 지표 부근에서는 빗방울이 얼 수 있도록 지표 역전층2)이 형성되어야 한다.
독특한 강수 종류로 얼음싸라기(Ice Pellets)가 있다. 얼음싸라기는 직경이 5㎜ 또는 그 이하인 작고 투명하거나 반투명인 얼음알갱이다. 얼음싸라기가 형성되기 위한 적당한 종관상태3)는 저기압계가 통과할 때 만들어진다. 저기압의 후면에서 남쪽으로 움직이는 찬 공기의 얇은 표면층이 남쪽에서부터 올라오는 따뜻한 공기를 위로 상승시킨다. 이로 인해 상층 역전층이 형성되면 얼음싸라기가 만들어진다.
어는비는 순식간에 도로와 나무, 전신주의 전선 위에 비얼음(Glaze)을 만든다. <출처: (cc) Famartin at Wikimedia.org>
비의 경제적 가치
기상청은 2015년 3월 31일 전국에 내린 비의 경제적 가치를 약 2,500억 원 가량으로 추산하였다. 항목별 경제적 가치를 계산하면, 강수 발생 후 전국 평균 미세먼지 농도가 68.3㎍/㎥ 정도 감소했다. 대기질 개선 효과가 약 2,300억 원 정도였다. 다음으로 241,058가구가 가뭄피해에서 벗어나 약 70억 원의 이득효과가 발생했다. 수자원 확보와 산불예방 측면 이익이 약 32.7억 원과 3.0억 원으로 평가되었다.
기상청은 농작물·나무·식물의 성장 등 경제적 가치를 산정하기 어려운 항목과, 극심한 가뭄 중 많은 비가 내리는 경우는 그 경제적 효과가 훨씬 클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히고 있다. 2015년 비의 경제적 가치는 2009년의 분석과 비슷하다. 2009년 4월 20일과 21일 이틀간 내렸던 비의 경제적 가치를 기상청은 약 4,600억 원 가량으로 발표했었다.
비는 눈에 보이는 효과 외에 사람들의 심리에 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매우 크다. 인도의 경전인 ‘아트하르바 베다’는 비에 여러 가지 치유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프랑스의 브르타뉴 서부지역에서는 폭우가 시작되면 류머티즘 환자들이 옷을 벗고 비를 맞는다. 성 라우렌티우스의 날에 내리는 비는 화상에 탁월한 치유 효과가 있는 것으로 민간전승에 전해진다.
프랑스 서부의 디낭에서는 결혼식 날 비가 내리면 신부가 장차 흘릴 눈물이 그날 다 흐른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평생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마르세유에서는 결혼식 날 비가 내리면 그 부부가 부자가 된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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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반기성 | 케이웨더 기후산업연구소장
연세대 천문기상학과 및 대학원 졸업하고, 공군 기상전대장과 한국기상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케이웨더 기후산업연구소장이며, 조선대학교 대기과학과 겸임교수로 있다. 연세대에도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워렌버핏이 날씨시장으로 온 까닭은?], [날씨가 바꾼 서프라이징 세계사] 등 15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