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Conscience 良知
양심(良心)은 자기 행위에 대하여 선과 악의 가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감각이다. 의식이 내적으로 통일되어 있어야 양심이 발현한다. 그러니까 양심은 내면화한 도덕적 가치에 근거하여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도덕적 의식이다. 양심은 개인의 주관적 가치에 근거한다. 모든 사람은 언행과 사유를 하면서 그것이 양심적인지 양심적이지 않은지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판단한다. 먼저 도덕적 감각으로 대상을 파악한 다음 이성적 논리로 분석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양심의 판단을 내린다. 물론 오래 숙고하는 양심적 판단도 있으나 양심은 대체로 즉각적으로 결정된다. 계급적 양심, 민족적 양심, 인류적 양심 등 집단적 양심도 있지만, 양심은 일차적으로 개인의 문제다. 집단적 양심은 지성/오성과 이성의 분석 그리고 그 집단의 역사와 문화에 의해서 판별된다. 양심의 주체(subject, 主體)는 개인이고 집단의 양심은 통일된 개인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 언행에 대하여 선과 악, 정의와 부당, 참과 거짓, 좋음과 나쁨을 판별하고 옳은 결정을 하도록 명령하는 내적 의식이 있다. 양심의 기준은 바뀔 수 있지만 내적 의식으로서의 양심은 불변한다. 양심의 어원은 한자어 ‘좋고 진실한 양(良)의 마음(心)’이다. 따라서 한자문화권에서 양심과 양지(良知)는 인간이 가져야 할 착한 마음이다. 서구어 양심의 어원은 라틴어 ‘함께’인 con과 ‘안다(知)’인 scire가 결합한 현재형 분사 conscire의 명사형 conscientia다. 고대 그리스어의 양심 역시 ‘함께’인 συν과 ‘안다, 보다’인 οἶδα가 결합한 명사형 ξύνοιδᾰ(xúnoida)이다. 시간이 가면서 ‘함께(com, con)’는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마음’이라는 의미가 되었다. 그래서 양심은 ‘나와 너와 우리가 함께 하고 함께 아는’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고대 기독교에서 양심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내가 아는 것’이라는 뜻이다.
양심의 목표는 선(善)을 행하고 악을 제거하며, 정의롭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고 양심의 목적은 인간 종이 가진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의식이 없는 동물은 양심이 없다. 양심은 오로지 인간의 문제다. 그리고 양심은 의식에서 비롯하는 앎(知)의 문제다.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하면 양심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가치를 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이 물음은 ‘양심은 생래적이고 선험적인 것인가, 후천적이고 경험적인 것인가?’로 바꾸어 볼 수 있다. 첫째,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양심을 가지고 있다는 관점은 양심의 선험성과 보편성을 말하고 둘째, 인간은 교육과 학습을 통해서 양심을 계발한다는 관점은 양심의 후천성과 경험성을 말한다. 사회학, 심리학, 법은 양심을 교육과 학습을 통해서 내면화한 가치체계로 간주하고 종교학, 윤리학, 인류학에서는 양심을 선천적인 가치체계로 간주한다.
양심을 선(善)으로 해석한 것은 고대 중국의 사상가들이다.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했고,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했으며, 고자는 성무선악설을 주장했다. 실제로 양심은 선악(善惡)의 문제로 환원한다. 선은 ‘올바름’, ‘좋은 것’, ‘착함’, ‘유익’, ‘행복’, ‘편안’ 등의 의미가 있으며 ‘악’, ‘나쁜 것’의 반대 개념이다. 인도유럽어족에서 선은 ‘적합하다’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गध्य(gádhya)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선은 ‘적합하면서 가치 있는 것’이므로 관점에 따라서 선의 개념이 다르다. 어떤 상황에서는 선한 것이 다른 상황에서는 악일 수도 있다. 그래서 같은 행위에 대하여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하고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거짓말은 옳지 않은 악이다. 하지만 죽어가는 사람에게 ‘당신은 죽지 않는다’라고 거짓말하는 것이 선일 수도 있다. 선과 악, 정의와 부정의, 참과 거짓은 상대적일 수 있는 것이다.
칸트는 ‘모든 인간은 선한 도덕률에 따라야 한다’는 정언명령으로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짓말을 하지 마라’가 선이라면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그 명령과 준칙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선이다. 이에 대하여 헤겔은 칸트의 도덕률은 추상적이고 보편적이어서 진정한 도덕으로 부족하다고 말한다. 헤겔은, 진정한 선은 주관적이고 개별적인 도덕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인륜(Sittlichkeit)에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헤겔의 말은 개인적 양심과 사회적 제도가 통일되고, ‘나와 너와 우리’가 모두 동의하는 공동체의 인륜적 양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양심은 외적 강제를 받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양심은 오로지 내적 자율의 영역이다. 하지만 양심의 근거와 원리는 외적 강제가 작용한다. 그러므로 양심의 바탕은 같지만, 양심의 실천은 시대, 상황, 민족, 문화권,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다.★(김승환)
*참고문헌 G.W.F.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Berlin, 1821.
*참조 <경험>, <관습>, <도>, <도덕>, <민족>, <보편성>, <선>, <성선설>, <성악설>, <악>, <양심[헤겔]>, <양지양능치양지>, <윤리>, <이성>, <이성[칸트]>, <인륜[헤겔]>, <정언명령>, <주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