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37번째 우주 비행이다. 어제 친구들을 잠시 만나 회포를 푸느라 아직 머리가 어지러운 것은 비밀로 하여야겠다. 지금은 2030년, 닐 암스트롱이 달을 다녀온지 무려 61년째이자 그가 출생한지 100년째 되는 날이다. 우주선을 타기 전 오늘 우주 비행을 맡게 됨을 영광으로 생각하면서 친구들이 그를 기린다며 내 주머니에 챙겨 넣은 불량식품 아폴로를 봉지채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툭툭툭 하나하나 만져지는 것이 오늘 우주비행은 빈틈이 없을 것만 같다. 좋은 예감을 느끼며 리프트와 아레나9호 통로 앞에 놓인 우주 헬멧을 쓰는 것을 마지막으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우주선 안으로 들어갔다.
인간이 첫 우주를 떠날 때와는 달리 지금의 우주선은 매우 첨단화 되고 간소화 되어 있었는데 나는 돈 많은 손님들의 우주여행을 돕는다. 2002년 TM-34 우주선이 총 발사하여 드는 비용은 2000만 달러(약 217억원)가 들었겠지만 최근 비용이 매우 극감되어 200만 달러(21억원)만 지불하면 갈 수가 있게 되었다. 물론 일반 사람들은 엄두를 못 낼 비용이지만 돈 좀 있다는 소위 갑부들은 우주여행을 즐기기 위해 내 우주선 아레나 9호에 탑승한다. 오늘은 중국인 갑부 아들로 보이는 요우시지 라는 사람과 스리랑카 왕국의 셋째 아들인 마노룬준 과의 비행이다. 그들은 다소 경직된 얼굴로 나에게 각자의 나랏말로 인사를 하였고 나 역시 ‘좋은 여행이 될 거야’ 라고 말해 주었다.
매번 가는 여행이라 어렵지 않지만 긴장이 되었는데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주 비행사 능력제. 우주비행이 흔치 않던 시절엔 우주비행사들이 귀해 이런 대우를 받지 않았겠지만(그리고 우주비행이 잦지 않아서 능력제를 시행할 여유도 없었겠지만) 지금은 제대로 된 훈련만 마치면 충분히 우주비행을 할 수 있게 된 시대라 능력제를 통해 우수 인원을 선별하게 되었다. 능력제는 점수로 표기 되는데 실시간으로 우주선 내 화면 좌측상단에 뜨게 된다. 나의 한국인사가 괜찮았는지 탑승자가 준 점수가 0점에서 200점으로 바뀌었다. ‘음~ 시작이 나쁘지 않아’ 라는 생각과 함께 우주선 발사 버튼의 커버를 올리고 카운트다운을 기다렸다.
10.. 9.. 8.. 7.. 6.. 5.. 4.. 3.. 2.. 1.. 카운트 후 점화 라는 소리에 나는 발사 버튼은 누른 상태로 반바퀴 돌려 고정 시켰다. 리프트 오프와 함께 아레나 9호는 굉음을 내며 지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내 발사 타이밍 점수는 4900점으로 200점에서 5100점으로 바뀌었다. ‘좋은 느낌인데~’ 라는 생각과 함께 오른쪽 고도 표기판에 시선을 집중했다. 중간권과 열권 사이인 중간권 계면에서 1단 로켓을 분리 하여야 하는데 정확하게 지구에서부터 83km 되는 지점이었다. 난 빨간 버튼에 손가락을 올리고 가속되어 돌고 있는 고도 표기판에 맞춰 딸깍- 소리와 함께 눌렀다. 다행히 81km지점에서 1단 로켓이 분리가 되었고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연달아 돌아가는 다른 고도 표기판을 보고 버튼을 눌렀다. 109km. 열권을 벗어나는 지점에 맞춰 2단 로켓이 분리되었다. 아레나 9호는 2단 로켓분리에 이어 태양전지 판넬 전개를 시작하였고 원뿔형 모양의 날개가 양쪽으로 쭉 펴졌다. ‘완료’ 라는 소리와 함께 뒤쪽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그들은 처음 느껴보는 무중력 상태에 신나하면서 몸을 가누지 못했고 그런 승객들의 모습을 보니 내 기분에도 뜨고 있는 것 같았다.
13800점. 난 다시 점수로 눈을 돌렸다. 내가 이렇게 점수에 집착하는 이유는 20000점을 달성하지 못하면 달에 가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직 안정권에서는 조금 부족함 점수. 이번엔 달에 갈 수 없을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으로 휩싸였다. 왼쪽 손잡이에 손을 가볍게 쥐고 오른쪽 손잡이에 손바닥을 올려서 눌렀다. 예민한 도킹시간. 왼쪽 손잡이는 수직과 수평을 조절하는 부분인데 점점 작아지는 세가지의 동그란 지진계 표시기를 정중앙 부분에 맞춰야 한다. 그리고 오른쪽 손잡이는 도킹 접합부의 연결고리 부분인데 적당한 속도의 회전을 맞추어야 가장 완벽한 도킹이 완료된다.
먼저 왼손을 꽉 잡지 않고 동그란 모양이 생기게 움켜쥐어 수직수평 손잡이에 고정시켰다. 팔꿈치가 90도를 넘지 않도록 팔을 유지하고 이번엔 오른쪽 회전도킹 손잡이 윗부분을 오른손바닥 가운데부분으로 누르고 대기하였다. 곧 선체에서 ‘도킹접합 시간입니다. 도킹을 시작하여 주십시오.’ 라는 안내에 맞춰 오른손바닥을 시계방향으로 돌렸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속도가 빨라지거나 느려지면 이번 달 여행은 무산이 되리라. 무산 되리라. 속으로 실수하지 않도록 계속 되뇌며 외부 카메라로 촬영되는 도킹 접합부에 집중했다.
덜컹- 소리와 함께 선체가 흔들렸다. 수직수평계가 왼쪽으로 벗어남을 직감한 나는 왼손을 오른쪽으로 눕히는 대신 몸을 오른쪽으로 옮겨 미세한 정도의 양으로 선체를 이동시켰고 나의 전략이 유효하였는지 덜컹거리던 선체는 안정을 되찾고 회전하며 도킹이 되고 있었다. 양손을 도킹을 한다고 움직일 수 없었는데 오른쪽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려 눈이 따가웠고 식은땀은 눈물이 되어 다시 흘렀다. 5초 후 ‘도킹완료’ 라는 안내음과 함께 양손은 자유를 얻었고 땀을 닦으며 점수판을 확인하였다.
19900점. 이 무슨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인가. 홈쇼핑도 아니고 100점이 모자라다니. 분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에 난 순순히 달로 가는 우주선에서 이동하여 지구로 복귀하는 우주선으로 갈아탔다. 우주선 발사의 성대한 쇼와는 달리 귀환은 영웅을 영접하는 의식과 같다. 귀환선으로 갈아 탄 나는 마음속으로 가볍게 기도를 하고 카운트를 세었다.
10.. 9.. 8.. ... 2.. 1.. 리프트 오프 와 함께 귀환선의 발사가 시작되었다. “대기권 돌입은 35초 후. 고도 140km로 돌입각도를 수정하고 지원선을 떼어낸다.“ 휴스턴에서 무전이 날라 왔다. 나는 ‘라져’ 라는 대답과 함께 지원선 분리를 준비했다. 지구의 둥근 지표면에 수직으로 하강하여야 하므로 재돌입 각도를 수정하였다. 그리고 지원선 분리. 이제 내가 조종할 부분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내 손을 떠났고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선내에서 안내 멘트가 나온다.
대기권 돌입개시. 외벽온도 상승! 선내 흔들림에 주의하십시오.
나는 눈을 감았다.
최근 2024년 우주비행사가 네 명이 죽었던 일이 있었다. 사유는 파라슈트 전개실패. 쉽게 말하자면 낙하산이 엉켜서 펴지지 않았다는 것. 선체 내의 결함이 없었지만 파라슈트가 정확하게 접히지 않아서 전개가 실패했던 것이다. 잦은 우주 비행으로 인해 기계로 접는 것이 새로 도입되었고 수십번의 시뮬레이션은 성공하여 적용하였으나 실전에서는 실패로 끝이 났다. 그 이후부터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다시 사람이 접게 되었고 접는 사람 중에 한명은 우주비행사의 가족이 포함되기로 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다행히 사고가 없었다.
더 이상의 사고가 없음에도 내가 기도하는 이유는 덤벙대는 내 여동생이 이번 파라슈트 접기에 참여하였기 때문이다. 걸핏하면 준비물을 빼먹고 물건을 잃어버려 내가 일일이 챙겨주곤 하였는데 한때는 빼빼로데이 때 좋아하는 친구한테 주고 싶다며 녹차빼빼로를 만들어서 선물하였는데 그날 밤 돌아온 대답은 No. 나중에 알고 보니 나에게 줄려고 했던 와사비빼빼로를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에게 주어서였고 나는 그때 동네가 떠나가도록 낄낄거리면서 웃었고 내가 위로 해 준다며 다음날 점심을 초밥집에서 사먹였는데. ‘아.. 내가 왜 그랬지?’ 후회해도 이제 늦었으리라. 무사히 도착하면 맛있는 음식 많이 사줘야지 다짐을 하며 눈을 뜨고 선체 내 알림을 기다렸다.
파라슈트 전개 중.. 첫 번째 파라슈트 전개성공. 두 번째 파라슈트 전개성공. 세 번째 파라슈트 전개지연.
안내와 함께 선체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낙하산이 무게를 못 이기며 흔들렸는데 여기서 빙글빙글 돌기라도 하면 나는 그때의 벌을 받은 것이야 하며 자책 중에 안내멘트가 들렸다.
세 번째 파라슈트 전개완료. 파라슈트 전개성공. 내열 실드 방출 에어백 정상가동! 귀환선 무사 착지!
난 헬멧을 우주선에 벗어두고 우주선 문을 열고 나왔다. 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과 함께 땅 냄새가 맡아졌다. 이렇게 땅 냄새가 짙었나? 라는 생각과 함께 친구들이 날 마중 나왔다. 난 친구들 어깨에 팔을 맡기고 걸었다. 오랜만의 중력이라 한걸음 떼기조차 힘들었다. 뒤에 있던 녀석이 내 등을 때리며 말 하려고 하는데 내가 버럭 화를 냈다.
“야! 근육파열 돼. 여자 친구한테 안기는 것도 위험해서 일부러 안 불렀는데 뭐 하는 거야!”
내 역정에 친구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미친놈. 여자 친구도 없는게 지랄은. 피시방이나 가자.”
(8주차 글쓰기 주제/ 당신은 우주 비행사다. 당신의 완벽한 하루를 설명하라)
첫댓글 와우~ 바쁜와중에 언제 또 이런 글을ㅋㅋ우주인프로젝트 노래할 때도 글 생각하더니 우주이야기~ 꿀벌이야기때처럼 넘 흥미롭게 읽었어요 만나면 또 질문폭발하겠어요~
인류가 달에 갔다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 처럼 모임에서 우주 이야기를 쓴 것만으로 의미가 있는 작품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