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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 곳간 스크랩 서울에서 목포까지-법성포구와 하사염전
서화주 추천 0 조회 120 13.03.31 10:0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목적지가 목포라서 그랬을까?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무슨 망령에 홀린 듯 내 입에서 떠나지 않은 노래가 있었으니 바로 ‘목포는 항구다’였다. 물론 나는 이 흘러간 노래를 자신 있게 부를 수 있을 만큼 전곡을 다 아는 것이 아니라, 귀동냥으로 듣고 부를 수 있는 부분은 오직 한 소절 ‘목포는 항구다’라는 이 대목이다. 그러니 내 노래는 누가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종일이라도 같은 소절만 불러대는 고장 난 레코드판과 무엇이 다르랴. 허나 몇 번 아니 몇 수십 번은 족히 되뇌었지만 중간에 경유한 곳이 많아서일까? 어둠이 깊어지고서야 목포 북 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대체 오늘 하루 내 입은 얼마나 고장이 심각한 레코드판이었나!


짐 없는 삶이 있을까. 삶은 곧 짐이다.

목포항여객선터미널 부두에 서서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을 구경하는 일이 새삼스럽다. 우연일까? 아무 것도 없는, 빈손으로 배를 타고 내리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젊은 아기엄마도 손이 아니면 머리나 등에 모두 한두 개쯤은 짐을 지고 있다. 그렇다면 짐은 나이에 반비례하는 것인가. 젊은 사람일수록 짐이 많고 나이든 노인은 짐이 작다. 가만히 보니 저 풍경이야말로 얼마나 공평한 삶의 진리이고 순서인가.

 

 

한참 후 사람들은 육지와 여객선 두 공간으로 자리를 바꿔 떠나고 소란했던 터미널이 잠시 한가해지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또 하나 둘 모여드는 사람들, 포구란 그런 곳이다. 떠나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오는 사람이 있는 법. 바다가 출발점인지 육지가 출발점인지 그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때에 따라 시발점도 되고 종착점도 되는, 그러니까 시발점과 종착점은 언제나 같은 의미가 아닌가.


여객선터미널에 서서 저마다 짐을 지고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놀란 짐승처럼 놓친 시간을 떠올린다. 그렇게 눈구경만 하고 있을 시간인가? 대합실 안으로 여객선 노선과 운행시간표를 확인하러 가는 내 등에도 무거운 배낭이 있지 않은가! 아차, 그러고 보니 그때까지 딱히 어디로 가야겠다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홍도, 흑산도, 가거도, 압해도, 비금도까지는 들어서 귀에 익은 지명이지만,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임자도, 자은도, 도초도, 우의도, 하의도, 장산도, 도초도, 관매도..... 모두 어디에 붙은 섬인지. 그렇다면 아직도 밟아보지 못한 이 나라 땅이 얼마며 앞으로 가야할 곳은 대체 얼마나 넓고 무한한가? 나는 ‘압해도’로 가는 여객선 시간표를 다시 한번 확인했지만 이미 막 배조차 떠나고 없다. 그러니 내일을 가다릴 수밖에. 늘 이 모양이다. 딴청부리다 때를 놓치는. 아쉽지만 다음날 목포 일대를 돌아보고 올라가면서 몇 군데 들러보는 것으로 대신 할 수밖에 없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목포 유달산 아래 신안비취호텔에서 첫 아침을 맞았을 때, 나는 눈을 의심했었다. 창 밖으로 야단맞은 아이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듯한 크고 작은 남도의 섬들, 남농미술관보다, 어느 걸진 소리꾼의 창보다, 나를 가슴 뛰게 한 것은 호텔 룸에서 커튼을 젖히고 보는 새벽바다였다. 이번 여행은 달라진 비취호텔 주차장에서 만개한 벚꽃을 배경으로 찍은 유달산과 봄 바다를 재회한 것으로 위로할 수밖에.


이른 아침, 목포 역 앞의 해장국집 아저씨는 현실정치에 대한 의식 하나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는 소신을 가진 지식인이었으며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은 사고를 가진 듯. 보수 세력을 비판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개혁파를 옹호하지도 않은 그래서 그의 이야기들은 별 거부감이 없었을까. 아침부터 해장국집 아저씨가 여자 손님을 앞에 두고 정치이야기에 침을 튀기는 것을 보니 내가 전라도에 온 것은 분명하렸다! 


무안을 지나 얼만 안가면 함평이다. 마침 장날이라 사람들이 많아서 어쩌면 적막했을 시골 읍이 시끌벅적 활기차다. 모처럼 시골 장터를 돌아보는 기분이 그만이다. 이곳 장은 특히 어물전이 풍성했는데 냉동이긴 했으나 예전 동해에서 보던 상어를 비롯해 대구, 명태, 오징어등 수산물이 풍성하다. 함평 사람들은 생선을 즐겨먹나 보다. 잡화점에는 고무신이나 참빗이 눈에 뜨이고, 쇠를 녹여 호미를 만드는 대장간의 모습도 정겹다. 장터에서 만나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들, 어찌 달콤 쌉싸름 하지 않으랴.


또한 함평은 나비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함평읍을 굽어보고 있는 작은 동산이나 개천 심지어는 보리밭까지 나비 문양을 새기고 있었다. 개천을 따라 도처에 나비가 자연스럽게 서식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가 하면, 만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여리고 순박한지. 오래된 느티나무 숲, 마을 이름을 따 그곳을 대동 숲이라 한다고. 역시 오래된 것들은 다르다. 나무마다 영혼이 느껴지는 걸 보니.

 

 

놀고먹어서 백수인가! 이정표는 백수를 가리키고 있었다. 가다가 바다로 난 길이 있어 내려서니 외로운 포구다. 바위에 까맣게 붙어있는 홍합과 굴, 그리고 온통 소라 밭. 허겁지겁 소라를 주워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다시 방생(?). 소라를 줍는 동안 토닥토닥 등을 적시던 빗물.


염산면, 그렇게 큰 소금밭을 본 적이 없었다. 추적추적 비 내리고 끝이 보이지 않은 소금평야에 서 있는 동안 오래된 검고 단단한 맛의 시간기둥들, 때가 때이니 만큼 날씨와 계절이 소금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나는 충분히 짠맛을 느꼈다. 소금밭에서 태어난 내 생은 어느 곳을 돌아 지금 이 길 위에 서 있는지.


하사 가는 길, 너무 예쁘고 공손해 차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가파른 길을 따라 해안가로 내려서는데 뭔가 휙 하니 앞을 스친다. 지나고 난 후에 생각하니 노루다. 그리고 차에 뭔가 세게 부딪히는 소리, 뒤따라오던 노루가 차를 뛰어 넘으려다 지붕에 걸려 나는 소리가 분명했다. 차를 세우고 보니 문틈으로 노루의 털이 묻어있고 발톱자국도 선명하다. 차가 이 정도니 노루 그 녀석의 몸도 성치 않을 것이다. 겁에 질려 숲으로 달아난 노루가 혹 뇌진탕에라도 걸리지 않았는지 걱정스럽다. 아이러니다. 두 마리 노루는 왜 천천히 달리는 차를 피할 수 없었을까?

 

 

법성포구, 얼마나 익숙한 단어인가. 영광 하면 굴비, 굴비 하면 법성포구. 집집마다 상가마다 굴비 외 보이는 것은 없다. 굴비 식당에서 맛본 그 화려한 식탁, 옹성, 숲쟁이, 원불교영산성지를 둘러보았다. 포구를 끼고 그 주변으로 모래미, 구시미, 구시미나루터, 소드랑섬, 작은 소드랑섬 등의 예쁜 이름들이 걸음을 붙잡는다. 언젠가 다시 와야할 내 나라 땅이다. 법성포구를 감싸고 있는 뒷산 능선으로 군데군데 옹성이 남아있고 그 주변으로 느티나무 노목들이 봄맞이 준비를 하고 있다. 늙은 느티나무들이 포구와 폐가를 지키는 곳.


무창포에 들렀다. 사실 알려진 곳은 피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지나는 길이니 한번쯤 둘러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대천도 안면도도 아닌 무창포. 전날 가벼운 태풍을 동반한 비 때문인지 바닷물은 푸르지도 맑지도 않고 그냥 덤덤하면서도 혼탁하다. 맑은 바다를 보고 싶었는데 유감이다. 발밑까지 파도 차 오르는 포장마차에서 고개구이를 곁들인 쭈꾸미볶음을 먹었다. ‘아, 바로 이게 봄맛이야!’ 옆 테이블에서 터지는 미식가들의 탄성을 들으며 나도 배를 채웠다. 알고 보니 쭈꾸미 축제기간이라나! 별 축제도 다 있구나 싶다.

 

 

서해안 고속도로, 불과 몇 시간만에 서울에서 목포까지 한걸음에 내달릴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한번 달려 보시라! 목포는 결코 멀지 않다. 목포뿐 아니라 서울에서 목포 사이에 있는 모든 도시와 벽촌들이 일일생활권으로 묶여 물리적인 거리에 힘입어 마음의 거리까지 좁혀놓은 시대에 살고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 돌아오는 차 속에서도 내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

 

                                                     -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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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포인트***

*목포항: 목포는 항구로 상징되고 있다. 부산 인천 등 훨씬 큰 항구가 있지만 어쨌든 목포는 항구의 상징이 되었다. 개항 1백년을 넘은 목포항은 애환과 낭만의 항구로 사람들에게 색다른 체험을 하게 한다. 현재 목포항에는 24개의 일반 항로와 11개의 보조항로가 개설되어 있다. 제주도와 홍도 흑산도 등으로 가는 관문이며, 신안 등의 섬 주민들에게 물과 삶에 필요한 것들을 실어 나르는 곳이기도 하다.

 

*고하도 :목포시내에서 약 2km 떨어진 남서쪽에 위치한 섬이다. 모양이 꼭 반달 같은 고하도는 목포시의 남쪽 해안을 감싸 안은 듯 서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목포시 달동이지만 도시의 냄새는 전혀 나지 않는다. 동쪽으로는 영산강 하구둑과 마주하고 있고 산맥이 솟은 북쪽 비탈은 병풍바위의 벼랑을 깎아질러 바다 건너 유달산과 마주보고 있다. 고하도은 충무공 이순신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임진왜란때 이충무공이 이 섬을 전략지로 활용하며 왜적의 침투를 막아냈다. 여객선 터미널에서 목포-고하도를 하루 5회 왕복운항하고 있다. 누구나 손쉽게 찾아가서 고하도의 석양을 볼 수 있다.

 

*유달산 : 전라남도 목포시가 간직 하고 있는 목포의 영산, 유달산은 목포8경 중에서도 제1경으로 꼽히는 곳이다. 해발 228미터 밖에 되지 않는 야트막한 산이지만 기암절벽이 제각기 멋을 내고 있어 호남의 개골산(금강산)이란 별칭도 갖고 있는데, 임진왜란 때는 충무공이 군량미를 쌓아둔 것처럼 가장하여 왜적을 속였다는 노적봉을 비롯하여 "목포의 눈물"을 기념한 노래비, 4월 학생의거 기념비와 현충탑등 목포가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던 곳이었나를 증명하는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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