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관 시가 있는 논평 ,8,66 충남 용봉산 석불사을 방문
충남 용봉산에는 석불이 장엄하고 있는데 석불에 대한 관심을 보이려는 의미는 용봉산은 고려 말에 태고 보우 선승의 고향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고려가 멸하고 조선이 건국되면서 고려에 불교적 사찰에 대하여 흔적을 지우려는 자취가 보인 용봉산에 석불 상이다,
용봉산에 석불을 모시는 불교계에게 다시한번 협력이 있기를 바라면서 용봉산은 백제 시대의 불교를 회복하는 의미로 보인다, 용봉산에 우뚝 서있는 석불을 통해서 일본에 불교를 전해주었던 미륵반가상을 참조할 수 있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한 역사성을 심안에 안고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용봉산에 석불을 모시는 불교계가 관심을 가져야 할 따라고 본다,
용봉산을 방문하려고 했는데 용산에 가니 홍성역에는 매진이라고 하여 표를 팔지 않고 있어서 홍성을 방문하는 일을 수정해야 했다, 종각에서 지하철을 타고 천안에서 홍성역에 가려고 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시간이 걸리었다, 그래도 천안에 도착하여 표를 사려고 했는데 매진이었다,
장항선이 매신진이라 약속장소를 수정해야 했다, 지하철을 이용해 순천향대역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용봉산 석불님을 참배할 시간을 수정했다, 용봉산에 거주하고 있는 범상 스님이 순천향대학 역에서 기다리고 있는 용봉산 석불을 모시고 있는 스님에게 미안할 뿐이다,
순천대학역에서 차를 타고 보령에 있는 성주사지에서 제 1회 성주사지 문화 한마당 축제를 거행한다고 하여 축사를 하려고 가는 길이다, 성주사지에서 거행하려고 하는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성주사지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식순을 기다리기 위해 석불사탑이 있는 지역을 순행하면서 백제 시대의 역사를 고찰해보는 기회를 가졌다, 석불사탑은 백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듯이 보였다, 백제의 영혼이여 숨 쉬고 있는 듯이 보인다, 백제의 모습이 보인 탑을 참관하면서 마음에 깃발을 올리는 듯했다,
성주사지에서 풍물 공연이 시작되고 코로나로 인하여 인원에 제악이 있어 보령시청에서 감독관이 나오기도 했다, 철저한 감독이 진행되었다, 식순에 의하여 축사를 하였다, 박제의 역사를 통해 창건된 성주사지를 복원해야 한다고 역설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정유제란 시기에 성주사지가 불에 타 소멸되었다고 말했다,
똑 같은 시기에 불에 탄 불국사가 복원이 되었지만 성부사지는 복원이 되지 못했던 이유는 이 지역에 정치지도자들이 불교관이 없었던 탓도 있기에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성주사지를 복원하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축사를 끝내고 가수들의 노래를 불러 성주사지에 대한 야정을 보이기도 하였다, 시각이 지나서 나는 서울을 홀라가려고 홍성역으로 가려고 길을 떠났다, 홍성에 도착하니 용봉산 석불을 모시고 있는 범상 스님이 만해 한용운의 선대부친이 모서진 묘를 방문하기로 했다,
홍주고등학고 뒤뜰에 풀이 우거진 채로 자신의 흥망을 말해주고 있는 듯이 보였다, 만해 한용운의 아들 한보국이는 홍성지역에서 신간회 운동을 하다가 38선 이북으로 가버린 이후에 한용운 부친을 모실 자손이 없었기에 홍주고등학교가 어느 가문에서 관리하는 땅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이 되고 말았다,
한용운 부친의 무덤을 참관하면서 인생이란 무상함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홍주성 밖에는 한용운 생가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흔적을 지우려고 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한용운의 가문은 빈민 가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 홍주고등학교 터가 한용운 가문의 터에 대한 정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연구해 보아야 한다, 한용운 생가를 바르게 고찰할 수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홍성역에서 온양온천역에 표를 사고 귀향을 하는 준지를 하고 용산으로 몸을 싣고 열차 안에서 성주사지에서 만난 벗을 만났다, 열차를 타고 서울을 향해 달리는 가운데 많은 토론을 했다,
박진관 시가 있는 논평 ,2021년 5월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