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린도전서 11장 1-16절. 예배 시에 질서를 지켜라. 요약설교
이제 11-14장에서는 ‘공중 예배의 질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1) 고린도 지방은 특히 아프로디테 여신(女神)을 숭배하고 있었고, 그 신전에서는 3천 명의 여사제(女司祭)가 종교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이방 신전에서 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회에서조차도 여신도들이 교권적인 우월한 지위를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처럼 교권적인 우월성을 주장하는 여신도들은 ‘신령파 여인들’(the spiritual women)이었습니다.
(2) 이와같이, 고린도 교회에 여성들의 교권적 지위가 강화되었던 것은 고린도 교회의 설립 당시 브리스길라 (아굴라의 부인: 행 8:3, 고전 16:9, 롬 16:3)의 활동이 두드러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최갑종, 바울연구, 102쪽)
(3) 이 신령파 여신도들은 특별히 방언과 예언의 은사를 받은 신도들이었습니다. (고전 11:3, 고전 12장, 14장)
이들은 주장하기를 “신령한 경지에 이른 여신도들은 남녀의 구분을 초월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령한 여성도들은 공중(公衆) 앞에서 머리에 수건을 쓰는 당시의 관습을 지킬 필요도 없고, 공 예배 시에도 남자들의 눈치를 볼 것 없이 자유롭게 기도, 예언, 방언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4) 따라서, 바울은 이러한 ‘신령파 여신도들’의 무질서한 예배행위 때문에 11장-14장에서 예배의 질서 문제를 교훈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본문(11:2-16)에서 아무리 신령한 여신도라고 할지라도, 공중 예배 시에는 당시 일반사회와 교회의 관습에 따라 머리에 수건(너울)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고, 남편을 머리로써(3절) 존경해야 한다고 교훈했습니다.
(5) 그렇기 때문에, 본문은 고린도 교회의 특수성 즉, 신령파 여성들의 성적 자유주의에 비추어 ‘신령파 여성들의 우월주의와 예배 시 무질서’를 경계한 것이지, 여성들의 ‘존재론적 차등성’을 말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본문에 나오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일반적인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아니고, 남편과 아내라는 특정한 관계를 가리킵니다.
3. 오늘 성경 내용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6절. 여성도들은 영계의 질서상 예배 시에 권위에 복종한다는 표로 머리에 수건을 쓰라는 것입니다.
(1) 단지 여성의 머리카락이 긴 것은 수건을 쓴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머리를 길게 하는 것은 순종의 표시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 삼손처럼 나실인의 서원을 하면, 머리를 깎지 않고 길렀습니다.
이처럼 머리를 기른 것은 하나님께 헌신하고 절대 순종한다는 표시였습니다.
(2) 결혼식 때, 여성들이 면사포를 쓰게 된 동기가 바로 성경처럼 여성이 남편에게 순종한다는 표시였습니다.
원래는 신부가 면사포를 쓰고 들어와서 혼인식을 합니다.
중간에 신랑 신부의 서약이 끝나고, 주례가 성혼을 선포하면, 그때 신랑이 자기의 아내 된 신부의 면사포를 벗겨주는 것입니다.
7-12절. 창조 때도 하나님께서 여자를 남자의 돕는 배필로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1) 여자는 남자가 부족한 점이 많으므로, 돕는 배필로 지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성은 앞에 나서서 실수를 많이 하는 남편을 뒤에서 조정하면서 도와주는 역할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더 우수하기 때문에, 여성이 도와주어야지, 남자를 무시하고 여자가 설쳐버리면, 그 남편은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제구실을 못 합니다.
이처럼, 여자는 남자를 도와주는 배필로 지어주셨습니다.
(2) 그러나, 11-12절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는 남 성도나 여성도가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특히, 남자는 모두 어머니라는 여자에게서 태어났으므로, 여성을 무시하지 말고, 다 같이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인격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유교나 다른 이방 종교와 다른 면이 이처럼 예수님 안에서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다는 점입니다.
갈라디아서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그러므로, 여성도님들도 남 성도들처럼 개인적으로 동등하게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디모데전서 2장 12절에는, “자가 남자를 주관하거나 가르치는 것을 금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아내가 남편을 돕지 않고, 여성의 능력이 원래 남자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에, 남편을 무시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가련한 인생을 사랑하여 대신 희생하고 섬기셨던 것처럼, 아내는 여러 면에서 부족한 남편을 잘 도우라는 말씀입니다.
(4) 아내가 남편을 돕지 않고, 내주장하는 불신 가정이 더러 있습니다.
이것은 강자가 약자를 돕는다는 기독교 정신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성도 여러분!>
여러 가지 면에서 여성보다 더 부족한 남성들을 도와주시고,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5) 그리고,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지 말라고 할 뿐만 아니라, 또 가르치지도 말라고도 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내가 남편을 꾸짖듯이 무시하면서 잘못한다고 야단치면서 가르치지 말고, 사랑으로써 덕스럽게 조언해주는 식으로 가르치라는 뜻입니다.
지혜로운 평강공주가 바보 온달을 잘 달래면서 가르쳐준 것처럼, 그래서 나라를 지도하는 최고의 지도자 자리에 올라가도록 한 것처럼, 아내는 남편을 지혜롭게 조언하고 잘 가르쳐주라는 말씀입니다.
(6) 남편을 무시하면서 나무라면, 남편은 아내의 말이 옳은 줄 알면서도, 고집을 피우면서, 말을 안 듣는 습성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남자를 미련한 곰이라고 흉보지 말고, 아내가 여우같이 지혜롭고 부드럽게 조언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여자가 직선적으로 남편을 나무라고 무시하면, 남편이 미련한 곰인 것처럼 아내도 똑같이 미련한 암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여성도님들은 정말 남편에게 지혜로운 여시(여우)가 되셔서, 금년에는 꼭 남편을 홀려서 교회로 모시고 나오고, 예수 믿게 만드시기 바랍니다!
13-16절. 본성적 상식의 차원에서 여자가 교회에서 남자를 섬기는 자리에 서야 함을 가르칩니다.
(1) 과거에 우리나라는 남자분들이 머리를 자르지 않고 상투를 틀어 올렸습니다.
이것은 신체와 머리털을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았으므로 효도하는 의미에서 머리를 자르지 않는다는 유교의 관습이라고 하지만, 중국의 변발이라는 돼지 꼬리 머리를 본받아서 그랬다고도 합니다.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거의 유래가 없는 풍습이었습니다.
(2) 하여튼, 인간 본성상 남자의 짧은 머리는 동서고금 전 세계적인 전통이고, 여성의 긴 머리도 세계적인 전통이라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여성의 머리가 6. 25 이전보다 비교적 짧아졌습니다.
그리고, 남자의 머리를 길게도 합니다.
그런데, 미인선발 대회 같은 데를 보면, 단연 긴 머리의 여성들이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물론 현대 여성들이 머리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미장원에서 손질하고 가꾸는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하여튼, 여성의 머리는 소중하기 때문에, 여승들처럼 머리를 빡빡 밀거나 너무 짧아서 군인같이 하지는 마십시오.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미적 감각에 따라서, 머리를 아름답게 가꾸십시오.
단지, 남성에게 도전하고, 남자를 지배하려고, 머리를 짧게 깎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1절에서,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1절.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1. ‘나를 본 받으라’는 말씀은 다섯 군데 나옵니다.
고린도전서 4:16.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 받는 자가 되라.
고린도전서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갈라디아서 4: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으니,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빌립보서 3:17. 형제들아,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 또 나를 본받아 그대로 행하라.
데살로니가전서 1:6. 너희는 환난 중에서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도다.
바울이 “나를 본받으라”는 이 말씀은 바울의 모든 성품과 언행을 본받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바울도 바나바와 싸울 때도 있었고(행 15:39), 자기가 바리새인이라고 예수님을 부인할 때 주님이 나타나셔서 격려하실 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행 23:6).
여기서 바울이 본받으라고 한 것은 앞 장에서도 말씀한 것처럼,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희생하고 섬기고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자유는 ‘섬기는 자유’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삶의 태도’였습니다.
요한복음 10:17-18. 내가 목숨을 버리노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이러한 섬기는 삶의 방식은 예수님에게서 바울에게로, 바울에게서 우리에게로 전달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11장 1절에서, 결론적으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특히 고린도 교회의 자유 여성들은 이 자유를 가지고 남자를 지배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남자를 섬기도록 자유를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남자보다 뛰어난 여성도들이 만일 자기의 능력만 믿고, 남자를 무시하고 지배하려고 하면, 남자는 사람 구실을 못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성은 남자를 도와주고, 특히 공적인 자리에서 남자를 존경하고 세워주는 마음,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2-3절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원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2절.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1. 2절에서는 먼저 칭찬을 하고, 3절에서는 ‘그러나’로 시작해서 책망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칭찬하노라, 그러나’는 역시 바울이 자주 사용하는 ‘그렇다, 그러나’ 용법(yes-but logic)입니다.
2. 여기서, 바울이 칭찬한 것은 ‘전통’을 잘 지키기 때문이었습니다.
‘전통’이란 원래 선생님이 소유한 자료를 제자에게 물려주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전통>은 데살로니가 후서 2장의 말씀처럼, 말로나 편지로 가르쳐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15. 형제들아,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이 전통의 핵심도 ‘희생적인 그리스도의 정신’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녀가 평등하고 자유롭다’는 바울의 가르침(갈 3:28)을 가리킵니다.
3. 그러나, 이처럼 남녀가 존재론적으로는 동등하나, 남편과 아내는 그 역할 분담에 있어서 분명한 구분과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자(남편)’는 여자(아내)의 머리라'고 했습니다.
4. 한편, 바울 사도가 전하여 준 전통이란 11장 23-25절에서 가르친 대로, 성찬 예식에 있어서, 남녀가 차별이 없이 똑같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김지철).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나 여자는 차별이 없이 다 하나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3장 28절에서, “너희는 남자나 여자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니라”고 했습니다.
3절.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1. 바울 사도는 남자와 여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인격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을 말했으나, 그 역할에 있어서 차등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즉,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머리’란 단어는 ‘권위’(authority)를 나타냅니다.
2. 바울 사도는 창세기 2장 18-23절의 인간 창조의 기사에 근거하여, 여자는 남편을 위한 조력자(돕는 배필)로 창조되었다고 말씀합니다.
3.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의 관계가 사랑과 순종의 관계로 교제하신 것처럼, 남편과 아내의 관계도 사랑과 순종의 아름다운 교제로 이루어져 감을 말씀합니다.
2-3절에서 신학적인 기본 주제를 말씀한 바울 사도는 이제 4-6절에서 구체적 적용으로 들어갑니다.
4절.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1. 사도 바울은 예배 시에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고, 창조의 질서를 아름답게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여자들의 머리에 수건을 쓰도록 한 것입니다.
2. 기도나 예언을 한다는 것은 공적인 예배에서 기도하고 예언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5절.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6절.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1. 교회에서 여성도들이 기도나 예언을 한다는 것은 성령의 활동이 여자들에게도 역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성도들의 신앙 활동이 신학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음을 인정합니다.
2. 다만 바울 사도가 문제 삼는 것은 남편과의 관계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일부 신령파 여성들(spiritual women)은 성령의 은사를 받고 자유 했기 때문에 남편의 권위에 대해서 무시해도 좋다는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3. 유대인의 탈릿, 카톨릭의 쇼올, 모슬렘의 히잡처럼, 당시의 헬라인들여성들도 얼굴을 너울로 가렸다고 합니다.
당시에 남자들은 머리를 길지 않게(적당하게) 잘랐고, 결혼한 여인들은 긴 머리를 잡아매거나, 올려 맸으며, 처녀들은 머리를 잡아 올리지 않고 너풀거리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동성연애하는 남성은 긴 머리를 했으며, 이방 신전의 종교적 창녀나 고대사회의 간음한 여자는 머리를 짧게 하거나 아예 삭도로 밀어버렸습니다.
행정 기관에서는 창녀의 머리를 관례적으로 박박 밀어버렸습니다. (김지철)
4. 따라서, 여성이 너울로 얼굴을 가리지 않고 공중 석상에 나가면, 남자를 유혹하며 정욕을 부추기는 행동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숙한 여인은 공중 석상에 나갈 때면, 얼굴을 가리는 얇은 천(shawl)을 썼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만일 여인이 얼굴을 가리지 않고 밖에 나가면, 남편은 그 여인을 이혼시킬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5. 따라서, 결혼한 여인이 공중 예배 석상에서 머리를 천으로 가리지 않고, 더구나 머리를 짧게 깎는 것은 사회관습과 남편의 권위에 도전하고 성적 해방(sexual liberation)을 주장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6절에서, 만일 여인이 성적인 자유를 주장하여 머리에 수건 쓰기를 거부하고, 머리를 짧게 깎으려고 하거든 그러도록 내버려 둬 보라는 것입니다(화가 나서 허용하는 것).
그리하여, 그 여인이 짧은 머리나 삭도로 민 머리가 부끄럽게 생각되거든(본능 상 그럴 수밖에 없음), 바울 사도의 명령대로 긴 머리나 수건 착용하는 관습을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6.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머리모양에 관한 바울의 교훈을 반드시 자유주의 신령파 여인들의 외모에 관한 교훈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범사에 경건한 생활을 하라는 교훈으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9-15.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이 말씀은 여성이 자녀를 낳으면 자녀에게 관심이 집중되므로, 이성적인 유혹에서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7. 5절에서 여성도들이 공중 예배 시에 기도나 예언을 허용한 말씀은 14장 34-35절의 말씀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즉, 14장의 말씀은 예배의 공식 집회에서 남편 있는 여성도가 영적인 열광주의에 사로잡혀서 예배를 시끄럽게 하면서 남편이 아닌 남자 성도들에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는 문란한 행위를 금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물어보려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히 하고 집에 가서 자기 남편에게 물으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배의 질서뿐만 아니라, 남편의 권위를 무시하는 문란한 행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7-12절. 신령한 여인일지라도 공중 예배 시에 긴 머리, 수건 쓸 것을 ‘창조의 원리’에서 교훈한 것입니다.
7절.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8절.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절.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절.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11절.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절.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1. 10절의 <천사>는 세 가지로 해석됩니다.
(1) 선한 천사(angels)로서, 여성도가 머리에 수건을 써서 남편에 대한 권위를 인정해 주어야, 선한 천사가 여성도들을 보호해준다는 것입니다. (Erasmus 등 다수).
(2) 악한 천사(fallen angels)로서, 창세기 6장 4절에서처럼(일부 유대인의 해석), 악한 천사가 예쁜 여성도들의 얼굴을 보면 유혹한다는 것입니다(딤전 2:11-14, 유 1:6 참조-Tertullian 등).
(3) 그리고 교역자(human messengers or church leaders)를 가리킨다는 다수설이 있습니다.
즉 감독, 목사, 장로, 사회자 등이 예쁜 여인의 얼굴을 보면 유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라는 것입니다. (Ambrose, Beza 등). Blomberg. p.212, 이상근. 150쪽.
2. 7-10절에서는 남성의 우위성을 말한 듯한 인상을 주나, 11-12절에서는 ‘그러나’(πλὴν, nevertheless-강한 부정사)로 시작하여 그러한 오해를 시정하고, 남녀가 근본적으로 상호의존적인(fundamentally interdependent) 존재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3-16절. 이 부분은 예배의 질서 문제를 ① 상식(13절)과, ② 자연적 본성(14-15절)과, ③ 사회적(교회포함) 관습(16절)에 비추어서 교훈한 것입니다.
13절.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14절.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5절.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16절.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1.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일반계시, 일반은총 적인 상식, 자연 질서, 사회의 공서양속(公序良俗)을 무시하는 몰상식하고, 무식하고, 무례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러한 양심과 본성과 상식과 관례와, 일반 계시나 자연 질서나 사회의 공서양속 등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는 사람들이 이런 양심과 상식과 공서양속에 위배 되는 행위를 한 것은 대개 이단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선한 분별력(φρόνησις: prudence: Strong 5428)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디도서 2장 6절 등에 기록된 ‘신중함’(σωφρονεῖν: sound mind)이란 단어도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친척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 자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했습니다(딤전 5:8).
2. 결론적으로 말씀드립니다.
그리스도인은 선량한 풍속을 무시하지 않고, 잘 지키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여성도들은 부족한 남성을 돕는 사람으로 창조해주셨기 때문에, 교회에서 신령한 은혜 받았다고 남자를 무시하지 말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부족한 남성들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가정에서도 여성도님들이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잘 도우셔서, 금년에는 꼭 불신 남편이 교회에 나오시고, 예수 믿으시는 복이 있으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