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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장 42부터 47절 예루살렘 교회의 생활 모습
42절.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y were continually devoting themselves to the apostles' teaching and to fellowship, to the breaking of bread and to prayer.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힘쓰니라
ἦσαν δὲ προσκαρτεροῦντες τῇ διδαχῇ τῶν ἀποστόλων καὶ τῇ κοινωνίᾳ,
they were now steadfastly continuing in the teaching of the apostles and in the fellowship
직역하면 ‘이제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교제 속에서 (떡을 떼는 것과 기도하는 것을) 꾸준히 계속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꾸준히 계속하고’(προσκαρτεροῦντες)는 현재분사이고(steadfastly continuing), ‘있었다’(ἦσαν)는 미완료과거로서(they were) 계속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이란 예수님의 죽음과 장사지냄과 부활과 승천에 관한 것과 살아생전 예수님의 교훈을 사도들이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을 뜻합니다.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τῇ κλάσει τοῦ ἄρτου καὶ ταῖς προσευχαῖς.
the breaking of the bread and the prayers
‘힘쓰니라’는 앞의 구절과 연결되는 것이고, 이 부분은 명사구로서 ‘떡을 떼는 것과 기도하는 것을’이란 뜻입니다.
여기서 떡을 떼는 것은 집에서 식사하는 것(ordinary meal)이나( 눅24:30, 35), 성찬식 거행하는 것(celebration of the Lord’s Supper)을 가리킵니다(사도행전 20:7, 고린도전서 10:16, 11:20).
사도행전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기도가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1:14, 3:1, 6:4, 10:4, 31, 12:5, 16:13, 16).
43절.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Everyone kept feeling a sense of awe; and many wonders and signs were taking place through the apostles.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Ἐγίνετο δὲ πάσῃ ψυχῇ φόβος·
There was coming then upon every soul awe
직역하면 ‘두려움이 모든 영혼 위에 계속 있었다’는 뜻입니다.
‘계속 있었다’(Ἐγίνετο)는 미완료 과거로서(There was coming) 계속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πολλά δὲ τέρατα καὶ σημεῖα διὰ τῶν ἀποστόλων ἐγίνετο.
many and both wonders and signs through the apostles were taking place
직역하면 ‘많은 기적들과 표적들이 사도들을 통해서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나타나니’(ἐγίνετο)는 미완료과거로서(were taking place) 계속 일어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44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all those who had believed were together and had all things in common;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πάντες δὲ οἱ πιστεύσαντες (ἦσαν) ἐπὶ τὸ αὐτὸ, εἶχον ἅπαντα κοινά,
all now those having believed (were) together the same, having all things in common;
직역하면 ‘이제 믿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공동으로 계속 소유하면서, 다 함께 계속 있었다’는 뜻입니다.
‘믿는’(πιστεύσαντες)은 현재분사입니다(having believed).
‘소유하면서’(εἶχον)는 미완료 과거로서(having) 계속 공동으로 소유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본문에 생략되어 있으나, ‘계속 있었다’(ἦσαν)는 미완료 과거로서( were) 계속 함께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는 것은 4장 34-35절에 잘 나오며, 생활필수품이 핍절한 성도들에게 자발적으로 나누어주는 것(voluntary sharing)을 가리킵니다.
45절.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they began selling their property and possessions and were sharing them with all, as anyone might have need.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나눠 주며
καὶ τὰ κτήματα καὶ τὰς ὑπάρξεις ἐπίπρασκον καὶ διεμέριζον αὐτὰ πᾶσιν,
and possessions and goods they were selling and were dividing them to all
직역하면 ‘그리고 재산과 소유를 그들이 계속 팔아 그것들을 모두에게 계속 나누어주었다’는 뜻입니다.
‘팔아’(ἐπίπρασκον)는 미완료과거로서(they were selling) 계속 팔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나눠주며’(διεμέριζον)도 미완료과거로서(were dividing) 계속 나누어주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καθότι ἄν τις χρείαν εἶχεν.
as –anyone need had
직역하면 ‘어느 사람이 필요를 가진 대로’라는 뜻입니다.
‘가진’(εἶχεν)은 미완료과거로서(had) 계속 가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46절.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Day by day continuing with one mind in the temple, and breaking bread from house to house, they were taking their meals together with gladness and sincerity of heart,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καθ’ ἡμέραν τε προσκαρτεροῦντες ὁμοθυμαδὸν ἐν τῷ ἱερῷ,
every day and steadfastly continuing with one accord in the temple
직역하면 ‘날마다 그리고 한 마음으로 성전에서 (있기를) 꾸준히 계속하면서’란 뜻입니다.
‘모이기를 힘쓰고’(προσκαρτεροῦντες)란 단어는 원래 ‘꾸준히 계속하면서’(steadfastly continuing)라는 현재분사입니다.
집에서 떡을 떼며
κλῶντές τε κατ’ οἶκον ἄρτον,
breaking then at each house bread
직역하면 ‘각 집을 따라 떡을 떼면서’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각 집을 순회하면서 떡을 떼는 것을 가리킵니다.
마치 오늘날 구역예배를 각 집에 돌아가면서 드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떼며’(κλῶντές)는 현재분사입니다(breaking).
여기서 ‘집에서 떡을 떼는 것’은 성찬이 아니라, 일반 식사(ordinary meal)를 가리킵니다.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μετελάμβανον τροφῆς ἐν ἀγαλλιάσει καὶ ἀφελότητι καρδίας,
they were partaking of food with gladness and sincerity of heart,
직역하면 ‘그들은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었다’는 뜻입니다.
‘먹고’(μετελάμβανον)의 원형(μεταλαμβάνω)은 ‘참여하다, 나누어 갖다’( partake of, take a share of)는 뜻이고, 여기서는 미완료과거로서(they were partaking of) 계속 떡을 함께 나누어 먹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순전한 마음’을 어떤 이는 ‘너그러운 마음’(generosity of heart)으로 해석했습니다( Bruce).
한마음이 되어서 친교를 나누는 것은 초대교회에 있었던 성령의 열매이고, 기쁨은 신자들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사도행전 16:34).
47절.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praising God and having favor with all the people. And the Lord was adding to their number day by day those who were being saved.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αἰνοῦντες τὸν Θεὸν καὶ ἔχοντες χάριν πρὸς ὅλον τὸν λαόν.
praising the God and having favor with all the people.
‘찬미하며’(αἰνοῦντες)는 현재분사이고(praising), ‘받으니’(ἔχοντες)도 현재분사입니다(having).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ὁ δὲ Κύριος προσετίθει τοὺς σῳζομένους καθ’ ἡμέραν ἐπὶ τὸ αὐτό.
the and Lord kept adding those who were being saved every day to their number
‘구원받는’(σῳζομένους)은 현재분사 수동태이고(were being saved), ‘더하게 하시니라’( προσετίθει)는 미완료과거로서(kept adding) 계속 더하게 하시고 계시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
1.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42절)- 배우는 교회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성령 충만했지만 배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은 성령 충만하다고 하면서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과 직통계시를 주장하면서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성령 충만했어도,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려고 했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잘 먹으려고 한 것처럼, 건강한 교인은 잘 배우려고 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온유하고 겸손하기 때문에 잘 배우려고 합니다.
2. 서로 교제했습니다(42절).
본래 교회란 서로 교제하는 곳입니다.
교제가 우선 되어야 함께 기도도 하고, 함께 찬양도 하고, 함께 봉사도 합니다.
3. 떡을 떼었습니다(42절).
떡을 뗐다는 것은 성찬을 함께 나누었다는 말씀이고, 또 사랑의 애찬을 함께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성도가 함께 식사를 통해서 서로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4.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42절).
모여서 기도하기를 힘쓰고 마음을 온전히 기울여서 기도했습니다.
교제하는 것과 공동식사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도하는 것은 마음을 기울이고, 정성을 드려서 실천해야 할 일입니다.
5. 초대교회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교회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임재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님에게 거짓말하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범적인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두려워할 줄 아는 교회입니다.
함부로 예배를 방해하고, 교회 지도자들을 비난하면 교회가 안 됩니다.
6. 그리고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습니다.
교회는 귀신이 들락거려서는 안 되고, 성령님이 운행하시어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표적이 있어야 합니다.
즉 아이를 못 낳는 성도가 기도하여 아이들을 낳고, 아들이 아버지를 대항하여 파괴된 가정이 하나님의 은혜로 고쳐지고, 귀신 들린 아들이 고침받고, 교회나 목사를 대적하던 사람이 사고가 나서 혼나는 것 같은 표적이 나타나야 합니다.
7. 성도들이 공동생활을 하면서 물건을 서로 통용했습니다. (44절)
즉 이기적인 마음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산주의처럼 강재로 공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헌금하여 공동생활을 했습니다.
즉 각자가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자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주었습니다( 45절).
8.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46절)
즉 예배 생활에 힘썼다는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날마다 새벽예배 드리기에 힘썼다는 것입니다.
새벽에 기도하려면 밤에 일찍 자야 합니다.
9. 집에서 떡을 떼고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46절)
즉 사회적인 계급과 차별이 없이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친교 하는 교회였습니다.
참되고 순수한 사랑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10. 하나님을 찬송하는 찬송 생활을 했습니다. (47절)
이 말씀은 감사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생활을 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찬송했다는 것입니다.
11.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57절)
예수 믿는 사람은 신자나 불신자에게도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불경건한 사람은 불신자에게 비난을 받습니다.
이처럼 교인들이나 목사가 지역민들에게 칭찬을 받아야 전도가 되고 교회가 부흥됩니다.
이런 평가는 시간이 좀 가야 합니다.
처음에는 잘 모릅니다.
12. 주님께서 날마다 구원 받는 사람들을 많아지게 했습니다. (47절)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 때, 전도하면 감동을 줍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이 전도를 해도, 예수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주님이 해주셔야 합니다.
이렇게 모범적인 예루살렘 교회가 되니까,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의 숫자가 더욱 더욱 많아졌습니다.
우리 교회들도 이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설교
1. 최근에 교회는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며 빛이 되어야 할텐데,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형국을 겪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본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초대교회를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2. 베드로의 설교 이후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그 마음에 찔림을 경험했습니다.
그들은 고민했습니다.
어찌해야 하는지 고민했습니다.
베드로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했습니다.
(1) 죄에서 돌이키는 회개를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견해를 바꾸는 것’이나 ‘생각을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목적, 방향, 가치를 변화시키는 전인격적인 변화를 뜻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실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으면, 죄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고 했습니다.
세례는 예수님을 따라 살기 위한, 회개의 증거이자 구원의 증거입니다.
(4) 성령을 선물로 받으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대의 선물입니다.
성령님께서 마음속에 들어오실 때에만, 진정한 죄 사함을 경험할 수 있고, 구원의 확신도 가질 수 있습니다.
(5) 그리고 쐐기를 박듯이 구원을 받으라고 강력하게 권고했습니다.
그러자, 이 말에 순종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삼천 명이나 하나님께로 돌아섰습니다.
2.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은 오늘날 모든 교회의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초기지만 건강한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오셨을 때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지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다시 회복해야 교회의 모습입니다.
(1) 삼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에서 서로 소통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어야 합니다.
이 공통점은 성령님입니다.
즉, 진정한 교제는 성령 안에서의 교제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적인 관계로 공동체를 형성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 되고 성령님을 통해 교제가 이뤄져야 합니다.
(2)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가 되려면, 오로지 전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기도하면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그리고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행 1:4)
그래서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여서 기도하다가, 오순절에 성령을 받았습니다.(행 2:1-4)
그리고 120명의 성도들이 3천명이 되었어도, 오로지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행 2:42),
그러자 구원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해져 갔습니다. (행 2:47)
(3) 그리고 사도들과 교회 지도자들에게 가르침을 잘 받았습니다. (행 2:42)
우리 예수님은 ‘살리는 것은 영인데, 주님의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3. 그런데 우리가 오늘 말씀 속에서 중요하게 분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차이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Baker)
44-45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1) 우선 기독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공통점>은 땅과 재산을 매각하여, 공동기금을 형성하고, 필요에 따라 각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입니다.
(2) 그러나 <차이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기독교 사회주의는 ‘나의 것은 당신의 것이요’라고 하지만, 공산주의는 ‘당신의 것은 내 것이요’라고 합니다.
② 기독교 사회주의는 ‘내 것을 드립니다’라고 하지만, 공산주의는 ‘당신의 것을 내게 주시오’라고 합니다.
③ 기독교 사회주의는 가난한 자에 대한 ‘사랑’에 의해서 추진되지만, 공산주의는 부자에 대한 미움에서 행해집니다.
④ 기독교 사회주의는 사랑과 동정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으지만, 공산주의는 미움과 분노로 사회를 분열시킵니다.
(3) 만일 기독교 사회주의가 더욱 활발하게 시행되었더라면, 오늘날 공산주의가 소멸되었을 것입니다.
즉, 현대에 공산주의가 존재하는 것은 기독교 사회주의가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재산과 인권의 사회적 평등은 공산주의로 이루어지지 않고, 기독교 사회주의로써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4. 오늘 말씀은 행복한 그리스도인과 번영하는 교회의 모습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46-47절.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1)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생활
오늘날 새벽예배처럼 날마다 성전에서 한마음으로 예배했습니다.
오늘날 구역예배처럼 각 집에서 돌아가면서 떡을 떼면서 교제하는 행복한 공동생활을 했습니다.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행복을 누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2) 번영하는 교회
온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는 교회였습니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증가하는 교회였습니다.
주께서 부흥시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는 교회였습니다.
(3) 결론적으로 초대교회는 성령님이 이끌어 주신 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 친교와 떡을 뗌, 기쁨과 순전한 마음을 가짐, 기도가 균형 있게 이루어지는 곳이었습니다.
오늘날 새벽예배와 구역예배에서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는 모든 백성에게 칭찬받고, 성장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도 초대교회의 본을 받아, 새벽마다 모여 예배하고, 가르침을 받고, 구역에서 친교하고 떡을 떼며, 열심히 기도하여, 표적이 나타나고 부흥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초대 예루살렘교회를 본받아,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 말씀으로 교육을 받고, 함께 식사하고, 함께 오로지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하고, 친교의 기쁨을 나누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표적이 나타나고,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고, 부흥하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