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덴 데는 상추가 특효랍니다.”

장작이 여유가 있었는지 요렇게 될 때까지 패지 않았습니다. 충북 옥천군 안남면 도농리 농막. 2017. 3. 2
1. 헛간신축에 ‘노가다’ 보조로 동원되다
오랜만에 충북 옥천군 안남면 도농리 농막에 다녀왔습니다. 사실은 헛간신축 ‘노가다(막일, 막일꾼의 비표준어)’에 동원됐습니다. ‘건축주’는 이종사촌형, 시공자는 각종 건축현장에서 철물작업이 전문인 ‘사회 동생’, 또 다른 사회동생과 제가 시공자 보조였습니다. 참고로 건축주와 시공자 사이에는 금전거래가 없습니다. 헛간신축에 쓰이는 자재의 적합여부도 따져보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헛간신축 후 준공검사도 없습니다. 따라서 ‘사회 동생’의 구먹구구식 설계에 따라 골조를 세우고 지붕도 얹었습니다. 즉 이종사촌형이 자질구레한 물건을 간수하기위해 비가림막 정도의 구조물을 만드는 작업에 일꾼으로 동원된 것입니다.
저와 ‘또 다른 사회동생’의 업무는 보조입니다. 눈썰미를 최대한 살려 이리저리 널린 자재를 제때 제자리에 날라다 놓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능력은 별로 발휘하지 못했고, ‘지시’에 따라 그것도 느릿느릿, 겨우겨우 해냈습니다. 3일을 잡고 동원됐으나 ‘시공자’의 공사기간 예상은 넉넉잡고 2일이므로 그렇게 급할 이유가 없었기도 했습니다. 자재를 가지러 오며가며 해찰을 해도 건축주가 나무랄 이유도 없습니다. 외관상 그리 어려워 보이지도 않습니다.
헛간신축 공사장에서 제가 할 일은 주로 자재를 당기고, 밀고, 나르고, 올리는 것들입니다. 즉 평소에 쓰지 않은 근육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첫날인 목요일 오전에는 날씨마저 쌀쌀해 몸 움직임이 영 어눌했습니다. 그런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점심을 거나하게 차렸습니다. ‘거나하다’는 말은 비싼 음식이 아니라 제가 아주 맛있게 먹었다는 얘기입니다. 농막에 가면 자주 가는 식당인 ‘안남식당’에서 특별하게 만든, 감자 없는 감자탕과 봄동무침 등이 일품이었습니다. 공사현장에 도착하자 노곤해져 낮잠도 조금 잤습니다.


현지에서는 '가죽나무'라고 불리는 '참죽나무' 도막. 윗사진은 나이테가 선명치 않아 다시 찍었습니다.
2. 빼닥질에 몰입, 진화의 요체 한 단면?
제가 헛간신축과 관련해 해찰(일에는 마음을 두지 아니하고 쓸데없이 다른 짓을 함)을 부린 대부분은 이제 막 깨어나기 시작하는 겨울눈을 찍거나, 이종사촌형이 잘라놓은 통나무의 나이테를 이리저리 둘러보거나, 물박달나무를 교재로 쓰기 위해 적당히 자를 수 있을까 살펴보는 것 등이었습니다. 농막의 물박달나무가 자라는 곳을 압니다. 한때 거제수나무로 동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마당에 설치한 아궁이 옆에 놓인 참죽나무 도막을 봤습니다. 원판모양으로 다시 자를 수 있을지 물어보았더니 제대로 자른 ‘가죽나무’가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는 참죽나무를 ‘가죽나무’로 부릅니다. 시공자인 사회동생도 고향인 문경에서도 그렇게 부른다고 하네요.
이종사촌형에게 막간을 이용해 참죽나무 도막 자른 면을 그라인더로 곱게 다듬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생태계의 분해자가 침범한 심재 부분을 파냈습니다. 파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저는 ‘빼닥질’에 서툽니다. 옥천말 적어도 농막말에 빼닥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빼닥질을 제 나름대로 ‘(사람이) 톱과 끌, 칼 등 여러 가지 도구를 사용해 목재를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내는 일련의 작업’으로 정의합니다. 빼닥질에 능하지 않은 제가 아주 작은 끌과 비슷한 드라이버로 ‘썩은’ 심재부분을 파냈습니다. 그것도 아주 정성을 들여 열심히요.
이 대목에서 저는 또 다른 저를 발견했습니다. 평소 저는 빼닥질에 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열심히 빼닥질을 하고 있는 제 모습을 새삼 발견한 것이지요. 겸연쩍었습니다. 해서 “사람이 참 간사해. 지가 사용할 물건이니까 이렇게 정성을 다하네.”라고요. 대략 나이테를 세어보니 참죽나무의 수령은 50년 정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교육 자료로 사용하기에는 적지도 그렇다고 많지도 않은, 적당했습니다. 일자형 작은 드라이버를 끌로 삼아 ‘썩은’ 부분을 파내고 또 파냈습니다. 이러한 작업을 계속할수록 겸연쩍은 저의 변명은 여러 번 계속됐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생물은 필요하면, 절박하면, 없다고 여겼던 능력 발현의 가능성을 새삼 경험했습니다. 제가 제대로 파악했는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진화의 요체라고도 여기게 됐습니다.
어쨌거나 당진의 집으로 돌아와 참죽나무 도막의 지름을 재보니 수피를 제외한 지름이 25cm 정도 됐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나이테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해야겠지요. <수목생리학>의 나이테 부분을 더 공부해야할 부담감이 추가로 생겼네요. 다시 거시적으로는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나무와 세계의 최고령 나무들, 미시적으로 나이테의 외관상 무늬에 대한 수목생리학적 현상 등을 공부하게 되겠지요.
이종사촌형이 장작으로 쓰려고 전기톱으로 잘라놓은, 그러나 생태계 분해자가 으레껏 먼저 참여한 소나무 도막 심재 부분 주변의 텅 빈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전혀 다른 느낌을 갖게 합니다. 소나무 단면은 괴기합니다. 괴기하다고 느끼는 저의 상상력의 원천은 제 삶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바로잡으렵니다. 그 단면은 생태계의 순환과정이라고 말입니다. 사실 괴기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생태계 분해자는 인간의 상상력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자기의 생존을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자기만의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3. “하지 말라는 짓을 하니 벌 받지!”
다음 얘기는 이야기하기가 좀 거시기합니다. 거시기하다? 왠지 거시기해서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거시기하다’는 ‘적당한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상태나 속성을 언급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말’로 정의됐습니다. 사전에 비표준어라고 언급되지 않은 단어는 표준어입니다. ‘거시기하다’는 그러므로 표준어입니다. 정감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런 표현을 쓰는 상황이 자주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종형은 제게 헛간신축과는 관련 없는 일을 시키더군요. 그 일은 요즘 같은 봄철에는 아주 민감하거든요. 집주변의 쓰레기를 모아 태우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산불방지에 공이 컸다며 산림청장의 표창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더 거시기했지만 그리 하기로 했습니다. 집주변에 굴러다니는 비닐류와 생활쓰레기 등을 한 곳으로 모아 불을 지폈습니다.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습니다. 예상했지만 어떤 분이 언덕마루에서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이종형이 아는 체를 해서 소거작업은 그대로 진행됐습니다. 감시원이 보기에 일이 커질 것 같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만약을 위해 지켜보았습니다. 갑자기 펑 소리와 함께 눈꺼풀이 따끔해졌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불에 녹은 비닐이 제게로 튄 것입니다. 이모님이 저를 보더니 눈이 왜 그러느냐고 하시더군요. 대략 말씀을 드렸습니다. “눈 뺄 뻔 했구먼.”하시더군요. 그럴 확률도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안경을 쓰지 않은 상태에서 그 불똥이 수정체에 튀었다면 말이지요. 가을에 밤 털다 실명했다는 뉴스를 가끔 듣지 않습니까? 어쨌든 그렇게 눈꺼풀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심하게는 아니지만 화끈거렸습니다.
머릿속에서 ‘벌 받았다’ 말이 맴돌았습니다. 어릴 적에 하지 말라는 ‘짓’을 하고 다치는 등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면 어른들은 “그것 봐라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러니 벌 받지.”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말투는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자연스럽게 사용됐습니다. 그럼 지금 이 상황은? 내가 벌을 받은 것인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 부득부득 어겨가며 기어코 쓰레기를 소각했으니 하늘이 벌을 준 것인가? 어릴 때 자연스럽게 터득한 상황인식이 지금까지도 이어집니다. 그러니 교육을 제대로 시켜야겠습니다. ‘울면 순사가 잡아간다’는 식의 경고도 그 범주에 든다는 생각입니다.

안남식당에서 화상 상비약으로 쓰는 오소리 기름. 충북 옥천군 안남면 배바위 안남식당. 2017. 3. 3.
4. “불에 덴 데는 상추가 특효랍니다.”
대략 씻고 안남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식당 안주인이 저를 보더니 얼굴이 왜 그러느냐고 합니다. 대략 이야기했습니다. 화상이라고요. 바로 “화상에는 오소리기름이 특효인디…….”라고 합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오소리 기름이 든 자그만 병을 가지고 옵니다. 엉? 오소리 기름을 비치했다? 바로 이해가 됐습니다. 주방에서는 화상을 자주 입을 것입니다. 튀길 때 뜨거운 기름이 튈 수도 있습니다. 삶을 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수롭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방에는 오소리 기름이 있어야하는 것이지요. 사용해 봤더니 효과가 있어 제게 권했을 것입니다.
안주인이 좀 한가했던 모양입니다. 우리 자리로 와서 비전(祕傳)을 털어놨습니다.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사실은요 오소리 기름보다 상추가 더 특효랍니다. 불에 데면 무엇보다 화끈거리는 게 문제입니다. 저는 상추를 짓이겨서 바르면 화끈거리는 게 없어요. 제가 해보니 오소리 기름보다 상추가 훨씬 좋아요.” 화상은 불에 데서 화끈거리는 양, 상추의 속성은 찬 성분 즉 음이라서 중화를 시켜준다는 해석까지 덧붙였습니다.
이 안주인은 금산이 고향인데요. 제가 풀과 나무를 공부한다고 하니 산에 빨갛게 익은 열매를 보았는데 모르겠다며 같이 가보자고 하더군요. 등주봉 길목에 있었습니다. 보니 딱총나무였습니다. 접골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했더니 이 게 접골나무냐고 반문하더군요. 왜요? 어릴 적 어른들이 접골나무, 접골나무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실제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라서 그랬다고 했습니다.
이 얘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소리 기름이 든 병을 찍고 있었습니다. 안주인의 시아버지가 보더니 뭐냐고 묻기에 오소리 기름이라고 했습니다. 그 분도 바로 오소리 기름은 불에 덴 데 좋은데, 금방 낳는데, 합니다. 제약회사에서 제시하는 가정상비약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는, 오소리 기름이나 상추 같은 상비약도 중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이렇게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