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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와 의상
한국의 유명한 고찰은 대부분 원효나 의상과 연이 닿아 있을 정도로 한국 불교계에서 차지하는 이들의 역할과 의의는 매우 크다.
두 사람은 대당 유학길에 함께 오르기도 하였지만, 도중에 원효(617~686)는 해골바가지의 물을 마신 뒤 크게 깨달아 되돌아오고 의상(625~702)은 유학길로 향하였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행적을 통해 신라 불교를 발전시켰다.
원효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불교 교리를 배우면서 복잡하고 방대한 불교 사상을 종합하였다. 반면 의상은 당 유학 후 화엄종을 열어 제자를 양성하고, 신라 왕권을 뒷받침하면서 정신적 통합에 이바지하였다.
<원효 사상>
1. 일심사상
1) 일심이란 무엇인가? 더러움과 깨끗함의 모든 법은 그 성품이 둘이 아니고, 참됨과 거짓됨의 두 문은 다름이 없으므로 하나라 이름하는 것이다. 이 둘이 아닌 곳에서 모든 법은 가장 진실되어 허공과 같지 않으며, 그 성품은 스스로 신령스럽게 알아차리므로 마음이라 이름한다. 이미 둘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가 있으며, 하나도 있지 않거늘 무엇을 두고 마음이라 하겠는가? 이 도리는 언어를 떠나고 사려를 끊었으므로 무엇이라 지목할 지 몰라 억지로 일심이라 부르는 것이다.( 원효의 대승기신론소)
2) 합해서 말하면 생(생)은 곧 적멸이나 멸(멸)을 지키지는 않고, 멸이 곧 생이 되나 생에 머무르지는 않는다. 생과 멸은 둘이 아니고, 동(동)과 적(적)에는 다름이 없다. 이와 같은 것을 이름하여 일심의 법이라 한다. 비록 실제로는 둘이 아니나 하나를 지키지는 않고 전체로 연을 따라 생하고 동하며, 전체로 연을 따라 적멸하게 된다. 이와 같은 도리로 말미암아 생이 적멸이고 적멸이 생이며, 막힘도 없고 거리낌도 없으며, 하나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원효의 금강삼매경론)
3) 더러운 땅과 깨끗한 나라가 본래 일심이고, 생사와 열반이 마침내 둘이 아니다. (원효의 무량수경종요)
4) 모든 경계가 무한하지만 다 일심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부처의 지혜는 모양을 떠나 마음의 원천으로 돌아가고, 지혜와 일심은 완전히 같아서 둘이 없는 것이다. (원효의 무량수경종요)
5) 불성의 바탕은 바로 일심이다. (원효의 열반종요)
6) 일심은 모든 사물들을 다 감싸안는 거울과 같이, 무수한 강줄기들을 다 머금는 바다와 같은 큰마음이며 한마음이다. 당시의 삼한통일을 위한 전쟁으로 인해 벌어진 민심과 적대감들을 감싸안을 수 있는 이념은 무엇이겠는가? 원효에게 그것은 부처의 뜻에 부합되면서도 모든 것의 근거가 되는 일심이었던 것이다. 원수와 동포, 죽음과 삶이라는 이항대립을 극복할 근거도 역시 일심이었다. 원효는 부처의 뜻이자 모든 것의 근거인 이 일심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정립하고자 했다. 그가 뭇 주장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모색했던 화쟁 역시 바로 일심으로 돌아가기 위한 방편이었으며, 그러한 노력의 구체적 표현이 바로 무애의 행위였던 것이다. 무애행이 자리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일심이었다.
2. 화쟁사상
1) 불교 경전의 부분을 통합하여 온갖 흐름의 한 맛으로 돌아가게 하고, 부처의 뜻이 지극히 공정함을 전개하여 백가의 뭇 주장을 화회(和會)시킨다. (원효의 열반종요)
2) 열면 헬 수 없고 가이 없는 뜻이 대종(大宗)으로 되고, 합하면 이문일심(二門一心)의 법이 그 요체로 되어 있다. 그 두 문 속에 만가지 뜻이 다 포용되어 조금도 혼란됨이 없으며 가없는 뜻이 일심과 하나가 되어 혼융된다. 이런 까닭에 개(開)와 합(合)이 자재하고, 입(立)과 파(破)가 걸림이 없다. 연다고 번거로운 것이 아니요, 합친다고 좁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하여 세우되 얻음이 없고, 파하되 잃음이 없다.( 원효의 대승기신론소)
3) 부처가 세상에 있었을 때에는 부처의 원음에 힘입어 중생들이 한결같이 이해하였으나..... 쓸데 없는 이론들이 구름 일어나듯 하여 혹은 말하기를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 하며, 혹은 "나는 그런하나 남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여 드디어 하천과 강을 이룬다...... 유(有)를 싫어하고 공(空)을 좋아함은 나무를 버리고 큰 숲에 다다름과 같다. 비유컨대 청(靑)과 남(藍)이 같은 바탕이고, 얼음과 물이 같은 원천이고, 거울이 만 가지 형태를 다 용납함과 같다. (원효의 십문화쟁론)
4) 원효는 다양한 주장들을 일정한 체계에 의하여 정리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거울이 만가지 형태를 다 받아들이듯이, 바다가 온갖 물줄기들을 다 받아들이듯이 원효는 부처의 올바른 진리에 근거하여 화쟁법이라는 독특한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화쟁사상이란 어떤 문제에 두 가지 이상의 다른 견해가 있을 때 서로 다른 견해를 융섭(융섭)의 이념에 의하여 화회(화해)시키고 회통(회통)시켜 큰 법의 바다로 귀납시키는 사상이다. 융섭에서 융은 화합을 뜻한다. 물에 기름처럼 분리되고 서로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섞이고 녹아 회통하는 것을 말한다. 섭은 거둠(수렴)을 뜻한다. 마음을 관대히하여 남을 껴안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결국 융섭은 서로가 받아들여 화합하는 것이다.
경과 율과 논을 포괄하는 삼장에 깔려 있는 부처의 참다운 뜻은 바로 진리가 갖는 원융성이며 포괄성이다. 이러한 부처의 참뜻을 살려 화쟁은 이쟁(異諍 : 서로 다른 주장)을 화해시키는 원리로서 조화와 화해를 모색하는 인식 전환의 방법이며, 상대적 이분과 이항대립의 갈등을 넘어서서 다양한 주장을 한 길로 통합시키는 방법론으로 부처의 올바른 진리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원효가 추구하였던 화쟁의 방법은 첫째, 불교 경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였고, 둘째, 특정한 이론과 논리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하는 것이며 셋째, 상반되는 이론에 대해 동의하지 않고 이의도 제기함이 없이 긍정과 부정을 자유롭게 사용하여 부처의 깨달음의 경지로 이끌어 쟁론을 화해시키는 것이다.
5) 화쟁사상의 현대적 의의
원효의 화쟁사상은 온갖 다른 견해와 주장들이 흑백의 대결로 서로 충돌하여 손상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융섭의 논리로 화회, 회통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원효의 화쟁사상은 불교 종파 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각 종교간의 갈등, 국가간의 반목과 대립,노사분쟁 등 국내외적인 현실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원효는 보살계본지범요기에서 자기 주장만 하는 소견이 좁은 사람을 갈대구머으로 하늘을 보는 것에 비유한 바 있다.원효의 화쟁사상의 뜻을 살린다면 모든 대립과 반목과 갈등을 해결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3. 무애사상
1) 그의 발언은 미친 듯 난폭하고 예의에 벗어났으며, 보여주는 모습은 상식의 선에 어긋났다. 그는 거사와 함께 주막이나 기생집에도 들어가고 지공처럼 금빛 칼과 쇠 지팡이를 지니기도 했으며, 혹은 주석서를 써서 "화엄경"을 강의하기도 하고, 혹은 사당에서 거문고를 타면서 즐기고 혹은 여염집에서 유숙하기도 하고, 혹은 산수에서 좌선하는 등 계기를 따라 마음대로 하는데 일정한 규범이 없었다. (송고승전)
2) 원효는 이미 계율을 버리고 설총을 낳은 뒤에는 속복으로 갈아입고 자기르 스스로 일컫기를 "근기가 낮은 사내(소성거사 -小姓居士)라고 하였다.어느 날 우연히 어떤 광대가 큰 탈바가지를 가지고 춤추고 희롱하는 것을 보니 그 형상이 너무 빼어나고 기발하였다. 원효는 그 탈바가지의 모습을 따라 불구(彿具)를 만들었다. <화엄경>에 나오는 "일체의 걸림이 없는 사람이 한 길로 삶과 죽음을 벗어났느니"라는 구절을 따서 이름하여 장애가 안되는(無碍) 도구라 하였다. 이에 노래를 지어 세상에 유포시켰다. 일찍이 불구를 가지고 많은 촌락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교화하고 읇고 돌아왔으므로 가난뱅이나 코흘리개 아이들까지도 모두 부처의 이름을 알 게 되었고, 일제히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게 되었으니 원효의 법화는 컸던 것이다. 그가 태어난 밤실을 부처님 땅(불지)이라 하고, 절 이름을 불법을 처음 연 절(初開寺) 이라 했다. 스스로 원효라 일컬은 것은 대개 부처님의 해를 처음으로 빛나게 한다는 뜻이다. 원효는 또한 우리말이니 그 때의 사람들이 모두 신라말로 이를 일컬어 새벽이라 하였다. (일연의 삼국유사)
3) 원효는 일체의 굴레에서 벗어난 해탈한 자의 소박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러한 무애행은 방방곡곡을 떠돌며 무수한 대중을 교화하며 세상사람들과 만나는 과정이었다. 원효는 현실세계의 온갖 장애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삼계의 불타는 집에 얽매이지 않아야 된다고 했다. 욕망을 일으키는 고통을 벗어나려면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원효는 무애행을 통해 어떤 계율이나 지식이나 권위로부터 자유로우며 한없이 자신을 낮추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애를 통하여 모든 욕망을 버리면 자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자료 1 일심이란 사람의 마음, 즉 사람의 주관적인 의식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의 원을 이루면서 자연과 사회와 사람을 뛰어넘는 절대적인 정신실체를 가리킨다.- ‘십문화쟁론’ -
자료 2 나 속에 모두가 있고 모든 것 속에 하나가 있다. 하나가 곧 모두이며, 모두가 곧 하나이다. 한 작은 티끌 속에 우주 만물을 머금고 모든 티끌 속이 또한 이와 같다.- ‘화엄일승법계도’ -
<<원효 사상 정리>>
1. 一心(일심) 사상 :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 <모든 것의 근본은 마음>
2. 和諍(화쟁) 사상 : 모든 대립되는 것들은 하나로 합쳐질 수 있다.
<어느 한 종파에 집착하지 않는 통불교(원융 불교, 합침의 불교) 사상, 현대의 관용의 정신>
3. 누구나 불교의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있다.
(4)배울 점 : 진리를 구하려고 노력하는 자세,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대립과 갈등을 관용의 정신으로 해결하려는 태도
<의상 사상>
의상(義湘 625-702)은 원효와 함께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그 이유는 의상에 의해 본격적으로 수용된 화엄사상이 통일신라의 중요한 이념이 되었음은 물론, 나아가 선사상이 주도하는 오늘날까지도 한국불교의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의상은 중국 유학시절 화엄불교의 이론들을 익혀 체험화(‘上求菩提’)하는데 역점을 두었고, 귀국해서는 교육을 통해 화엄사상을 대중화(‘下化衆生’)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이로써 그의 생애는 화엄사상의 체험과 실천으로 일관되었으며, 나아가 그가 행한 진리체험을 위한 수행(‘自利’)과 중생을 구제하려는 자비의 정신(‘利他’)은 오늘날까지 한국불교 정신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의상(義湘 625-702)은 원효와 함께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그 이유는 의상에 의해 본격적으로 수용된 화엄사상이 통일신라의 중요한 이념이 되었음은 물론, 나아가 선사상이 주도하는 오늘날까지도 한국불교의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의상은 중국 유학시절 화엄불교의 이론들을 익혀 체험화(‘上求菩提’)하는데 역점을 두었고, 귀국해서는 교육을 통해 화엄사상을 대중화(‘下化衆生’)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이로써 그의 생애는 화엄사상의 체험과 실천으로 일관되었으며, 나아가 그가 행한 진리체험을 위한 수행(‘自利’)과 중생을 구제하려는 자비의 정신(‘利他’)은 오늘날까지 한국불교 정신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의상(義湘 625-702)은 원효와 함께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그 이유는 의상에 의해 본격적으로 수용된 화엄사상이 통일신라의 중요한 이념이 되었음은 물론, 나아가 선사상이 주도하는 오늘날까지도 한국불교의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의상은 중국 유학시절 화엄불교의 이론들을 익혀 체험화(‘上求菩提’)하는데 역점을 두었고, 귀국해서는 교육을 통해 화엄사상을 대중화(‘下化衆生’)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이로써 그의 생애는 화엄사상의 체험과 실천으로 일관되었으며, 나아가 그가 행한 진리체험을 위한 수행(‘自利’)과 중생을 구제하려는 자비의 정신(‘利他’)은 오늘날까지 한국불교 정신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원효가 해골물 마신 일을 계기로 홀로 당에 들어간 의상은 장안(지금의 서안) 교외 종남산 지상사의 지엄(智儼 602-668)에게 10년여 세월동안 당시 새롭게 대두된 [화엄경]에 바탕을 둔 화엄종(華嚴宗) 교리를 습득하게 된다. [화엄경(華嚴經)]은 깨달은 눈으로 이 세상을 보면 - 불완전한 고통의 세계가 아니라 - 마치 갖가지 꽃들(雜華의 ‘華’)로 장식한 것(莊嚴의 ‘嚴’)과 같은, 완전하고 아름다운 세계임을 밝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핵심만을 함축시킨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는 의상의 화엄사상과 관련된 유일한 저술로서, 이 글이 완성되기까지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온다. 스승 지엄이 입적하기 3달 전, 의상은 그동안 공부했던 화엄사상의 이론들을 책으로 엮어 스승의 지도를 받았다. 스승이 글의 뜻은 좋으나 문장이 옹색하다고 지적함에 따라, 다시 이를 요약 정리하여 책을 꾸몄다. 나아가 의상은 자신의 책이 진리에 부합된 것인지 알기 위해, 책을 불태우면서 모든 글이 다 타더라도 진리의 뜻과 부합된 글자만은 절대 타지 않게 해 달라고 기원하였다. 반복해서 태웠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타지 않는 210자의 글자를 얻었고, 의상은 이 글자들을 조합해서 7언 30구의 시로 된 - 오늘날까지 한국 불교에서는 [반야경]사상을 함축한 [반야심경] 다음으로 독송되는 - ‘법성게(法性偈)’를 지었다. 이 ‘법성게’와 관련된 설화는 곧 60권의 [화엄경]에 담긴 심오한 진리의 내용을 단지 210자의 글로 함축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상징한다. 아울러 이 과정은 의상이 화엄사상을 단지 머리로만 이해한 지식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이 체험하는데 역점을 두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체험 중시의 태도는 스승 지엄이 - 이론이 뛰어난 법장(法藏 643-712)에게 ‘문지(文持)’라고 칭한 데 비해 - 의상에게는 ‘의지(義持)’라 일컬은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60권의 방대한 화엄경의 내용을 210자로 함축시킨 글도 대단한 것이지만, 의상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를 다시 54각의 선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사각형 그림에 담아 화엄사상의 진리를 시각화시켜 절묘하게 표현하였다. 이 글과 도형이 결합된 그림이 바로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로서, 의상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졸업논문이다.
2. [화엄일승법계도]의 상징적 표현과 그 의미 - 진리와 욕망 그리고 자연
이 그림은 흰 종이바탕에 검은 먹빛으로 210자의 글을 배치하고 또 다시 이를 54각의 붉은 선으로 연결하여 하나의 사각형 도형으로 만든 것으로, 여기에 화엄사상의 진리를 상징적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즉 210자 하나 하나의 검은색(‘黑字’)은 서로 다른 위치에서 각자 자신의 욕망만을 갈망하는 어리석은 자들의 세계(‘衆生世間’)를 상징한다. 반면에 붉은 선(‘朱線’)은 진리를 인식한 자들의 세계(‘智正覺世間’)를 상징한다. 54각의 선으로 이뤄진 붉은 색을 따라 검은 글자들이 하나의 문맥으로 의미가 소통되듯이, 욕망의 고통에서 헤매는 자들을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는 - [화엄경]의 ‘입법계품’에 나오는 ‘선재동자’가 진리를 찾는데 54번 만나는 스승들의 -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선을 따라 54번의 각을 꺽고 꺽어 돌아가노라면, 궁극에 도달하는 곳은 다름 아닌 출발했던 본래 그 자리이다. 그러나 본래로 되돌아 와서 보면, 시작할 때와는 달리 검은 글자들의 욕망의 세계(‘衆生世間’)가 모두 하나의 붉은 선으로 이어진 진리의 세계(‘智正覺世間’)와 같은 것이었음을 체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화엄 세계관은 - 비록 상업적인 흥행은 저조하였지만 - 한국영화 [화엄경]에서 잘 표현되어졌다. 즉 ‘선재동자’의 이름을 딴 주인공 ‘선재’(구도자)는 어릴 때 헤어진 ‘어머니’(진리의 세계)를 찾고자, 남겨진 ‘담요’(진리를 인식하는 수단)를 징표삼아 모든 유혹과 역경(욕망의 세계)을 헤치고 여러 사람들의 도움(53인의 스승)으로 그 행적을 좇아 마침내 헤어진 어머니를 마음에서 찾았다. 영화 속 선재가 어머니를 찾은 순간, 그는 옆에 항상 어머니가 함께 있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는 줄거리다. 의상은 진리와 욕망의 두 세계가 다르면서도 함께 공존함을 검은 글자와 붉은 선으로 표현하면서, 동시에 이들이 그려내는 그림의 바탕인 흰 종이(‘器世間’)와의 조화를 강조한다. 흰 종이로 상징화된 자연의 세계는 욕망의 추구 대상으로 파괴되거나, 진리의 관조 대상으로 찬미되는 수동적 대상이면서도, 욕망과 진리의 행위를 성립하게 하는 바탕이다. 따라서 [화엄일승법계도]는 글자·선·종이로 상징되는 이 세 가지 세계(‘三種世間’)가 하나로 융합되어 공존함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화엄일승법계도] 그림은 화엄사상에 입각된 진리 인식 - 즉 모든 현상의 사물들이 본질에 있어서 동일해서 평등(‘相卽’)하고, 이에 따라 현상사물들은 서로에게 끊임없이 영향력을 주고받는 상호작용(‘相入’)의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출렁이는 파도(‘현상’)가 움직이지 않는 깊은 심연(‘본질’)과 하나 됨을 인식하려면 바다가 고요해져서 심연과 수면이 도장 찍히듯(‘海印’) 하나로 혼연일치 될 때 나타나는 직관인식(‘三昧’)인 ‘해인삼매(海印三昧)’ - 의 관점에서 진리의 세계(‘智正覺世間’)와 욕망의 세계(‘衆生世間’)가 자연의 세계(‘器世間’)와 서로 하나이면서도 차별화된 원융(圓融)의 묘한 진리(‘六相圓融論’ 또는 ‘十玄緣起論’)임을 함축해서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3. 귀국 후 화엄 세계관의 실천 - 원효와의 비교
당에 억류된 문무왕의 아우 김인문의 요청으로 당의 신라침공을 알리려 급거 귀국한 의상은 신라 땅에서 새롭게 자신의 이상을 펼치게 된다. 의상은 정치적으로 당의 신라침공을 알리는 호국불교의 국가관을 보여줬지만, 문무왕이 성을 쌓기 위해 백성들을 노역동원하려 함을 간언해서 그만두게 한 것에서 볼 때 민중의 편에서 잘못된 정치를 지적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경주의 진골귀족 출신으로 평생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출가 후 평생 소유한 것이라곤 옷과 밥그릇(‘三衣一鉢’) 그리고 정병(淨甁)뿐으로 - 종남산에서 율종의 도선(道宣 596-667)과 교유하면서 받은 영향 등으로 - 철저한 계율을 통해 민중들의 빈천한 생활을 공감할 수 있는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였다. 따라서 문무왕이 하사하는 토지와 노예를 의상이 거절한 것 또한 화엄사상의 평등적 진리관과 철저한 ‘무소유’의 계율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이처럼 민중의 마음과 함께 한 의상이지만 - 원효처럼 속세에 뛰어드는 적극적인 대중불교 활동은 자제하고 - 오히려 속세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화엄사상에 대한 전문교육을 위주로 하면서도, 대중들의 수준에 따라 관음·정토신앙을 융합시켰다. 그는 경주의 황복사, 영주의 부석사, 소백산 추동 등지에서 화엄사상을 집약시킨 [화엄일승법계도]를 중심으로 제자들을 가르쳤고, 이를 통해 10대 제자를 비롯한 후학들이 이 땅에 화엄사상을 뿌리내리게 하였다. 이것은 원효가 제자양성보다 모든 불교사상의 서로 다른 이론들을 하나로 조화시켜 체계화하려던 것과 대조된다. 아울러 그는 당시 신라인들에게 유행하던 신앙관으로서 - 김인문(金仁問)의 무사귀국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건립하던 관음도량의 인용사(仁容寺)를 그가 귀국 도중 죽음에 따라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미타도량으로 바꾼 것에서 알 수 있듯이 - 살아서는 관세음보살의 도움을 기원하는 관음신앙과 죽어서는 아미타불의 구원을 바라는 정토신앙을 함께 포섭해서, 화엄사상과 연결시켰다. 이에 따라 관음보살을 - 원효는 알아보지 못한데 반해 - 의상은 기도 끝에 동해 관음굴에서 친견한 후 지금의 양양 낙산사를 창건했다는 설화가 이뤄졌다. 또한 그가 화엄사상을 강의한 부석사조차 [화엄경]의 중심이 되는 비로자나불 대신, 일반대중들이 선호하는 극락세계의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한 사찰로 창건되었다. 이때 중국처녀 ‘선묘’가 흉측한 용과 생명 없는 바위가 되어서까지 의상 곁을 지켰다는 의상을 향한 애틋한 사랑의 설화는 - 원효가 자신의 의지로 요석공주와 사랑을 맺어 스스로 파계하면서까지 일반대중 속으로 뛰어든 것과 비교할 때 - 의상이 대중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도 그들을 교묘하게 이끌어가는 방법(‘善巧方便’)을 보여준다.
4. 지혜와 자비 - 의상과 원효의 삶을 통해 본 한국불교의 방향
이처럼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의상과 원효 두 인물의 삶은 - 민주화 운동이 종교의 사회참여문제로 까지 확산될 때 상영된 - 한국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두 여주인공의 삶과 닮아있다. 두 주인공이 모두 불교의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고자 하나, 방법에 있어서는 달랐다. 한 여승은 불교신앙 속에서 진리를 향해 끊임없이 정진하는데 반해, 다른 여승은 불교 신앙 밖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랑의 자비심으로 베풀고자 했다. 영화가 비록 자신을 위한 지혜의 추구와 타인을 위한 자비의 실천을 극단적으로 대비시켜 표현하고 있지만,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원효와 의상이 보여준 삶은 한국불교 나아가 불교가 추구하는 지혜와 자비를 어떻게 조화(‘自利利他’)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해결점을 동시에 제시한다 하겠다.
<<의상 사상 정리>>
1. 일승 사상이란 이 세상 모 든 유정(有情)과 무정(無情)이 지금 있는 그대로 모두 부처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 세계가 지금 있는 그대로 극락이라는 것이다.
2. 성기 사상이란 현상계의 삼라만상과 일체의 물리적 심리적 현상은 진성(眞性)이 인연 따라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는 것이다.
3. 상즉상입설이란 현상계의 삼라만상은 진성의 응현(應現)으로서 그 근원이 동일하므로 원융하여 서로 걸림과 장애 가 없으며, 서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가 다른 존재이면서 동시에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4. 대승 52위는 지금 이대로의 자기 자신이 부처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중생이 올바른 깨달음을 얻어 부처를 이루도록 하기 위해 제시된 수행방법을 말한다.
화엄경의 핵심 사상 네 가지가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1. 일승 사상은 인간 및 인간 삶 에 대한 최고의 긍정 철학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일승 사상은 모든 인간은 지금 있는 그대로 모두 부처이며, 인간이 살고 있는 이 현실 세계가 지금 있는 그대로 극락이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 성기 사상은 만인이 평등하고 한 형제이며, 나아가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 식물, 무생물도 서로 평 등하고 인간과도 평등하다는 최고의 평등사상의 근거가 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성기 사상은 현상계의 일체 만물은 모두 법성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그 근원이 동일하여 서로 평등하며 소중하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3. 상즉상입설은 현상계의 삼라만상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체로서 한 몸’이 라는 것을 말한다. 현상계의 삼라만상은 모두 진성의 응현이어서 그 근원이 동일하기도 하지만, 서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어떤 것이든 그것은 다른 것 없이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4. 대승 52위는 우리 인류가 부처라는 자기정체성을 회복하여 ‘지금 여기’에 이미 존재하 는 극락에서 행복한 삶을 영위토록 하기 위해서는 무명 업식을 잠재우는 것이 핵심임을 말해 준 다. 법성게에서 파식망상필부득(叵息妄想必不得)이라고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