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비스타의 천 가지 꿈> 발제
박창열
오래된 집으로 이사를 했다. 전셋집이기도 하고, 이사 날짜가 촉박해 도배할 시간도 없어 그냥 살게 되었다. 아내는 집에서 오래된 냄새가 난다고 투덜됐다. 나는 예민하게 군다고 타박을 했다. 그러나 비가 오고 날이 습해지자 나도 냄새가 나는 것이 느껴졌다. 나중에 제일 냄새가 많이 나던 방 하나만 도배를 새로 했지만 지금도 완전히 냄새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집마다 집의 냄새가 있다. 오래된 집일수록 더하다. 집이 사는 혹은 살던 사람들의 생활취를 머금고 있는 것이다. 집에는 살던 사람들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 그런데 집이 가지고 있는 흔적이 냄새를 넘어 살던 사람들의 감정과 성격과 태도라면 어떨까?
<스텔라비스타의 천 가지 꿈>은 미래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버밀리언샌즈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마을은 “정신감응식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정신감응식 건물”은 거주민들의 정신에 반응하는, 마치 하나의 인격과 같은 건물이다. 그 건물은 살던 사람들의 감정과 성격과 태도의 흔적을 깊이 가지고 있다. 사람의 성격 형성에는 유전적 요인과 후천적 요인이 있다고 말한다. 이 건물들은 유전적 요인 없이 후천적 요인들에 의해 성격이 결정된 존재다.
아내와 함께 집들을 둘러보면 하워드 탤벗은 과거에 자신이 변호 보조를 한 글로리아 트레메인이라는 영화배우가 살던 집을 보게 된다. 그 집은 기묘하고 섬뜩하여 부동산 업자도 선뜻 추천을 하지 못한다. 아내도 견디지 못할 정도로 싫어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 집을 계약한다. 왜냐하면 과거에 그는 그 여배우에 매혹당했었기 때문이다.
하워드에게 이 집은 단순한 집이 아니다. 글로리아 트레메인 자체이다. 그는 집에 남아 있는 그녀의 흔적을 통해 그녀와 교감한다. 아내는 이상한 동거를 눈치챈다. 집이 간직하고 있는 글로리아를 제거하려고 한다. 하워드는 아내의 행동에 분노하고 갈등이 고조된다. 둘 사이의 고조된 감정은 집이 간직한 또다른 기억을 끄집어 낸다. 글로리아에게 살해당한 밴던 스타에 대한 기억이다.
이쯤부터는 집의 기억이 하워드를 집어 삼킨 듯 하다. 집의 기억이 하워드와 그의 아내 사이에서 다시 현실로 반복된다. 하워드는 밴던이 그러했던 것처럼 아내에게 분노를 쏟아낸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내는 떠나버린다. 만약 아내가 그대로 있었더라면 살인까지도 반복되었을 것이다.
두 달이 지나 하워드는 아내의 연락을 받는다. 이혼소송을 했다는 것이다. 이혼 소송의 이유는 다른 남자와 재혼하기 위해서였다. 분노에 가득찬 하워드는 그 감정 그대로 집에 돌아가고, 하워드의 분노는 집을 자극한다. 하워드의 감정에 감응한 집은 기억하던 밴던의 감정과 공명하게 된다. 그리고, 하워드를 죽이려 한다.
끔찍한 시간이 지나고 하워드는 살아남는다. 하워드는 밴던의 기억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여전히 집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글로리아와 함께하기 위해 기이하게 일그러진 집으로 다시 돌아간다.
소설을 읽고 나니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다르게 느껴진다. 이 오래된 집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았을까? 얼마나 깊고 내밀한 것들을 지켜봤을까? 얼마나 기구한 사연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소설처럼 이 집이 살던 사람들의 정신에 감응한다면 이 집은 어떤 모양일까?
다행이다. 내가 사는 집이, 그리고 우리가 사는 집이 그렇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