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미 예찬》은 중국 사상과 예술의 세계를 무미(無味)의 미학으로 풀어내는 프랑스의 중국학자 프랑수아 줄리앙의 책이다. 그는 회화, 음악, 시, 서예, 인성론, 윤리학, 세계관 등 중국 문화의 다양한 측면들이 “무미”(無味)─역자는 “무미”를 같은 책에서 담백함, 싱거움, 맛없음을 뜻하는 “담”(淡)으로 번역하기도 한다─라는 견지에서 어떻게 일맥상통하는가 하는 점을 밝힌다.
“맛은 우리를 얽어매지만, 맛없음[무미]은 우리를 풀어준다. 전자는 우리를 사로잡고 몽롱하게 하며 예속시키는 반면, 후자는 우리를 외부로부터의 압력이나 감각의 흥분, 모든 허탄하고 일시적인 강렬함으로부터 해방한다. 그것은 우리를 덧없는 매혹들로부터 자유롭게 하며 우리를 소모시키는 그 모든 소란을 침묵케 한다. 세계의 무미함을 파악할 줄 아는 내면성은 동시에 정적과 평온을 되찾으며, 그것을 통해 그만큼 더 자유롭게 성장한다.” 사람의 성품도 무미를 최고로 친다. “군자의 사귐은 물같이 담백하지만 소인의 사귐은 단술처럼 달콤하다.”
“대체로 사람의 재질에서 가장 높이 평가되는 것은 균형과 조화이다. 그런데 성격이 균형 잡히고 조화롭기 위해서는 반드시 평범하고 담백하며 아무런 맛이 없어야 한다. 그런 성격은 어떤 경우에나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다.” 음악도 무미의 음악이 있다. “무미한 음이란 멀어져 가는 나직한 소리, 아주 천천히 사라져 가는 소리이다. 아직 들리기는 해도 거의 들리지 않는 그 소리는 갈수록 어렴풋해지면서, 그 너머에 있는 정적을 한층 더 부각시킨다. 그 잦아드는 소리는 우리로 하려금 들리는 것으로부터 들리지 않는 것으로 차츰 나아가게 하며, 그 소리는 청각적 물질성에서 차츰 벗어나, 우리를 침묵의 문턱으로 안내한다. 모든 조화의 뿌리에 있는 충만한 침묵으로.”
물론 이 책은 영성 서적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독을 권하는 이유는 이 책이 관상적 영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관상적 영성은 그 어떤 맛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신비체험이 주는 황홀함이나 특별한 영적 체험이 주는 감미로움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관상적 영성이야말로 “맛없는” 영성 즉 “무미의” 영성이다. 그런데 관상적 영성이 깊어지려면 무미의 감수성이 깨어나야 한다. 이 책은 자극적이고 현란한 맛에 길들어져 있는 현대인들을 무미의 세계로 인도한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십자가의 성 요한의 말이 생각났던 까닭은. “모든 것을 맛보기에 다다르려면, 아무 것도 맛보려 하지 말라. … 맛보지 못한 것에 다다르려면, 맛없는 거기를 거쳐서 가라.”
(이민재 목사 - 한국샬렘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