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사랑, 아름다움 / 송수경
첫 직장이 생각난다. 아버지가 사주신 검은 구두, 빌려 입은 듯한 정장, 서툰 화장을 하고 면접을 보았다. 얼마나 떨리던지 청심환을 단숨에 먹어버렸다. 어떤 말이 오고 갔는지 생각나진 않지만, 합격했을 때의 기쁨과 첫 월급으로 가족들의 선물을 살 때 얼마나 뿌듯했는지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람쥐 쳇바퀴 같은 회사생활의 답답함과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에 진저리가 쳐져 2년 6개월 만에 사표를 던졌을 때의 황홀함은 잊을 수 없다. 감옥에 갔던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자유로워지고 싶었는지. 힘들 때마다 먹었던 커피믹스를 차곡차곡 쌓으면 방안에 가득할 것이다. 그 후 일 년 정도, 하고 싶은 공부도 하며, 잠도 마음껏 자고 여행을 다녔던 시간이 당시에는 세월을 허비하는 듯했는데, 다시 생각해봐도 잘한 것 같다. 해외여행이 쉽지 않던 시절 강원도와 제주도의 푸른 바다, 한라산과 설악산의 웅장함도 그때의 소중한 기억이다. 이제는 책임져야 할 일들이 수두룩해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한다. 하지만 일하는 즐거움과 중간중간 주어지는 휴식은 너무나 달콤하다.
‘청년’에 따라붙는 단어를 고르라면 ‘사랑’을 꼽고 싶다. ‘귀여운 여인’,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 주인공의 사랑에 함께 울고 웃으며, 영화 같은 사랑을 꿈꿨었다. 이제는 고전이 된 영화처럼, 사랑도 고전이 되는 것일까? 연애할 때, 자신이 아니면 죽겠다고 울고불고 매달려 날 진짜 사랑하나 보다 감동하여 결혼했더니, 바람이나 피우고 지금은 매끼 밥 달라는 말 밖에 할 줄 모르는 미운 사람이 자기 남편이라고 말하며, 지나간 사랑을 아쉬워하던 지인이 떠오른다. 나도 3년 동안 장거리 연애를 하며 파란만장한 사건들 가운데 결혼했는데, 세월이 흐르니 사랑의 설렘도 사라지고 남편과 전우애로 사는 것 같다. 하지만 편안하고 익숙한 전우애가 싫지만은 않다. 가슴 떨리는 사랑은 청년 때의 특권이라고 접어 두고 싶다.
여름 동안 길게 자란 머리카락이 손질하기 귀찮고, 머리 스타일도 바꾸고 싶어 오랜만에 미용실에 갔다. 고심 끝에 이마가 살짝 보이게 앞머리를 내렸더니, 거울 속의 내 모습이 굉장히 낯설다. “청순해 보여요! 청년 같아요!” 미용사의 연이은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다가 한동안 외모 때문에 고민했던 청년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항상 45킬로였다. 하지만, 몸에 비에 얼굴이 크고 둥글며 볼이 통통하여 어른들은 복 있는 얼굴이라 말씀하셨지만, 브이라인 얼굴이 미인의 기준처럼 여겼던 시절이라 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또, ‘김희선’, ‘김혜수’, ‘이영애’ 등 인기 여자 연예인들의 큰 눈이 무척 부러웠다. 부모님과 언니, 오빠는 쌍꺼풀의 큰 눈인데, 도대체 나는 누굴 닮았는지 쌍꺼풀도 없고, 코까지 낮아 이 얼굴로 연애는 할 수 있으려나 고민이었다. 나만 왜 이렇게 못생기게 낳아 주었냐고 부모님께 불평도 많이 했다. 사람은 내면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지만, “내면도 아름답고 겉모습도 아름다우면 더 좋잖아!”하며, 말끝마다 토를 달았다. 외모에 한참 민감하여서 신체적 결점만 보였다.
그때는 20대의 아름다움을 전혀 몰랐다. 청바지에 흰 티셔츠만 입어도 멋스럽고, 활짝 웃는 웃음만으로도 얼굴에서 빛이 나며, 개성 있는 얼굴이 훨씬 아름답다는 것을…. 이제는 볼살도 많이 빠져 브이라인 얼굴형으로 조금씩 변해가고, 그렇게 갖고 싶었던 쌍꺼풀도 노화로 인해 생기고 있다. 그런데 하나도 즐겁지 않다. 더운 날씨와 마스크를 매일 써야 해서 화장을 소홀히 했더니 피부색이 칙칙하고 기미와 잡티가 가득하며, 주름이 많아졌다. 자꾸 늘어가는 흰머리 때문에 거울 보기가 싫어진다.
얼마 전, 발달 장애를 가지고 있는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가 내가 제일 예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물론, ‘그 아이가 만난 여자 중’이라는 단서가 붙겠지만 예쁘다는 말이 싫지 않다. 남편에게 지금도 내가 예뻐 보이냐고 묻자 빙그레 웃기만 한다. 웃음의 의미를 모르겠다.
“40대도 아직 젊고 예쁜 나이인데, 20, 30대를 기준으로 생각하니 젊음이 끝난 듯 느껴진다.”라는 누군가의 글이 마음에 남는다. 외적인 아름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두진 않지만, 아름다운 아줌마,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 청년 시절의 젊음과는 다른 조금 무르익은 젊음으로 인생의 후반을 잘 준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