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슬라 아트센터 방문기
초여름 시기인데 한 여름처럼 바뀐 6월의 어느 날(2024년 6월 13일) 해돋이의 명소 정동진(正東津)에 위치한 하슬라아트센터(Haslla Art Center)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곳은 고구려시대에 불리던 강릉의 옛 이름 ‘하슬라’와 복합문화 예술 공간을 표방하는 ‘아트센터’가 만나서 옛것과 새것(古今), 카페와 예술이 결합된 문화 예술 공간으로 2003년에 설립되었다. 그 후 10년 동안 조각공원, 갤러리, 호텔이 차례로 세워지면서 복합문화 예술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동해를 바라보며 펼쳐지는 이곳은 자연 속에서 예술을 만날 수 있으니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예술 체험장이다. 햇살에 반짝이는 잿빛 바다는 방문객에게 일상의 고단함까지 말끔히 씻어 주고 있어서 맑고 쾌청한 날에 오면 덤으로 얻는 특혜도 있다. 자연 경관과 어우러져 전시된 다양한 국내외 작품들은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예술관 앞에 펼쳐져 있는 창공(蒼空)과 창해(蒼海)가 맞닿는 지평선 끝자락까지의 드넓은 공간은 인간과 예술품의 절묘한 하모니를 연출하는 무대로 꾸며져 이 둘의 합일을 만끽하는 이들에게는 오랫 동안 기억의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아트센터 언덕길을 오르면 색색의 유리 벽 건물의 뮤지엄 호텔이 손님을 맞이한다. 이 호텔을 중심으로 현대미술관, 피노키오 & 마리오네트 갤러리가 연결되고 야외 조각공원까지 이어진다. 1층 홀 안으로 들어서면 아트숍, 레스토랑, 기획전시실이 있다. 벽 곳곳에 걸린 그림과 레스토랑 천장에 매달린 슈퍼맨 목조각, 스테이플러 심을 촘촘히 박아서 만든 하마 모양의 조형물 등은 대단한 작품이다. 기획전시실에는 나무 합판을 층층이 붙여서 만든 큰 그릇 〈우주〉는 이 센터가 자랑하는 대표적 작품이다. 기획전시실을 지나 미술관 화살표가 그려져 있는 문을 열면 신비로운 조명이 인상적인 터널미술관이 나온다. 지하 미술관으로 내려가는 통로다. 터널에 들어서면 화려한 색깔의 조명이 춤을 춘다. 아이들에게는 공간을 넘나드는 것 또한 하나의 놀이다. 회화작품이 걸려있는 지하 미술관을 지나면 ‘미술관 친구들이 머무는 곳’이 복도를 따라 이어져 있다. 아이들에게 색연필을 쥐어주고 즉석에서 그림을 그려보게 할 수 있는 곳이다. 벽면에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곳곳에 붙어있다.
파이프 터널을 빠져나오면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서있는 현대미술관 건물이 있다. 기획전시와 초대전시가 열리는 공간으로, 바닥을 뚫고 나온 듯한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의 청동 흉상이 특히 인상적이다. 이들은 강릉의 대표 인물이며 한국 역사에 획을 그었던 모자(母子) 사이다. 현대미술관 지하에는 아이들의 흥미를 끄는 전시물이 가득하다. 만화 영화를 틀어주는 피노키오 영상관, ‘피노키오 & 마리오네트 전시관이 나온다. 피노키오를 모티브로 한 작품과 이곳 관장인 박신정 최옥영 부부가 이탈리아에서 수집한 피노키오 인형, 유럽 각국에서 모은 마리오네트가 넓은 공간을 채우고 있다. 갤러리를 나와 호텔 뒤편에 있는 탁 트인 전망대에 서면 푸른 바다가 주는 시원함이 일품이다. 바다카페 ‘항상’에 마련된 테라스다. 드넓게 펼쳐진 수평선을 내려다보며 마시는 차 한 잔에 시름을 잊는다. 콘크리트 벽 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조각상 〈포세이돈의 귀환〉에 자연히 눈길이 간다. 카페를 지나면 야외 조각공원 탐방로가 시작되는데 해안 절벽 언덕을 따라 조성된 3만 3천 평의 공원은 자연 속 예술 체험의 현장 그대로다. 공원은 소나무정원, 시간의 광장, 놀이정원, 하늘정원, 바다정원 등의 테마로 나뉜다. 2km쯤 되는 산책길은 쉬엄쉬엄 걸으면서 망중한의 여유를 만끽하게 된다.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보고는 너무 비싸다는 느낌이 여기까지 돌고 나오면서 하나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의 전환이 자연스럽게 작동한다.
하슬라 아트센터에서 만나는 예술 작품은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작품의 소재가 매우 평범한 물건이라는 점이다. 수도관 파이프, 포장용 적색 끈, 사무용품 스테이플러 심, 목재용 대못 등등이다. 하나로만 보면 별 것이 아닌 것들이 많은 양으로 한 데 모아 놓으니 거대한 작품으로 변신되었다. 깨알 같이 작은 스테이플러 심으로 만든 하마상, 적색 노끈으로 만든 미로(迷路)를 보면서 군집의 웅장함에 압도당한다. 티끌이 태산을 만든다는 속담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하다. 또한 얽히고설키도록 쌓아놓은 고물 피아노, 버려진 의자에서 예술의 가치를 보는 신비도 있다. 이렇게 버려진 폐물이 보물로 탈바꿈하여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 된다는 사실에 적이 놀란다. 버려야 할 폐품이 어쩐지 잘 보관해야 할 귀중품으로 신분의 수직 상승효과를 만들어 낸다. 나 하나는 초라하고 무능해 보여도 힘을 모으면 대단한 역사를 창출하는 원동력이 되고, 게다가 창조주의 손에 붙들릴 때는 누군가의 발길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매력을 발산한다. 누가 그 미천한 물건을 어떻게 만졌는가에 따라서는 이렇게 폐품이 작품으로의 탈바꿈을 보면서 기적이 따로 없다는 느낌이다. 작품에 사용된 흔하디흔한 이 소재를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작동하지 않는 결정적 하자가 발생한 인간이 목수이신 예수님의 손에 만져지고 정품을 넘어 작품으로 거듭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겹친다. 누가 만든 작품인가에 따라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머물게 하는 신비가 있다. 미천한 내가 존귀한 자로의 인정됨은 나를 부르신 주님께 순종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이 센터를 방문한 후 마음 한 구석에 여적처럼 남는 상념이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 43:1).
스테이플러 심으로 만든 하마 조형물
나무를 층층이 겹쳐서 만든 작품 "우주"
버려진 피아노, 폐품처럼 버려진 그대의의 모습이 작품이 되었다.
종이상자 포장용 빨간 끈이 모아져 거대한 작품을 이룬다.
신비로운 조명이 인상적인 터널 미술관
파이프로 만든 야외 공간 하늘 높이 작품 "포세이돈의 귀환"이 인상적이다.
어린이들의 동심을 자극하는 피노키오 관
대못으로 만든 작품
피노키오처럼 거짓말하면 코가 커지는 고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