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잠 / 김석수
“아침 운동하느라 피곤했는가요? 오랜만에 코 고는 소리가 거실까지 들려요.”라고 아내가 웃으면서 한마디 한다. 수영장에 다녀와서 아침 먹고 책상에 앉으니 몸이 나른하다. 컴퓨터 글씨가 눈에서 멀어진다. 눈꺼풀이 스스로 내려 감긴다. 잠시 눈을 붙이려고 이부자리를 깔지 않고 옷도 벗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웠다. 눈같이 포근하고 안개같이 아늑한 잠이다. 10여 분만 자려고 했는데 한 시간이 지났다. 자유 수영하는 날이라 접영으로 50미터 레인을 여러 번 왔다갔다했더니 힘들었다. 아주 달게 곤히 잤다. 머리가 깨끗하다. 옛일이 산뜻하고 뚜렷하게 떠오른다.
어릴 적 기억을 되돌아보면 엄마 젖을 물고 잠든 기억은 없다. 서너 살 안짝에 밭에서 놀다가 잠을 잔 적이 있다. 외할머니는 우리집에 와서 외갓집으로 가끔 나를 데리고 갔다. 어른이 외가 동네까지 가려면 한나절쯤 걸리지만 외할머니와 나는 하루가 넘는다. 넓은 들을 지나서 높은 산으로 올라가 고개를 여러 번 넘어야 갈 수 있다. 그녀는 아장아장 걷는 꼬마를 앞세우고 머리에 짐을 이고 간다. 예전의 논둑길은 아스팔트 길로 고갯길은 터널로 바꿔서 지금은 승용차로 20여 분쯤 걸린다. 저녁을 먹고 숟가락을 놓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창문으로 따사로운 햇살이 비켜 들어올 때까지 늘어지게 잤다.
화창한 봄날 외할머니는 일하러 가면서 나를 밭으로 데리고 간다. 골목 어귀를 나와서 산비탈로 한참 올라간다. 아장거리는 꼬마는 힘들었는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밭둑에 들어서자 달래와 쑥이 많다. 좁은 길을 걸어서 키가 큰 박달나무가 있는 곳으로 간다. 외할머니는 나무 아래 새참을 담은 바구니를 두고 밭으로 간다. 풀을 한아름 안고 와서 바닥에 깔아 주었다. 마른 풀 줄기가 뻐세지 않고 연하다. 폭신한 이부자리를 펴 놓는 것 같다. 바람이 설렁하고 지나가자 땀이 좀 식는 듯하다. 나른하고 힘이 빠진다. 꿈나라로 간다.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데 꿈에서 엄마가 “일어나서 감자 먹어라.”라고 한다. 새참 먹자고 외할머니가 나를 깨운 것이다. 눈을 떠 보니 나비가 날아가고 파란 하늘에는 하얀 뭉게구름이 흘러간다. ‘엄마가 나를 보고 싶었나?’
대학 교수로 정년퇴직한 친구가 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잠 때문에 낭패를 봤다. 시험 때가 되어서야 밤을 새우며 벼락치기 공부를 하다 꼬박 잠이 들어서 시험 날 지각한 것이다. 그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했다. 공부 잘하는 그가 결석하자 선생님이 중간 놀이 시간에 반장에게 그의 자취방에 가보라고 했다. 그 친구가 창문을 두드리고 방문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그는 일어났다. 부랴부랴 학교로 달려갔지만 오전 시험을 볼 수 없다. 그는 ‘망각의 방어기제’가 무의식에서 작동했는지 모르지만 ‘단잠’을 잔 것이다.
처음 직장에 다니던 시절 주막집에서 술을 마시다 졸았던 기억이 많다. 나는 막걸리 반 잔만 해도 얼굴이 홍당무가 된다. 대낮에 술을 입에 대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술자리에서 되도록 적게 마시려고 병아리 물 먹듯이 한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양이 많아진다. 다른 사람은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다는데 나는 그 반대다. 언젠가는 직장 동료와 함께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다 탁자에 고개를 처박고 잠이 들었다. 그 자리에서 대화 주제는 윗사람 흉보기다. 전날 술을 함께 마셨던 선배가 “자네가 잠꼬대하면서 윗사람 욕을 하던데.”라고 귀띔해서 놀랐다. ‘자아’가 ‘원초아’를 통제하지 못했던 순간이다.
영화관에서 가끔 잠을 잔다. 한여름 태양과 지구가 가장 가까운 무렵에 영화 보러 가면 잠이 잘 온다. 한증막처럼 무덥고 답답한 곳에서 아이스하키장처럼 시원한 곳으로 들어가면 등골에 흐르는 땀이 식는다. 팝콘을 먹고 영화 전반부가 지나면 고개를 떨구고 꿈에서 영화를 본다. 옆에 앉은 아내가 옆구리를 찌르며 고개를 들어 준다. 듣기 싫은 이야기를 남이 늘어놓으면 눈을 감고 있다가 자버리기도 한다. 회의 석상에서 가끔 조는 수가 일쑤다. 고속버스나 비행기에서 책을 읽다가 잠을 자기도 한다.
아무 데서나 잠을 잘 잤던 내가 요즘 잠이 잘 안 올 때가 있다. 중간에 두세 번 깨는 적이 많다. 나이 탓도 있겠지만 내 욕심 때문인지 모른다. “잠을 방해하는 큰 원인은 욕심이다. 물욕, 권세욕, 애욕, 거기에 따르는 질투, 모략 이런 것이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수가 많다.”라고 긍정 심리학자는 주장하고 있다. 거지는 길모퉁이에서도 잠을 잘 수 있다. 부자는 황금 침대에서도 불면증으로 괴로워할 수 있다고 한다. 시계추를 멈춰놓고 잠을 자려고 애쓰는 사람과 알람을 꺼버리고 다시 잠이 들어버리는 사람의 행복은 다르다.
잘 자려고 오후에 커피는 물론 차나 음료수도 안 마시고 담배를 입에 물지 않는다. 매일 한 시간 수영하고 가끔 활쏘기한 뒤 산책한다. 이는 새로운 생활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오직 잠을 잘 자려고 하는 것이다. 학교가 늦었다고 일으키면 쓰러지고 또 쓰러지고 눈을 비볐던 그런 잠을 언제쯤 다시 자볼 수 있을까? 단잠은 괴로운 인생길에서 우리에게 금쪽같은 선물이다.
첫댓글 늘 강건해 보이세요.
오래도록 건강 잘 지키시길 바랍니다.
네, 고맙습니다.
저도 밭에서 잔 적있어요.
그 기분 지금도 기억해요.
아주 달아서 행복했거든요.
아 그런 경헝이 있군요. 고맙습니다.
단잠을 잘 못 자니 저도 영화관에서 졸다 딸들에게 비난 꽤나 들었던 날이 생각나서 웃었습니다. 잠퉁이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저도 놀랐어요. 노화는 다양하게 우리를 괴롭히네요.
네, 교장선생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서너 살 안짝의 기억이 여즉 남아 있다니요?
역시 대단하십니다.
수영을 마치고 자는 단잠이 얼마나 달지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네, 교장선생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