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12(월)
역대기상권 22장~26장
(1역대 22,10)
그는 나의 아들이 되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묵상ㅡ
다윗이 주님의 집을
지으려 했건만 주님의
말씀이 달리 내렸다.
사람의 피를 많이 흘리고
큰 전쟁들을 벌였으므로
너는 안되고 네 아들
솔로몬에게 자격이
넘어갈꺼다. 내가 그를
평온하게 해줄 터이니
그가 바로 내 이름을
위한 집을 지을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다윗은 아들 솔로몬이
나이도 어리고 연약하여,
주님의 집을 짓기엔
버거울수 있으니 자신이
준비를 많이 해줄거라고
한다. 뭘 못해주겠는가.
천하를 호령하는 임금인
데다가 주님이 도우시는
사람이니 오죽 잘하랴!
준비한 목록만 봐도 대박이다.
대문짝에 쓸 못과 꺽쇠를 만들
쇠부터 무게를 달기 어려운
청동에 질좋은 향백 나무에
금 십만 탈렌트, 은 백만 달렌트 등,
수많은 일꾼들과 온갖
기술자들까지 우와!!
그러고는 아들에게 주님이
도우실것이니 어서 일을
시작하라고 한다.
멋진 다윗, 그는 능력있는
아버지, 든든한 권위자다.
하지만 다윗의 개입은 여기까지!!
선을 넘고 다가가서 더 많은
것들을 주려고 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모든 대신들에게
자기 아들 솔로몬을 도와 하느님의
성소를 지으라고 명령한다.
'이제 나는 장렬하게
뒤로 물러날 것이,
솔로몬 임금과 대신들이
알아서 잘 해보시오.'
라고 먼저 경계를 세워준
것이 인상적이다.
왜? 다윗은 맘만 먹으면
뭐든 해줄수 있고, 또
아들에 대한 걱정이 많고
집착이 강했다면 주님
몰래 월권해서라도
안전장치를 만들어줬을터,
하지만 그는 주님의
말씀이 내린것을 잘
알아듣고 지는 해(다윗)
와 뜨는 해(솔모몬)의
처지를 제대로 간파한
것이다. 사울같았으면
그렇게 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적재적소에서 자신의
역량과 그릇을 인정하고
'그래, 내 역할은 여기까지'
라고 깔끔하게 손털고
몇걸음 뒤로 물러서는거,
아무나 세울수 있는 경계는
아니다. 배울점이다.
세상 모든 아버지와 아들이
다윗과 솔로몬처럼
건강한 관계를 맺기가 쉽지
않다는거, 우리는 현실에서
자주 경험한다.
재산 때문에 서운해하고
불공평하다면서 아예
등지고 인연을 끊는
관계가 얼마나 많은가.
다윗이 아들 솔로몬을
존중하며, 도울수 있는
것은 뒤에서 준비해주고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개입하셔야 몫이라고
받아들인 그 태도에서
나는 분별력을 배운다.
하느님의 일, 이웃의 일,
나의 일을 정확히 식별해서
행동으로 옮기는 자세,
누구에게든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한다.
이렇게 멋지고 든든한
아버지가 될수 있었던
원동력은 주님의 말씀에
대한 확고한 신뢰와
의탁의 힘, 바로 이 말씀 덕이었다.
'그가 바로 내 이름을
위한 집을 지을 사람이다.
그는 나의 아들이 되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1역대 22,10)
다윗과 솔로몬은 피를
나눈 부자지간이지만
하느님께서는 이제,
그 관계를 넘어서서,
당신과 영적인 관계를
새롭게 맺기를 바라신거다.
영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그것은 곧, 신성을
지니신 하느님과 인성을
지닌 인간 솔로몬과의 관계,
위대하리만치 귀하고
자비로운 사랑의 관계말이다.
그러니 다윗이 모든 걱정과
애착을 내려놓고 아들을 하느님께
턱, 맡길 수 있었던 거다.
이 대목에서 나는,
다윗과 솔로몬 부자의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과
굳은 믿음이 마구 느껴졌다.
그는 나의 아들이 되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될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너무 친근하게 다가온다.
내 육신의 아빠와 맺어온
부녀 관계가 거울처럼
비쳐진다. 아울러 그
고착된 관계에서 벗어나
하느님 아빠와 다정하고도
살가운 관계로 변모해가는
나의 치유와 구원 역사가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내가 주님의 딸이 되고
주님이 나의 아빠가
되어주시는 관계가
온전히 맺어지면,
내 육신의 아빠와도
다윗처럼 건강한 경계를
세울줄 아는 관계로
성장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주님께서는 내게도 같은 말씀을
내려주시는 것 같았다.
'그(요세피나)는 나의 딸이 되고
나는 그(요세피나)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러니 너는 너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거라.'
아멘!!!!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