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탄중학교 제자들
연희동 김숙자
1972년도 3월 가정 대학 권영찬 학장님의 추천으로 교사생활이 시작됩니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소재한 광탄중학교에 근무하게 되었지요.
대학교 생활 4년 동안,
성동구 화양리를 벗어난 적이 없던 나는
북한이 가까운 문산, 파주가 무서운 격전지 같은,
위험한 곳으로 알았습니다.
이른 아침에 화양리에서 을지로 5가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갑니다.
다시 은평구 불광동 시외버스 터미녈까지 가는 155번 시내버스로 이동합니다,
아침 7시 45분 불광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적성 가는 버스를 타면 간신히 8시 반쯤, 학교에 도착합니다.
이미 직원 조회를 하고 있습니다.
죄지은 사람처럼 움츠리고 조용히 내 책상에 앉아 직원 조회에 참석하던
45년 전의 씁쓸하고 고달팠던 기억이 회상되네요.
이렇게 6개월 가량 출, 퇴근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6개월 후에 학교 부근에서 하숙 하였지요.
그 후 2년을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였던 삼송리에서 방을 얻어 자취 하였습니다.
그 때 당시 새로 조성하여 지은 100여 채의 주택단지는
양지바른 산자락에 자리한 비둘기 마을이라고 불리웠고,
경치가 아름답고 아주 쾌적했습니다.
이곳에서 결혼 전까지 시외버스로 출퇴근하며 중학교 교사생활을 하였습니다.
가족 구성원의 재단측은 적성에서 양조장과 방앗간을 운영하였고
광탄에서는 재단 이사장의 동생이신
교장 선생님이 남녀 공학, 사립 중학교를 운영하였습니다,
1,2 학년은 5학급 3학년은 2학급으로 학생 수는 500여 명 정도였습니다.
재단 이사장 겸 교장 선생님은 반쯤 흘러내린 바지를 입고, 노동자의 옷차림으로
매일 호미나 삽을 들고 학교 주변의 빈 공터와 관사 주변의 텃밭을 관리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흙 묻은 손에는 늘 잡풀과 낫이나 호미를 들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실과 시간에 실습지(?) 또는 주변의 텃밭에 풀을 뽑거나
비 오는 날에는 모종하느라,
현장 체험실습을 합니다.
특히 비 온 후에는 학생들을 인솔하여
신산리 외진 길가에 코스모스 모종을 하던 옛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하기 싫은 노동이라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관사 주변의 텃밭과 실습지엔
땅에 묻힌 밤톨에서 뾰족이 새싹이 돋아나던
넓은 밭고랑이 눈에 선합니다.
학생들 구성원은 탄현면 검정리, 고양의 보광리, 율곡리 등
십리 길 이상에서 통학하거나
기지촌인 광탄읍에서 다니는 남, 여학생 500여 명 정도였습니다.
남자 선생님은 당직을 서야되고,
여선생 둘 뿐인 나와 미술 선생은 일요일마다 일직을 섭니다.
미술선생은 문산에서 살았고,
나는 서울에서 차를 세 번이나 갈아타며 학교에 갑니다.
황금 같은 일요일을 격주마다 일직을 서야 하니
그때는 참기 힘든 고달픈 교사 생활이었지요.
서울에서 출, 퇴근하기에 교통이 아주 불편했던 그 시절
기억하고 싶지 않은 3년 간의 슬픈 추억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가끔 그리워지네요.
지금쯤 60세가까이 되었을 제자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2017년 3월 9일. Kim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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