詠淸凉精舍 二曲
(청량정사에서 두 곡을 노래하다)
한낮에 길을나서 청량정사 올라서서
육육봉 바라보며 남긴시 거둡외우니
비로서 선생의뜻 어렴풋이 알리라
청량정사 뜰에서 경공부를 익히고
지숙료 운서루에서 성현을 뵈오면
여섯 번이 무어랴 육백번도 오르리
2015. 3. 22.(일). 15:30
청량정사 오산당 마루에서
봄바람이 거센 일요일 오후, 혼자 청량산 청량정사를 찾았다. 3월22일 일요일 오후 1시에 수련생들을 전송하고 수련원에서만 틀어박혀 지내던 일상을 벗어나 사탕 몇 알과 물 1병 들고 나섰다. 淸凉精舍는 퇴계선생께서 소년시절에 숙부 송재공을 따라서 공부하던 곳이다. 이때부터 퇴계선생께서는 淸凉山(870m)을 사랑하시게 되었으며, 이후 생전에 모두 여섯 차례 찾으시게 된다. 백두대간의 12대 명산 중 하나인 청량산을 좋아하신 나머지 호를 ‘청량산인’이라고 하시기도 하셨고, 내가 사랑하는 산이라고 해서 ‘오가산’(吾家山)이라고도 하셨다. 청량산에 관한 漢詩가 약 50 작품이 전해 내려올 정도로 청량산은 퇴계선생의 평생의 벗이셨고, 道學 탐구의 터전이었다. 퇴계선생 사후 후학들은 그 자리에 현재의 건물을 세우고(1832년) 청량정사라고 명명하였다. 1896년(고종 33년) 병화로 소실되었다가 1900년에 다시 중건되었으며, 이곳에서 수차례 큰 강독회가 개최되는 등 제자와 후학, 선비들이 즐겨 찾던 곳이 되었디.
차를 立石 주차장에 세우고 1시 33분에 산에 올랐다. 인위적으로 만든 가파른 나무계단을 두어번 쉬어가며 2시경 무위당(無爲堂)에 다다랐다. 출입이 금지되어 들어갈 수는 없으나 사람이 기거하고 있어 보이는데, 건물의 이름이 무위당이라면 혹 수행스님이나 세상만사 내려놓고 무위자연하는 도인이 기거하는 곳이 아닌가 모르겠다.
바로 옆에 있는 응진전(應眞殿)에서 휴식을 하였다. 전국 어느 사찰이라도 應眞殿이 있기 마련이다. 부처님의 16제자이신 성인들을 모시고 있어서 나한전이라고도 하는데, 이곳 응진전은 신라 고승이신 원효대사가 수행하던 곳이며, 또한 고려 공민왕의 왕비 노국공주의 상을 모시고 있어서 특이하다.
응진전을 나와 최치원이 마셨다는 총명수(聰明水), 어풍대(御風臺)를 지나 신라 명필 김생이 글씨 공부를 한 금생굴(金生窟)에 14시 35분에 이르렀다. 김생이 암자를 지어 글씨 공부를 한 김생굴은 지금도 그 흔적이 또렷하다. 이렇듯 청량산에는 퇴계선생을 비롯하여 신라의 명현이신 원효, 최치원, 김생 등의 선인들이 공부하고 수행하던 산이니 소금강이라 할 만큼 빼어난 산세가 가히 역사적 인물들을 품고 키우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김생굴을 나와서 淸凉寺에 돌아내려와 대웅전인 유리보전을 둘러보고 오늘의 목적지인 청량정사로 향하였다. 절에는 두 달 뒤에 오는 부처님오신날을 대비하여 색색의 연등이 줄줄이 달려있어 봄날의 사찰 정취를 더욱 아름답게 해주고 있다. 청량정사를 관리하시는 향곡 김성기씨의 산집에서 약차 한 잔 마시며 피로를 벗어놓았다. 가끔 산에 오면 이렇게 산에 사는 산사람을 만나서 세상과 다른 삶의 방식을 보며 세파의 탁함을 벗어낼 수 있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어 좋다. 이 분이 열어주는 청량정사에 들어가 마루에 올랐다. 사람이 거처 않는 먼지 낀 마루에서 산 아래 멀리 이어지는 기암절벽과 송림이 바람과 함께 만들어내는 산바람 솔바람을 깊이 마시며 상념에 잠겨본다. 퇴계선생께서 여섯 차례나 이곳에 오셔서 공부를 하셨다니, 여섯 번이 아니라 육백번이면 어떠랴 선생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다면.
청량정사로 올라가는 입구의 입석대
저멀리 바위아래 보이는 응진암
노국공주의 상이 모셔저 있는 응진전
신라 명필 김생이 글씨공부한 김생굴
청량사
청량사 본당에서 바라본 정면의 석탑과 풍경
첫댓글 오랫만에 청량산 경치를 보니 가보고 싶은 마음이 커지네요. 산사를 거닐면서 옛사람들을 만나 풍류를 읊조리는 몽천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