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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강 활(射)과 술(酒)
1. 서울대학병
사실 제가 서울대학에 와서 강의를 한다는 생각에 밤잠을 못 잤다. 떨리기도 하다. 솔직히 말해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서울대학을 다니는 여러분들은 서울대학병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학을 다니지 못한 우리 국민 대부분에겐 서울대학병이 있다. 물론 나도 서울대학에 시험을 봤다가 떨어진 사람이다. 하여튼 서울대학은 명실 공히 우리나라 최고의 우수한 인재들이 모이는 곳이다.
이곳에 와서 내가 강의를 한다는 게 몹시 떨린다. 그래서 오늘은 서울대학에 왔으니깐 가능한 유감없이 강의를 재미없게 해보려고 한다. 왜냐하면 다른 데는 재미있게 해야 알아듣지만, 서울대학만은 아무리 재미없게 해도 학생들이 재미있게 들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만은 유감없이 재미없게 해야겠다.
재미있게 하라고요? 우리 때 10원이 있으면, 고려대 학생들은 막걸리를 먹었다. 연세대 학생들은 구두를 닦았다. 그리고 서울대 학생들은 책을 샀다.
이게 아주 유명한 이야기다. 우리 때 돈 10원이 있으면, 세 대학 학생들이 그렇게 행동을 한다고 했는데, 나는 막걸리를 먹은 사람이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책을 사는 사람들이니깐, 바로 공부로 들어가겠다.
2. 활과 술
八佾 7장
子曰: “君子無所爭. 必也射乎! 揖讓而升, 下而飮. 其爭也君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다투는 법이 없다. 그러나 굳이 다투는 것을 말하자면 활쏘기 정도일 것이다. 상대방에게 읍하고 사양하면서 당에 오르고, 또 당에서 내려와서는 벌주를 마신다. 이러한 다툼이야말로 군자스럽지 아니한가!”
오늘 마침 7장이 걸렸기 때문에, 여기부터 풀어가 보자. 옛날로 보면, 여러분들도 모두 선비다. 대학교에 들어왔을 정도면, 여러분들은 엄청난 사(士)다. 정말 대 선비들이다.
옛날에 선비라고 하면, 나이 20세가 되면 사관례(士冠禮)를 한다. 상투를 틀고 관(冠)을 쓴다.
童子任職居士位, 年二十而冠.
-의례, 사관례소-
이때 자(字)라는 이름을 받는다.
己冠而字之, 成人之道也.
-예기, 관의-
20세 이전에는 자(字)가 없고, 명(名)이라는 것만 있다. 그래서 우리가 이름을 합쳐서 명자(名子)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말에서 이름을 명자(名子)라고 한다.
你的名字是什么?
그런데 옛날에는 모든 것이 예(禮)라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사람을 만날 적에도 그냥 만나는 게 아니라 상견례(相見禮)라는 게 있다. 상견례라는 것은 아주 제식화되어 있다.
사상견례(士相見禮)
13경 중의 하나인 의례(儀禮) 제3편에 상세히 규정되어 있는 예식. 만날 때 주고받는 예물(贄)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선비라고 하면, 일상적으로 항상 해야 하는 일 중에 하나가 사례(射禮)다. 과거에는 활을 못 쏘면 선비가 아니다. 사례라는 게 그렇게 중요하다.
향사례(鄕射禮)
대부가 3년마다 어질고 재능있는 사람을 왕에게 천거할 때, 그 선택을 위해 행한 활 쏘는 의식에서 유래되었다. 우리나라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잘 규정되어 있다.
이 사례(射禮)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음주례(飮酒禮)와 같이 묶여져 있다. 옛날에는 사례(射禮)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가 의례를 보면, 어느 향촌에 가면, 거기에서 술을 먹는 주례가 열려지기 때문에 그걸 향음주례(鄕飮酒禮)라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활을 쏘게 되기 때문에 향사례(鄕射禮)라고 한다.
향음주례(鄕飮酒禮)
향촌의 선비, 유생들이 학교, 서원 등에 모여 학덕과 연륜이 높은 이를 주빈(主賓)으로 모시고 술을 마시며 잔치를 하는 의례. 우리나라도 고려, 조선조를 통하여 널리 행하여 졌다.
선비인 여러분들도 사실 지금 향음주례 같은 것을 한다. 학교 끝나고 나면 대개 막걸리집이나 주막집에 가는데, 이런 게 전부 음주례(飮酒禮)이다.
수작(酬酌)이라는 말을 아는가? 여러분들이 ‘나한테 수작 걸지 마.’와 같은 말을 한다. 그게 향음주례의 용어다. 주인이 손님에게 술잔을 건네는 것을 수(酬)라고 하고, 그 손님이 주인한테 다시 술잔을 반환하는 것을 작(酌)이라고 한다. 향음주례의 가장 중요한 패턴이 수작례(酬酌禮)라는 것이다. 수작을 하는 것이다.
수(酬) : 주인이 손님에게 술잔을 보내는 예식
작(酌) : 손님이 다시 그 술잔을 주인에게 돌리는 예식
과거의 예식은 음악과 술과 활이 항상 같이 어우러져 있었다.
그리고 옛날에 활을 쏘면 과녁에 못 맞추는 사람이 지는 것이다. 사례를 할 적에 지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술을 마시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하면 쏘다가 점점 취하게 된다.
우리 생각에는 그게 벌주라는 생각이 든다. 못 쏠수록 몽롱해져서 곯아떨어지게 되니깐 벌주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의례 측면에서 보면, 옛날사람들은 져서 불쌍하다고 기(氣)를 돋구어주는 의미에서 술을 주는 것이다. 벌주를 주는 게 아니라, 기운을 내라고 술을 바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아무튼 옛날에는 음주례와 향사례의 복잡한 예식이 있는데, 이걸 오늘 다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강 그렇다. 옛날 선비는 반드시 활을 쏘아야 했다.
3. 쟁
이 구절은 공자가 사례(射禮)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해설한 것이다.
君子無所爭
군자는 싸움을 안 한다고 했다. 이 쟁(爭)이라고 하는 것은, 요새말로 competition이다. 다툰다는 의미다.
쟁(爭, competition)
이 “쟁(爭)”이라는 문제는 선진철학의 중요한 테마였다. 유가(儒家)나 도가(道家) 모두 이 주제에 대하여 설을 펴고 있다.
여러분들도 여기 서울대학에 들어오기까지 엄청나게 치열한 경쟁을 거친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이 그런 경쟁 구조에 들어있으면 군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노자도 부쟁(不爭)을 말하고, 공자도 무소쟁(無所爭)을 말한다. 쟁(爭)하는 바가 없다고 했다.
不尙賢, 使民不爭.
현인을 숭상치 마라. 백성들로 하여금 다투게 하지 말지니.
-노자 3장-
사실 쟁(爭)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으로 살고 있는 한, 인간세상을 유지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는 하다. 자본주의의 본질이라는 것도 기본적으로 인센티브를 주어 사람들을 경쟁을 시켜 프로덕션을 늘리는 구조이다.
그러나 옛날 사람들은 쟁(爭)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쟁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인간을 파멸시키고 만다고 생각하였다.
권투를 하면, 상대를 자기가 때려눕혀야 한다. 권투라는 것은 쟁(爭)을 거치지 않을 수가 없다. 이기려면 상대방을 꺼꾸러뜨려야만 한다. 그런데 우리 동양 사람들은 이렇게 무식한 운동은 하지 않았다.
아마도 공자의 무소쟁(無所爭)이라는 말에 가장 가까운 현대 스포츠 는 박세리 때문에 유명해진 골프인 거 같다.
골프의 특징은 결국 자기 혼자 치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혼자 치기 심심하니깐, 옆에 한 사람이 더 있는 것뿐이다. 게임이라고 하지만 끝까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상대방이 있어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지금 공자 이야기를 보면, 활쏘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활은 자기 혼자 쏘는 것이다. 옆에서 쏘든 말든 상관없다. 그건 경쟁이 아니다. 사실은 활쏘기는 지고이기는 경기가 아니다. 저 사람이 나보다 잘 쏜다는 것을 아는 것뿐이다.
4. 활과 수신
중용 14장을 보자.
子曰 : 射有似乎君子, 失諸正鵠, 反求諸其身.
- 중용 14장 -
중용에서 사유사호군자(射有似乎君子)라고 했다. ‘활을 쏜다고 하는 것은 군자와 비슷한 데가 있다’는 이야기다.
활쏘기는 화살을 쏴서 정곡을 맞히는 것이다. 과녁의 한가운데를 곡(鵠)이라고 한다. 곡은 옛날에 가죽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가죽을 뚫는다고 해서 관혁(貫革)이었다. 이 말이 우리말로 전화되어서 과녁이라는 말로 된 것이다.
과녁 :
순수 우리말이 아니라, 한자의 관혁(貫革)에서 유래되었다. 곡(鵠)의 가죽을 뚫는다는 의미이다.
화살을 쏘아서 이 곡(鵠)에 맞힌다고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활쏘기는 타이밍의 예술이다.
그리고 화살이 곡에 꽂히기까지는 과학적으로 해결이 안 된다. 여기 있는 물리과 학생들이 세밀하게 벡터양을 계산하고, 뉴턴의 포물선 방정식에 의해서 화살이 움직이기 때문에, 이렇게 쏘면 과녁에 정확하게 맞는다. 이게 안 된다.
현상 세계라는 것은, 날아가는 동안에 바람도 불기 때문에 화살을 쏜다고 하는 것은 바람의 방향도 감지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바람의 방향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깐 바람이 불면 화살이 약간 치우쳐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화살의 오차계산은 직감의 세계이다. 합리적인 이성의 세계가 아니다.
화살을 놓는 순간에 이미 결과는 나를 벗어나는 것이다. 향후의 모든 진로는 나의 몸에서 이미 결정된 것이다.
그러니깐 공자가 말하기를, 화살을 쏘아서 만약에 정곡을 빗나갔다고 하면, 화살에게 왜 그렇게 가냐? 미쳤나? 화살한테 야단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과녁한테 잠깐 왼쪽으로 움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失諸正鵠, 反求諸其身.
그 정곡을 맞히지 못하면 돌이켜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다.
- 중용 14장-
오로지 스스로 반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 몸이 반성할 수밖에 없다. 활쏘기라는 것을 공자가 해석하면서, 사례(射禮)라고 하는 것은 항상 벌어진 사태에서 나를 반성한다는 것이다. 그 모든 원인은 나의 몸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항상 나의 몸을 반성해야 한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사례(射禮)가 수신(修身)이라는 문제로 나타난다.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為本.
임금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수신을 기본으로 삼는다.
-대학 1장-
내 몸을 닦는 것이다. 활을 닦는 게 아니다. 활의 촉을 갈고, 활을 예쁘게 만드는 게 아니다. 내 몸을 닦는 것이다.
5. 사례
그래서 예로부터 이런 사례(射禮)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射者, 仁之道也. 射求正諸己, 己正而後發.
활을 쏜다는 것은 인(仁)의 도(道)와 같다. 활쏘기는 자기에게서 올바름을 구하는 것이니, 먼저 자기를 바르게 한 후에 맞기를 바라고 쏘게 되며,
활을 쏜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반드시 자기에게서 올바름을 구하여야 하는 것이요, 반드시 자기 몸이 바르게 된 다음에 화살이 맞기 바라야 한다.
發而不中, 則不怒勝己者, 反求諸己而已矣.
화살을 쏘고 적중하지 않아도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린 사람은 원망하지 않고, 돌이켜 자기를 반성할 따름이다.
그리고 날아가서 들어맞지 않으면, 그것은 자기를 이긴 자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그 모든 원인을 찾아야 한다.
예기, 사의(射義)에 이렇게 쓰여 있다.
故射者, 進退周旋必中禮, 內志正, 外體直, 然後持弓失審固.
활쏘기는 나아가고 물러서는 것이 반드시 예의에 맞아야 한다. 안으로는 뜻이 바르고 겉으로는 몸이 곧아야 한다. 그런 이후에 활과 화살을 들고, 몸과 마음이 제대로 되었는지 살피고 굳게 한다.
그러기 때문에 활쏘기라 하는 것은 모든 진퇴(進退)하고 주선(周旋)하는 것이 예(禮)에 맞아야 하는 것이고, 안으로는 인간의 뜻이 바르게 되어야, 겉으로 내 몸이 바르게 되는 것이요, 그렇게 되어야 비로소 내가 활을 잡는 포즈라든가 하는 모든 것이 견고하게 된다.
持弓矢審固, 然後可以言中. 此可以觀德行矣.
궁시를 들고 심고한 후에야 가히 적중을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가히 군자의 덕행을 보는 것 같다.
- 禮記, 射義-
그래서 그런 것이 확실하게 되어야만, 과녁에 적중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인간의 덕행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활을 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인(仁)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덕행을 얼마나 구비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이 말에 대해 감(感)이 잘 안 올 거다. 왜냐? 여러분들은 무(武)의 세계와 문(文)의 세계가 너무 분리되어 있는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학문의 세계는 문(文)과 무(武)가 분리되지 않았다. 학문은 이지(理智)만을 발달시키는 것이 아니라 몸의 행동거지를 닦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활 쏘는 것만 봐도,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는 것이고, 활을 쏘는 것만 봐도, 그 사람의 덕성을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옛날에 선비들을 바라보는 태도였다.
서울대 학생들은 정말 머리가 좋은 학생들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항상 내 몸을 닦는다고 하는, 수신(修身)의 공부를 게을리 하여서는 안 된다.
아무리 우리가 화살을 지적(知的)으로 기막히게 계산하는 이성적 능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화살은 안 들어맞게 되어 있는 것이다.
여러분 인생도 마찬가지다. 내 머리구조는 서울대에 들어올 만큼 영민한 머리구조가 되어 있지만, 서울대학생이 사회에 나가서 반드시 훌륭한 삶을 사는 사람이 되냐 하는 보장은 없다.
그럴 적에 세상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못하고, 서울대학까지 나왔는데, 이렇게 한탄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 뭐냐? 항상 나 자신을 반성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사(射)에서 증명이 된다는 것이다.
6. 八佾 7장
다시 공자의 본문을 보자.
君子無所爭. 必也射乎!
군자라고 하는 것은 쟁(爭)하는 바가 없는 것이다. 필야사호(必也射乎)라는 것은 이 사례(射禮)에서 증명이 되는 것이다, 활을 쏘는 데에서 증명이 된다는 말이다.
揖讓而升, 下而飮. 其爭也君子.
사직공원 옆에 황악정이라고, 향사(鄕射)를 하던 곳이 지금도 유일하게 남아 있다. 황악정은 옛날부터 활을 쏘던 곳이다. 거기에 가면 옛날 향사례(鄕射禮)를 하던 곳을 실제로 볼 수 있다.
황학정(黃鶴亭)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5호. 1898년 어명에 의하여 경희궁 북쪽 궁궐 담 가까이에 지어졌던 사정(射亭). 1922년 현위치로 이전. 도성안 오사정(五射亭) 중의 하나.
그런데 거기서 활을 쏠 때 반드시 당(堂)에 올라가서 쏜다. 정자가 있고, 멀리에 있는 과녁을 향해 쏜다.
여기서 말하길, 활을 쏘러 올라갈 적에 반드시 읍양(揖讓)하고 올라간다고 한다. 그냥 올라가는 게 아니고, 자기가 한번 사양을 하고 올라간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올라가서 활을 쏜 다음에, 지게 되면 내려와서 술을 마시게 된다. 그렇게 서로한테 예의를 갖추면서 다투는 폼이 군자답다고 한다.
그러니깐 공자가 이야기하는 것은, 경쟁을 하더라도 우리는 이렇게 군자다운 게임을 하자는 것이다. 군자들은 경쟁을 하더라고, 비겁하게 남을 꺼꾸러뜨리면서 자기를 들어내는 바보짓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우리는 항상 그런 것을 조심해야 될 것이라는 말이다.
충분히 재미가 없는가? 그 다음에 8장이다.
7. 석인
八佾 8장
子夏問曰:“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 何謂也?”
子曰 : “繪事後素.”
曰:“禮後乎?”
子曰 : “起予者商也! 始可與言詩已矣.”
자하가 여쭈어 말하였다.
“어여쁜 웃음 보조개 짓고, 아리따운 눈동자 흑백이 분명하니, 흰 것으로 광채를 내도다! 하니 이것은 무엇을 일컬은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것을 뒤로 한다.”
자하가 말하였다.
“예가 제일 뒤로 오는 것이겠군요?”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를 깨우치는 자, 상이로다! 비로소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겠구나.”
여기서 자하(子夏)가 자기네 노래를 하나 인용한다. 교소천혜(巧笑倩兮), 미목반혜(美目盼兮)라는 두 구절은 위풍(衛風)의 석인(碩人)이라고 하는 노래에 나오는 구절이다.
석인(碩人) : 키가 훤칠한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뜻의 노래. 위풍(衛風). 위나라 장공(莊公)이 제나라 태자 득신의 여동생인 장강(莊姜)을 아내로 맞이했는데 그 장강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노래.
그 노래의 내용을 보자.
手如柔苐
膚如凝脂
領如蝤蠐
齒如瓠犀
螓首蛾眉
巧笑倩兮
美目盼兮
手如柔苐
유제(柔苐)는 ‘부드러운 띠풀’이라고 했는데, 그게 어떤 풀이름인지는 모른다. 그 풀이 굉장히 부드러운 하얀 풀인 거 같다. 그래서 ‘손은 부드러운 띠풀과 같고’라는 뜻이다.
膚如凝脂
응지(凝脂)는 돼지기름 같은 게 굳어서 허옇게 된 것이다. 옛날사람들은 그런 것을 부드럽게 느낀 거 같다. 나는 돼지기름 같다고 하면 실례가 될 거 같아서, 요새말로 ‘라드’라고 번역했다. ‘그 살결은 라드처럼 보드라워라.’라고 번역했다. 여자의 하얀 살결을 형용하는 게 굳은 돼지기름 같다고 한다. 이런 의미다.
백낙천의 ‘장한가’에서 양귀비의 아름다운 살결을 묘사할 때도 바로 이 시의 표현을 썼다.
春寒賜浴華淸池, 溫泉水滑洗凝脂.
領如蝤蠐
영(領)은 목이다. 그리고 추제(蝤蠐)는 굼벵이다. 목이 긴데, 약간 줄이 간 거 같다. 우리로서는 그 여자의 아름다운 목이 굼벵이 같다고 하면, 감이 안 오는데, 그 당시에는 이게 엄청난 찬사인 거 같다. 이게 미녀를 묘사하는 말들이었다.
齒如瓠犀
이것은 여자가 웃을 때, 이가 호박씨처럼 가지런히 반짝반짝 빛났다는 이야기다.
螓首蛾眉
매미 같은 이마에 부나비의 촉수 같은 눈썹이라고 했다. 곤충이라든가, 동물의 이름을 가지고 전개해 들어가고 있다. 표현방식이 손에서부터 피부로 해서, 목으로 해서 입으로 해서 눈코로 가고 있다. 이게 옛날식이지만 대단히 탁월하다. 시간성과 공간성을 따라 올라간다.
巧笑倩兮
천혜(倩兮)라는 것도 여러 가지 해석이 있으나, 보통 해석은 보조개 가 들어가는 웃음이다. ‘어여쁜 웃음 보조개 짓고’라는 뜻이다.
美目盼兮
반혜(盼兮)는 눈의 흑백이 완전히 분명한 것이다. 흰 자위와 검은자위가 완전히 구분이 되어야 아름다운 눈이다. 그렇게 나누어지는 것이 반(盼)자다.
흰 자위와 검은자위의 경계가 흐리흐리하면, 썩은 동태눈깔처럼 되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살면서 항상 눈이 반짝반짝 빛나려면, 흰 자위와 검은자위가 뚜렷하게 분별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소천혜, 미목반혜(巧笑倩兮, 美目盼兮)’는 ‘아름답게 웃는 보조개의 모습이여, 그 아름다운 눈이여’가 된다.
8. 자하의 질문
素以爲絢兮. 何謂也?
그리고 ‘소이위현혜(素以爲絢兮)’라고 한다.
‘소이위현혜(素以爲絢兮)’는 소(素)를 가지고서 빛나게 한다. 또는 소(素)를 가지고서 장식한다. 소(素)를 가지고서 찬란하게 한다는 뜻이다. 소(素)는 흰 빛, 흰색이다.
제일 마지막 구절에 소이위현혜(素以爲絢兮)를 인용하면서, 자하는 이것이 무엇이냐고 공자한테 묻는다. ‘이것이 무슨 말을 하는 것입니까?’라고 한다.
子曰 : 繪事後素.
그때 공자가 한 유명한 말이 ‘회사후소(繪事後素)’이다. 이 말을 놓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해석을 하려고 했다.
자하라는 사람이 자기 나라인 위나라의 민요를 인용해서, 그 민요의 구조를 가지고 공자한테 ‘이게 무슨 뜻입니까?’ 하고 물었다. 거기에 대해서 공자가 대답하길, ‘회사후소(繪事後素)’라고 했다.
9. 장승업
서울대학 박물관이 최근 들어서 상당히 활발하다. 최근 박물관에서 장승업전을 했다.
장승업(張承業, 1843 ~ 1897) : 조선 말기의 위대한 화가. 호는 오원(吾園). 고아로 방황타가 수표교 부근 이응헌(李應憲)의 집에 기식하면서 그림에 신통력을 발휘. 고종에까지 불려갔다. 장지연(張志淵)의 『일사유사』(逸士遺事)에 그 전기가 있다.
장승업의 호가 오원(吾園)인데, ‘나도 단원’이라고 해서 오원(吾園)이다. 그만큼 그 당시에 김홍도가 위압적이었던 거 같다. 엄청나게 세었던 거 같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단원보다는 오원 장승업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단원을 뛰어넘는 데가 있다.
장승업의 위대성은 우리나라 전체를 통 털어서 최초의 프로였다는 것이다. 화원(畵員)도 프로는 아니다. 화원은 임금 밑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이다. 장승업은 완전히 무학자였고, 시골 깡촌 사람이다. 수표교에서 살다가 그림을 배워서, 그냥 밑도 끝도 없이 등장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렇게 그림을 잘 그렸다.
그래서 나중에 고종이 불러다가 그림을 그리게까지 한다. 이 사람은 바닥에서 자유분방하게 자기 스타일대로 선생도 없이 스스로 터득해서 그림을 그렸다. 물론 몇 명의 스승은 있다고도 하지만, 그렇게 자란 사람이다.
조선 말기의 화원 혜산(蕙山) 유숙(劉淑)이 그의 스승이었다고 전한다.
고종이 데려다가 앉혀놓고 그림을 그리라고 해도, 갑갑해서 그리질 못했다. 왜냐? 술을 못 먹게 하니깐 그릴 수가 없다. 이 오원은 술하고 여자가 없으면 그림을 못 그렸다. 반드시 여자가 있어야 되고, 술 대접을 받아야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술을 마셔도 만취하도록 먹는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장승업의 기행만을 생각하는데, 장승업의 그림에 들어가 보면 아주 치열한 사실의 정신이 있다. 사물을 묘사하는 태도가 아주 굉장히 정교하다. 완전히 프로다.
당장 여기 2층에 올라가면 잉어가 튀어 오르는 그림이 있다. 그런데 튀는 잉어의 모습을 보라. 아래로 피라미들이 있다. 이 사람은 구도를 완전히 무시하고 세워서 그렸다. 이 사람은 구도가 다르다.
이어도(鯉魚圖) 48세작. 149X48Cm 서울대 박물관 소장.
연못에 가서 낚시를 해보라. 피라미들이 사악 없어지면 큰 게 온다. 큰 게 나타나면 피라미들이 무서워서 다 도망간다. 이 잉어로 자신을 표현한 건지는 모르겠다. ‘이 피라미들아, 꺼져라!’ 그런 뜻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그림을 보면, 간단한 거 같지만, 나는 장승업의 엄청난 예술의 혼을 느낀다.
그 옆에 고양이 그림이 있다. 고양이를 벌이 쏘려고 하는 그림이다. 벌이 일직선으로 독침을 가지고 날아온다. 그런데 고양이가 그걸 째려보고 있다. 째려보면서 오는 놈을 탁 치려고 하는데, 고양이의 몸은 흐릿하게 처리했다.
유묘도(遊猫圖) 48세작. 견본 담채 149X48Cm. 서울대 박물관 소장.
꼬리 같은 것은 흐릿하게 처리했지만, 꼬나보고 있는 눈과 수염이 돋친 것은 세밀하게 묘사했다. 거기에 기(氣)가 확 몰려있다. 기운생동(氣韻生動)이다.
기운생동(氣韻生動) : 5세기 사혁(謝赫)이 말한 육법(六法)의 제1. 후대의 수묵 산수보다는 채색화의 사실적 그림의 생동성을 모델로 한 말이다. "회사후소"와도 관계된다.
장승업의 그림 세계를 보면, 생동하는 엄청난 힘이 느껴진다.
10. 회사후소
하여튼 여기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말로 돌아가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간단하게 이야기한다.
회사후소(繪事後素) : 전통적으로 수묵산수를 모델로 하여 흰 바탕 위에 채색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해석하였는데 이것은 그릇된 해석이다. 오히려 채색의 과정에서 흰색이 제일 나중에 온다는 것을 나타낸 공자의 말이다.
후(後)는 타동사다. 그럼 소(素)를 가장 뒤로 한다는 뜻이 된다. 그래야 문법적으로도 맞는다. 그러니깐 후소(後素)는 흰 바탕에 발묵(潑墨)을 하는 요새 수묵산수의 개념이 아니다.
아름다운 여인이 화장을 하더라도 처음에는 보조개를 그리고, 눈썹을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파이널 터치는 하얀 분으로 한다. 그림도 이렇게 흰 물감으로 최후의 터치를 해 들어간다. 옛날에는 제일 나중에 흰 물감으로 파이널 터치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회사후소(繪事後素), 즉 그림 그리는 일은 나중에 흰 물감을 칠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11. 예후호
“禮後乎?”
그러니깐 자하가 그걸 받아서 ‘예후호(禮後乎)’라고 한다. ‘인간의 예(禮)라고 하는 것도 그렇게 그림에서 흰 물감을 마지막으로 터치하는 것처럼, 인간이 성장을 하는 경우에도 제일 마지막에는 예(禮)라고 하는 교양으로서 인간을 최후적으로 다듬어야 한다는 말이겠군요?’ 그게 예후호(禮後乎)라는 말의 뜻이다.
子曰 : “起予者商也! 始可與言詩已矣.”
그러자 공자는 ‘상아! 넌 정말 나를 계발시키는 사람이로구나! 이제 너와 더불어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라고 말한다. 여기서 상(商)은 자하의 실명으로 애정이 듬뿍 담긴 친근한 호칭이다.
그리고 기여자(起予者)의 起(기)는 단순히 감정의 흥기(興起)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제자라 할지라도 그 깨달은 바가 선생인 자신을 앞서는 면이 있어서, 자신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해준다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시가여언시이의(始可與言詩已矣)’는 학이편 15장에서 자공과 함께 절차탁마(切磋琢磨)라는 시구를 이야기했을 때, 허여(許與)했던 것과 동일한 표현이다.
따라서 학이편 15장과 팔일편 8장은 구조적으로 동일한 계통의 사람이 적은 파편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12. 기운생동, 골법용필
저번에 중앙대학에서 강의할 때도 이야기했지만, 기(氣)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라임, 운을 밟는 것이다. 운(韻)이라고 하는 것이 합쳐져서 기(氣)의 세계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기(氣)의 세계는 반드시 생동(生動)을 해야 한다.
그러나 기운생동이라고 하는 것은 그 밑에 있는 골법용필이라는 것과 반드시 짝을 이루는 것이다.
기운생동(氣韻生動)은 골법용필(骨法用筆)과 짝을 이루는 말로써 골법용필의 바탕 위에 이루어지는 생동감이다.
골법용필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용필(用筆)에 뼈가 있는 것이다. 골법이라는 게 딴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니깐 여러분들이 아무리 위대한 예술가라고 할지라도 기운생동하는 그림을 그리려면 반드시 골법용필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골법용필의 전제가 없이, 기운생동을 이야기할 수 없다.
13. 포정해우(庖丁解牛)
장자(莊子)의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庖丁爲文惠君解牛.
백정이 문혜군(文惠君)을 위해서 소를 잡는데,
문혜군(文惠君)이라는 사람이 양혜왕이다. 소를 잡는 백정이 양혜왕을 위해서 소를 잡아주는 것이다. 잔치를 하려고 유명한 백정을 불렀다.
手之所觸, 肩之所倚, 足之所履, 膝之所踦, 砉然嚮然, 奏刀騞然, 莫不中音.
손으로 쇠뿔을 잡고, 어깨에 소를 기대게 하고, 발로 소를 밟고, 무릎을 세워 소를 누르면, 획획하고 울리며, 칼을 움직여 나가면 쐐쐐 소리가 나는데, 모두 음률에 맞지 않음이 없어서,
그런데 이 백정이 소에 손을 대고, 어깨에 기대고, 발로 밟고, 무릎으로 누르고 삭삭삭삭 소를 칼질해 들어가는데, 척척척척 음이 맞아 들어가서,
合於桑林之舞, 乃中經首之會
桑林의 舞樂에 부합되었으며, 經首의 박자에 꼭 맞았다.
은나라 탕왕(湯王)의 제일가는 음악 소리같이 척척척척 박자에 맞는 소리가 나면서, 스르륵 소가 형체도 없이 다 분해가 되어 버렸다.
文惠君曰: 譆, 善哉! 技蓋至此乎?
문혜군이 말했다. “아! 훌륭하구나. 기술이 어찌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는가?”
그걸 보고 있다가 문혜군이 놀래서, ‘아! 좋다! 그대의 기술이 어떻게 여기까지 이르렀는가?’하고 말했다. 소백정이 순식간에 소 잡는 것을 보고 놀라서 이야기를 한 것이다.
庖丁釋刀對曰 : 臣之所好者道也, 進乎技矣.
포정이 칼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道)인데, 이것은 기술에서 더 나아간 것입니다.”
그 포정이 칼을 놓으면서 하는 말이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道)의 세계올시다. 제가 소를 잡는 것은 도의 세계올시다. 그런데 이 도(道)라고 하는 것은 기(技)로부터 나아간 것입니다.’라고 한다.
그러니깐 여기서 진(進)이라는 말은 기(技)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기(技)를 완전히 마스터해서, 그 기예(技藝)를 완전히 익힌 자가 나아가는 경지가 도(道)라는 것이다. 여기서 ‘臣之所好者道也, 進乎技矣.’는 굉장히 중요한 동양사상이다.
진(進)
기(技) -----------> 도(道)
始臣之解牛之時, 所見无非全牛者, 三年之後, 未嘗見全牛也.
처음 제가 소를 해부하던 때에는 눈에 비치는 것이 온전한 소 아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뒤에는 온전한 소는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제가 처음 소를 잡을 적에는 전체가 모두 소로 보였습니다.’라고 한다. 그러니깐 다른 것은 안 보이고, 소만 보였다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소가 전체 공간을 모두 차지해서, 칼을 어디로 집어넣어야 할지 몰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삼년이 지나니 소가 보이지 않았습니다.’라고 한다.
方今之時, 臣以神遇而不以目視, 官知止而神欲行.
지금은 제가 神을 통해 소를 대하고,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감각기관의 지각 능력이 활동을 멈추고, 대신 신묘한 작용이 움직이고자 하는 대로 따를 뿐입니다.
그 다음부터 자기 눈으로 보는 것은 정지하고, 자기의 정신세계로 소가 만나게 되더라는 것이다. 관지(官知)는 이목구비로 바라보는 세계를 뜻한다. 여러분들이 관지(官知)로 소(牛)를 보면 다른 것은 안 보이고 소만 보인다.
자신의 감각으로 바라보는 것을 멈추고, 자신의 신(神)적인 세계가 가려고 하는 것을 본다는 것이다. 자신의 영적인 세계, 신적인 세계만 소에게 가니깐, 소가 안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依乎天理, 批大郤, 導大窾, 因其固然, 技經肯綮之未嘗, 而況大軱乎!
자연의 결을 따라 커다란 틈새를 치며, 커다란 공간에서 칼을 움직이되 본시 그러한 바를 따를 뿐인지라, 經絡과 肯綮이 조금도 방해하지 않는데 하물며 큰 뼈이겠습니까?
그 다음부터는 뼈대기만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을 하다보니깐, 그 다음에는 뼈대기도 보이지 않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뼈대기와 뼈대기 사이의 틈만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이사이로 착착착착 칼을 대니깐, 한 번도 근육이나 이런 것을 터치하는 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良庖歲更刀, 割也 ; 族庖月更刀, 折也.
솜씨 좋은 백정은 일 년에 한 번 칼을 바꾸는데 살코기를 베기 때문이고, 보통의 백정은 한 달에 한 번씩 칼을 바꾸는데 뼈를 치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백정은 일 년에 한 번 칼을 갈고, 보통 백정은 한 달에 한 번 칼을 바꾸는데,
今臣之刀十九年矣. 所解數千牛矣, 而刀刃若新發於硎.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칼은 19년이 되었고, 그동안 잡은 소가 수천 마리인데도 칼날이 마치 숫돌에서 막 새로 갈아낸 듯합니다.
그런데 나는 19년 동안 이 칼을 썼는데, 19년 전에 칼을 간 그 모습그대로 있지 않냐고 한다. 그러니깐 19년 동안 소를 잡았어도 멀쩡하다는 것이다.
彼節者有閒, 而刀刃者無厚.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칼날 끝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저 소뼈와 소뼈 사이에는 틈이 많은데, 자기 칼날은 두께가 없다고 한다.
以無厚入有閒, 恢恢乎其於遊刃必有餘地矣, 是以十九年而刀刃若新發於硎.
두께가 없는 것을 가지고 틈이 있는 사이로 들어가기 때문에 넓고 넓어서 칼날을 놀리는 데 반드시 남는 공간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 때문에 19년이 되었는데도 칼날이 마치 숫돌에서 막 새로 갈아낸 듯합니다.
그러니 칼이 들어가도 넉넉하다는 것이다. 아무렇게 휘둘러도 넉넉하다는 것이다. 노자가 말하는 대로, 텅 비어있는 세계만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깐 칼을 아무렇게나 휘둘러도 소뼈 하나 터치하지 않고, 착착착착 소가 해체되는 것이다.
14. 장자와 혜시
동양의 예술정신은 어떠한 논리적인 사유보다는 직관의 세계를 중시한다고 하는데, 그런 것이 어떻게 이야기되고 있는지 재미난 사례를 한 번 들어보겠다.
장자하고 혜시가 호양지상(濠梁之上)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莊子與惠子遊於濠梁之上
莊子가 惠子와 함께 濠水의 돌다리 위에서 노닐고 있었는데,
어느 날 둘이서 호(濠) 위의 다리를 거닐고 있었다.
장자(莊子) : 맹자와 동시대의 도가철학자
혜시(惠施) : 당시의 논리학자, 장자의 둘도 없는 친구
儵魚出遊從容, 是魚之樂也.
“피라미가 나와서 한가로이 놀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물고기의 즐거움일세.”
장자가 이렇게 내려다 보니깐, 붕어가 헤엄치고 있었다. 여기서 종용(從容)이라는 말은 아주 편하게 나와서 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좋았겠나? 물고기들이 편하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장자가 보다가 ‘저 물고기들은 즐겁겠구나. 저렇게 한가히 노닐고 있으니 참으로 즐겁겠구나.’라고 한다.
惠子曰: “子非魚, 安知魚之樂?”
혜자가 말했다.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겠는가?”
그랬더니 그 옆에 있던 논리학자 혜시(惠施)가 ‘너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네가 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다고 하느냐?’고 한다. 안(安)은 어찌 안(安)자이다. ‘어찌 네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다고 그러느냐?’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깐 장자가 갑자기 혜자한테 당한 것이다. 자기는 무심코 ‘붕어가 잘 놀고 있다. 참 즐겁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당한 것이다. 그리고 사실 맞는 말이다.
莊子曰 : “子非我, 安知我不知魚之樂?”
장자가 말했다.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지 알 수 있겠는가?”
그랬더니 옆에 있던 장자가 ‘그대는 분명 내가 아닌데, 내가 저 붕어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어찌 아느냐?’고 한다. 논리가 정확하다. ‘바로 네가 내가 아닌데, 내가 저 붕어들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고 한다.
惠子曰 : “我非子, 固不知子衣; 子固非魚也, 子之不知魚之樂, 全矣.
혜자가 말했다. “나는 자네가 아니기 때문에 참으로 자네를 알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그것처럼 자네도 당연히 물고기가 아닌지라 자네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 것이 틀림없네.”
그러니깐 혜시가 이 말에 대해 논리적으로 나가는 것이다. ‘좋다. 나는 분명 네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네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를 알 도리가 없다. 그렇다면 그 논리에 의해서, 너는 분명 물고기가 아니다. 그러므로 너는 똑같은 논리에 의해서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고 하는 나의 주장은 타당하다.’고 한다.
아주 정확한 이야기다. 옛날의 한문이라는 것을 우습게 알면 안 된다. 굉장히 정확한 것이다. 그렇게 장자를 깠다. 여러분은 여기서 더 반격을 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장자가 여기서 꿀리면 되겠나? 게다가 이건 장자라는 책이다. 장자가 어떻게 반격을 하는지 보자.
莊子曰 : 請循基本. 子曰 “女安知魚樂” 云者, 旣已知吾知之而間我, 我知之濠上也.
장자가 말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세. 자네가 나를 보고 ‘자네가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겠느냐’고 말한 것은, 이미 내가 그것을 알고 있음을 알고서 나에게 물어온 것일세. 나는 그것을 濠水 가에서 알았지.”
‘그 근본을 따져 들어가 보자. 너는 어떻게 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 인식론적으로 네가 나를 비판했을 그 당시에, 너는 이미 내가 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서 나에게 물은 것이다. 나는 어떻게 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았느냐? 그것은 바로 이 다리 위에서 안 것이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그 물고기의 즐거움을 어떻게 아느냐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따지면 끝까지 문제가 되지만, 나는 분명히 물고기를 보고, 이 물고기들은 즐거울 것이라고 느낀 순간의 내 느낌은 절대적이다. 그 직관은 네가 논리적으로 깰 수 없다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위대한 예술가가 되려고 한다면, 먼저 이 기(技)를 익혀야 한다. 기운생동을 말하기 전에 골법용필을 익혀야 한다.
그리고 아까 소를 잡는 그 유명한 포정(庖丁)이 말한 도(道)의 세계도 기(技)에서 나온 것이다. 그 도(道)는 기(技)를 초월한 것이다.
기(技, Rationality) -----------> 도(道. Trans-rationality)
그러나 지금 장자의 말대로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논리로 따져서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직관으로 하는 것이다.
15. 반 고호
예를 들면 반 고호도 그렇다. 여러분 starry night라는 그림을 아는가? 그게 언제 그린 것인지 아는가? 반 고호가 정신병동에 갇혔을 때 그린 그림이다.
고호는 1889년 4월(36세) 생레미 정신병동에 들어갔다. 그곳에 갇혀 창가로 보인 광경을 그린 그림이 그 희대의 명작. 『별이 빛나는 밤』(1889년 6월 작)이었다.
그 그림을 보면, 태양이 작열하는 데, 그 주변의 공기들이 꼬불꼬불 빈 허공을 가득 채우며 올라간다. 그 허공도 같이 전부 춤을 추고 있다. 고호의 심정에 밤의 하늘이 그렇게 보인 것이다. 어두운 하늘의 공기 하나하나가 꼬불꼬불하게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장자가 직관적으로 다리 위에서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 것처럼, 고호도 그 순간에 자신이 바라본 세계는 그러하였다는 것이다. 거기에 어떤 절대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위대한 것이다.
그 당시의 평론가들은 반 고호를 미친놈이라고 했다. 그림도 아니라고 했다. 지금은 고호를 대단하게 알지만, 그 사람이 800점의 유화를 그렸는데 평생 단 1점만 팔렸다. 완전 거지로 산 사람이다. 비참하게 산 사람이다.
고호는 생애의 마지막 10년 동안에 800점의 유화를 그렸다. 그중 단 한 작품만이 정식으로 거래되었다.
16. Vincent
Don Mclean의 Starry starry night~ 라는 노래를 아는가?
Vincent by Don Mclean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pallette blue and gray
Look out on a summer's day
With eye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Shadows on the hill
Sketch the trees and daffodils
Catch the breeze and winter chills
In colors on the snowy liner land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ll listen now
Starry starry night
Flaming flowers that brightly blaze
Swirling clouds in violet haze
Reflect in Vincent's eyes of China blue
Colors changing hue
Morning fields of amber grain
Weathered faces lined in pain
Are soothed beneath the artist's loving hand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ll listen now
Starry starry night
portraits hung in empty halls
Frameless heads on nameless walls
With eyes that watch the world and can't forget
Like the strangers that you've met
The ragged man in ragged clothes
The silver thorn of bloody rose
Lie crushed and broken on the virgin snow
Now I think I know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re not listening still
Perhaps they never will
Swirling clouds in violet haze.
Reflect in Vincent's eyes of China blue
Colors changing hue
보랏빛 안개 속에 소용돌이치는 구름들이
빈센트의 푸른 눈동자에 비쳐집니다.
색깔들의 색조에 변화가 생기고
빈센트 반 고호의 눈 색깔이 차이나 블루였다고 한다. 거기에 비쳐서 색깔의 톤이 완전히 바뀌는 고호의 미술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너무나 맑은 정신을 가졌었기에 당신이 얼마나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정신이 멀쩡했기 때문에 정신병자로 오해를 받고 산 인생이다.
This world was never meant for one as beautiful as you
이 세상은 당신처럼 아름다운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구요.
그러면서 너 같이 아름다운 사람에게 이 세상이 의미를 가질 수가 없다고 한다.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ll listen now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죠.
어떻게 듣는지도 몰랐죠.
아마도 지금은 귀 기울일 거예요.
그러면서 너는 인간을 해방시키고, 이 그림을 통해서 인간에게 자유를 주었지 않느냐? 이런 가사의 내용이다.
장승업의 세계나, 반 고호의 세계나, 장자가 말하는 직관의 세계나, 예술의 세계라고 하는 것은 동서양이 다 같다. 단순히 ‘동양사상은 직관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그렇게 편한 직관이 아니다.
뭔가 그 순간의 절대적인 자기 표현이 있어야 되고, 그 표현을 하기 까지, 자기의 인생에서 표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어떤 절심함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서울대학생들에게도 있어야 된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훌륭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17. 한국화 운동
내가 서울대 미대에 온 것을 단순하게 그냥 온 게 아니다. 내가 20년 동안 서울대 미대 출신들과 한국화 운동을 했다. 일랑 이종상 선생도 계시지만, 이런 분들하고 옛날부터 한국화 운동을 했다.
동양화, 서양화라는 말은 웃기는 것이다. 동양화가 어디 있고, 서양화가 어디 있는가? 한국화라는 개념을 새로 만들자고 해서, 수유리아카데미 하우스에서 세미나도 하고, 호암 아트홀에서 전시회도 했다.
한국화 운동을 할 때, 처음부터 내가 가담을 했었고, 그 뒤로 서울미대 출신들하고 도도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계속 공부를 했다. ‘우리가 어떻게 이 미술사를 이해하느냐?’ 하는 공부를 꾸준히 해 왔다.
도올 김용옥은 일랑 이종상(李鍾祥, 현 서울대 박물관장) 등 한국의 대표적 화가들이 주관하여 한국화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하는 세미나에 참석하였다.(1988.6.30. 아카데미 하우스) 김병종, 오광수, 문봉선, 송수남 등이 논문을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