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르 파티
강성희(리디아)
남편이 친구들과 1박 2일의 천렵, 낚시 여행을 떠났다. 혹을 달지 않고 혼자 떠나는 휴가 여행이 기대가 되는 듯 남편은 수학여행을 앞둔 초등학생처럼 들떠 있었다.
캠핑 도구만도 한 차가 될 듯 많은 짐을 챙겨서 떠나보낸 후. 혼자 남아 있는 빈 집의 느낌이 조금은 낯설다.
그렇다고 나쁜 느낌은 아니고 쓸쓸하면서도 호젓하달까? 멜랑꼬리한 느낌이 마음을 느슨하게 이완시켜 준다. 운동을 다녀온 후, 얼굴에 팩을 시원하게 붙이고 소파에 기대 누워 음악을 듣고 있자니 세상에 이보다 편할 수가 없다. 졸음마저 스멀스멀 내 의식의 주변을 서성인다.
깜박깜박 이 세상이다가, 꿈 세상이다가, 왔다 갔다 하는 내 의식을 따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도 이어졌다 끊어졌다가 한다.
그러다 쿵작쿵작하는 요란하고 경쾌한 쇳소리 음향에 화들짝 놀라며 잠이 달아나 버렸다.
’무슨 노래가 이렇게 요란하지?‘ 하는데 라디오에서는 빠르고 강렬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비트와 함께 신나는 트롯 리듬의 아모르 파티~, 아모르 파티~ 하는 노랫말이 반복되다가 음악이 끝나 버린다. 아마 음악의 끝 부분에서 내가 졸음에서 깨어난 모양이다.
아모르 파티, 아모르 파티~ 강렬한 인상을 남긴 ’아모르 파티‘ 라는 한 귀절이 저절로 따라서 흥얼거려진다.
아모르 파티? 무슨 파티길래? 요즘 스마트폰의 세계는 궁금증을 그냥 궁금한 채로 남겨 두지 않는다.
나는 옆에 있는 스마트 폰으로 아모르 파티의 뜻을 찾았다. 운명을 사랑하라. 김연자 라는 우리 세대의 가수의 신곡이란다. 노래 제목이 심상치가 않다.
내가 생각했던 party가 아니고 Amor Fati 라는 생소한 말이다. 독일 철학자 니체의 운명관을 나타내는 용어라고 한다. 운명은 필연적인 것으로 인간에게 닥쳐오지만 이에 묵묵히 따르는 것보다는 필연성을 긍정하고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어야 인간 본래의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란다. 트롯과 니체의 오묘한 만남이 신선한 감마저 불러일으킨다.
나는 Amor Fati의 뜻에 수긍을 하면서도 은근히 저항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나의 운명을 온전히 사랑하면서 살아 온 것일까?
어느덧, 내 조부모 세대 때만 해도 일생을 살았을 만큼의 긴 시간을 살아온 나, 그동안 나에게 주어진 운명에 수긍하고 그 운명을 사랑하며 살아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넘을 수 없는 너무 높은 벽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어 인정하는 척 했을 뿐인 운명도 있었고 지금 생각해도 억울한 운명도 있었다.
내가 태어나 유아기와 유년기, 학동기를 거쳐 청년이 되고 장년을 지나 지금 신중년이라고 말하는 초로의 지점에 이르기까지 그 마디 마디 어느 지점에도 나의 운명은 작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언제 어떤 운명이 크게 작용해 지금의 나로 이끌었을까?
현재의 나란 존재에서부터 태어나던 그 순간 까지 시간을 거슬러 오르며 기억을 더듬어 본다. 태어나던 순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중학생 때 까지만 해도 내가 내 운명을 생각해본 기억은 없다. 내가 어떤 운명을 타고 났는지, 앞으로 나에게 닥쳐올 운명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관심도 없었고 그냥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니 나는 자랐고, 해야 했으니 했고, 부모님께서 보살펴 주시는 대로 그냥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의 운명이 내 운명을 좌우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것 또한 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부모님 덕에 어려움 모르고 학창시절을 보내게 된 것도 나의 운명이라면 운명이겠다. 소위 초년운이라고 말하는.......
고등학생이 되고 자아가 생기며 나는 나를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 자신에 대한 불만도 생기고 부모님에 대한 불만으로 반항심도 생겼다. 막연하나마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생겼고 사회에 불만도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불만도 불만으로 끝났을 뿐 그 불만을 내 운명과 연관지어 생각할 사고력도 없었고, 또한 용기도 없었다.
내 미래를 바꿀 수 있을 만큼의 큰 운명의 결정은 대학 입시 무렵에 있었다.
나는 까딱했으면 지금의 내가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 집안에서 막내아들이셨던 아버지께서는 문중의 어른이셨던 큰형님의 뜻을 부모님 뜻 받들 듯 공경하고 어려워 하셨었다.
아버지는 ’여자의 고학력‘은 팔자가 세다는 큰 형님의 말씀에 따라 나를 고졸을 최종 학력으로 만들어 한 두 해 가사 일을 가르친 다음 적당한 자리를 물색해서 빨리 성혼을 시키자는 계획을 세우고 계신 것 같았다.
여자 팔자는 삼종지도에서 말하는 세 남자에게 종속되어 있으며, 시집 가서 잘 사는 것이 여자들의 일생일대의 큰 덕목으로 생각하시는 문중 어른들의 그런 사고에 나는 수긍할 수가 없었다.
나는 평생 처음으로 부모님께 반항하며 식음을 전폐하는 단식을 했다.
내 운명을 내가 결정하게 된 첫 사건이었다.
고졸의 졸업장을 쥐고 일찍 시집을 가는 것 보다는 나는 차라리 굶어서 죽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님은 없어 나는 대졸이라는 최종 졸업장을 쟁취하고 결국은 평생의 직업, 천직이었노라고 지금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나의 사회생활을 행복하게 펼쳐갈 수 있었다.
그 때가 내가 기억하는, 운명이 나의 문을 두드린 첫 사건이었을 뿐, 그 이후로 운명의 순간들은 시시로 찾아 왔다. 전공을 다른 것으로 했더라면, 그 때 그 남자를 돌려 세우지 않았더라면, 그 때 초임지에서 몇 년을 더 버텼더라면, 대구를 떠나지 않았더라면, 명퇴를 했더라면, 아들이 원하는 학과를 지원하게 했더라면, 아들의 첫 아가씨를 달가워해 주었더라면......
내가 선택해서 결정해야 할 일들은 점점 무겁고 더 많아 졌다.
그만큼 내가 책임져야 할 내 운명의 갈림길 지도도 복잡해졌다.
그 중 가장 큰 운명의 만남은 결혼이었다.
결혼을 한 후, 가정과 자식은 내 존재와 갈라놓을 수 없는 큰 운명의 족쇄가 되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에서 내 운명의 뱃머리를 돌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Key는 자식들이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선택한 많은 결정들이 운명이라는 미명을 핑계 삼아 내 인생의 전개에 간섭을 하고 싶어 했다. 그 때 이렇게 했더라면, 저렇게 했더라면....... 하고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후회도 있지만 이제는 지나간 한 바탕 꿈이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체념인지 수긍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담담하게 받아들이긴 하지만 사랑하지 못한, 사랑할 수는 결코 없는 운명도 있었다.
나는 여전히 소파에 기대 누운 채로 유튜브에서 ’아모르 파티‘를 찾아서 처음부터 음악을 다시 들어 보았다. 화면에서는 음악과 함께 가사도 친절하게 보여준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소설 같은 한 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 ~
자신에게 실망 하지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파티‘
아모르 파티,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라고 여자 가수의 애닯으면서도 조금은 허스키한 목소리가 계속 외쳐댄다.
비몽사몽간 꿈결에 들은 노래에 이끌려 깨어나 운명이라는 어렵고 무거운 화두로 생각에 잠시 빠졌다. 운명이라는 게 정말 있는 걸까? 나에 닥쳐왔던 운명들은 누가 주관을 한 것인가? 운명이라는게 정해져 있다면 되돌릴 수는 없는 걸까?
선문답처럼 이어진 운명이란 어렵고 무거운 주제의 생각들 속에서 머리 속이 복잡하던 중 노래를 들으니 노랫말 속에 답이 있다.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 파티. ‘
그래 지금 행복하면 되었지. 나 보다 힘들고, 나보다 못한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
때로는 대중가요가 마음에 큰 위안를 주기도 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인간의 일생은 그 인간이 생각한 대로 된다‘라는 아우렐리우스의 명귀절을 떠올리며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파티‘를 흥얼거려본다. 운명을 사랑하라. 현재의 나를 사랑하라. (끝) 2019.07.17
첫댓글 리디아님의 글을 읽으니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 그런 글귀가 생각이 납니다. 잔 다르크 같은 용맹함과 결단력이 있었기에 현재의 님이 있는 거 맞습니다. 운칠기삼도 결국 노력이라는 멍석이 깔려 있기에 운이 같이 가는 것 아닐까요? 저 역시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개천에 용이 되겠다고 몸부림을 쳤었기에 그나마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멋진 글 한편이 님의 아모르 파티장이 되신 것 같습니다. 내가 살아온 그 자체가 운명이 아닐까요 때로는 운명을 거스리기도 하고 순응하며 살아갈때 느끼는 행복 불만 좌절 성취 이 모두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결국은 아모르 파티장이란 생각을 합니다. 잘 나도 내인생 못나도 내인생 내인생 내가 사는 것 하루하루 파티여는 기분으로 살아가야 할것 같습니다. 생의 철학이 녹아나는 좋은 글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누구나 몇 번 씩은 생각하고 , 괴로워하고, 때로는 두려워 했던 나의 운명,
그 운명을 사랑하고 애써 노력한 결과가 오늘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글 속 감정의 흐름이 현실이 되어 담담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도 고등학교를 실업계고등학교에 가라고 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을 거부하며 저항해서 인문계로 갔습니다. 그 당시는 여자가 대학에 가는 것을 탐탁찮게 여기던 시절이었죠. 결국 운명은 70%이상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나머지는 아모르 파티 처럼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현실을 즐길 줄 마인드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원동력인가봅니다. 호젓하게 음악과 함께 사색을 즐기시다 또 한편의 글이 탄생하셨군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아모르 파티 처음들어봅니다. 운명을 자기것으로 받아들이라는 뜻으로 이해 할까요? 받고사는지 억지로 받았는지 한 평생 다 살았네요. 선생님께서 운명은 자신이 만든다는 말씀 공감합니다. 자식이 족쇄라는 말도 어딘가 모르게 자식들이 불편하면 나도 불편하지요. 그런데 남들은 또 그럽니다. 무슨 걱정있느냐고 또 남의 눈에라도 그렇게 보이니 다행이라고 자위하면서 삽니다.
비몽사몽간 꿈결에 들려오는 아모르파티~노래가 운명이란 무엇인지? 화두를 던져 주었군요.
좋은 운명이든 힘든 운명이든 케세라세라~가 아닐까 합니다.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살아가는 인생일지라도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고해를 해쳐나가는데 가장 중요하고 지혜로운 도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음미하며 잘 읽었습니다.
저도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는 멜로디가 신나는 곡이어서 party라 생각했습니다. Amor Fati ~의 뜻을 안지 얼마되지 않습니다. 김연자님의 콘서트를 보았는데 그 작은 몸집에서 뿜어나오는 열정이 대단했습니다. 운명을 수용하며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삶을 사랑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운명은 필연적인 것으로 인간에게 닥쳐오지만 이에 묵묵히 따르는 것보다는 필연성을 긍정하고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어야 인간 본래의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Amor Fati 의 뜻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운명은 자기자신이 개척하는 것이지 따르는 것이 아닌듯 합니다. 저 역시 지난날을 회상해 보면 걸어온 길, 걸어가고 있는 길은 내가 결정한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인생을 음미해볼 수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어느날 TV프로그램을 통해서 알게 된 '아모르 파티!' 제가 보면서 받았던 느낌으로 해석을 했던 나의 무심함이 나를 미소짓게 하네요. '운명을 사랑하라' 라는 뜻을 알게 됨과 동시에 노래의 가사는 별로 생각나지 않지만 아모르 파티 라는 말과 함께 들려오는 흥겹던 가락이 운명을 사랑하면 그렇게 흥겨워지겠구나. 나에게 오는 모든 운명을 흥겹게 맞이하고 보내야지 하며 이리 저리 재 보지 않고 그냥 단정적으로 말하면서 최면을 걸어봅니다.
님의 글은 나를 그 자리에 꽁꽁 묶어 세심하도록 채찍질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하고, 알게하며,푹~ 빠지게 하는 멋짐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