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3일
열무김치 담기
김 미 순
구멍이 송송난 열무
왼 손에 칼을 잡고
오른 손에 열무를 꼭 쥐고
뿌리를 자른다.
성공해야지 싶어 집중해서 자른다.
무사히 빨간 함지박에 오지게 담는다.
옆에서 아린 마늘을 까던
언니와 동생에게
자랑스레 열무를 내민다.
그러나 나는 겉잎을 따지 않았단다
부드럽고 싱싱해 보여도
담가놓으면
노랗게 떠버린다는 것
주부 십단의 언니 말씀
열무를 소금으로 절여놓고
찹쌀가루를 쑤려고 물을 얹고,
마른 고추, 마늘, 생강, 배, 사과 , 대파,
, 양파도 썰어 섞고
"깍두기도 담글거나"
머리만한 무가 있다고
동생에게 내미는 대장 언니
.
몇 십년 전 내가 사드렸다는며
고추 가는 기계를
소환하는 언니
물끄러미 따뜻하게 바라보는 나
찹쌀가루와 젓장을 더해
썰어둔 양념이 들들들 갈리고
우물가에서 동생은
앉았다 일어나며
열무김치를 담는다
열무가 건져지고 무가 썰어지고
양념에 간 맞추며 설탕도 약간,
언니가 직접 키운 참깨도 듬뿍 넣고
동생이 열무를 쓱쓱 비빈다.
교향곡처럼 열무김치가 버무려지고
"언니 거를 먼저 담아라"
내 거를 담아라고
제법 큰통을 내민다.
다음은 아들 거
남으면 본인 거
언니의 사랑 순위
무도 설렁설렁 비비는 동생
언니의 조언이 이어지고
먹어 봐라며 내미는 동생과 언니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
문득 엄마가 생각난 나는 눈물을 찔금
다음은 소불김치
어제 다듬어 놓은 소불을
한바구니 함지박에 쏟는다.
언니집 텃밭에서 고이 자라온 소불
고루고루 간이 배게 털어내며 비비는 동생
조심조심
저번에 담가준게 있다는 내게
익어도 맛나니까 가져가서 냉장고에 넣어 놔
소불김치도 그 순서대로 통에 담는다
애틋한 동생의 마음
조단조단
조곤조곤
나는 옆에서 가만 보고 들으며
해도해도 마르지 않는
엄마 얘기
아버지 얘기
동생 여름 휴가에 맞춰
2박 3일 꼬시게 보낸다.
언니의 뿌쩍 커지는 세 살 손주 자랑에
우리도 함께 행복해진 김치담기
해가 진다.
형부가 낚아온 갈치에
조선호박 숭숭 썰어넣고
갈치 찌게를 하는 언니
오늘 저녁도 거나하게 익어간다
열무를 다듬었다는 나의 뿌듯함도
곱게 여물어 간다
카페 게시글
즐거운 시
열무김치 담기
작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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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0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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