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선 선생(金炳善)(미상~ 1921.1.24)은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청림 출신의 독립투사이다.
선생은 후손을 찾지 못해 국가보훈처가 건국훈장을 보관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김병선 선생의 후손이 나타났다.
보훈처는 보훈처가 인정할만한 결정적인 자료들이 미비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이 검토한 결과 후손들이 증빙한 자료 이상의 추가 준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이들이 실제 후손일 가능성과 개연성이 매우 높고 현재 이 후손은 1950년생으로 어느덧 70세가 되었다.
오랜 시간 모시던 노모가 돌아가시기 전 어린 시절로 돌아가 독립운동가 김병선생이 했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그리고 몸이 쇠한 다음에는 일본순경이 온다며 극도의 공포감을 가지고 살았다.
그렇지만 더 이상의 깊은 얘기에는 침묵했다.
김동순(1919~2017)은 김명숙의 외동딸이다.
김동순도 유명을 달리하기 1주일 전 정신이 혼미해서야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얘기했다.
그러면서 세상이 좋아져 돌아가신 아버지의 뼈라도 찾을 수 있다면 유전자 식별이 가능하다는데 자신을 화장하지 말고 묻으라고 유언했다.
또한, 돌아가시기 직전, 어린 시절속의 아버지를 회상하며
“아버지 미안해요,
아버지 고마워요, 독립만세”를 외쳤고
이것을 목격한 유가족들은 이때부터 독립유공자 신청 및 후손인증 절차에 오랜시간 보훈처와 사투를 벌였다.
<독립운동 맞습니다> 책을 집필하며 목소리 높여 외쳤다.
그러나 정보가 부족하고, 현실적인 방법조차 모르며, 금전적 여유도 충분치않은 고령의 후손들이 직접 자료를 중국, 일본 등 현지에서 찾아 보훈처가 원하는 형태의 문서로 작성한 뒤 공훈심사과에 제출하여 심의를 요청하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을 넘어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일들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이 나라에 꼭 필요한 일이다.
이미 늦어도 매우 늦었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이러한 이야기를 세상에 전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 국민들의 애국심, 국가관을 강요하지말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부터 제대로된 예우를 다하는 것이 첫 단추를 메꾸는 일이다.
김병선 선생의 자주독립운동 조각 하나라도 더 맞춰지길 소원한다며 선생의 외동딸 고. 김동순(1919.11.29~2017.12.6) 여사는 찹찹한 심경을 밝혔다.